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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116화 (116/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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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사무실.

약속대로 한별 상사에서 경영을 도와줄 사람이 파견되었다.

“한별 상사 기획조정실장 오재엽이라고 합니다. 당분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준우 대표입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희끄무레한 머리의 오재엽 실장은 꽤나 온화한 인상의 중년 남자였다.

“여긴 우리 직원들입니다. 이쪽은 행정팀 그리고 이쪽은 파견팀…… 아, 지금 3팀과 1팀은 파견 중이라 나중에 따로 소개하겠습니다.”

“아, 넵.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재엽 실장은 직원들을 향해 깍듯이 인사했다.

경계하던 직원들도 그 모습에 마음이 열렸는지 모두가 그를 환영해주었다.

한편 이아영 실장이 나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이거 저만 이해 안 가요? 무슨 기조실 실장이 경영 지원을 나와요?”

“그럼 설마 진짜 전문가를 보내겠습니까. 그냥 적당히 본인들 말대로 움직여줄 사람으로 앉혀두려는 거겠죠.”

“……그런 사람한테 맡겨도 되는 거예요?”

“저희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입니까.”

그렇게 소곤거리고 있자니, 한상혁이 손뼉을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이제야 좀 살아나겠네! 나 솔직히 여기 망하는 줄 알고 본부에 이력서 넣으려고 했다니까?”

그로선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의미였지만… 오재엽 실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재엽 실장은 그에게 다가가 명찰을 살폈다.

“한상혁 씨…?”

“넵!”

“아무리 대표님과 친분이 있다지만 공적인 자리에선 말씀을 높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아… 네 알겠습니다.”

흠칫하는 한상혁.

그 모습에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조차 포기한 한상혁을 한 번에 휘어잡다니…….

역시 기업 출신은 다르다 이건가?

생각보다 꽤 마음에 드는데…?

“한상혁 씨뿐만 아니라, 여기 계신 모든 분도 신경 써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선 각자 맡은 바 책무를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청소팀은 청소를, 관리자는 관리를 해야겠죠. 그 사이에는 어떤 사적인 관계도 개입돼선 안 됩니다.”

“네, 네…….”

“조직의 힘은 위계에서 나오고, 위계가 무너지면 조직은 힘을 잃습니다. 수평적 구조, 평등 조직, 다 말은 좋지만… 그건 결국 회사를 무너뜨리는 지름길입니다.”

“…….”

“그러니 앞으로 모든 직원분들은 김준우 대표님께 건의할 사항이나 보고드릴 게 있다면 저를 통해서 해주십시오.”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음성.

그 카리스마에 압도된 것인지, 사무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해졌다.

모두가 아무 말 못 하고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아, 한 가지 더.”

오재엽 실장이 손가락을 치켜들며 말했다.

“오늘부터 제때 퇴근하기는 힘드실 것 같습니다. 모두 참고해주십시오.”

“…….”

“…….”

그 모습에 꽤나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사업은 저렇게 하는 거라는 것을.

***

[위기의 협회, 이대로 괜찮은가?]

[‘이럴 때야말로 정부가 나서야 할 때’, 미래민주당 정훈 의원 ‘토벌권 민간 관리’ 법안 발의.]

[통칭 ‘던전 민영화’ 그 핵심은? ‘협회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

[金 전 작전 본부장 曰 ‘던전 민영화는 협회와 시민들 모두에게 있어 꼭 필요한 법안’ 단독 인터뷰.]

[여태까지 전국 모든 토벌권은 이능차원협회에서 독단적으로 관리해왔다. 물론 체계적인 토벌 시스템과 국내 최정상급 인력을 통해 문제없이 작전을 진행해왔지만, 큰 위기가 닥친 지금에서도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해선 전 작전 본부장이었던 나로서도 부정적이다.]

[만약 ‘토벌권 민간 관리’ 법안이 발의된다면 현재 협회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길드 및 프리랜서 헌터들 또한 보다 적극적인 활동이 가능해질 것이다.]

[토벌권을 매입할 수 있는 요건은 기업 및 개인 또한 가능하게 하여 경제 순환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행정본부 건물이 터져나간 후, 임시로 작전본부로 이전한 기획 본부장실.

“……이게 뭡니까?”

이두식 이사를 독대한 편창현 팀장이 물었다.

“뭐긴! 이때다 싶어서 미래민주당에서 협회 죽이기 들어간 거지!”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편 팀장이 당황스러운 건 정부의 입장이나 법안의 내용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김준우가 저런 발언을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왜 김준우 대표가 이 법안에 이런 인터뷰를 한 겁니까? 그분이 이런 법안에 절대 찬성할 리가 없는데…….”

편 팀장으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협회는 그야말로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건, 누구보다 김준우가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대체 왜?

“설마 미래민주당에서 로비라도 들어온 건…….”

“자넨 김준우 그놈이 그런 거에 먹힐 놈이라 생각하나?”

“……절대 아니죠.”

“어찌 됐든 지금 협회가 오늘내일하는 건 사실이야. 솔직히 우리끼리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지도 미지수고.”

“…….”

편 팀장은 말을 아꼈다.

무언의 동의였다.

협회 내외적으로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상황.

이두식 이사는 조금이나마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전국에 흩어졌던 주요 인사들을 다시금 불러 모았다.

그렇게 통제팀의 편창현 팀장, 작전팀의 김민주를 필두로, 한때 ‘드림팀’이라고 불렸던 이들이 다시 본부로 복귀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현 사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행정본부의 부재가 너무나도 컸다.

예산 편성이 어려워지니 무기 공급부터 시작해서 헌터 케어, 장비 지원 등 작전에 필요한 요소들이 줄줄이 멈추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 영향은 고스란히 작전팀에 집약되었다.

