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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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행정본부, 협회장실.
나는 귀국하자마자 짐도 풀지 않고 곧바로 그곳을 찾았다.
“대체 출장 가서 뭔 일을 그렇게 벌이고 온 거냐.”
협회장은 날 보자마자 대뜸 그 말로 포문을 열었다.
“국제 협회 지부들이 손을 잡고 던전 점거를 하다니. 내 협회 인생 50년 동안 듣도 보도 못한 말이다.”
“마찬가지입니다. 뭐, 그래도 나름…….”
나름 잘 해결했다, 그 말을 차마 뱉을 수 없어 말끝을 흐렸다.
정말 잘 해결했다면 후인이 찔리지 않았을 테니까.
협회장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혹시 주변 협회가 그런 일을 벌인 게 우리랑도 관련이 있나?”
“없진 않습니다. 뭐, 제 추측이지만… 저번에 말씀드렸던 국제 협회와 관련된 어떤 조직이 직접 지시를 내린 것 같습니다.”
“흐음,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군. 나도 그런 괴담이라면 들어본 적이 있네. 뭐, 자네 반응을 보니까 마냥 괴담은 아닌 모양이군.”
협회장이 나를 흘겼다.
궁금한 게 많은 눈빛이었지만 그 이상 뭔가를 묻진 않았다.
“본부는 어땠습니까?”
“여기야말로 별일 없었어.”
“다행이군요.”
협회장이 흠, 하며 신음했다.
“뭔가 신경 쓰이는 게 있나 보군. 저번 수중 던전 때와 비슷한 상황인가?”
“더 대담해지고 있습니다.”
“……듣던 중 나쁜 소식이군.”
“아무래도 경고하려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더 움직이면 계속 위험해질 거라고.”
“자네가?”
“저 혼자라면 차라리 다행이죠.”
오는 놈들 다 조져버리면 그만이니까.
어차피 개인적으로 볼일도 있고.
하지만 이번 일은 결코 나에게만 위협을 주려는 게 아니다.
“자네 주변을 위협하려는 거군.”
“예.”
흐음, 협회장이 굳은 얼굴로 턱을 만지작거렸다.
어쨌든 회귀 전에 날 죽인 것도 그놈들일 확률이 높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고 기습당한 거라 쳐도, 결과적으론 SSS랭크였던 나를 죽이는 데 성공한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다른 녀석들을 작정하고 노린다면, 무조건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 떼러 갔다가 되레 혹이 붙어 버렸네그려.”
“……죄송합니다.”
고개를 푹 숙였다.
“베트남 지부를 먹으면 조금이나마 주춤할 줄 알았습니다.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나올 줄은…….”
“주제넘은 소리 마. 자네는 제안했을 뿐이고 최종적인 판단은 내가 했네. 그럼 그게 누구 잘못이겠나.”
“…….”
뭐… 맞는 말이긴 하다.
내 잘못은 아니지.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자네도 더 강경하게 대응할 생각인가?”
“그러기엔 아직 상대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일단은 몸을 사리고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확실히 더 움직이긴 힘들겠어. 해외 지부 사업 건도 이쯤에서 퍼즈 해야겠고.”
“아뇨.”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해외 사업 건은 계속 진행할 생각입니다. 추가적으로 다른 건들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고요. 여기서 멈춘다면 꼬리를 마는 꼴이지 않습니까.”
“경고가 들어왔다면서? 이상 더 일을 벌이는 건 위험하지 않겠나.”
“공식적으로 진행한다면 그렇겠죠.”
협회장의 눈썹이 꿈틀했다.
“자세히 말해봐.”
퍽 무거워 보이는 목소리.
사무실을 슥 살핀 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해외 지부 사업을 비롯한 국제 협회 대응 건들은 지금처럼 공식적으로 진행하는 게 아니라 음지에서 진행하려고 합니다. 그편이 국제 협회의 눈을 피해 활동하기엔 더 좋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자네 말은, 협회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움직이자?”
“예.”
“방법은?”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협회 뒤에서 비공식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산하 조직을 하나 만들까 합니다.”
“흠, 국제 협회를 따라 하자는 건가?”
“따라 하다 뿐이겠습니까.”
