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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롭게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든 지 일주일째.
우린 허름한 사무실을 하나 구했고, 곧바로 사업자등록까지 마쳤다.
이제 남은 건 청소부 구인과 지방 지부를 돌며 계약을 따내는 것이었다.
뭐, 그리 어려울 건 없겠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눈앞의 현실을 마주하기 전까진.
“……하아.”
벽이 쩍쩍 갈라진 작고 낡은 사무실.
나는 온라인 지원 현황을 확인하며 계속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 좀 그만 쉬세요. 그런다고 없는 이력서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안 나오게 생겼습니까.”
“처음부터 쉬운 게 어디 있겠어요. 그랬으면 세상 사람 다 성공했지.”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아영 실장이 볼멘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나는 연신 새로 고침 키를 연타했다.
물론 텅 빈 화면은 몇 번을 고쳐도 그대로였지만.
모집 공고를 올린 지 일주일째, 여전히 단 한 건의 이력서도 오지 않았다.
냉정하게 보자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이름도 모르는 신생 회사에, 그것도 던전 청소부로 지원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너무 만만하게 봤나…….
“그러게, 진작 구상찬 기자한테 부탁 좀 해보라고 했잖아요. ‘김준우 전 작전 본부장, 청소 파견 지원 업체 개업.’ 이거 한 줄이면 이미 100명은 면접 보러 왔겠다!”
저도 모르게 또다시 한숨을 내뱉자, 이아영 실장도 더 이상 못 참겠는지 책상을 ‘탁’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말했잖습니까. 그건 안 된다고.”
“아니, 왜 굳이 숨기려는 거예요? 안 좋은 일로 퇴사한 것도 아니고. 솔직히 당신 네임벨류면 이 바닥에서 못 할 게 거의 없을 텐데?”
이아영 실장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나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국제 협회의 눈을 피하려고 만든 회사인데 내 이름을 걸고 홍보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아니면 뭐, 그런 거예요? 과거의 명성에 편승하지 않겠다?”
“……그런 거 아닙니다.”
“물론 당신답긴 하지만…… 그래도 사업을 하려면 조금은 현실과 타협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에휴… 알았어요. 그래, 내가 먼저 도와주겠다고 쫓아왔는데 어쩌겠어. 우리 대표님 말 들어야지.”
“…….”
몇 대 쥐어박고 그냥 쫓아낼까?
“정 안 되겠으면 협회장님한테라도 부탁해봐요. 인원 몇 명만 좀 데려가겠다고.”
“이미 연락해봤습니다.”
“…거절했어요?”
“역정을 냅디다.”
불과 엊그제 있었던 일이다.
통 지원자가 없었기에 나는 협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곧바로 돌아온 대답은…….
-야 인마, 아주 간이고 쓸개고 다 빼가라! 너 그동안 예산 다 끌어 쓰고 나가서 우리도 위태위태한데 뭘 또 달라고 하고 싶냐?!
그쯤 되니 나 또한 할 말이 없었다.
이번 분기는 고사하고 다음 분기, 다다음 분기 예산까지 죄다 끌어다 썼으니.
‘본부도 고생깨나 하겠네.’
그러게 왜 안 하겠다는 걸 시켜서 말이야.
“아니면 뭐 개인적으로라도 연락해보던가요. 소연 씨나 상혁 씨도 좋고. 유빈 씨랑 민주 씨도 당신 전화 한 통이면 바로 달려오지 않겠어요?”
이아영 실장이 넌지시 말했다.
하지만 단칼에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좀 그렇습니다. 다들 본부에서 각 팀 베테랑들인데, 모조리 빼가면 본부 입장에서도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지금 좀 어려운 상황 같던데.”
“……아무리 봐도 당신, 사업가 체질은 아니네요.”
이아영이 푹 꺼진 목소리로 말했다.
뭐, 사실 개인적으로 데려오지 못하는 이유 또한 내 이름을 내걸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였다.
