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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행정본부, 대회의실.
이사회가 소집되어 박인범 협회장을 비롯한 모든 이사가 참석한 자리.
“그래서 청소팀 인원을 감축하겠다고?”
잠자코 최호성 본부장이 상정한 안건을 듣고 있던 박인범 협회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네.”
“스읍, 자네 본부장 된 지 얼마나 됐나?”
“오늘로 4일째입니다.”
“그래, 취임한 지 4일 만에 청소팀 구조조정 얘기를 꺼내든다라…….”
협회장이 넌지시 물었다.
“자네, 그 자리가 어떤 사람의 자리였는지는 아나?”
“…알고 있습니다.”
“그래.”
협회장이 턱을 쓰다듬다가 이내 눈을 위로 치켜떴다.
“그런데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이 그딴 말을 입에 올려?”
“…….”
서슬 퍼런 눈빛이 최호성에게 날아들었다.
노인이라곤 도저히 믿기 힘든 카리스마에 최호성은 순간적으로 온몸이 얼어붙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걸 봐주십쇼.”
그는 준비했던 자료를 꺼내 들었다.
질타를 받을 거라는 건 이미 예상한 일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거의 신격화 되고 있는 사람이 직접 키운 것을 이제 와서 무너뜨리겠다는데.
무엇보다 현재 협회의 모든 실권을 쥐고 있는 두 남자, 박인범 협회장과 이두식 이사는 김준우와 개인적인 친분도 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그들 앞에서 구조조정이라는 카드를 대놓고 꺼내든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보시다시피 현재 서울 본부에 남은 예산이 얼마 없습니다. 다음 분기, 다다음 분기까지 모조리 끌어다 쓴 바람에 당장 이번 달 작전팀 월급 지급에 차질이 생길 전망입니다.”
“그래도 현재 토벌 추이랑 베트남 지부 개발 건으로 들어올 수익이 꽤 만만치 않을 텐데?”
자료를 확인하던 협회장이 반박했다.
이미 예상한 반론이었기에, 최호성 본부장은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토벌 수익으로는 저번에 발생했던 대규모 인터셉트 피해액을 이제 겨우 메웠고, 베트남 지부 건은 수익 발생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릅니다. 이대론 최소 반년간은 엄청난 적자를 기록할 것입니다.”
“…….”
협회장이 대답을 아꼈다.
최호성 본부장은 이때다 싶어 계속 말을 이었다.
“물론 이 힘든 시기, 다 같이 힘내서 극복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저 또한 그게 싫어서 안건을 상정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단 거 다들 아시잖습니까.”
“그러면 헌터들의 월급을 잠시 조정하는 건 어떤가. 그들도 다 이해해줄 걸세. 잠깐 힘든 거 때문에 그 많은 사람을 잘라내는 건 좀…….”
“이번 달은 헌터들 월급을 조정해서 어떻게든 넘긴다고 해도…… 그럼 다음 달은 어떡하시겠습니까? 그다음 달은요? 헌터들 월급 삭감으로도 커버가 안 되면. 그다음은 이사님들 월급 또한 줄여야 할 겁니다.”
“크흠…….”
“아니 뭐 그렇게까지…….”
여기저기서 헛기침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반응에 최호성 본부장은 승리를 직감했다.
아무리 직원을 아낀다고 해도, 결국 다 말뿐이다.
본인들 밥그릇 앞에선 동료도 부하도 없다.
최호성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긴 했지만.
“이건 아닙니다! 우리가 토벌 실적을 이렇게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던 건 청소팀의 역할이 컸다는 거, 다들 인정하지 않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두식 이사였다.
하지만 이번엔 굳이 최호성 본부장이 반론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솔직히 청소팀 쪽으로 빠지는 예산이 너무 크긴 하지 않나.”
“맞네. 아무리 그래도 협회의 1순위는 작전팀인데, 청소팀 때문에 헌터들이 피해를 보는 건 나로서도 좀…….”
“현실적으로 생각하자고. 현실적으로.”
다른 이사들이 나서서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이미 여론은 기울었다.
위기감을 느낀 이두식 이사는 협회장을 바라봤다. 뭐라도 한마디 해달라는 의미였다.
협회장은 한참을 고민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군.”
예상 밖의 대답을 내뱉었다.
“혀, 협회장님!!”
“조용히 해. 감정적으로만 나올 일이 아니야.”
“…….”
단호한 목소리.
이두식 이사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최호성 본부장.”
협회장의 날카로운 눈빛이 다시 한번 최호성에게 향했다.
