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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고급스러운 한식당, 프라이빗 룸.
음식이 나오기도 전부터 나와 이아영 실장은 그곳에 앉아 얌전히 대기 중이었다.
이아영 실장이 살짝 주위를 둘러보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
“제가 정치는 잘 모르는데…… 정훈 의원이면 꽤 거물 아니에요? 차기 유력 대선 후보라던데.”
“듣자 하니 그런 모양이더군요.”
“그런 사람이 왜 보자고 한 걸까요?”
“뭐, 그거야 뻔하지 않습니까.”
정부가 협회에 관심을 두고 있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 그 관심은 두 가지로 나뉜다.
편승, 혹은 견제.
독립 기구라고는 해도 국가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건 항상 적과 아군이 양립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협회는 언제나 숟가락을 얹으려는 자와 협회를 견제하려는 자가 늘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다.
그중 협회를 견제하려는 대표 주자가 바로 미래민주당, 정훈 의원이다.
“여당인 미래민주당이 호시탐탐 협회를 정부 산하 기구로 흡수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 이아영 실장의 눈이 허공을 향한다.
“협회가 내외적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으니 이 기회에 어떻게든 협회를 집어삼키려고 하는 거겠죠. 뭐 최근에 무슨 법안도 준비하고 있다지 않습니까.”
“그럼 저희랑은 대립 구도 아니에요? 더더욱 저희를 만나자고 할 이유가 없잖아요…….”
“원래 적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것만큼 든든한 게 없잖습니까. 이럴수록 지원군으로 두고 싶은 거겠죠.”
추측을 쏟아내고 있자니, 곧 양복 차림의 두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나와 이아영 실장은 벌떡 일어나 그들을 맞이했다.
“아이고, 처음 뵙겠습니다.”
중후한 분위기의 남성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음에도 단번에 그가 정훈 의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카르마 코퍼레이션 대표 김준우라고 합니다.”
짤막한 인사와 함께 정훈 의원과 동행한 젊은 남자를 흘낏 보았다.
남자는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한별 종합 상사 영업 본부장 하성태입니다.”
“……아 예, 처음 뵙겠습니다.”
한별 상사?
기업인이 이 자리에는 왜?
그런 의문이 떠오르기도 잠시, 정훈 의원이 먼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요청이었을 텐데 이렇게 자리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이런 좋은 곳에 언제 또 와보겠습니까.”
“하하하. 마음껏 드시지요. 여기 장어죽이 아주 괜찮습니다.”
꽤나 영양가 없는 대화만이 오고 갔다.
답답하군.
정치인들이 원체 속내를 안 비치는 놈들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결국, 참다못해 내가 먼저 물었다.
“그나저나 저를 만나자고 하신 건…….”
“음.”
정훈 의원은 역시나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한참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지금 협회가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확실히 그렇긴 합니다.”
“그래서 우리 당에선 현재 상황으로는 협회 홀로 작전을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토벌권 민간 관리 법안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내 눈썹이 꿈틀거렸다.
“일단 어떤 법안인지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자면…….”
“아뇨. 설명은 괜찮습니다. 대략 알고 있습니다.”
토벌권 민간 관리.
통칭 던전 민영화.
회귀 전에도 몇 번 언급되었던 법안이다. 물론 끝내 통과되진 못했지만.
국내에 출현하는 모든 던전의 토벌권을 기본적으로 정부가 관리하며, 일정 금액을 받고 토벌권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
이 법안에서 가장 중요한 건 토벌권을 매입할 수 있는 건 협회나 길드 같은 작전 세력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자체와 기업, 심지어는 일반 시민들까지 돈만 있다면 정부로부터 토벌권을 매입할 수 있게 된다.
여태까지 협회만이 가지고 있던 권한을 민간인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니 자연스레 협회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협회를 견제하고 있는 미래민주당에선 어떻게든 통과시키고 싶을 법안이겠지만…….
그걸 나한테 이야기하는 이유가 뭘까.
“대표님은 누가 뭐래도 협회의 아이콘 같은 분 아닙니까. 저희 편에 서주신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이해가 잘 안 가는군요. 이래 봬도 협회 출신에 작전 본부장까지 했던 놈입니다. 당연히 협회 편일 수밖에 없는 저에게 협회를 무너뜨리는 법안을 추진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건…….”