한때 나와 같이 일했던 녀석들이 한꺼번에 같은 곳으로 이직을 해버리면 눈에 띌 게 뻔하지 않은가.
자칫하다간 또다시 국제 협회의 타깃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아…….’
퍽 답답했다.
일단 회사 구색이라도 갖춰져야 해외 협회 인수를 진행하든 말든 할 텐데.
이래선 시작조차 할 수 없지 않은가.
막막한 상황에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싶던 그때.
“여기요.”
이아영 실장이 아까부터 컴퓨터로 만들고 있던 무언가를 인쇄해서 나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뭐긴 뭐예요.”
그녀가 쏘아붙였다.
“같이 전단지라도 돌리러 나가요.”
“…….”
퇴사하지 말 걸 그랬나.
***
서울 본부, 본부장실.
일주일간 공석이었던 그곳엔 어느 중년의 남성이 앉아 있었다.
최호성 전 순천 지부장.
어제부로 그가 서울 본부의 새로운 작전 본부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순천 지부에서 지부장을 위임하길 몇 년.
서울 본부로 가기 위해 갖다 바친 한우와 장어만 해도 수십 킬로였다.
그럼에도 결과는 영 좋지 못했다.
그 당시 본부장이었던 서민철의 입지가 너무나 컸다.
그가 나가리 되고 나선 드디어 자신에게도 기회가 왔구나 싶었지만 웬걸, 이번엔 청소부 출신의 웬 듣도 보도 못한 놈이 그 자리를 꿰찼다.
며칠간은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하늘은 그의 편이었다.
2개월 만에 김준우가 본부장직을 내려놓으며 다시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때다 싶어 최호성은 다시금 줄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바로 며칠 전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다름 아닌 박인범 협회장의 전화를 직통으로.
-믿을 만한 친구가 자네를 추천하더군. 그래, 잘해볼 수 있겠나?
최호성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그는 못 이기는 척 협회장의 말을 받아들였고, 결국 학수고대하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공의 기쁨도 잠시.
“아니, 시발 이게 무슨…….”
그는 눈앞의 현실을 마주하곤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은 예산이 왜 이 모양이야…?”
몇 번이고 서류를 확인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이번 분기 예산은 이미 바닥이었던 것이다.
그뿐이랴.
다음 분기, 다다음 분기, 심지어 내년 예산까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덕분에 저번 달과 이번 달은 연이어 엄청난 적자를 기록 중이었다.
‘시발. 대체 뭔 개짓거리를 해놓은 거야…….’
최호성은 신음했다.
그 모습을 잠자코 보고 있던 그의 수행비서, 유영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김준우 전 본부장이 각 팀에 이것저것 지원한다고 예산을 좀 많이 뿌렸다고 합니다.”
“아니 뭘 어떻게 얼마나 지원했길래 예산이 내년도까지 오링이냐? 이거 이사회에서는 알고 있어?”
“아마도…….”
“알고 있는데도 내버려뒀다고?”
유영수는 입을 닫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최호성이 순천 지부에서 데려온 인사로 그 또한 서울 본부에 올라온 건 고작 하루째였으니.
본부 내부 사정에 관해 물어봤자 그가 대답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아…….”
최호성은 머리를 싸맸다.
물론 민간 길드 협력업체 체결과 베트남 지부가 건설되면서 함께 지어진 허브 때문에 앞으로의 수익은 보장되어 있었지만…….
그것도 몇 개월은 있어야 성과가 나는 것들이었다.
결국, 그 몇 개월간은 이 말도 안 되는 적자를 끌어안고 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어제 막 취임한 본인이 책임지고.
‘빌어먹을 놈, 이렇게 개판을 만들어 놓고 나가다니…….’
그러니까 왜 청소부 출신한테 이런 중책을 맡겨 가지고.
최호성 본부장은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건 그냥 독이 든 성배가 아닌가.
이걸 전부 수습해야 하는 자리인 줄 알았다면 분명히 고사했을 것이다.
최호성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헤집었다.
그리고 그때, 문득 한 가지 의심이 머릿속을 스쳤다.