“이 안건, 만약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자네가 모두 책임져야 할 걸세. 그럴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그래…….”
자신만만한 대답에 협회장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러길 잠시.
“진행해.”
협회장의 허가가 떨어졌다.
***
청소팀 사무실.
박근태 과장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구, 구조조정이요?!”
그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는 퍽 담담한 어투였다.
“인원 감축과 함께 연봉 또한 대대적으로 조정이 들어갈 겁니다.”
“이, 이건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취임하신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칼을 꺼내 드시는 겁니까!”
“박근태 과장.”
최호성 본부장은 더 듣기도 싫다는 듯 귀를 후비며 말을 이었다.
“이미 위에서 결정 난 사항입니다. 따지실 거면 위에 가서 따지세요. 저한테 말씀하셔봤자 아무 소용없으니까.”
“…….”
박 과장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이전에도 몇 번이나 본 것이었다.
같은 동료라고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눈빛.
김준우가 협회에 들어오고 나서는 앞으로 볼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 눈빛이었다.
“우선 희망자부터 받아서 명단 작성해주십시오. 말씀드렸다시피 절반입니다. 명단이 모자라면 그 이후엔 제 독단으로 처리하겠습니다.”
“…….”
최호성 본부장은 그 말을 남기곤 사무실을 나섰다.
이내 박근태 과장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위에서 결정이 났다니…….’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협회장님과 이두식 이사님은 이 안건에 찬성하실 분들이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장 닥친 현실은 받아들여야 했다.
본부장이 두고 간 명부를 바라보던 박 과장은 이내 고개를 뒤로 푹 젖혔다.
퇴직 희망자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이건 그냥 회유하든 권고하든 알아서 명단을 채우라는 것밖에 안 됐다.
‘이걸 나보고 채우라니…….’
박 과장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준우한테 연락해볼까, 그런 생각이 문득 스친 그때.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네, 청소과장 박근태…….”
그의 인사를 끊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혀, 협회장님?! 아, 안녕하십니까!”
다름 아닌 박인범 협회장이었다.
박 과장은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전화기를 붙들었다.
“네, 네.”
“안 그래도 방금 왔다 갔습니다.”
“네. 희망자 명단부터 작성하라고… 막막합니다, 정말.”
“네네.”
그 순간.
“……네?”
뜻밖의 말을 전달받았다.
***
[한국 협회 서울 본부, 던전 청소팀 대규모 구조조정]
서울 외곽. 낡은 사무실.
이아영 실장과 함께 늦은 점심을 먹고 있던 그때, 텔레비전에서 웬 뉴스가 흘러나왔다.
[박인범 협회장 ‘재정 악화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 일축. 더불어 ‘이직, 재취업 적극 지원하겠다.’ 발언]
[난데없이 길거리로 내몰린 던전 청소부. 그런데 전원 자진 사퇴 희망자? ‘다른 회사 취직 약속받았다’ 화제.]
[자진해서 협회 나온 청소부들, 다들 어디로? 청소팀 파견 업체 ‘카르마 코퍼레이션’ 화두.]
“어…?”
그와 동시에 이아영의 젓가락질이 갑자기 멈췄다.
이내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 뭐예요…? 저거 실화예요?”
“글쎄요…….”
어물쩍 대답했지만, 이아영 실장은 여전히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사무실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네, 카르마 코퍼레이션…… 네, 맞습니다. 아, 지금 이력서 들고 오신다고요? 네네, 시간 괜찮습니다. 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짤막한 통화가 끝나자마자 내가 물었다.
“지원잡니까?”
“네……. 서울 본부 청소팀 소속이었는데 여길 추천 받았다고…….”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목소리.
하지만 생각할 겨를도 없다는 듯,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
“네, 지금 모집 중 맞습니다. 아, 네네.”
“연봉은 협상에 따라 결정되지만, 일단 협회와 같은 수준으로 맞춰드릴 생각입니다.”
“아, 그건 일단 대표님이랑 상의를 해보고…….”
“아, 네네. 물론입니다. 그럼 메일 불러드릴 테니 그쪽으로…….”
전화기에 불이라도 난 듯 계속해서 문의가 이어졌다.
그 모습을 잠자코 바라보던 그때, 마침 내 핸드폰도 울리기 시작했다.
조용히 사무실을 나가 비상계단에서 전화를 받았다.
「그래, 뉴스 봤냐?」
대뜸 협회장이 그 말부터 내뱉었다.
“네. 방금 봤습니다.”
