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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90화 (90/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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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PB코퍼레이션 본사.

“김 본부장이 사퇴했답니다.”

마르크 팀장에게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엥? 갑자기?”

“예. 기사에서도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하는 거 보면 딱히 이유를 말하지 않으려는 것 같은데…… 뭐, 아무래도…….”

“풉, 푸하하하!”

그가 다짜고짜 웃음을 터트렸다.

“경고가 제대로 먹혔나 보군.”

그리곤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지부들을 끌어들이는 건 위험 부담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효과는 있었네.

마르크 팀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팔짱을 꼈다.

뭐, 어차피 동남아 지부들은 그리 중요한 곳도 아니었고. 이번 일로 협회에서 탈퇴하고 싶다고 해도 지들 입지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겠지.

결과적으로 다 좋다.

지부 놈들한테는 아니겠지만.

그때 직원이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제 눈엣가시가 사라져서 다행입니다.”

“그러니까. 이제야 속이 좀 후련…….”

그 순간, 마르크 팀장은 이내 묘한 위화감에 말끝을 흐렸다.

‘아니, 잠깐…….’

생각해보니 고작 청소부 출신의 동양인 한 명이 PB코퍼레이션의 눈엣가시였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 아닌가?

게다가 명색이 밸런스 조정팀장이라는 자신이, 그 눈엣가시를 죽이는 데 성공한 것도 아니고 제 발로 협회를 걸어 나간 것에 안도하고 있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자존심에 타격과 깊은 패배감이 밀려왔다.

“……기분 X같네.”

“뭐, 예삿놈이 아니긴 했잖습니까. 하하.”

“그니까. 그게 제일 이해가 안 간다고.”

쯧, 마르크 팀장이 혀를 찼다.

유년 시절부터 천재 소리 들어온 이능력자들도 5년도 채 못 버티고 나가버리는 게 이 바닥이다.

그런 바닥에서 고작해야 5개월 만에 작전 본부장을 달고 한국 협회를 손에 쥔 것도 모자라, 우리 쪽에서 진행한 적대적 인수합병을 막아내고 베트남 협회를 단독으로 인수해버리다니.

이게 과연 말이 되는가.

인생을 두 번 살고 있는 게 아니고서야.

“……됐다. 이미 나간 놈인데 자꾸 생각해서 뭐 하겠어.”

그가 한숨을 뱉었다.

하지만 직원은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는 반응이었다.

“설마 이제 손을 떼실 생각이십니까? 우리 존재를 알고 있는 놈인데 가만히 내버려두는 건 아무래도 좀…….”

“누가 내버려둔대?”

마르크 팀장이 쏘아붙였다.

“그놈처럼 동료들한테 목숨 거는 놈은 정면으로 상대하면 안 돼. 아니, 오히려 그걸 바라는 놈이야. 동료가 위험해지느니 차라리 혼자 위험한 게 낫다고 생각하는 족속이거든.”

“그래서 급하게 사퇴를 한 거군요. 동료들을 지키려고.”

“그렇겠지.”

다만─ 마르크 팀장이 그렇게 말을 이었다.

“알잖냐. 그만큼 올곧은 놈은 결국 그게 약점이라는 거. 계속 주변을 붙잡고 늘어지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내놓을 놈이야.”

“아하…….”

직원은 과장되게 감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본부에선 뭐 소식 없냐?”

“슬슬 토벌권 통합 건을 추진한다고 합니다. 아마 회수팀의 케인 팀장님이랑 같이 움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쪽도 나름 바쁘구먼.”

“저희 팀에도 영향이 있을까요?”

“완전히 별개 프로젝트도 아니고, 그쪽 일 진행하다 보면 우리 팀이 필요할 때가 분명히 있을 거야. 일단은 하던 일이나 계속하고 있자고. 기다리다 보면 소식이 있겠지. 그나저나 양은 뭐 하고 있냐?”

“당분간 좀 숨어 있으라고 해뒀습니다. 죽은 듯 살고 있을 겁니다.”

“슬슬 대기하고 있으라고 해. 언제 다시 움직여야 할지 모르니까. 아 그리고, 똑바로 전해. 이번에도 실패하면 한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될 거라고.”

“……알겠습니다.”

“하는 김에 뱅크 아이템 관리팀에도 연락해서 반능석도 좀 준비시켜놓고.”

