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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104화 (104/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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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행정본부.

최호성 본부장은 곧바로 박인범 협회장을 찾았다.

의아한 점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칼이 들어온 이상 지체 없이 일을 진행해야 했으니까.

“다른 걸 좀 알아보다가 우연히 찾은 자료들입니다.”

최호성이 협회장 앞에 자료를 들이밀었다.

협회장이 굳은 표정으로 이를 훑었다.

“……이게 뭐지?”

“금빛 기부 재단, 청소년 헌터 육성 재단 등등. 협회 산하 기구 이름으로 카르마 코퍼레이션에 입금된 내역입니다. 경영부에 확인해보니 본인들은 모르는 내용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게 다 내가 지시한 사항이라 이건가?”

“설마 아니라고 하실 겁니까?”

최호성 본부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알아보니 카르마 코퍼레이션 대표가 김준우 전 본부장이더군요. 뭐, 두 분이 꽤 각별한 사이니 뒤를 봐주는 것 정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이건 도를 넘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검찰에 넘겨버리지, 왜 굳이 이걸 나에게 가져온 건가?”

“혹시라도 오해가 있을까 해서 협회장님에게 직접 듣고 싶은…….”

“하하, 하하하!!”

협회장의 웃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오해는 염병. 그냥 솔직하게 말하게. 그걸 빌미로 날 협박하고 싶다고.”

“…….”

최호성의 예상과 달리 협회장은 너무나 침착했다.

마치 이런 상황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살짝 주춤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이야기가 빨라서 나쁠 건 없지.’

굳이 포장할 필요 없이 바로 본심을 내비쳤다.

“분당에 던전 박람회를 추진하고 싶습니다.”

“……박람회?”

협회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거야 어렵진 않은데…… 수지가 안 맞는군. 박람회 정도야 날 날려버리고 난 다음에 직접 추진할 수도 있지 않나.”

“뭐하러 일을 크게 만들겠습니까. 서로 원하는 것만 깔끔하게 쥐고 돌아설 수 있는데 말이죠. 조건만 들어주신다면 자료는 깔끔하게 폐기하겠습니다. 물론 언론에도 제보하지 않을 거고요.”

협회장이 신음하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속만 좁은 줄 알았더니 그릇도 작군.”

“……네?”

“고작 그거 하나 얻자고 날 찾아왔나? 어이가 없어서 원…… 공개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게. 굳이 그렇게 하면서까지 연명하고 싶지 않으니.”

“……?!”

최호성의 얼굴이 순간 팍 굳었다.

대체 뭔가.

저건 침착한 게 아니라, 아예 관심조차 없는 수준이 아닌가.

본인 목이 날아가게 생긴 마당에 배짱을 부리다니.

자존심은 있다 이건가.

최호성은 작게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봅니다, 협회장님. 이게 세간에 공개되면 협회장님은 물론이고 본부 전체가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경고에도 협회장은 실소를 뱉었다.

그러자 되려 최호성은 다급해졌다.

“저도 본부 사람입니다. 본부가 잘못되는 걸 바라진 않습니다. 이 이상 일을 키우지 말고 저희끼리 조용히 해결하는 게…….”

“이봐. 최호성이.”

협회장의 날카로운 눈빛이 그를 꿰뚫었다.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이나?”

“……예?”

“그런 미지근한 태도로 할 거면 이쯤에서 그만둬. 평생에 두 번 없을 칼을 쥐었는데 어쭙잖은 협박이나 할 생각이야? 물어뜯을 거면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야지.”

“…….”

최호성은 그제야 자신이 상대를 너무 만만히 봤다는 걸 깨달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애초부터 이 사실을 세간에 공개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계좌 내역은 어디까지나 거래를 위한 도구에 불과했으니까.

애초에 이 자료가 언론에 뿌려지면 협회는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날 것이다. 당연히 본부장인 자신에게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

굳이 그러한 귀찮은 것들을 감수하면서 이걸 공개할 이유가 있을까. 딜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최호성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꽤나 안일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대체 무슨 생각이십니까? 그냥 거래를 받아들이시면 아무 문제 없이 끝나는 것 아닙니까.”

“지금 당장이야 그렇겠지. 보아하니 자네 지금 급하게 꺼야 할 불이 있는 모양인데, 그걸 해결하고 나면 또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겠나?”

“…….”

최호성의 말문이 막히자 협회장이 피식 웃었다.

