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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실.
어제저녁, 임동빈 팀장과 통화한 이후로 최호성은 계속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새끼, 한 번 나가리 되더니 의심만 늘어선…….’
아닌 게 아니라, 계속 확답을 요구하는 꼴을 보니 내심 불안했다.
물론 그렇다고 임동빈의 마음이 바뀔 리는 없다. 애초에 그놈에겐 선택지가 없지 않은가.
불안하다고 해도 일단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계속 청소부로 남아 있어야 할 텐데, 그놈 성격에 청소 일을 계속할 리가 없다.
제아무리 의심한다고 해도 결국 자신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애써 생각을 정리하던 그때.
똑똑―.
노크와 함께 김민주 팀장이 사무실로 들어섰다.
“음? 무슨 일인가.”
“그, 다른 게 아니라…….”
그녀가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작전팀의 토벌량이 너무 많습니다.”
“……뭐?”
“기존보다 30%나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너무 과한 것이 아닌지…….”
최호성 본부장은 당최 이해할 수가 없는 말이었다.
작전팀장이라는 새끼가 토벌량이 많다고 징징대다니.
“지금 작전팀 인원이랑 길드 인력이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양이지 않나?”
“저희는 그렇겠죠. 하지만 청소팀은 이 작업량을 못 따라갑니다.”
“하…….”
최호성 본부장이 이마를 짚었다.
기껏 와서 한다는 말이 결국 또 청소팀 이야기라니.
‘대체 김준우 그놈은 뭔 생각으로 애들을 이렇게 만들고 나간 거야…….’
왜 쓸데없는 걸 주입해서 일을 귀찮게 하는가.
“작전팀 위주의 기획 때문인가? 그동안 아무 문제도 없었는데,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거야.”
“아무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 문제가 조금씩 생기고 있는 것 아닐까요. 저번 구조조정으로 반 토막이 났는데 거기에 토벌량까지 오르니… 다들 많이 힘들어합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점점 더 힘들어지겠죠.”
“그게 지금 자네랑 무슨 상관인데.”
“……예?”
“자넨 작전팀장이잖나. 청소팀이 힘들건 말건 그게 자네랑 무슨 상관이냐고. 청소팀 힘든 건 그쪽이 알아서 할 일 아니야?”
“그게 무슨…….”
본부에서 이런 말을 또다시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본부에 저희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 너희만 있는 건 아니지. 근데 나머지 팀은 전부 너희를 보조하기 위해 있을 뿐이야. 같이 가는 게 아니라 너희를 밑에서 받쳐주는 거라고.”
“……”
얼핏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나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김민주는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청소팀 모두가 다들 밤낮없이 일하고 있는데도 청소 작업이 밀리고 있어요. 이대로 계속 토벌을 진행하면 사고가 일어날 겁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
“청소팀 인원을 늘려주세요. 그게 힘드시면 파견 업체라도 고용해주세요.”
“하하…….”
또 청소팀 파견 업체 이야기인가.
최호성은 이 연결고리가 슬슬 지긋지긋해지고 있었다.
“김준우 대표가 그렇게 말해달라고 부탁이라도 하디?”
“……? 아뇨. 제가 직접 판단한 겁니다.”
대답을 보아하니 거짓말은 아닌 듯했다.
당연하겠지만, 절대 김준우 그놈한테 좋은 일을 시켜주고 싶지 않다.
지금 그대로 밀고 나가도 되겠지만… 아직까지 김준우 세력이 본부에 남아 있는 이상 그랬다간 반발이 거세지겠지.
어차피 임동빈이 횡령 증거만 잡으면 협회가 손에 들어오는 것도 시간문제일 테니……여기선 한발 물러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다.
“알았어. 검토해볼 테니까 그만 나가봐.”
김민주는 가볍게 목례하곤 사무실을 나섰다.
최호성은 카르마 코퍼레이션 홈페이지에 적힌 전화번호를 찾았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급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쩔 수 없다.
‘쯧, 그래 뭐 별일 있겠어.’
전화를 걸자 짧은 착신음 이후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이능차원관리 협회 작전 본부장 최호성이라고 합니다. 다른 게 아니라… 청소팀 파견 계약 차 연락드렸는데.”
***
퇴사 후 오랜만에 들어선 서울 본부장실에서 마주 앉은 남자를 지그시 바라봤다.
