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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쇄 구역, 어느 건물 안.
김준우를 습격했던 무리는 작전을 정비하기 위해 이곳에 몸을 숨겼다.
“반능석이 왜 안 먹혔던 겁니까!”
한국 파트 현장직, 서형민이 목소리를 높였다.
작전이 엉망이 되기 시작한 건 거기서부터였다.
반응석으로 스킬을 모조리 봉인한 후 무방비한 김준우를 쓰러뜨릴 계획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대체 그 새끼 정체가 뭡니까! 아무리 이레귤러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반능석을 맞고도 스킬을 쓸 수 있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낸들 아냐고!”
이번 작전에서 팀장을 맡은 현장직, 고성수가 버럭 소리쳤다.
기세에 눌린 건지, 이내 서형민이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어떡합니까.”
“애초에 그놈, 혼자서 몇 시간 째 토벌을 진행한 상태잖습니까. 그런데도 상처 하나 못 냈어요. 이거… 우리 전력으로 저놈을 죽일 수 있긴 한 겁니까?”
팀원들이 각자 한 마디씩 내뱉었지만, 고성수 팀장은 물론 그 누구도 마땅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고성수 팀장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양민호 이 새끼는 왜 안 온 거야…….’
국내 랭킹 1위의 그놈이라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전력으론 힘들다.
고성수 팀장은 통신기를 꺼내 황동휘 파트장을 호출했다.
“파트장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김준우, 그놈…… 반능석이 안 먹힙니다.”
「…….」
“파트장님, 듣고 계십니까? 지금 반능석이…!”
「근데요?」
무미건조한 대답에 고성수 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
「안 먹히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건데요.」
“자, 작전을 변경해야…….”
「당신들, 현장직 아닙니까? 이번 임무가 뭐예요. 김준우를 처리하는 거잖습니까. 그럼 상황이 어떻게 됐든 완수해야지, 무슨 반능석이 안 먹힌다고 징징대고 있습니까.」
“…….”
생각지도 못했던 황당한 대답.
고성수 팀장은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임무 완수하십쇼. 만약 실패하거나 후퇴하면 목숨이 붙어 있을 거란 기대는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뚝―.
일방적으로 통신이 끊겼다.
동시에 팀 전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저기…….”
“뭡니까?”
“이거… 정말 반능석일까요?”
“……!”
한수빈 헌터의 의문에 팀원 모두가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말이 안 되잖아요. 이거… 우리를 미끼로 힘을 빼놓고 양민호 그 새끼가 마지막에 처리하려는 거 같은데.”
“뭐하러 그런 짓을 한답니까.”
“저번 실패로 목숨이 간당간당한 놈이잖아요. 이번 기회로 실수를 만회하려는 거겠죠!”
한수빈 헌터의 목소리가 점점 격양됐다.
모두의 눈빛이 마구 흔들렸다.
‘우리를 미끼로 쓴 거라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제 정말 뒤는 없다.
미끼의 말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한 번 쓰고 처분되는 존재.
이번 작전에 실패해도 죽고, 성공해도 죽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도망쳐야 하나?
도망친다고 벗어날 수는 있을까?
모두가 사색이 되어 불안에 떨고 있을 때였다.
“국제 헌터 협회 비공식 산하 기구, PB 코퍼레이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밸런스 조정팀 소속 한국 파트 현장직…… 시발, 이름 한 번 거창하네. 그래 봤자 범죄자 집단 주제에.”
“뭐, 뭐야……!”
“여길 어떻게……?”
이윽고 어둠 속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알았다. 개새끼들.”
다름 아닌, 김준우였다.
***
반능석까지 준비한 녀석들이다.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꽤나 공들인 작전인 것 같으니 어떻게든 오늘 안에 끝을 보려 하겠지.
나는 서둘러 주변 건물을 뒤졌고, 금세 녀석들을 찾을 수 있었다.
“옹기종기 잘도 모여 있네. 다과회 하냐?”
발각된 녀석들은 공격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대체 뭘 고민하는 건지…….
“그래서, PB 코퍼레이션이 뭐 하는 데야? 어디처럼 청소팀 파견 업체는 아닌 것 같은데.”
