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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본부에서 의문의 폭탄 테러가 발생하고 협회를 비롯한 서울 전체가 패닉에 빠진 상황.
그럼에도 여전히 작전을 속행 중인 봉쇄구역에선 가까스로 탈환에 성공한 서초역에 임시 작전 지휘실이 마련되었다.
최호성 본부장이 나에게 작전 지휘권을 넘긴 지도 3일이 지났다.
이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입에 발린 소리를 해댔지만…….
본심이야 안 봐도 뻔했다.
‘본인이 책임지고 싶지 않으니까 나한테 떠넘기려는 거겠지.’
하여간 이 상황에서까지 밥그릇 걱정이라니.
과연 전생에 내 멘토다운 역량이다.
시발, 덕분에 쉬지도 못하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강릉 지부입니다. 슬슬 내부 교대 시간인데 허가 부탁드립니다.」
때마침 무전이 울렸다.
모니터를 확인하며 심드렁하게 답신했다.
“지금 그쪽 구역 몬스터는 활동이 많이 줄어들었으니 괜찮을 겁니다. 빠르게 교대하시고 현재 위치 사수하세요.”
「넵, 알겠습니다!」
“인천 지부는 방배역을 기준으로 몬스터가 다른 구역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최대한 막아주시고요.”
「네!」
“전체적으로 상황이 좋습니다. 다들 조금만 더 힘내주시고, 조금이라도 이상 상황 생기면 바로 무전 주십시오.”
그 무전을 끝으로 다시 의자에 몸을 푹 기댔다.
물론 내가 직접 현장에 뛰어들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작전팀도 소집된 마당에 굳이 힘든 몸 이끌고 애쓸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러니 업무래 봤자 지휘실에서 무전이나 때리는 일이었다.
앉아서 입이나 놀리는 거야 어려울 것도 없지만, 규모가 규모인지라 몸은 편해도 머리는 터질 지경이었다.
작전에 참여한 수십 개의 작전팀과 길드.
모든 지부에 각자의 세부 구역을 배정해주었고, 그 안에서 로테이션을 돌려 24시간 토벌을 진행하게 했다.
길드는 구역 사이사이에 배치하여 어느 한 구역에 몬스터가 쏠리지 않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맡겼다.
그렇게 시작된 토벌은 단 1초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첫날은 이미 리젠된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뚫고 최소한의 작전 구역을 탈환해야 했기에 꽤나 애를 먹었지만…… 어려웠던 건 그 정도뿐이다.
이튿날부턴 전국 지원팀이 자진해서 작전에 참여했고, 토벌 진행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몬스터 수가 줄어듦에 따라 조금씩 안정 궤도에 올라섰다.
던전 출현 5일째이자 작전 개시 3일째가 된 오늘.
던전 소멸까지 남은 시간은 단 3시간.
3일 밤낮을 계속된 작전에 많이들 지쳐 있었다. 간혹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공포에 패닉이 오는 인원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3시간 남았다고 말을 해줄 수도 없고…….’
그걸 설명할 수도 없을뿐더러, 자칫 방심을 유도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 현재까지 사상자는 0명이다.
이대로만 버텨준다면 아무런 피해 없이 마무리할 수 있다.
한숨을 돌리며 기지개를 쭉 켜던 그때였다.
덜컹―.
“어떻게 되고 있어요?”
이아영 실장이었다.
그녀 또한 나를 따라 3일 밤낮을 새우며 작전을 지원해주었다.
자업자득이긴 해도 그런 일이 있어 돌아가 쉬라고 했지만, 고집스럽게 붙어 있었다.
고집 하나는 세계 제일이지 않을까 싶다.
“뭐, 무난합니다. 다들 많이 지치긴 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문제도 없고요.”
“당신이 걱정하던 일은 안 일어나겠네요.”
“예. 다행히도.”
“만약에 이번 작전이 아무 피해 없이 완료되면, 진짜 어마어마한 일이에요. 국제 협회에서 러브콜 올 수도 있을걸요?”
“……듣던 중 끔찍한 소리군요.”
