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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93화 (93/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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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본부, 본부장실.

구조조정이 시행된 직후부터 최호성 본부장은 꽤나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대단하십니다. 그 외골수인 협회장님을 설득하시다니.”

때를 놓치지 않고 유영수 수행비서가 격양된 어투로 아첨을 떨었다.

“됐어. 뭐 큰일이라고.”

최호성 본부장은 됐다는 듯 손을 내저었지만 내심 싫지만은 않았다.

아니, 싫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근래 들어 최고로 기분이 좋았다.

물론 구조조정으로 예산이 꽤나 확보된 것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철옹성 같던 김준우 사단을 보란 듯이 무너뜨리는 데 성공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이사회는 물론 협회장까지 굴복시켰다.

이건 김준우의 뒤를 이어 막 본부장이 된 그에겐 굉장히 시사하는 바가 컸다.

곧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말이다.

“이대로만 가면 김준우의 영향력을 넘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설레발 치지 마. 녀석이 해 놓은 게 워낙 많아서 아직은 멀었으니까. 무엇보다 작전 1팀의 그 여자랑 통제팀장도 김준우 사단이잖아.”

“김민주 팀장이랑 편창현 팀장 말입니까? 에이, 협회가 뭐 친구 놀이하는 곳도 아닌데 언제까지 나간 사람 편에 있겠습니까. 눈치가 있으면 알아서 본부장님한테 붙겠죠.”

“그것도 그렇긴 하지.”

최호성의 얼굴에 숨겨왔던 미소가 번졌다.

이미 협회장도 넘어온 마당에 아랫놈들 몇 명이 움직인다고 방해될 리가 없다.

방해는커녕 서로서로 달라붙으려 애를 쓰겠지.

본부의 실권을 쥐는 것도 금방이겠군.

최호성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사실 두 남자의 장기 말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생각 못 한 채.

“그나저나 청소팀이 절반이나 사라져서 이제 김준우 때 같은 기획은 힘들 것 같은데…… 그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뭐 별거 있겠어. 지부에서 했던 것처럼 하면 되겠지.”

“작전팀 중심 토벌 말씀이십니까?”

“그래. 애초에 청소팀이 많다고 토벌이 효율적으로 된다는 것부터가 근거 없는 거 아니냐. 토벌은 무조건 작전팀만 중점이 되면 돼.”

유영수는 조금 떨떠름했지만 내색할 순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시작이 좋으니까 이대로만 계속 밀고 나가자고.”

“네.”

***

전라도 순천 지부.

청소팀 파견 계약의 첫 번째 타깃으로 이곳을 선택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내 추천으로 최호성이 서울 본부로 가게 됐으니, 아직 지부장이 비어 있는 틈을 타 계약을 체결하려는 것뿐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작군요.”

이아영과 함께 지부 앞에 도착하자마자 처음으로 든 감상이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아영도 동감하는 듯했다.

행정 본부, 작전 본부 모두 고층의 건물을 두고 있는 서울과 다르게 구청 정도의 크기였다.

현관으로 들어서 2층으로 향하자 약속 시각에 맞춰 총무부장이 우리를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강형원 부장입니다.”

지부장이 없으니 지부 내 업무를 도맡아 관리하는 모양이다.

“반갑습니다. 연락드린 김준우 대표입니다.”

“이아영 실장입니다.”

인사와 함께 명함을 건넸다.

내 이름을 듣고 명함을 받은 강형원 부장이 눈썹을 올렸다.

그리곤 내 얼굴을 살피길 잠시.

“혹시 서울 전 작전 본부장의 그 김준우 님……?”

“아… 네. 맞습니다.”

뜨억 하는 표정.

“이, 이거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본부장님이 직접 오실 줄 알았으면 대접을 해드렸어야…….”

“진정하십시오. 사퇴한 지 벌써 한 달이 다 돼갑니다. 지금은 일개 작은 회사의 사장일 뿐이니 부디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그, 그래도 어떻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자 강형원 부장은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 그럼 이쪽으로…….”

그는 여전히 쩔쩔매는 목소리로 우리를 접견실로 안내했다.

곧바로 준비한 서류를 건넸고, 그는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저희 쪽에서 조금 알아보니 순천 지부의 몇 년 사이 토벌량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더군요.”

“인원이 부족해서 하루 토벌량에 한계가 있다 보니… 토벌 대부분을 거의 민간 길드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덕분에 길드 입김도…….”

“입김도?”

“아, 아닙니다. 하하.”

강형원 부장이 적당히 얼버무렸다.

어째 혼나고 있는 학생 같은 태도에 퍽 답답해질 정도였다.