“……예?”

반능석이라는 말에 직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아이템은 S랭크 이상의 헌터들을 작업할 때나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직원의 기억상, 당분간 S랭크 이상 작업은 없었다.

그런데 왜 그걸 갑자기…….

“설마 김에게 쓰실 생각이십니까…….”

“맞아.”

“너무 과한 거 아닙니까. 제아무리 이레귤러라고 해도 반능석까지 쓸 정도는 아닐 텐데요.”

“뭐…….”

마크르 팀장은 등받이에 몸을 푹 기대며 말을 이었다.

“혹시 모르잖냐.”

***

작은 원룸.

본부장이 되고 나선 집에서까지 일을 했던 까닭에 방은 꽤나 어수선한 상태였다.

나는 토벌 기획과 던전 정보를 정리해놓은 문서들을 대충 치우며 이아영 실장과 마주 앉았다.

‘쯧,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

무슨 지원팀 실장이라는 사람이 남 사업에 동참하겠다고 작정하고 협회 정보를 빼돌릴 생각을 하는가.

뭐, 다른 협회들 정보는 내 사업을 떠나 지부 건설 건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으니 나로선 거절할 이유야 없다만.

일단 그 얘기 전에.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내가 말했다.

“시간석 연구하시던 건 어쩌고 나오신 겁니까?”

“으음……”

딱 봐도 당황스러운 표정.

“그게, 아직 연구실 완공도 안 됐고 안 들어온 장비도 있어서…….”

“진척도 없이 퇴사했다는 말이군요.”

“…….”

“에휴…….”

이아영 실장이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길 잠시.

“그런데 당신은 그걸 왜 그렇게 신경 쓰는 거예요? 본부장일 때는 몰라도 이젠 딱히 상관없는 물건이잖아요.”

뭐, 확실히 다른 사람 눈에는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다.

무기나 다른 아이템으로 가공할 수도 없는 아이템인데, 관련 분야가 아니고서야 시간 쓰고 돈 써서 굳이 연구하려는 이들은 많지 않을 테니.

애초에 나도 가설이 생기기 전까진 딱히 신경 안 쓰던 아이템이기도 했고.

‘이걸 말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이제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이건 그냥 가정인데 말입니다. 만약 어떤 나쁜 놈들이 그 시간석을 가공해서…….”

“그거 불법인데요?”

“아니 그러니까 가정이라고 했잖습니까. 자꾸 말 끊으실 겁니까?”

“……알았어요. 계속 말해 봐요.”

큼큼.

헛기침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시간석을 총알로 가공해서 그걸 사람한테 쏜다면……. 그 사람한테 루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한 표정.

그럼 그렇지.

괜한 말을 했다 싶어 곧바로 손사래를 쳤다.

“됐습니다. 그냥 한 번 해본 소리니까 신경 쓰지…….”

“될걸요.”

“……예?”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저번에도 말했잖아요. 시간석의 루프는 던전에만 적용되는 게 아닌 것 같다고. 뭐랄까… 쉽게 설명하자면 하나의 스킬 같은 느낌이거든요.”

“…….”

“그러니까 뭐, 되지 않을까요? 어떤 형태로 루프가 발생할지는 모르겠지만.”

이아영 실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지금 본인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발언을 한 건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지.

“근데 뭐, 어디까지나 이론상으로 가능하다는 얘기고.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힘들죠.”

“그렇습니까?”

“당연하죠. 일단 시간석 같은 뱅크 아이템을 가공하려면 장난 없는 자본에 기술력이 들어가야 하니까요. 만약 가공했다고 해도 그걸 발사하려면 웬만한 총으론 어림도 없죠. 타이탄 정도면 모를까.”

그 말이 더욱 확신을 심어주었다.

국제 협회라면 자본과 기술력은 말할 것도 없고.

내 머리에 박아 넣은 건 분명히 타이탄이었고.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작된 회귀.

모든 게 맞아떨어진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하나.

“그런데…… 그렇게까지 고생해서 굳이 시간석을 사람한테 쏠 필요가 있을까요?”

그때, 같은 의문이 든 건지 이아영 실장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뭐, 말했잖습니까. 그냥 가정이라고.”

이아영이 정확히 짚은 것이다.