“이전엔 본부장이셨을지 몰라도 지금은 엄연한 사업가시죠.”
그때, 줄곧 잠자코 있던 하성태 영업 본부장이 대신 대답했다.
“……뭐, 그렇긴 합니다만.”
“게다가 이번 리젠 던전 때문에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많이 알고 계시는군요.”
“그 부분을 저희가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의도를 살피려고 눈을 가늘게 뜨자, 하성태 본부장은 기다렸다는 듯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법인 설립부터 투자자 모집, 또한 내부 경영도 저희 쪽에서 지원해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하하하…….”
나는 멋쩍게 웃으며 서류를 훑어보았다.
그러던 중, 이아영 실장이 먼저 의사를 내비쳤다.
“이걸 받는 대신 당신들 편에 서라는 건가요? 죄송하지만 대표님은 그런 거에 협회를 배신하실 분이…….”
“좋습니다.”
“……?”
“말씀해주신 제안은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뭐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말씀만 해주십시오.”
이아영 실장이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이걸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하늘은 간절한 자의 편이라고 했던가.
정말로 돈뭉치가 뚝 하고 떨어질 줄이야.
***
김준우가 돌아가고 난 직후.
정훈 의원은 후식으로 나온 차를 홀짝이며 입을 열었다.
“저렇게 순순히 받아들이니 오히려 당황스럽군.”
“사업하는 놈들이 다 그렇죠. 특히나 저런 스타트업 대표는 더더욱 그렇고요.”
하성태 본부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튼, 이야기가 잘 돼서 다행이야. 이걸로 한시름 덜 수 있겠어.”
“하하, 서로서로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의원님께선 김준우를 얻고, 저는 김준우의 회사를 갖고. 그리고… 김준우는 회사를 살리고.”
“하하하! 역시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비상하구먼!”
“과찬이십니다.”
정훈 의원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몇 번이고 해당 법안의 발의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번번이 기각.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청소부’를 찾았다.
국내 랭킹 1위의 프리랜서 헌터.
동시에 돈만 주면 뭐든 한다는 양민호를 말이다.
정훈 의원은 그에게 협회의 신뢰를 떨어뜨려달라는 의뢰를 던졌고, 결과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그쯤 되니 더는 밀어붙일 명분이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하늘이 도운 것인지 기회가 찾아왔다.
협회 테러, 작전 본부장 습격, 의문의 사고들까지.
여론은 이미 협회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해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민영화를 반대할 놈은 없다.
한 가지 변수가 있었다면 김준우.
협회는 안 믿어도 김준우는 믿는 놈들이 너무 많다.
만약에 그가 복귀하거나, 혹여 야당에 붙어버린다면 당연히 이쪽 입장은 불리해진다.
물론 그가 정말로 현재 협회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해결하든 못하든, 시민들이 그를 신뢰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협회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에게 협회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법안에 찬성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만…….
백기사의 등장으로 모든 상황이 역전되었다.
‘젊은 놈이 영악하기 그지없군.’
정훈 의원은 하성태 본부장을 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김준우를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건 실행뿐이었다.
“김준우 대표를 끌어들이긴 했어도 야당 쪽에선 여전히 거세게 반대할 겁니다. 어떻게든 협회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사람들이니.”
“이미 칼이 우리한테 넘어왔는데 그놈들이 뭘 어쩌겠나. 그 부분은 걱정 말게.”
정훈 의원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무튼… 이제부턴 내 역할이겠구먼.”
“그래서, 김준우에겐 뭐부터 부탁하실 겁니까?”
“크게 벌일 것도 없어. 그놈은 한마디만 해줘도 제값은 할 걸세.”
영향력이 큰 인물에게 부탁할 건 뻔했다.
“일단 기자 몇 명 불러서 인터뷰부터 진행하지.”
정훈 의원은 차를 목구멍에 털어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정훈 의원과 헤어지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차 안.
“그렇게 덜컥 수락하실 줄은 몰랐어요.”