내가 학을 떼자,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 이아영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모르고 있을 땐 그러려니 했지만, 이젠 다 알고 있는데도 저런 농담이 나오나 싶었다.
‘말해주지 말 걸 그랬나…….’
아닌 게 아니라, 나는 결국 그녀에게 국제 협회에 대해 그동안 알아낸 걸 모두 털어놓았다.
양민호의 습격 이후, 대체 무슨 일인 건지 설명하라고 닦달하는 걸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무엇보다 눈앞에서 습격 장면을 들킨 마당에 더는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국제 협회, PB 코퍼레이션, 헌터 밸런싱, 한국 현장직.
그 모든 내용을 들은 이아영 실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충격적인 이야기였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혼자 생각에 빠져 있던 끝에, 그녀가 물었다.
-혹시 회사를 세운 이유도 그쪽이랑 관련이 있는 거예요?
역시 촉이 남달랐다.
협회장과의 극비 프로젝트.
제2의 국제 협회 건설.
해외 지부 사업.
그것을 위한 위장 사업.
이아영 실장은 나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내가 회귀했다는 건 빼고.
“그나저나…….”
이아영이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생각하고 말고 할 게 있습니까. 해외 지부 사업, 시작해야죠.”
단호하게 대답하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국제 협회는 예전부터 전 세계 토벌권을 통합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중이에요. 뭐… 대부분 합법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거라, 다들 크게 신경 안 쓰고 있는 모양인데…….
“어림도 없는 소리죠.”
어찌 됐건 한 나라의 협회를 상대로 테러를 감행했다. 더한 짓도 하지 말라는 보장은 없었다.
“우리가 해외 인수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국제 협회와 정면으로 맞붙게 될 거예요. PB 코퍼레이션도 그렇고요. 당신도 이전보다 더 위험해질 수 있어요.”
“이미 충분히 맞붙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는 말이에요.”
말끝을 흐리며 망설이길 잠시.
“안 하면 안 돼요?”
“……?”
“제2의 국제 협회니, 사무총장이니 하는 거 안 하면 안 되냐구요.”
그녀는 진지하게 충고했다.
“그냥 우리끼리 소소하게 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아요? 굳이 위험한 일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말했잖습니까. 개인적인 목표라고.”
“…….”
“마음에 안 들면 여기까지 하셔도 됩니다. 지금까지 충분히 도움받았으니까요.”
“…….”
이아영 실장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한다.
뭐,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도 결국 민간인이다.
나는 몰라도 굳이 제삼자가 목숨 내놓고 일할 이유는 없다.
그러니, 더는 할 수 없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해는 해도 순순히 내보내 줄 생각은 없지만.
“뭐, 해본 소리예요.”
그때, 이아영이 피식 실소를 뱉으며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내가 설마 그런 것 때문에 그만두겠어요? 당신 사업이 좋아서 온 게 아니라 당신 때문에 온 건데, 이제 와서 나가는 것도 웃기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해보죠, 뭐.”
“괜찮겠습니까?”
“까짓거 죽기밖에 더 하겠어요.”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래도 내가 과소평가했나 보다.
얜 진짜로 제정신이 아니다.
“아, 그러고 보니… 부탁할 게 좀 있습니다.”
“뭔데요?”
“이걸 조사해주겠습니까?”
몇 발의 총알을 건넸다.
“듣자 하니 반능석을 가공한 물건이라고 하더군요.”
“…….”
이아영 실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PB 코퍼레이션 출처에요?”
“정황상 그렇죠. 어찌 됐건 일단 확인은 필요합니다. 어떻게, 가능하시겠습니까?”
“뭐, 확인하는 거야 어렵진 않은데…….”
그녀가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뱅크 아이템을 가공한 물건이라…… 걸리면 바로 철창행이에요.”
“그럼 안 걸리게 부탁드리죠.”
“……말 참 쉽다.”
그녀가 볼멘소리를 냈다.
뭐, 철창행이고 나발이고 어쨌든 맡길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
이아영 실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총알을 고이 챙겼다.
