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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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라고?”
하노이 지부, 본부기획실.
나는 잘못 들은 건가 싶어 김민주에게 재차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같았다.
“소속 불명의 헌터들이 국경 인근 던전들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다고요!”
“던전 점거……?”
아, 아니 것보다.
“소속 불명 헌터라니. 어디 카르텔이라도 움직인 거야? 분명히 10년 전쯤에 국제 협회가 씨를 말렸을 텐데.”
“아직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다만 지금 확인된 곳만 라오바오, 테이, 쏩콥 국경 검문소 인근까지 총 세 군데에요.”
“심지어 하나도 아니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왜 하필 이런 타이밍에…….’
던전 점거.
지금에야 국제 협회와 독립협회들이 힘을 합쳐 긴 노력 끝에 대부분 소탕했지만, 과거엔 개발도상국들을 중심으로 이능력자 카르텔이 활개를 치던 때가 있었다.
이들의 주요 활동은 시민 납치 및 테러.
그리고 협회 소속 직원들이 던전에 진입한 틈을 타 입구를 점거하고, 던전이 닫히기 전에 협회에 금전을 요구하는 던전 점거.
요즘 같은 시대에 그 짓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대체 어떻게 돼먹은 나라길래 이딴 말도 안 되는 일만 계속 일어나냐.’
하지만 아무리 악명 높은 카르텔이라도 작전팀을 상대로 던전 점거를 벌이지는 않았다.
그들의 주요 타깃은 던전에 진입하는 팀들 중 이능력이 없어 비교적 다루기 쉬운 이들.
그래…….
“혹시 지금 그 새끼들이 점거하고 있는 던전에 청소팀 들어가 있냐?”
“……네.”
“빌어먹을.”
역시.
어떤 놈들인지는 몰라도 작업 일정까지 확인해서 움직였다.
작정하고 움직인 거라고 봐야겠지.
“우리 쪽 대응은 어떻게 되고 있어? 설마 손 놓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근처에 작전팀이 바로 출동하긴 했는데……. 상대 인원이 너무 많아서 대응하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라고…….”
젠장.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어떡하자는 건가.
“그래서 그쪽에서 원하는 건 뭐래? 몸값이라도 요구하디?”
“그게, 요구하긴 했는데…… 1,000억을 불렀어요.”
“이런 미친.”
너무 기가 차서 헛웃음부터 튀어나왔다.
1,000억이 누구 집 개 이름인가?
시발, 상식적으로 가능한 금액이 아니지 않은가.
“그 정도 금액을 마련하려면 이제 막 완공된 허브라도 팔아야 겨우…….”
잠깐.
그 순간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만약 카르텔이 작전팀을 상대로 점거했다면 협회 입장에선 무력 충돌을 감수하더라도 구출하려 할 것이다.
작전팀은 곧 협회의 가장 큰 재산이자 무엇보다 중요한 인원들이니까.
하지만 청소팀은 다르다.
냉정한 말일지 모르지만, 청소부 몇 명을 구출하기 위해 작전팀이 충돌을 감수하는 건 영 수지가 안 맞거든.
카르텔 또한 그걸 알고 있기에 터무니없는 요구는 하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봤자 그냥 무시할 테니까.
그런데도 1,000억을 불렀다고?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둘 중 하나다.
그냥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거나 아니면…….
“김민주.”
“네.”
“지금 우리 쪽 허브… 추산 매각 금액이 얼마나 되냐.”
애초에 다른 목적이 있거나.
“현재 가치로 치면 대략 1,000억이요.”
“그런데 웬 정체도 모르는 헌터 새끼들이 그 정도 금액을 몸값으로 요구했고?”
“……그렇게 되겠네요.”
“어떻게 생각하냐.”
“어떻게 생각하냐니……. 설마 이게 이번 허브 관련 건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브 추산 매각 금액과 같은 비용. 그리고 막 각 지부와 협상이 결렬된 마당에 타이밍 좋게 벌어진 사건.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저쪽 입장에 좋게 돌아가고 있었다.
설사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번 문제를 간과하고 넘긴다면 협상은 이쪽에 더 불리하게 진행되고 만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때 김민주가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깊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청소부 몇 명 구하자고 그만한 돈을 줄 순 없잖아. 그렇다고 이제 막 인수한 지부의 현지 직원들을 포기해버리면…….”