잠시 상황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저쪽에서 먼저 계약을 제안하리라는 예상도 못했으니까.
다른 곳도 아니고 본부에서 요청이 올 줄이야.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최호성 작전 본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부들 사이에서 청소팀 파견 업체가 유행하고 있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설마하니 대표가 제 선임이셨다니.”
“하하.”
어쭙잖은 연기.
내부자까지 심은 마당에 어디서 모르는 척인가.
“제가 좀 알아보니까 지부와 계약할 땐 모두 실장이 진행하고 대표님은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으신다던데……. 이렇게 직접 뵈니 영광이군요.”
“본부와의 계약 아닙니까. 큰 건인데 직원에게 시킬 순 없죠.”
지부와 계약할 땐 내가 대표인 걸 알리고 싶지 않았으니 이아영 실장을 보낸 거고…….
지금은 어차피 다 알고 있는 것 같으니 굳이 숨길 이유가 없으니까.
뭐, 영양가 없는 탐색전은 여기까지 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서… 원하시는 파견 주기가 있으십니까?”
“글쎄요. 청소팀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저는 잘 몰라서.”
“한 팀당 하루 평균 3개 던전을 작업할 수 있도록 맞추는 게 가장 효율적일 겁니다. 지금 팀당 하루 평균 5개를 작업하고 있으니까… 저희 쪽에서 1개월에 총 10회 파견으로 계약하시는 게 가장 좋을 것 같군요.”
“비용은 어떻게 됩니까?”
“대충 이 정도…….”
계약서를 내밀자 그의 턱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금액이었던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대로 진행해주십시오.”
“그러죠. 아, 혹시 원하시는 팀이 따로 있으십니까?”
내가 묻자 최호성 본부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팀마다 뭐가 또 다릅니까?”
“작업 스타일이 다르죠.”
“아무 팀이나 상관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마침 이번에 신입이 들어온 팀이 있는데, 그 팀을 파견해드리겠습니다.”
“……신입이요?”
“예. 아, 걱정 마십시오. 그분이 사실 작전팀장 출신이시라 던전 바닥은 꽤 베테랑이거든요. 저를 믿고 한 번 맡겨보십시오.”
아무것도 모르는 척 미소를 지었다.
최호성은 재빨리 당황한 기색을 숨겼다.
설마하니 내 쪽에서 먼저 임동빈을 본부에 붙일 줄은 몰랐겠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잘 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면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고 쉽게 접촉할 수 있을 테니까.
‘일부러 신경 써 주는 거니까 잘 좀 해라…….’
나는 추가적인 설명과 함께 계약을 마치고 곧바로 사무실을 나섰다.
그러자 복도에서 대기 중이던 이아영 실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임동빈 팀장을 본부로 파견시켜주면 너무 저쪽에 좋은 조건 아니에요? 가까워지면 연락하기가 더 수월해질 텐데.”
“……들렸습니까?”
“안 들으려고 해도 들리던데요.”
이아영 실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참 귀도 좋은 여자라니까.
“뭐,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대체 뭐가 그럴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말 좀 해주면 안 돼요? 슬슬 답답해지려고 하는데.”
“…….”
귀찮게 하네.
언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겠지만… 자세하게 이야기해줘봤자 어차피 안 믿을 게 뻔한데 의미가 있나 싶다.
하지만 말을 안 해준다고 가만히 있을 여자도 아니고.
언질만 좀 해둘까.
“3주 뒤에 서울에 던전 하나가 출현할 겁니다.”
“무슨 던전이요?”
“위험한 던전입니다. 협회가 무너져 내릴 만큼 위험한 던전.”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하하, 설마 협회가 던전 때문에 망할 거라는 소리는 아니죠?”
“망하진 않을 겁니다. 다만, 협회의 실권이 바뀌겠죠.”
다 쓰러져가는 협회를 국제 협회가 냉큼 집어삼킬 테니까.
“이해가 잘 안 가는데요…….”
“그럼 그냥 이해하지 말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아무튼, 제겐 지금의 협회가 중요합니다. 실권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군요.”
“그럼 그렇게 하면 되잖아요. 알고 있다면 막는 건 어렵지 않을 텐데?”
“단순히 생각하면 그렇겠죠. 하지만…… 솔직히 지금으로선 그걸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피해를 최소화할 수밖에.”