「원하는 대로 반 뚝 떼어줬다. 뭐, 본인들이 알아서 이력서 넣을 거지만 혹시 모르니까 명부도 나중에 보내주마.」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인사를 전하자 반대편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놈아, 아무리 구인이 안 된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해야 했었냐?」
“협회 재정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내버려두면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는 거 아시잖습니까.”
「그거 다 자네 때문인 거 알고 있지?」
“그래서 도와드린 거 아닙니까. 뭐, 협회는 예산 아끼고 저는 직원 들이고. 직원들 일자리는 그대로. 결과적으로 다 좋은 거 아닙니까.”
「미친놈 진짜…….」
협회장이 학을 뗐다.
“무엇보다 이렇게 데려온 인원은 절대 국제 협회 눈에 띄지 않을 테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다신 이런 일에 어울리게 하지 마라. 마음고생 얼마나 했는지 알아? 이두식이 그놈도 아주 그냥 벌레 보듯이 하더라니까.」
“하하하, 그 점은 죄송하게 됐습니다. 나중에 잘 설명해주십쇼.”
어찌 됐든 원하던 대로 잘 진행된 것에 만족했다.
그래, 사실 이번 구조조정은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다.
뭐, 엄밀히 따지자면 계획이라기보단 도박에 가까웠지만.
최호성에게 건 도박.
「근데 최호성이가 구조조정 안건을 올릴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았냐?」
“본인에게 위기가 닥치면 가차 없이 꼬리부터 자르는 인간이니까요.”
「그니까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뭐… 따지자면 제 옛 스승 같은 사람이라서.」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최호성.
회귀 전에 서민철 뒤를 이어 작전 본부장에 취임한 남자.
당시 막 작전 1팀장을 단 나에게 꽤나 많은 것을 알려준 인물이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도마뱀 꼬리가 어쩌고 하는 거였는데.’
하도 오래돼서 이젠 기억도 잘 안 나네.
아무튼, 그가 작전 본부장으로서 보여준 실적은 참으로 대단한 것들이었다.
틈만 나면 팀을 통째로 뒤집어엎는 건 부지기수였고, 청소팀의 임금은 매년 깎여나가다가 종국엔 반 토막이 났다.
그 사람이라면 내가 조지고 나간 예산을 보자마자 인원 감축을 떠올릴 것이라 확신했다.
그것도 본인 기준에 가장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청소팀을.
그래서 협회장에게 차기 작전 본부장으로 그를 추천했다.
협회 재정도 안정화할 겸, 구조조정 당한 인원들을 모조리 내 쪽으로 끌어오기 위해서.
더불어 기사까지 났으니 회사 홍보도 톡톡히 한 셈이다.
물론 이 건은 나와 협회장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래도 다행인 게, 자네 회사로 보내주겠다고 하니까 다들 자진해서 나가겠다고 하더라. 오히려 퇴사 희망자가 너무 많아서 제비뽑기로 몇 명은 쳐냈어.」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쯧, 다들 만족하니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불만이 있었으면 자네나 나나 그 사람들한테 몹쓸 짓 한 거야. 알아?」
“알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된 이상 잘해봐라. 이렇게 일 벌여 데려가 놓고 우리 직원들 고생시키면 가만 안 둬.」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며 작게 웃었다.
「그나저나 최호성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이번에 보니까 그 인간, 본인 자리 지키려면 무슨 짓이든 할 놈이야. 계속 거기 앉혀놓기엔 좀 불안한데.」
“괜찮을 겁니다. 적당한 자리에 앉혀두고 장기 말로 쓰기 딱 좋은 인간이잖습니까.”
「가끔 보면 네가 제일 나쁜 놈 같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눈치가 빠르네.
이게 관록이라는 건가?
“그나저나… 국제 협회 쪽에선 별다른 반응 없습니까?”
「자네가 나간 이후론 잠잠해.」
“다행이군요.”
「그래서 말인데, 해외 인수 건은 언제쯤 진행할 생각이냐?」
“뭐… 일단 입지는 다져놔야 뭐라도 하지 않겠습니까. 믿음직스러운 직원들도 생겼겠다, 당분간은 지부 상대로 기반부터 좀 잡아볼 생각입니다.”
「그래. 또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하지 말고.」
“…….”
그 말을 뒤로하고 전화를 내려놨다.
그리고 그 순간.
“준우 씨!”
“이야, 오랜만이다?”
“회사 건물이 이게 뭐예요. 되게 당당하게 나가길래 기대 좀 했더니.”
문소연과 한상혁 그리고 한유빈이 사무실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