몸을 앞으로 숙이며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잡아먹을 생각까지 하고 있는데.”
“…….”
협회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내 눈에는 애써 담담한 척을 하는 거로 보였다.
그의 입꼬리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으니까.
“대체 어디서 이런 또라이가…….”
“예?”
“아무것도 아닐세.”
그래, 산하 조직이라─ 협회장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그만둘 거라 하지 않았나? 왜 마음이 바뀐 건가.”
“계획에 변수가 좀 생겨서요. 이대론 나가도 딱히 의미가 없게 됐습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이것도 나가는 거긴 하죠. 말이 비공식 산하 조직이지, 결국엔 협회에서 독립하겠다는 뜻이니. 아시다시피 제가 공식석상에 있는 한 협회 전체가 타깃이 될 테니까요.”
“제아무리 비공식적으로 진행한다고 해도 결국엔 눈에 띄게 될 텐데?”
“겉으로는 다른 사업으로 포장해야겠죠. 생각해둔 게 있습니다.”
“위장 사업이란 말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판단은 협회장님께 맡기겠습니다. 기껏 말해 놓고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되돌릴 순 없습니다. 앞으로는 완전히 국제 협회를 적으로 돌리게 되겠죠.”
사뭇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언젠가는 무력 충돌도 감수해야 할 겁니다.”
“겁주는 겐가?”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협회장이 푸, 숨을 뱉었다.
“어쨌거나 이걸 단둘이 있을 때 얘기한다는 건 다른 사람들은 몰랐으면 한다는 거겠지?”
“예. 이두식 이사에게도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믿어도 된다. 입 하나는 무겁거든.”
그는 이내 고개를 뒤로 팍 젖혔다.
“토벌만 하면 될 줄 알았더니 별일이 다 생기는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곤 잠시 고민하던 끝에.
“그래, 시벌. 해보지 뭐.”
허가가 떨어졌다.
“물론 당장 진행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무엇보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도 알아볼 필요도 있으니까요.”
“그래. 준비되면 언질이라도 해주게.”
그가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쯧, 결국 자네가 나가게 되는구먼. 어떻게든 꼬셔서 계속 붙어 있게 하려고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허가를 내주지 말 걸 그랬나.”
……뭐라는 거야.
“어차피 같은 배에 탄 입장입니다. 잠시 떨어져 있는 거라고 생각해주십시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아무튼,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런 말 마라. 감사는 오히려 내가 해야지. 자네 같은 사람이 협회에 있어 준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었네.”
“…….”
세계 1위 헌터였던 전생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던 말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괜히 멋쩍어진 기분에 서둘러 사무실을 나서려던 그때.
“그래서, 이건 개인적인 질문인데.”
협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 대체 뭘 하고 싶은 건가?”
“예?”
“협회장 제안도 거절하고 말이지. 심지어 본부장 자리도 마다하는 걸 내가 억지로 앉히지 않았나. 그렇다고 돈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가 턱을 괸 채 말을 이었다.
“청소부로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동안 자네가 욕심부리는 걸 한 번도 못 봤네. 자네, 대체 목표가 뭔가?”
“뭐…….”
목표라.
당연한 거 아닌가.
“높이 가는 겁니다.”
“얼마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가능한 만큼.”
그 말을 뒤로하고 나는 협회장실을 빠져나왔다.
***
‘에휴…….’
속으로 연신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귀국 직후부터 계속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귀하의 목표 달성 현황에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공항에서 들려온 그 음성에서부터였다.
[귀하에 대한 국제 헌터 협회의 적대감이 기준치를 초과했습니다.]
[해당 변수에 따라 귀하의 현 목표 달성 현황을 갱신합니다.]
[…….]
[귀하의 현 목표 달성 현황이 갱신되었습니다.]
[히든 스킬 : 업보]
[스킬 해제 조건 : 국제 헌터 협회의 사무총장 달성]
[현재 직책 : 대한민국 이능차원관리협회 서울 작전본부장]
[현재 스킬 해금률 : 99.8%]
[현재 클래스 : 검사, 사제, 마법사]
[현재 비공식 랭크 : SS]
[현재 비공식 랭킹 : 국내 1위, 세계 37위]
[현재 국제 헌터 협회와의 관계 : 매우 나쁨]
[현 시간 기준, 기존 계획대로 진행 시 해당 목표 달성 확률]
[1.068%]
여태까지는 들어본 적이 없었던 내용의 음성이었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1프로라니, 시발…….’