운전대를 잡은 이아영 실장이 아까의 상황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쪽도 외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조건이 말도 안 되잖아요. 우리 살겠다고 협회를 버리겠다고요?”
“그럼 협회 살리자고 우리가 죽을까요?”
“그건 아니지만…….”
그녀가 입술을 잘근거렸다.
“사실 다른 것보다… 하필 한별 상사인 게 제일 불안해요. 거기 이래저래 악명 높잖아요. 다른 꿍꿍이가 있을지 누가 알아요.”
“뭐, 아닌 게 아니라 분명히 있을 겁니다.”
“……네?”
“다른 꿍꿍이 말입니다.”
하성태 본부장이 꽤나 파격적인 조건을 내밀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긴 했다.
물론 나를 끌어들인다면 정훈 의원에겐 분명한 이득이겠지만, 돈을 대주는 한별 상사 입장에선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법안 발의를 위해 정훈 의원을 푸쉬해 주는 거라고 하기엔 내민 조건이 너무 과하다.
과연 그러한 조건을 내걸 만큼, 그들이 이득 볼 수 있는 게 있을까.
‘뭐, 대충 추측은 되는데…….’
던전이 민영화되면 당연히 기업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너도나도 나서서 토벌 사업을 벌이겠지.
그렇기에 지금부터 작전 인원을 모집할 필요가 있다.
작전, 지원, 통제는 스카우트하든 뭘 하든 제값을 할 테니 그렇다 쳐도…… 문제는 청소팀이다.
스카우트하자니 아직까지 입지가 없고, 자체 신설을 하자니 아까운 팀.
그렇다면 차라리 만들어진 회사를 통째로 흡수하는 게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겠지.
우리한테 내민 조건도 그걸 위한 포석일 확률이 높고…….
게다가 전문가까지 파견해서 경영을 직접 도와주겠다고 하는 거로 봐선 확실하다고 봐야겠지.
“그걸 알면서도 수락한 거예요?!”
이아영 실장이 격양된 목소리로 다그쳤다.
뭘 그렇게 놀라는지 모르겠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게 뭔지 모르는 건가.
“어찌 됐건 돈이 필요한 건 맞지 않습니까. 법인 설립에 투자자까지 모아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죠.”
“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리고 무엇보다 사업 체질은 아니라고 당신이 그러지 않았습니까. 차라리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저희한테도 훨씬 나을 겁니다.”
“……그래도 뭔가 불안하네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허튼짓은 못 하게 할 거니까.”
이아영 실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나에게도 안전장치 정도는 있다.
당연하겠지만, 두 눈 시퍼렇게 뜬 채로 회사를 뺏길 생각은 없으니까.
하지만…… 뭐가 어찌 됐건 우리 숨통부터 트는 게 우선이다.
“협회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민영화가 되면 그쪽은 정말 텅 빈 껍데기가 될 텐데요.”
“그건 어디까지나 국내에서 이야기죠. 어차피 저희 목표는 해외 곳곳에 지부를 두는 거잖습니까.”
“……해외 인수 사업을 시작하면 국내 사정이야 상관없다는 거예요?”
“맞습니다. 국내 토벌권 정도야 얼마든지 넘겨줄 수 있죠.”
“……그렇게 생각하니까 또 그렇긴 하네요.”
그제야 수긍이 된 건지 이아영 실장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고작 인터뷰 한 번으로 값이 되는지 모르겠군요. 말 몇 마디에 수십 억대 지원을 거의 거저 받는 수준인데.”
“에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이 하는 말이잖아요. 지금 대한민국에서 당신이 하는 한마디가 협회 전체보다 영향력이 더 커요.”
“……대체 언제 그렇게 됐답니까?”
“몰라서 묻는 거예요, 아니면 겸손 떠는 거예요? 모르긴 몰라도 그 기사 나오면 아마 전 국민이 찬성할걸요?”
언제부터 우리나라 국민이 이렇게 말 잘 듣는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다.
뭐, 어쨌든 나야 말 한마디 하고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개이득이지만.
“아무튼, 한별 상사에서 내일부터 사람을 보낸다니까 미리 준비해둬요. 청소도 좀 해놓고.”
“그러죠.”
이아영 실장은 이내 깜깜한 도로를 막힘 없이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