“……어떻게요?”
뭔가 위험한 기색을 느꼈는지 이아영이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던전이 출현하기 전에 협회를 흩어놓을 겁니다.”
“……네?”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이내 격하게 반응하며 흔들린다.
“자, 잠깐만요! 당신 설마…… 일부러 최호성이 증거를 잡게 해서 협회장님을 끌어내릴 생각이에요?!”
확실히 눈치 하나는 빠르네.
뭐, 정확하다.
이번 일을 위해서 필요한 건, 협회가 뒤흔들릴 만큼 큼직한 사건과 그 책임을 뒤집어쓸 우두머리다.
대가리가 잘려 나간 조직만큼 와해하기 쉬운 게 또 없으니.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라지.
“협회장님뿐이겠습니까.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본부 주요 인력들을 모조리 끌어내릴 생각인데.”
“그, 그건 배신이잖아요! 어떻게 그런…….”
“죽는 것보단 차라리 한발 물러나는 게 낫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녀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있을 때였다.
“지금 뭐라고 했나?”
난데없이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시선을 옮기니 복도 끝에서 굳은 얼굴로 다가오고 있는 박인범 협회장이 보였다.
“헉…!”
이아영의 숨이 거꾸로 넘어갔다.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날 끌어내린다니…….”
“혀, 협회장님… 그, 그게 아니라…!”
이아영이 나서서 변명을 시도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동안 좀 예뻐라 해줬더니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나?”
하지만 협회장의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하자, 답지 않게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기어이 패닉에 빠진 듯한 모습.
나는 옅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장난은 그쯤 하시죠. 옆에 있는 사람 간 떨어지겠습니다.”
“하하하! 나도 모르게 좀 놀려주고 싶어서 그만.”
“……??”
이아영 실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와 협회장을 번갈아 봤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이미 다 이야기된 사항이니.”
“설마 제가 이런 중요한 일을 멋대로 진행하겠습니까.”
“…….”
순간 이아영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빠악―.
내 어깨에 주먹이 내리꽂혔다.
“한 번만 더 놀리면 진짜 가만 안 둬요!”
“…….”
아니, 내가 놀린 것도 아닌데 왜 날…….
‘미친, 힘이 뭔…….’
이 정도면 헌터 해도 되겠네.
저릿저릿한 통증에 어깨를 어루만졌다.
“그래서, 진행 상황은 어떻습니까?”
“믿을 만한 놈 시켜서 내역은 대충 조작해 놨어. 물론 작정하고 뒤지면 찾을 수는 있을 정도로만.”
“이제 정말 직진뿐이군요.”
협회장이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생각해 보니 참 아이러니하군. 협회장 자리에 다시 앉힌 것도 자네인데, 이젠 협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도 자네라는 게.”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일이 끝나고 다시 복귀하기 힘드실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천년만년 해먹을 것도 아니지 않나. 내가 협회장 자리만 몇십 년을 있었어. 이 정도면 충분히 오래 했지. 하하하!”
호쾌한 웃음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난 오히려 자네가 걱정이군. 내가 자리에서 물러나면 이제 더 이상 자네 뒤를 봐줄 사람이 없지 않은가. 미리 말하는데, 설령 내가 복귀하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 프로젝트는 중단하지 않을 거야.”
“당연한 말씀입니다.”
“자신만만하군.”
“언젠 아니었습니까.”
협회장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아영 실장은 그러지 못했다.
“자, 잠깐만요! 우리 프로젝트라뇨? 또 뭐가 더 있어요?!”
“…….”
“…….”
하여간 뭐하나 놓치는 법이 없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자 이아영 실장이 머리를 턱 짚었다.
“……대체 두 분이서 뭘 꾸미고 있는 거예요?”
“그, 그게…….”
“아니, 됐어요. 생각해 보니까 그냥 모르고 있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지금 일만으로도 충분히 골치가 아프니, 더는 말하지 말라는 듯한 반응.
눈치를 살피던 협회장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나머진 잘 부탁함세.”
“걱정 마십시오.”
“그래. 그럼 난 이만 볼일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곤 등을 돌리나 싶었는데…….
“아, 그런데 말이야.”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입꼬리를 쓱 올렸다.
“둘이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군.”
“…….”
“…….”
이 사람……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농담이야, 농담. 너무 정색하지 말게.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