“…….”
“…….”
애써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자세는 퍽 어색했다.
대답해줄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뭐 됐다.
이미 그간의 행적만 봐도 대충 감이 잡혔다.
고개를 들어 건물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방금 소란으로 구역 내 몬스터가 자극을 받았는지 움직이고 있는 게 느껴진다.
더 지체했다가는 꽤 귀찮아지겠지.
잴 것 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반능석까지 준비해온 거로 봐선 꽤나 작정하고 달려든 거 같은데……. 혹시 니들 중에 타이탄 가지고 있는 놈 있냐?”
“타이탄…?”
“그 왜, 이능운용총기. 전 세계에 5개밖에 없는 거.”
영문 모를 표정들.
“없나 보네. 뭐… 알았어.”
최소한 회귀 전에 나를 습격했던 놈들은 아니다.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군.
그럼 그건 넘어가고.
“그래서, 대체 왜 자꾸 날 찾아오는 거야? 아직도 시간석을 노리고 있는 거라면 딴 데 가서 알아봐. 난 이제 협회 사람이 아니니까.”
“시간석? 글쎄. 그건 우리 부서 업무가 아니라.”
부서?
조직 체계까지 나뉘어 있다는 건가.
“그럼 대체 이유가 뭐야? 설마 진짜 니네한테 방해가 된다는 것 때문에 죽이려고 하는 거냐? 아니… 그렇게까지 해서 대체 뭘 하고 싶은 건데?”
“죽을 놈한테 알려줘서 뭐 하겠나.”
나도 모르게 실소가 지어졌다.
“허세는 시발. 딱 보니까 니네들도 모르는구만 뭐.”
“…….”
“원래 윗분들은 아랫것들한테 절대 자세한 얘기 안 해줘. 괜히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
“……웃기지 마. 고작 청소부 출신이 뭘 안다고 지껄여.”
“하하, 하하하! 아직도 이런 병신들이 다 있네.”
그들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왜, 그럴싸한 이름 달고 비밀스럽게 움직이니까 니들이 뭐라도 된 거 같아? 천만에. 이 쓰다 버려질 도구 새끼들아.”
하등 의미 없는 감투라도 씌워주면 지들이 뭐라도 된 줄 알고 개처럼 충성을 다하는 법이다.
결국, 지들도 똑같은 노예라는 건 새카맣게 잊은 채.
솔직히 방해되는 놈들 쳐내는 것 가지고 뭐라 하고 싶진 않다.
나 또한 그랬었으니까.
다만, 나를 적으로 돌린 건 크게 실수한 거지.
“족쇄 자랑 그만하고 어서 덤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그들이 다시 전투태세를 갖췄다.
사실 체력도 그렇고, 몸 상태도 썩 좋지 않다. 지금 상태로 시간을 끌면 내가 오히려 불리하다.
“달라붙어!!”
리더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전원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S랭크 스킬의 안전장치 해제 시퀀스를 시작합니다.]
나는 남은 체력을 모두 끌어내며 숨을 골랐다.
[발동 조건 확인 중]
[시전자 본인 확인]
[시전자의 랭크 확인]
[필요 클래스 : 네크로맨서]
[전투 상태 확인]
[발동 조건이 확인되었습니다.]
[해당 스킬의 안전장치가 해제되었습니다.]
[스킬 사용에 주의하십시오.]
[습득 스킬 : 이계 소환]
[차원에서 10분간 하수인을 소환합니다]
드드드드―.
스킬이 시전됨과 동시에 건물이 크게 진동하기 시작했고.
[시전자 능력치를 분석합니다.]
[분석 완료]
[해당 능력치에 비례하는 하수인이 소환됩니다.]
지이잉―.
보랏빛이 번쩍이길 한 차례.
[소환 완료]
“최, 최상급 소환 스킬?!”
“아직도 저런 힘이 남아 있다고…?”
모두가 아연실색하며 시선을 고정한 그 자리에.
[대원수 - 파이몬]
낙타를 탄 고귀한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파이몬.
레드 등급 던전에서도 보기 힘든 최악의 몬스터.