“야, 이거 혹시…… 김준우 그놈이 해 처먹은 거 아닐까?”
넌지시 입을 열자 유영수 수행비서가 학을 뗐다.
“에이, 설마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
“아니, 그러지 않고서야 말이 안 되잖아. 내가 볼 땐 이거 백퍼야. 총무부 가서 예산 내역서 좀 보내 달라고 해봐.”
“아, 네. 잠시만요.”
유영수 수행비서가 행정본부에 전화를 걸어 무어라 대화를 나누길 잠시.
이내 최호성의 사내 메신저로 한 문서가 도착했다.
최호성은 곧바로 문서를 확인했다.
김준우에 대한 평판은 그 또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
직원의 권리를 위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나서는 인격자.
최연소, 최단기간, 최고 실적의 본부장.
대개 과한 포장이 되어 있는 놈들일수록 내용물이 구릴 확률이 높다.
아무리 겉으로 칭송받고 있다고 해도 실상을 까보면…….
[스테인리스 빗자루 300개(주문 제작) - 5,203,000₩]
[다용도 걸레 5,000장(이탈리아제) - 40,380,340₩]
[특수소재 C급 방호복 200벌(미국제) - 240,523,000₩]
[……]
“…이게 뭐야?”
최호성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 밑으로 30페이지가 넘는 내역이 죄다 청소팀 장비, 성과급, 인센티브, 보너스로 채워져 있었다.
미친놈이다.
청소에 미친 놈이야.
아무리 본인이 청소팀 출신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한 분기 예산을 청소팀에 모조리 때려 박을 수 있는가.
물론 그것들이 김준우가 본부장 취임 직후 스킬 해금을 위해 벌인 일이라는 걸, 최호성이 알 리가 없었다.
최호성은 계속해서 스크롤을 내렸다.
청소팀에 한 분기 예산을 때려 박은 이후엔 지원팀 연구시설 증축에 500억을 때려 박았고, 그다음엔 수중 던전 때 사용할 특수 슈트 ‘골리앗’ 확보에 200억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베트남 지부 개발에 나머지 예산을 깡그리 털어 넣었다.
두 눈으로 보고도 납득할 수가 없는 내역이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래, 예산을 빼돌린 건 아니다.
그저 앞뒤 없이 미친놈처럼 돈을 처뿌린 것뿐.
사실 그놈이 어떤 생각으로 이딴 짓을 했는지 본인이 알 바는 아니지만, 지금 상황으론 당장 이번 달 작전팀 월급부터 간당간당하다.
‘시발. 작전팀 월급이 밀린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새하얘졌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협회 1순위 재산은 헌터들이다. 그들에겐 최고의 복지와 최고의 대우를 해줘야 한다.
최고의 복지, 대우라 함은 결국 연봉이다.
작전 본부장인 본인이 그걸 책임지지 못한다면…… 위아래로 모든 반발을 뒤집어써야 할 것이다.
차라리 그렇게 끝나면 다행이지.
자칫하다간 본부장 최단기간 위임은 아마 본인이 갱신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럴 순 없지.’
최호성이 중얼거렸다.
아무렴, 어떻게 올라온 자리인데.
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한다.
그것이 최호성의 모토였고, 또 여기까지 올라오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는 이내 마음을 굳게 먹고, 곧바로 김준우가 남긴 모든 서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든 예산을 확보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모든 사항을 천천히 검토하던 끝에.
‘…아무리 봐도 이거밖엔 없네.’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던전 청소팀.
김준우가 작전 본부장이 된 이후로 인원도, 연봉도 두 배가 넘게 뛰며 가장 많은 혜택을 본 그곳.
고작해야 청소부인데 이렇게 많을 필요도 없잖아.
물론 반발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겠지.
도마뱀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꼬리를 잘라내는 이유는, 그것이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건 서울 본부의 최후의 수단이니까.
“영수야.”
“네, 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자 유영수 수행비서가 불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 욕 좀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