“어림도 없지. 내 장담하는데, 자네는 앞으로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이번 일을 빌미로 나를 계속 이용해 먹으려고 들 거야. 그 좋은 칼을 한 번 쓰고 버리는 멍청이가 어디 있겠나.”

“…….”

“이미 그 자료가 자네 손에 들어간 순간부터 다 끝난 거야. 자네한테 놀아나면서 구질구질하게 연명할 바에야 그냥 여기서 끝을 보겠네.”

“그 말 후회하실 겁니다.”

“지랄 말고, 퍼트릴 깡 없으면 그냥 놓고 가던가.”

쐐기를 박는 도발.

최호성의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알겠습니다. 정 뜻이 그러하시다면.”

최호성은 자료를 콱 움켜쥐며 협회장실을 박차고 나갔다.

복도를 빠르게 가로지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대체 뭔가.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분명히 본인이 계획한 일인데…….

왜 자신이 놀아나는 기분이 드는 걸까.

***

「대한민국 이능차원관리협회의 박인범 협회장이 수억 원대의 예산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익명의 내부자가 보낸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계좌 내역 자료엔 금빛 재단, 청소년 헌터 육성 재단 등 이능차원관리 협회 산하 재단들 이름으로 받은 자금 내역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해당 업체의 대표가 김준우 전 서울 작전 본부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충격을 더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김준우 대표와 박인범 협회장 사이에 모종의 유착 관계가 있었는지 중점을 두고 조사를…….」

이후 앵커가 몇 마디를 더 떼자 내 핸드폰이 미친 듯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나는 볼 것도 없이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뭐, 안 봐도 내 주변 사람들이겠지.

지금 뉴스 진짜냐, 대체 무슨 일이냐 등등… 할 말은 뻔하지만, 굳이 사정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말한다고 해서 믿을 것도 아니고.

└뭐야? 지금 뉴스 실화임??

└시발 뭐임????

└와 씨 존나 충격이다ㅅㅂ

└응~ 다 똑같은 놈들이었죠? 무슨 희대의 영웅인 것마냥 신격화하던 놈들 벙쪘죠?

└김준우도 권력 맛 한번 보더니 사람이 바뀌네;; 진짜 존나 실망이다...

└?? 이해가 안 가는 게, 김준우가 뭘 잘못했다는 거임? 대놓고 개인 계좌에 꽂아준 것도 아니고 지원금 받은 것도 죄임?

└그니까;; 그냥 주니까 받은 걸 수도 있잖아. 김준우가 협회장한테 지원금 달라 그랬다는 증거라도 있음?

└이게 맞지. 어쨌든 협회장은 예산 횡령 빼박인데, 김준우는 좀 애매함.

└이게 뭔 개소리들이냐ㅋㅋㅋㅋㅋ 그럼 달라고 하지도 않은 거액을 협회장이 횡령까지 해서 지원을 해줬다고? 이게 말이 됨?ㅋㅋㅋㅋㅋㅋ

└그거야 심증이고;; 어쨌든 김우준 쪽에서 돈 달라고 했다는 증거가 없으면 몰아가기도 좀 그럼;;

└ㅂㅅ들ㅋㅋㅋ 횡령에 로비까지 빼박인데 뭔 이걸 실드를 치고 있어ㅋㅋ

└야 이거 김준우랑 박인범 말고 그 주변 인물까지 싹 털어봐야 한다 분명 뭐 더 있을 듯

└작전 1팀에 김민주도 김준우랑 친하지 않음?

└작전팀뿐임? 현역 때 지원팀이랑 통제팀도 죄다 김준우 사단이었는데

└또 거물이라고 흐지부지 끝낼 생각 말고 먼지 한 올까지 다 털길

뉴스에 대한 인터넷 반응 또한 뜨거웠다.

어째 이렇게 보고 있자니 옛날 일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회귀 전엔 댓글 한 줄, 기사 한 줄에 노발대발했었는데…… 지금 뭐 딱히 별생각이 안 든다.

심지어 그땐 억울할 것도 없었는데 말이지.

“주변 사람 모두가 적으로 돌아서겠네요.”

“익숙합니다. 그리고 뭐…….”

슬쩍 시선을 옮겼다.

“최소한 전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선수네, 선수.”

어째선지 그녀가 시선을 피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뭐,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좀 귀찮은 일이 있긴 했어도 계획대로 진행되기 시작했으니.

“이거 수습은 되려나 모르겠네요.”

“계획대로 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참 나, 그 말이 제일 무서워.”

탐탁지 않은 반응.

뭐, 이해는 간다.