“반발이 어마어마하겠죠. 자칫하면 인수 자체가 엎어질 수도 있고요.”
“그럼 뭐, 선택지가 없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남아 있는 작전팀은?”
“3팀, 4팀, 8팀, 9팀이에요.”
“좋아. 김민주 너는 3, 4팀 데리고 테이 국경 검문소로 가. 한유빈 씨는 8, 9팀이랑 같이 쏩콥으로 가시고요.”
“네.”
주먹을 꽉 쥔 채 연신 눈에서 분노를 뿜어대던 한유빈이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그럼 라오바오 쪽은…….”
“나 혼자 간다.”
“괜찮으시겠어요?”
김민주가 걱정스레 물었지만, 굳이 대답하진 않았다.
“각자 장비 챙기고 헬기 대기시키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먼저 사무실을 나섰다.
“같잖은 새끼들 면상이나 보러 갑시다.”
***
서쪽, 라오바오 국경에서 수 km 떨어진 어느 산속.
보고 받은 위치에 도착하자 괴한들과 멀찍이 거리를 두고 대치하고 있는 작전 1팀과 후인이 보였다.
“오셨습니까.”
나를 발견한 후인이 헐레벌떡 다가왔다.
“예, 상황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보고 드린 그대로입니다. 던전 안에 청소 3팀이 갇혀 있는데 접근하려고 하면 공격부터 해서 대응조차 쉽지 않습니다.”
“던전 닫힐 때까진 얼마나 남았습니까.”
“15분도 간당간당합니다.”
쯧, 아슬아슬하네.
“저쪽에선 뭐 특별한 말은 없었습니까?”
“네. 몸값 요구 이후로는 입을 닫고 있습니다. 협상이라도 해보려고 다가가면 곧바로 공격을 퍼붓는 통에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고…….”
주변을 둘러보니 부상을 입은 팀원 몇 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로서도 이미 몇 번이나 접촉을 시도한 듯했다.
“무엇보다 저쪽 인원이 꽤나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 창피한 줄 압니다만…… 실력도 저희보다 위인 것 같습니다.”
“흠.”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떨어진 던전을 살폈다.
300m쯤 떨어진 거리.
꽤나 많은 인원이 던전 입구를 점거하고 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40… 아니, 50명쯤 되나.’
확실히 생각보다 많다.
‘저 정도면 2개 작전팀 정도 규모는 되는 것 같은데.’
청소팀 진입을 정확히 노린 점거.
50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인원.
어디서 굴러먹던 놈들인지는 몰라도 꽤 실력 있는 헌터들.
누가 봐도 작정하고 움직인 거라고 봐야겠지.
“안에 있는 청소팀부터 어떻게든 빼내야 하는데…… 최소한 협상이라도 해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후인이 말끝을 흐리며 이를 물었다.
대충 상황은 모두 전달받은 것 같았기에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제부턴 제가 어떻게든 할 테니 후인 씨는 지원팀에 연락해서 의료진부터 호출하십시오.”
“네, 네?! 어떻게든 하신다뇨? 설마 혼자 싸우시기라도 하실 건…….”
“최대한 대화로 풀어볼 생각입니다.”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곤 이내 걸음을 뗐다.
던전을 향해 몇 발자국 앞으로 다가가자.
쾅―!!
원거리에서 공격이 날아들었다.
쾅, 쾅―!!
이어지는 몇 번의 공격.
정확히 노린 공격은 아니다.
위협 사격, 혹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연막인 듯했다.
겁만 먹지 않는다면 크게 움직이지 않고도 쉽게 피할 수 있는 정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 나갔고, 이윽고 10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던전을 점거 중인 헌터들과 마주했다.
더 이상 공격은 날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베트남 협회 책임자인가?”
커다란 덩치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의 우두머리인 듯했다.
“그렇습니다.”
“몸값을 가져온 건가?”
“아뇨.”
“…….”
복면 사이로 남자의 얼굴이 험악해지는 것이 보였다.
“그럼 여긴 왜 왔지?”
“우리 직원들을 구하러 왔습니다.”
