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4
094
순천 지부 건물.
“그놈들 표정 보셨어요?”
심현수 길드장과 함께 복도를 가로지르던 길드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아주 싹수가 노랗네요. 그래 봤자 청소 회사 주제에.”
“보아하니 이 바닥에 뛰어든 지도 얼마 안 된 놈들 같은데.”
그 뒤를 따라 다른 길드원들이 한 마디씩 덧붙였다.
굉장히 아니꼬운 듯한 말투로 씹고 있는 가운데 심현수 길드장은 어딘가 께름칙한 표정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왠지 낯이 익은 얼굴이어서.”
어디서 봤더라? 머리를 쥐어짰지만,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뉴스에서 스치듯 본 게 전부였으니 기억이 안 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째 태도가 영 마음에 안 드는데… 어떻게, 신고식이라도 좀 해둘까요.”
“어떻게?”
“별거 있겠습니까. 청소부한테 청소 일 시키는 거죠, 뭐.”
“뭐… 니들이 알아서 해.”
심현수 길드장은 생각하기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오셨습니까.”
2층에 도착하자 강형원 부장이 그들을 맞이했다.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음에도 심현수 길드장의 고개는 상당히 빳빳했다.
강형원 부장은 더 대꾸하지 않고 사무실로 안내했고, 이내 둘은 테이블을 두고 서로 마주 앉았다.
심현수가 지부를 찾은 건 이번 달 작전팀과의 작전 조율을 위해서였다.
거의 20%에 달하는 던전을 민간 길드에 기대고 있는 실정이기에 이처럼 매달 협의가 필요했다.
순천 내에서 가장 덩치가 큰 길드의 대표인 심현수는 지부로부터 던전을 양도받아 주변 길드에 분배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사실 원칙대로라면 양도할 던전의 개수는 지부에 결정권이 있었지만…….
“이번 달 작전은 저희 쪽에서 10% 더 가져가겠습니다.”
이미 주객이 전도된 지 오래였다.
“왜 이러십니까. 가뜩이나 저희도 적자라 힘든데…….”
“적자라면서 청소팀 파견 업체 계약은 무슨 돈으로 하셨는지 모르겠군요.”
“…….”
대체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도 잠시.
강형원 부장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던전 토벌이야 작전팀도 길드도 같이 하고 있지만, 청소는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외부 업체와는 계약하시면서 생사를 함께하고 있는 저희는 내버리시겠다는 겁니까?”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습니까.”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그러실 거면 지부 혼자서 다 토벌하시던가.”
“……하아.”
쓰레기 같은 놈들.
본인들이 없으면 토벌량을 채울 수 없다는 걸 안 이후부턴 늘 저런 태도다.
‘작전팀 인원만 충분했어도 저런 양아치들한테 걸릴 일도 없었을 텐데…….’
강형원은 속으로 신음했다.
이미 본부에 몇 번이나 인원 충당을 요청했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답변은 ‘발령 인원 부족’이었다.
하기야, 돈 많이 주고 큰 도시에 있는 지부 두고 누가 이런 변두리 지부까지 오려고 하겠는가.
이해는 하지만 상황이 힘든 건 힘든 거였다.
‘저것들은 왜 또 맨날 따라오는 거야.’
심현수를 따라온 길드원들을 슬쩍 흘기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사실 강형원 부장 또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길드가 지부에 던전을 가지고 딜을 하는 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 않은가.
굳이 길드원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도 냉정한 판단을 못하게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려는 거겠지.
“아무튼,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힘든 시기, 서로서로 잘 이겨내 봅시다.”
“…….”
심현수 길드장이 주먹을 불끈 쥐곤 힘 있게 말하며 볼일은 다 봤다는 듯,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형원 부장은 더욱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렇게 돌아가나 싶던 그때, 심현수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 맞다. 그 이번에 계약한 청소팀 업체 말입니다.”
“……네.”
“그쪽 작업은 저희가 토벌한 던전으로 좀 배치해주십시오.”
강형원이 순간 흠칫했다.
저의를 알 수 없는 요청이었다.
혹시 저 인간, 청소팀 파견 업체 대표가 김준우 전 본부장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건가?
그래서 어떻게든 눈에 좀 들어보려고?
“……이유라도 있습니까?”
“별건 아닙니다.”
심현수 길드장은 스리슬쩍 대답을 넘겼다.
“그럼 이번 달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뒤로하고 백제 길드는 우르르 사무실을 나섰다.
“하, 개 같은 새끼들…….”
홀로 남은 강형원 부장의 한숨 소리만이 길게 울려 퍼졌다.
***
서울로 복귀한 후, 우린 계속해서 다른 지부를 돌며 계약을 진행했다.