사무총장이 될 확률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그 절망적인 확률에 하마터면 공항에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뭐… 냉정하게 따지면 그럴 만하다.
기존의 내 기획은 스킬을 모두 해금해서 다시 헌터가 되어 국제 협회에 입성하는 거다.
하지만 국제 협회의 타깃이 되어버린 현재, 국제 협회 입성은 고사하고 헌터 등록조차 할 수 없는 처지다.
그러니 저딴 확률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어쨌든 이대로는 1프로의 확률을 뚫고 사무총장이 되는 건 기대하기 힘들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계획에 수정이 필요했다.
뭐… 수정이라고 해봤자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지만.
‘새로 하나 만드는 거지 뭐.’
물론, 이미 국제 협회의 타깃이 된 마당에 그걸 대놓고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협회장에게 비공식 산하 조직을 제안한 것이다.
개인 사업으로 위장해 국제 협회의 눈을 피해 야금야금 세력을 넓혀가기 위해서.
제2의 국제 협회 사무총장.
이 얼마나 그럴싸한 방법인가.
물론 이 빌어먹을 업보가 그걸 인정해줄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모 아니면 도다.
뭐라도 해보는 수밖에.
“그래… 결국 나가게 됐구먼.”
오랜만에 발걸음한 청소팀 사무실.
마주 앉은 박 과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가서 뭐 할지는 생각해봤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협회 하청으로 몬스터 부산물 처리하는 놈 있거든? 준우, 너만 괜찮다면 거기 자리 하나 부탁해볼게.”
“하하…….”
부산물 처리 시설?
죽어도 싫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이미 생각해둔 게 있습니다.”
“오, 벌써? 어떤 건데?”
“뭐,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청소팀 파견 사업을 해볼까 합니다.”
“청소팀 파견…?”
청소과장인 그조차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이번에 베트남 출장을 다녀오면서 알게 된 건데, 생각보다 많은 나라의 독립협회에서 청소팀이 부족하다더군요.”
“그거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잖냐. 서울본부나 몸집이 좀 큰 지부는 몰라도 조금만 지방으로 내려가도 아직까지 인원이 많이 부족하지.”
“그러니까 말입니다. 어쨌든 수요야 넘쳐나니, 그런 곳을 상대로 청소부를 파견해준다면 서로서로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듣고 보니 괜찮은데?”
금세 생각이 바뀐 듯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헌터 아카데미를 운영할까도 꽤나 많이 고민했지만…….
최대한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걸 고르다 보니 청소부 파견만 한 게 없었다.
잘되면 해외까지 건드려볼 수도 있고. 오히려 금전적으론 더 짭짤할지도 모르지.
‘뭐, 그건 공식적인 이유고…….’
비공식적인 이유로는 어쨌든 여러 나라를 다닐 명분이 필요할 뿐이다.
사업을 명분으로 해외 지부 인수합병을 진행하기에는 이만한 아이템이 없으니까.
‘음…….’
어째 아이러니했다.
전생에선 청소팀이 뭘 하는 팀인지도 모르고 인원 감축을 제안했던 내가, 이젠 아예 반대 입장이 돼서 청소팀 파견 사업을 하려 한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아니, 죽고 볼 일인가.
“이야, 너 처음 왔을 때 생각나네. 솔직히 그땐 하루 이틀 하다가 나가겠거니 했는데…… 설마하니 우리 일에 그렇게 살신성인 것 나설 줄이야.”
박 과장이 클클 웃었다.
“네가 청소팀에 있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정말 고마웠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과장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왜 다들 반응이 이렇게 격한 건가 싶다.
쓸데없이 무안해지게.
나는 짧은 인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리고.”
동시에 다시 박 과장을 향해 꽤나 늦은 그 말을 전했다,
“그때 일은 죄송했습니다.”
“으, 음? 뭐, 뭐가?”
어리둥절한 모습.
나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그런 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