솔직히 제정신이고서야 협회를 터트리는 게 계획이라고 하는 놈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거기에 토씨 하나 안 달고 동참하는 사람도 제정신은 아니겠지만.

“그래요. 뭐… 죽기밖에 더 하겠어요.”

그녀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다.

***

강원도 산골 어딘가.

버려진 빌라에 있는 세이프 하우스.

양민호가 이곳에 은신한 지도 벌써 몇 달째였다.

적대적 인수합병 건 당시, 임무 실패와 함께 김준우에게 PB 코퍼레이션의 존재를 들켰을 땐 솔직히 죽겠구나 싶었다.

PB 코퍼레이션의 제1 수칙인 보안을 깨트렸으니, 그에 따른 처벌은 감수해야 했다.

제거를 당하든 입막음을 당하든.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PB 코퍼레이션은 양민호에게 그 어떠한 처분도 내리지 않았다.

그저 다시 부를 때까지 대기하라는 명령만 떨어졌다.

낌새를 보아하니 일단 살려는 두기로 한 모양이었다.

만약 제거하려고 했다면 진즉에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긴 해도 결국 이러나저러나 목줄이 걸려 있는 신세.

현재는 뭔가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계속 이대로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양민호는 선반에 올려둔 술을 꺼내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똑똑―

그때 누군가 현관을 두드렸다.

‘시발…….’

동시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여길 찾아올 수 있는 이는 정해져 있었다.

때문에 양민호는 문을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길 잠시.

그들이 여기까지 찾아온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살아 있네요?”

“다, 당신…?”

저도 모르게 꽤나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닌 게 아니라, 문밖에 서 있는 남자는 양민호 또한 아는 얼굴이었다.

“설마… 당신도 현장직이었던 겁니까?”

“그렇게 놀랄 일입니까. 뭐… 엄밀히 따지면 현장 관리 감독직이긴 한데.”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뭐 그리 대수냐는 듯한 투였다.

“본부에도 내부자가 있다고는 듣긴 했지만…….”

“그럼 더 이야기할 게 있겠습니까. 아무튼, 복귀 준비나 하십시오. 조만간 움직여야 할 것 같으니까.”

남자는 작은 상자를 건넸다.

상자 안에는 문서와 권총이 들어 있었다.

내용물을 확인한 양민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갑자기 웬 총?”

“조심히 다루세요. 반능석을 가공한 총알이 장전되어 있으니까.”

“……예?”

“총알이 표적에 맞는 순간부터 상대의 이능력이 차단될 겁니다. 뭐, 상대의 랭크와 가공 농도에 따라서 차단 시간이 달라지긴 하지만… S랭크 기준으론 5발만 박아도 30초는 차단할 수 있을 겁니다.”

양민호의 눈썹이 꿈틀했다.

반능석? S랭크?

그게 무슨 소리인가.

국내 랭킹 1위인 자신이 A랭크인데, S랭크를 상대할 일이 어디 있다고.

그런 생각이 들기도 잠시, 녀석이 누굴 염두에 두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설마 김준우, 그 새끼한테 쓰라고 주는 겁니까?”

“저번에 처참하게 발리셨잖습니까. 이쯤 되면 인정하셔야죠. 당신보다 몇 배는 강한 사람이라는 거.”

남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번엔 다른 현장직들도 함께 움직일 겁니다.”

“……날짜는요.”

“일주일 뒤. 서울에 리젠 던전이 출현하는 때에 맞춰서.”

“리젠 던전…? 그거 확실한 겁니까?”

“본부에서 직접 감지한 이능파입니다. 뭐, 서울 본부 쪽은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등급이 꽤 높을 거로 예상됩니다. 아마… 레드 정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양민호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리젠 던전이고 나발이고, 재앙에 가까운 레드 등급 던전을 두고 남 일처럼 무덤덤하게 말하는 걸 보면 정상인지 의심스러웠다.

“리젠 던전이 출현하면 본부 인력 전원이 참가할 거고… 그러면 자연스레 김준우도 움직이겠죠. 그 인간 성격상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니까.”

“결국,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작전을 진행한다는 소리군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번엔 실수 없이 잘 부탁드립니다.”

남자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볼일은 다 봤다는 듯 곧바로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때.

「검찰은 추가적인 유착 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대표와 박인범 협회장과 연루된 모든 인물을 집중 수사할 것이라 발표했으며, 필수 불가결하게 서울 본부 내 대대적인 인사 개편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양민호의 방에 있던 텔레비전에서 격양된 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

동시에 두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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