그러던 중에 순천 지부에서 의뢰 연락이 왔고, 나는 곧바로 문소연이 맡고 있는 1팀을 파견했다.
공식적인 첫 번째 업무인 만큼 나 또한 내심 긴장했지만…….
그들이 맡은 던전은 그린 등급의 ‘고대 개미’ 던전.
특별한 위험 요소도 없는 데다, 무엇보다 벌써 본부에서 수백 번은 같은 일을 해온 베테랑들이 아니던가.
큰 어려움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작업을 끝내고 사무실로 복귀한 1팀을 보고 생각을 바꿔야 했다.
“표정이 왜들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었습니까?”
문소연을 비롯한 팀원들 모두가 낯빛이 퍽 어두웠다.
단순히 첫 업무의 긴장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심상치 않았다.
“아, 아니에요. 작업 잘 마무리하고 왔어요.”
문소연이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그런데 왜…….”
“정말 괜찮아요. 설마 첫 파견부터 문젯거리 만들고 왔겠어요? 그냥 먼 거리 왔다 갔다 해서 좀 피곤한 거예요.”
그녀가 양손을 연거푸 휘저으며 부인했다.
단호하게 말하니 더 캐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알겠습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면 바로 말씀해주십시오.”
“네. 그럼요.”
이내 문소연이 싱긋 웃었다.
……그래, 첫날부터 뭔 일이라도 있었겠는가.
첫날은 그렇게 넘어갔다.
하지만 그 후로도 순천 지부에만 다녀오면 안색이 굉장히 좋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아무것도 아니다, 피곤해서 그렇다 등 같은 대답만 할 뿐, 통 입을 열질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요.”
모두가 퇴근하고 단둘이 남은 사무실.
이아영 또한 그간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 말했다.
“아무래도 첫 계약 업체고 하니 문제 생기지 않게 말을 아끼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말이나 됩니까.”
“소연 씨 성격 알잖아요. 괜히 말을 했다가 당신한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확실히 일리 있는 이야기다.
문소연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성격이니까.
아주 답답하기 그지없다.
“담당자가 강형원 부장이라고 했죠? 무리한 작업을 요구할 사람은 아니던데.”
“어느 쪽이냐고 하면 오히려 휘둘릴 만한 인상이었죠.”
그렇게 대꾸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저희가 직접 가볼까요?”
“그것도 방법이긴 한데…….”
우리가 가면 똑같은 문제가 있을 거란 보장이 없지 않은가.
나중이면 몰라도 지금으로선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아니다.
‘하아, 뭐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나는 양손을 뒤통수에 가져다 댔다.
사실 문제고 뭐고 다 신경 끄고 싶다.
나야 파견 업무가 주목적도 아니고, 입지만 다지면 밑에서 무슨 문제가 있든 알 바는 아니다.
‘근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란 말이지…….’
저러고 있다가 결국 못 참고 나가버리면 그땐 문제가 된다.
당장 파견할 인원 부족도 문제고, 덩달아 앞으로 계약에도 문제가 생긴다.
그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골칫거리다.
저만큼의 경력자들을 또 어디서 데려올 수 있겠는가.
‘뭐 이런저런 문제 다 어떻게 한다고 해도, 사실 제일 무서운 건 협회장이긴 한데…….’
잘 대해주라고 신신당부하지 않았던가.
대거 이탈해버리면 그 꼰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일단은 다음 파견에는 한상혁이 맡고 있는 2팀에 맡기죠. 뭔 일이 있으면 숨길 성격은 아니니.”
“차라리 유빈 씨는 어때요?”
“그 인간은 문제가 없어도 만들어올 사람입니다.”
“……그렇긴 하네요.”
“아, 그리고 1팀 전원 하루 위로 휴가 주시고요.”
“네.”
이아영 실장이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그렇게 파견 일정을 조율하고 며칠 후.
한상혁이 퇴근 후 나를 조용히 불러냈다.
어째 평소와 다르게 상당히 우물쭈물하는 모습이었다.
“뭔 일이 있긴 했나 보네.”
내가 먼저 적당히 운을 떼자 한상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뭐, 있긴 있었는데……. 그쪽 지부는 원래 작전팀보다 길드가 대빵이냐?”
“……음?”
상당히 뜬금없는 질문이 돌아왔다.
“그렇긴 한데……. 그거랑 상관있는 일이냐?”
“우리가 맡은 던전이 죄다 백제 길드인가 뭐시긴가 하는 놈들이 토벌한 던전이더라고.”
“흐음.”
그건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고정으로 파견팀을 배정할 이유가 있나?
“근데 그 새끼들 아주 악질이더라고.”
“예를 들면?”
“일단 토벌을 너무 지저분하게 해.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덕분에 던전 상태도 완전 엉망이라 작업량이 만만치 않아.”