무슨 들키면 안 되는 문제라도 있는 건가.

“뭐… 아무튼 8개 작전팀이 적은 수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작전 효율이 나지 않는 건 청소팀 때문일 겁니다.”

“……그런가요?”

“작전팀의 토벌량은 청소팀의 작업량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까요. 현재 순천 지부 내 청소팀은 세 팀밖에 없죠? 그마저도 팀당 인원이 3명씩이고.”

“네.”

“만약 청소팀 지원을 받으신다면 하루 토벌량도 눈에 띄게 상승할 겁니다. 저희 추정으로는 하루 토벌량은 50% 상승, 월 기대 수익은 200%가 넘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관련 자료는 그 뒷장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그가 들고 있는 서류를 가리켰지만, 강형원 부장은 더 살필 생각도 없이 서류를 내려놓았다.

“본부장님이 하는 말씀이니 정확하겠죠.”

“…….”

이게 지금 계약을 하러 온 건지, 업무 지시를 하러 온 건지.

‘사람 참 물렁물렁하네.’

뭐, 담당자의 성향이 어떻든 간에 계약만 순조롭게 풀린다면 더 신경 쓸 건 없지만.

나는 준비해뒀던 계약서를 내밀었다.

강형원 부장은 계약서 내용도 확인하지 않고 사인을 휘갈겼다.

“그럼 바로 다음 주부터 필요하실 때마다 사무실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연락 주실 땐 던전 등급이랑 몬스터 정보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저에 대한 건 다른 분들한테는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명심은 무슨…….

누가 보면 대통령이라도 온 줄 알겠네.

우린 그렇게 10분도 채 걸리지 않은 첫 계약을 마쳤다.

“생각보다 너무 쉬운데요?”

이아영 실장이 기지개를 쭈욱 켜며 입을 열었다.

“말을 제대로 들은 건지나 모르겠습니다.”

그냥 네네 대답만 하다가 바로 사인을 휘갈기지 않았던가.

원래 저렇게 잘 휘둘리는 성격인가 싶을 정도였다.

“뭐, 그래도 나름 지부 책임자인데 알아서 잘하겠죠.”

꽤나 긍정적인 마인드네.

저러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누가 고생하는 건지 모르는 건가.

“다음 계약은 어디로 할 거예요? 생각해둔 곳 있어요?”

“돌아가서 알아봐야죠. 청소팀 인원과 스케줄을 고려했을 때 너무 많이 계약을 따도 다 소화할 수가 없으니, 일단 5개 지부와만 계약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이제 겨우 하나 했으니 4개 남았네.

서류를 펼치며 계약할 지부들과의 면담 스케줄을 다시 한번 확인하던 중.

“뭐야. 처음 보는 얼굴들이네?”

멀찍이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정면에서 한 무리의 헌터가 우리를 흘기며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춰 이아영 실장을 향해 물었다.

“……아는 사람들입니까?”

“아뇨? 지부 작전팀 아닐까요.”

“그런 것 치곤 복장이 좀 프리한데.”

티 나지 않게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때.

“못 뵈던 분들이신데, 혹시 작전팀 신입?”

무리의 선두에 있던 한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빼빼 마른 체형에 후드티 복장의 남자였다.

나는 거리를 두고 경계하면서 입을 열었다.

“……아뇨. 외부 업체 직원입니다. 청소팀 파견 계약 건 때문에 총무부장님을 만나 뵙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청소팀 파견…? 그런 것도 있어?”

남자는 의아한 얼굴로 동료들을 돌아봤다.

“그 왜 저번에 뉴스에도 잠깐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래? 난 처음 듣는데.”

그리곤 자기들끼리 무어라 떠들어댔다.

아니, 다 좋은데 왜 불러놓고 지들끼리 떠드는 건가.

최소한 인사라도 하든가.

보다 못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그쪽은……?”

“아, 이런 소개가 늦었습니다.”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순천 관할 백제 길드, 심현수 대표입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놀랍게도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물론 남자의 이름 말고 길드 이름을.

백제 길드.

순천에서 가장 큰 규모의 길드이자 국내 16위 길드.

그런데 왜 백제 길드가 순천 지부 앞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걸까.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정말 청소 파견 업체 맞으시죠?”

심현수는 안경을 밀어 올리며 물었다.

기세가 묘하게 날카롭다.

“……예?”

“다른 게 아니라 간혹가다가 다른 지역 길드나 프리랜서 헌터들이 침범하는 경우가 있어서요. 모쪼록 불편한 일은 만들지 않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겠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정식으로 허가받은 업체입니다. 여기 명함…….”

“아, 그럼 됐습니다.”