“기, 김준우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그때, 본부 직원 중 한 명이 다급하게 지휘실로 들어왔다.
“뭡니까. 작전에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아, 아뇨! 본부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본부?”
직원은 아연실색이 된 얼굴로 말했다.
“최, 최호성 본부장님이…… 습격당하셨습니다.”
“……뭐?”
무척이나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
최호성 본부장이 습격을 받아 사망했다.
가히 충격적인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나와 이아영은 곧바로 서울 본부로 향했다.
우리가 본부에 도착했을 땐, 이미 출동한 경찰들과 수사관들이 현장을 통제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찰에게 다가가 물었다.
젊은 경찰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본부 관계자 되십니까?”
“지금은 아닙니다.”
“그럼 자세한 사항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최소한 어떻게 된 건지라도 알려주시면…….”
“죄송합니다. 현재 수사 중입니다.”
젊은 경찰이 연신 단호한 표정으로 제지했다.
아, 이거 말이 안 통할 사람인데.
“야 인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대뜸 선배로 보이는 경찰이 화들짝 놀라며 끼어들었다.
언뜻 봐도 아버지뻘인 경찰은 어째선지 자세를 낮추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녀석이라, 전 본부장님도 몰라뵙고…….”
“저, 전 본부장님?!”
젊은 경찰의 눈이 뒤늦게 동그래졌다. 그리곤 얼른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큰 실수를…….”
“아니, 죄송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어떤 상황인지나 알려주시죠.”
젊은 경찰이 겸연쩍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유영수 보좌관이라는 분이 시신을 처음 목격하고 신고해주셨는데…… 듣자 하니 어제 오후부터 연락을 안 받으셨답니다. 그래서 직접 사무실로 찾아갔더니 피를 흘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사인은요?”
“일단은 흉기에 의한 외상인데…….”
젊은 경찰이 주변에 몰려든 기자와 시민의 눈치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팍 낮춰 말했다.
“총기 사건이라는 것 같습니다.”
“총기?”
“예. 그것도 정확하게 심장에 한 발. 저항 흔적도 없고, 외상도 하나밖에 없어서 저희 쪽에선 주변 인물에게 습격을 당한 것 같다고…….”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지만 나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거기까지만 듣고도 범인이 누군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최호성 본부장과 안면이 있고, 본부 안에서 작전 본부장을 대놓고 습격할 만한 미친놈.
게다가 총기를 사용해 단발에 심장을 노릴 수 있는 전문가.
‘황동휘 대리…….’
아니, 이젠 파트장이라고 해야 하나.
설마하니 이 정도로 미친놈이었을 줄이야.
‘내빼기 전에 나한테 본보기를 보여주려는 건가.’
습격도, 협박도 모두 실패했으니 최호성이라도 죽여서 경고하려고?
아니, 내게 이미 들킨 마당에 굳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
최대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게 그로서도 좋았을 테니까.
그런데도 굳이 이런 눈에 띄는 일을 벌였다는 건…….
‘설마 최호성한테 꼬리가 잡힌 건가.’
그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빌어먹을 새끼들…….
대범해지는 걸 넘어 도를 넘었네.
들킨 마당에 더는 눈치 볼 게 없다는 거겠지.
이를 으득 씹은 그때, 무전이 울렸다.
「선생님! 던전 소멸했어요!」
「강릉 지부 C-1 구역 잔존 몬스터 토벌 완료했습니다!」
「A-3 구역도 토벌 완료했습니다!」
「A-2, B-1… 전 구역 토벌 완료된 것 같습니다.」
「총 부상자 231명, 사망자는 제로입니다」
「작전 종료하겠습니다!」
작전 종료를 알리는 격양된 목소리.
아직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턱이 없는 이들은 순수한 기쁨에 환호성을 질러댔다.
하지만 난 기쁨을 만끽할 수 없었다.
큰 피해 없이 작전을 마무리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론 피해가 발생했으니까.
“작전 본부장이 본부 안에서 습격을 받다니…….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걸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퍽 씁쓸한 눈빛으로 본부 건물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