그것 가지고 문제가 있다고 보긴 힘들다. 그야말로 토벌은 토벌일 뿐이니까.
일부러 지저분하게 토벌을 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던전 안에 본인들 쓰레기를 버리고 가.”
“뭐?”
“왜 초코바 껍질, 물통 그런 거. 심지어 한두 개도 아니고 죄다 하나씩은 버리고 간 것 같더라.”
“허, 이런 양아치 새끼들을 봤나…….”
“그리고 가정 쓰레기도 있더라.”
“……?”
순간 내 눈썹이 요동쳤다.
“종량제 봉투부터 시작해서 플라스틱, 캔 등등, 그냥 본인들 집에 있는 쓰레기는 다 가지고 와서 버리는 것 같아. 음식물 쓰레기도 몇 개 있었고.”
백제 길드가 그런 짓을 할 만한 이유야 뻔했다.
첫 만남에 밉보인 것에 대한 시답지 않은 보복이겠지.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을 봤나.
개인감정은 그렇다고 해도 엄연히 업무 중에 그런 식으로 나온다 이 말이지.
“설마 가만히 있었냐?”
“솔직히 거기까진 그냥 그러려니 했어. 뭐… 본부에선 더한 꼴도 당했는데 그 정도쯤이야.”
“뭐가 더 있었다는 거냐?”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원래 길드한테 배분된 던전은 돈을 내야 던전에 진입할 수 있는 거냐?”
이건 또 무슨 개소린가.
“우리가 작업하러 던전 들어갈 때 돈을 요구하더라. 길드에 배분된 던전에 진입하려면 길드 발전 기금을 내야 한다고…….”
“……그래서 줬냐?”
“안 주면 못 들어간다는데 그럼 어떡해.”
“허, 이런 시발 생 양아치 새끼들을 봤나.”
엄밀히 따지면 길드에 던전을 배분하면 그 길드가 해당 던전의 토벌권을 갖는 게 맞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토벌을 진행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뿐, 던전의 소유자가 되는 게 아니다.
던전 진입에 돈을 요구하는 길드?
내 생에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잠깐. 그럼 문소연은 그동안 계속 사비로 돈을 내고 작업을 했다는 소리야?’
그 녀석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난 솔직히 걔 이해가 가.”
“이해가 간다고…?”
“나도 돈을 요구하는 건 아니지 않냐고, 지부에 항의하겠다고 했는데……. 할 거면 하라더라. 이 바닥에서 영영 일 못 하고 싶으면……. 보니까 지부 총무부장님이랑 꽤 친한 사이 같더라고.”
“이 정도로 아무 말 하지 못하는 거면 친한 게 아니라 책을 잡혀 있는 거 같은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렇게까지 나오면 문소연 성격에 말 못 할 만도 하다.
괜히 일을 키웠다가 정말로 계약 해지라도 당해버리면 모두 본인 때문이라고 생각할 녀석이니까.
나한테 피해를 줄 바엔 본인이 손해를 보더라도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겠지.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그냥 멍청한 건지…….’
그래 봤자 고용된 직원 주제에.
회사 손해를 왜 한낱 직원이 감당하려는 건가.
한상혁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사실 나도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말 안 하면 뭐, 그럼 계속 남의 집 쓰레기 치워줄래? 사업은 이미지야. 여기서 아무 말 못 하고 가만히 있으면 우리만 호구 되는 거라고.”
“…….”
뭐, 사실 양아치 놈들이 하는 짓이야 무시하는 게 상책이지만……. 돈을 요구했다면 이건 사안이 달라진다.
이걸 그냥 넘어갔다간 체면이 안 선다.
그렇다고 어쭙잖게 대응하면 책을 잡힐 명분만 만들어줄 뿐이겠지.
앞으로 계약을 하는 데 있어 약점으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이제 신경 꺼.”
한낱 직원이 어떻게 하기에는 이미 한참 벗어난 상황이다.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려는데, 다급한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야, 야! 뭐 어쩌려고! 괜히 그러다 정말로 계약이라도 해지당하면…….”
“당하면 뭐?”
“……어?”
“계약 해지하면 뭐 어쩌라고. 어차피 거기 아니어도 계약할 데 많아. 그리고 네가 뭔데 그런 걸 신경 써. 주제넘게 회사 일까지 생각하지 말고, 넌 그냥 시키는 대로 청소나 해.”
조금 날 선 말투에 한상혁이 꽤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거친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명백한 이유가 있는 만큼 개인감정까지 생각해줄 마음은 없다.
“원래 이런 건 책상에 앉은 놈이 해결하는 거다.”
깝치는 것도 정도가 있다.
그걸 모른다면 손수 가르쳐주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