명함을 꺼내려고 하자 심현수 대표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불과 15초 정도 마주했지만 확실하다.

이 새끼, 싸가지가 매우 없다.

심현수 길드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외부 업체라면 이쪽 상황은 잘 모르시겠군요.”

“특별히 알아야 할 사항이라도 있습니까?”

“그런 건 아니고……. 여긴 대부분의 토벌이 작전팀보단 길드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부 또한 길드에 많이 의존하는 실정이고요.”

“그건 알고 있습니다.”

“저희야 너무 감사한 일이긴 하지만… 사실 힘들기도 합니다. 해야 할 토벌은 많은데 인원은 한정적이고, 무엇보다 지부처럼 본부에서 지원금이 꼬박꼬박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가 나를 슬쩍 흘겼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대답을 아끼고 있던 그때.

“혹시 길드 발전 기금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하.”

나는 한숨과 함께 머리를 짚었다.

어째 심하게 빙빙 돌린다 했더니 결국 이런 말을 꺼내려고 했던 건가.

“죄송합니다. 들어본 적 없군요.”

“하하하! 잘 모르시니 그럴 수도 있죠. 이쪽 업계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걷어주는 기금인데, 적은 금액이어도 상관없으니 혹시 생각 있으시다면…….”

“거절하겠습니다. 저흰 외부 업체라 딱히 관계도 없는 것 같군요.”

“…….”

그의 얼굴이 갑자기 굳었다.

누구를 호구로 보는 건가.

발전 기금이라는 명목으로 길드에서 돈을 뜯어가는 일로 이미 수도권에서는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너무 많은 문제가 발생하며 공식적으로 금지된 지가 벌써 몇 년째였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이러고 있는 놈들이 있을 줄이야.

지방이라 아직 풍조가 남아 있는 건가.

“흐음, 외부 업체라고 해도 길드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그쪽 입장에서도 나쁘진 않을 텐데요. 말씀드렸다시피 여긴 지부보다 길드의 입김이 셉니다. 청소팀도 작전팀보다 저희를 더 많이 마주치실 텐데…….”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슬슬 기분이 나빠지려는 참이었기에 나는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심현수 길드장은 오히려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도 좀 뭐하지만… 제가 최호성 전 지부장님과도 잘 아는 사이거든요. 아시죠? 이번에 서울 작전 본부장으로 취임하신 분. 제가 좀 부탁드리면 여러모로 편의를 봐주실 겁니다.”

“마음은 고맙게 받겠습니다만, 다시 생각해 봐도 저희와는 딱히 상관없을 것 같군요.”

“……뭐, 알겠습니다. 기금을 강요할 순 없죠. 충분히 이해합니다.”

갑자기 표정을 풀고는 호의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기세가 꽤나 께름칙했다.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네. 그럴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그가 다시 손을 내밀었지만, 이아영을 데리고 그들을 가로질렀다.

따가운 시선이 뒤통수에 따라붙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뭐 저런 놈들이 다 있어요? 길드가 돈을 요구해? 그것도 일반 시민한테?!”

상당히 뿔이 난 목소리.

이아영 실장은 방금 상황이 꽤나 납득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뭐, 누군 안 그러겠느냐마는.

“그만큼 길드의 입김이 세다는 거겠죠. 그쪽도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지방 지부일수록 텃세가 심하다고. 뭐, 그런 것 중 하나 아니겠습니까.”

저렇게 뻔뻔하게 나오는 것도 결국 믿는 구석이 있다는 소리겠지.

실제로 길드의 도움 없이는 모든 토벌량을 소화할 수 없을 테니까.

그걸 알고 이용해 먹고 있는 거겠지.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좀 같잖긴 하네.

“그나저나 괜히 길드랑 척을 졌다고 불이익이 있지는 않겠죠?”

“저희가 토벌에 참여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불이익이 있겠습니까. 해봤자 눈치 주는 것 정도겠죠.”

보아하니 지부에도 입김이 좀 닿는 것 같은데.

하여간 이래서 어중간한 놈이 힘을 가지면 귀찮다니까.

“일단은 두고 봅시다. 먼저 나서서 문제를 만드는 것도 좀 그렇고.”

“……그래요.”

다시금 주차장으로 걸음을 떼려던 차였다.

“근데… 바로 서울로 돌아갈 거예요?”

이아영 실장이 그 자리에 서서 물었다.

“그럼 뭐 또 할 게 남았습니까?”

“근처에 간장게장 맛집 있던데, 먹고 가죠?”

“…….”

대체 그건 언제 찾아본 거야.

뭐…….

여기까지 와서 꿀꿀한 마무리로 끝내는 것도 좀 그렇겠지.

“…그럽시다.”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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