그런 존재와 이 좁디좁은 방 안에서 마주했다는 건…… 살아 돌아가는 걸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뭐, 솔직히 날 죽인다고 너네한테 무슨 이득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매번 귀찮게 찾아오지 마.”
자세를 고쳐 잡으며 선언했다.
“조만간 내가 직접 찾아갈 테니까.”
귀를 찢는 악마의 울음소리가 모든 걸 집어삼킬 듯 울려 퍼졌다.
***
쾅, 콰광―!!
콰직―!
주변 땅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양민호는 근처 골목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쿠구구궁―!
이윽고 김준우가 들어간 건물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내려앉기 시작했다.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저건 더 이상 전투가 아니다. 그저 일방적인 학살일 뿐.
나름 베테랑이라고 하는 현장직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청소부라.
대체 국제 협회는 어쩌자고 저런 놈을 적으로 돌린 걸까.
‘막상 오니까 좀 쫄리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동시에 몸이 조금씩 떨려왔다.
그의 몸은 일전에 느꼈던 극도의 공포감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떨고 있는 건 두려움 때문이라기보단…… 희열이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황동휘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상황 어떻습니까?」
“선두 팀 전투 곧 종료될 것 같습니다. 레벨 차이가 너무 확연하네요.”
「쯧, 설마 했는데 정말로 역부족일 줄이야.」
황동휘는 굉장히 못마땅한 투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선두 팀이 꽤 체력을 빼놓은 것 같습니다. 공격도 몇 번 성공시켰고……. 뭐, 반능석이 통하지 않는 건 이해가 안 가긴 하는데, 그래도 상처는 줄 수 있을 정도니 이제부터라도 잘하면 승산이 있을 것 같군요.」
“네.”
「지시했던 보험 쪽은 어떻게 됐습니까?」
“준비해뒀습니다.”
양민호는 그렇게 대답하며 주머니에 넣어둔 무선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다.
「명심하세요. 이번에도 실패하면… 한국 파트 개편될지도 모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시고, 팀원들한테도 잘 말해주세요.」
황동휘 파트장은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때마침 봉쇄 구역에서 울리던 충격도 멈췄다.
상황이 모두 종료된 모양이었다.
“그럼… 다들 준비하세요.”
양민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철컥―.
수십 명의 현장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방을 빠져나올 때쯤엔 이미 건물의 반이 날아간 후였다.
응급처치 한 부분이 터진 모양이다.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무리하게 소환 계열 스킬을 사용했기에 자업자득이었지만…….
‘역시 부담이 너무 크네.’
소환을 유지하기 위해 남아 있는 체력을 모조리 갖다 바쳤다. 덕분에 지금은 서 있는 것조차 기적이었다.
‘뭐, 그래도 무리한 보람이 있긴 하네.’
국제 협회 산하 비밀 조직, PB 코퍼레이션.
주요 업무는 암살, 뱅크 아이템 가공 및 무기화.
부서가 나뉘어 있다는 걸 봐선 각자 담당자가 다르다는 거겠지.
최종 목적은 알아내지 못했지만, 이것만으로도 매우 큰 수확이다.
드디어 괴담이라는 커튼에 가려진 놈들의 민낯을 확인했으니.
이제 남은 건 차차 알아보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열고 건물 밖으로 나가는 순간,
탕―!
갑자기 몸이 왼쪽으로 기울며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뭐야 시발…….’
또다시 순간 멍해진 시야.
애써 정신을 차리고 보니, 왼쪽 다리에 총알이 박혀 있었다.
곧바로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오랜만이네요.”
미소를 짓고 있는 양민호가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일제히 나를 향해 총구를 겨눈 수십 명의 인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쯧, 산 넘어 산이라더니.
“시발, 올 거면 좀 한 번에 올 것이지…….”
“나름 보스 레이드인데, 이 정도는 준비해야죠.”
“…하, 하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피가 흐르는 다리를 무시한 채 애써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미 바닥인 체력.
컨디션도, 몸 상태도 최악.
이런 상태로 지금 저 인원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 레이드 할 보스를 잘못 골랐네.”
[습득 스킬 : 전능]
하지만 물러설 생각 따윈 없었다.
똑같은 놈들한테 두 번 죽어줄 생각은 일절 없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