“…푸! 푸하하하!”
남자의 웃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꼴랑 혼자서 뭘 어쩌고저째? 지금 장난쳐?”
“하하하.”
나 또한 장단을 맞춰 웃어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지금 이게 시발, 장난 같습니까?”
“…….”
다행히 진심이 전해진 듯 더 이상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남자는 더욱 험악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 요구는 무시해놓고 동료를 구하겠다?”
“예.”
“어떻게? 미리 말하는데, 혹시 협상이라도 할 생각이면…….”
[습득 스킬 : 디스트로이어]
쾅―!!
“협상은 시발, X까는 소리하고 있어.”
남자는 말을 하다 말고 폭발과 함께 뒤로 날아갔다.
“……?”
“……바, 방금 무슨?”
나머지 헌터들은 날아간 남자와 나를 번갈아 보며 벙찐 표정을 지었다.
“야!”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니들 동남아 지부 소속들이지?”
“…….”
“…….”
대답 참 정직하네.
뻔하지 않은가.
확인도 안 되는 카르텔이 이런 타이밍에 그런 금액을 요구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
그래서, 과연 지들끼리 손잡고 벌인 짓일까, 아니면 위에서 내려온 지시일까.
뭐 어느 쪽이든 용서가 안 되네.
어디서 나름 국제 협회 지부라는 새끼들이 이딴 양아치 짓을 벌여.
그것도 소속을 숨기고 카르텔인 척까지 해가면서.
“……죽여.”
그때, 피칠갑을 한 남자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저 새끼 죽여 버리라고, 시발!!”
“예, 예!”
그의 지시에 50여 명의 헌터들이 전투태세를 갖췄고, 그중 몇 명은 곧바로 나를 향해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무전기를 들었다.
“아쉽게도 협상 결렬됐습니다.”
수신자는 다른 현장에 가 있는 한유빈과 김민주였다.
「다짜고짜 공격하신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최대한 대화로 풀어보려고 했습니다.”
일단 하긴 했으니 문제는 없겠지.
「그럼 뭐, 방법이 없네요.」
“예.”
그녀들에게 떨어진 하나의 지시.
“몽둥이를 듭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전기를 내던지고는 스킬을 발동했다.
[습득 스킬 : 하이퍼 부스트]
[전투 중 시전자의 이동속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파앙―.
마주 오는 놈들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했다.
***
―테이 국경 검문소 인근, 숲속.
작전 3, 4팀과 막 현장에 도착한 김민주는 무전을 끊고 정면을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먼저 공격하신 거 같은데.’
그렇게 중얼거리던 찰나, 작전 3팀장이 물었다.
“뭐라고 하십니까?”
“뻔하죠, 뭐.”
그녀가 피식 실소를 뱉었다.
“전원 전투태세 갖추세요.”
“…….”
“…….”
30여 명의 헌터들이 꽤나 비장한 얼굴로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김민주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무기를 꺼내 들었다.
아쉽게도 그녀의 단짝인 흑랑지도는 한국에 두고 왔기에, 급한 대로 다른 헌터의 것을 빌린 것이었다.
“후우…….”
이윽고 크게 심호흡을 하길 한 차례.
[고유 스킬 : 천수관음(千手觀音)]
그녀의 서슬 퍼런 눈빛이 적들을 관통했다.
“갑시다.”
탓―.
가벼운 움직임으로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쏩콥 국경 인근, 일찍이 버려진 옛 도로.
작전 8, 9팀과 함께 괴한들과 마주한 한유빈은 목과 어깨를 빙글 돌리며 몸을 풀었다.
“괜히 휘말리지 않게 알아서들 조심해요. 적군, 아군 가리면서 싸우는 거 잘 못 하니까.”
그녀가 입을 열자 작전 8팀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 그런데 팀장님은 청소팀 소속 아니십니까……?”
“전투 가능하시겠어요?”
다른 작전팀원들 또한 같은 반응이었다.
뭐, 자신이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이들이니 한유빈은 이해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일일이 전직 뭐였고, 어떤 스타일이고 설명할 시간은 없고.
그래서 대답 대신에…….
[고유 스킬 : 하이패닉 버서커]
그저 고삐를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