당시 그놈들은 작정하고 날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단순히 죽이려는 거라면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하다못해 반능석을 이용해서 내 이능력을 모두 해제했다면 일반 총알로도 충분히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내 머리에 박은 총알이 정말로 시간석을 가공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굳이 그럴 이유가 있었을까?

“뭐… 대충 알겠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죠.”

일 얘기로 주제를 돌렸다.

지금 생각해봤자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으니.

나는 이아영 실장이 가져온 서류를 집어 들며 말했다.

“그나저나 국내 지부 정보는 꼭 필요한 겁니까? 솔직히 전 국내보단 해외 협회 쪽으로 더 중점을 두고 싶은데.”

“해외 협회를 상대로 사업을 할 거면 일단 국내 협회에서 인지도를 쌓는 게 우선이에요.”

기다렸다는 듯 그녀는 설명을 시작했다.

“서류 보시면 알겠지만. 수원 지부, 대전 지부, 부산 지부 같은 규모가 좀 있는 지부들은 기본적으로 10개 이상의 청소팀이 있어요.”

“생각보다 많군요. 이렇게까진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왜, 당신 본부장 될 때 떠들썩했잖아요. 청소팀이 실적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걸 두 눈으로 봤으니 여유가 좀 있는 지부는 이때다 싶어 너도나도 신설한 거죠.”

한창 지부들의 ‘청소팀 키우기’ 열풍이 있었을 때인가 보군.

“그런데 뭐, 어차피 우리가 노리는 곳은 그런 지부가 아니잖아요? 그냥 넘어가시고… 그다음 장이 청소팀 5개 이하의 지부들 목록이에요.”

“흐음.”

나는 서류를 집중해서 훑어보기 시작했다.

“보시다시피 대부분이 재정 상태도 썩 좋지 않아요. 헌터 수도 많이 부족해서 전반적으로 민간 길드에 많이 의지하는 상태고요.”

“스읍, 이 정도면 본부 차원에서 발령을 내줘야 하는 수준 아닙니까?”

“헌터들이 안 가려고 하죠. 일단 너무 지방이기도 하고…….”

그녀가 괜스레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또 듣자 하니 워낙 저들끼리 고여 있다 보니까, 이상한 텃세부터 부조리까지 뭐 많다던데요.”

“안 가려고 할 만하군요.”

“그렇죠?”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청소팀 부족으로 하루 토벌량도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청소팀을 늘릴 만한 예산은 없는 곳들이에요. 딱 우리가 파고들기 좋은 조건이죠.”

“그렇긴 하군요. 좋습니다. 일단 그쪽 위주로 노려보는 거로 하고……. 지금은 사업자등록부터 합시다. 사무실도 적당한 곳으로 좀 구해야 하고요.”

“바빠지겠네요. 직원들도 뽑고, 지부 돌면서 계약도 따야 하고……. 아, 부산물 처리 시설이랑도 연줄을 좀 만들어놔야겠죠?”

“예, 뭐……….”

“박근태 과장님이 이쪽으로 아는 사람이 있다니까 한번 연락을 해볼게요. 아, 또 필요한 서류는 제가 알아서…….”

“…….”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그녀를 잠자코 보고 있자니, 시선을 느낀 듯 내 눈치를 봤다.

“……뭘 그렇게 봐요? 뭐 맘에 안 드는 거라도 있어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개를 저었다.

말은 안 했지만 묘한 든든함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이렇게 열정적인 녀석이 전생의 그 기계 같은 녀석과 동일 인물이라니…….

어째 믿기지 않았다.

이런 녀석인 줄 알았으면 그때도 부하가 아니라 친구로 둘 걸 그랬군. 훨씬 도움이 됐을 텐데, 그런 생각이 문득 스치길 잠시.

“……저기요, 저기요! 듣고 있어요?”

“예, 예? 무슨 말 했습니까?”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회사 이름, 생각해둔 거 있냐고요.”

“아. 뭐… 있긴 한데.”

“뭔데요?”

퍽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망설이길 잠시, 나는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Korea Agency of Reset-a-dungeon Management Association.”

“……?”

아리송하다는 반응.

“한국 협회 던전 청소 경영 기구…? 직관적이긴 한데… 너무 긴데요.”

“뭐, 약자 따면 되잖습니까.”

“약자가…….”

“카르마(KARMA).”

내가 즉답했다.

“카르마 코퍼레이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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