현재 협회는 작전 수행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놈은 진심으로 이게 협회를 살리는 길이라 생각한 거야. 자존심 챙기고 망하는 것보다 힘을 뺏겨도 살아남으라는 거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희랑 한마디 상의도 없이…….”

“상의했으면 우리가 찬성했겠나?”

이두식 이사가 쏘아붙이자 편 팀장이 입을 꾹 닫았다.

“딱 봐도 기를 쓰고 반대할 게 뻔하니까 독단으로라도 진행한 거 아니겠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이건 우리한테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누가 아니래나. 나도 같은 생각이네.”

협회가 힘드니까 이때다 싶어 별의별 놈들이 다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두식 이사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네도 알겠지만, 이 법안이 발의되면 우린 더는 힘을 못 쓰게 돼. 아랫놈들은 어떻게든 던전 하나 더 따내려고 토벌이 아니라 영업을 뛸 거고. 시벌… 이참에 작전팀이 아니라 아예 영업팀으로 이름을 바꿔야 하나.”

“그럼 이제 우린 어떡합니까?”

“어떡하긴 뭘 어떡해. 김준우 고놈이 붙어버리니까 기를 쓰고 반대하던 야당들도 이젠 안 되겠다 싶은지, 슬슬 눈치 보고 있는데.”

다시금 울려 퍼지는 깊은 한숨 소리.

“어쩔 수 없지. 배알은 꼴려도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우리야 따르는 수밖에.”

“…….”

“아무튼, 직원들한테도 잘 말해줘. 앞으론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것 같으니.”

“……알겠습니다.”

편 팀장은 여전히 탐탁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그로서도 마땅한 해결책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사무실을 나섰다.

이두식 이사는 편 팀장이 나서자 핸드폰을 들었다.

「예, 이사님」

이윽고 김준우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았다.

“여긴 어떻게든 됐다.”

「설득하기 어려우셨을 텐데, 감사합니다.」

“그거 알았으면 너 그 해외 지부 사업인가 뭔가 무조건 성공시켜. 이거 잘못되면 우리 진짜 싹 다 쪽박 찬다.”

「물론입니다.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바로 진행할 생각입니다.」

김준우에게서 연락이 온 건 어젯밤의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협회장 선출 건 때문에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김준우가 거기에 기름을 붓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국제 협회가 산하에 비밀 조직을 두고 본인들에게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암살하고 있다는 이야기.

PB 코퍼레이션에 대한 정보.

최호성 본부장 습격과 행정본부 테러의 진실.

황동휘 대리의 정체.

처음엔 이 새끼가 야밤에 술 처먹고 헛소리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이두식 이사는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헛소리라고 하기엔 여태껏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전부 설명되었다.

-그래서 전 기존 국제 협회를 무너뜨리고, 한국 협회를 제2의 국제 협회로 만들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말을 들었을 땐 차마 놀랄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또한, 김준우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설명했다.

바로 해외 지부 사업에 관한 이야기였다.

카르마 코퍼레이션이 이를 위한 비밀 산하 조직이었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이미 새하얗게 질린 머릿속에서 나온 말은, 왜 이제 와서 나에게 털어놓냐는 물음뿐이었다.

그에 대해 김준우는.

-이제 곧 있으면 협회장 자리에 앉으실 거 아닙니까. 최소한 그 자리에 계신 분은 알아야 할 이야기입니다.

쿨하게 답했다.

이 상황에 협회장 자리가 당연히 득보단 실이 많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스케일의 극비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는 걸 알았으면, 아마 후보에 출마하지 않았을 것이다.

‘쯧, 어쩐지 한창 잘나가고 있던 와중에 뜬금없이 퇴사하더라니……. 협회장님이랑 했던 비밀 이야기가 이거였구만.’

그래, 이 정도 스케일이면 비밀로 할 만하지.

오죽하면 지금도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았을 거라 후회하는 중이겠는가.

‘에휴, 모르겠다. 그놈이 헛소리할 놈도 아니고. 어떻게든 해주겠지.’

이두식 이사는 고개를 털며 걱정을 접기로 했다.

***

“역시 전문가는 다르군요.”

재무제표를 확인하던 나는 정말 오랜만에 화색을 띤 목소리로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오재엽 실장이 오자마자 일주일 만에 매출이 무려 30%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아직 정산하지 않은 계약까지 모두 합하면 50%는 족히 넘을 것 같았다.

“하, 이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습니다.”

“직원들 숨통은 막히는 거 같던데요.”

그때, 이아영 실장이 굉장히 날이 선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아침부터 왜 저리 저기압인가.

“왜 또 심술입니까. 상황도 꽤 좋아졌고, 특별한 문제 없이 잘 되고 있지 않습니까.”

“잘 되고 있죠. 수치만 보면요.”

그럼 다른 부분은 잘 안 되고 있다는 건가?

“일주일 동안 직원들 평균 퇴근 시간이 새벽 4시에요. 한 팀이 하루에 작업하는 던전은 7개가 넘고요. 예전 본부 청소팀도 이렇게까진 안 했어요.”

“…….”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

“그런데 뭐… 딱히 다들 아무 말 없잖습니까. 괜찮겠죠.”

“참고 있는 거예요. 당신 회사라서.”

“에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 씨 남매가 그럴 성격은 아니잖습니까. 불만이 있으면 그 녀석들이 이야기해줄 겁니다.”

“글쎄요. 전 잘 모르겠네요…….”

이아영 실장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오재엽 실장은 언제까지 데리고 있을 거예요?”

“글쎄요. 그래도 최소한 한 달은 데리고 있어야지 않겠습니까.”

“한 달이라……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직원들 말입니까?”

“아뇨. 회사가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기에 대답을 아꼈다.

하지만 이아영 실장은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재엽 실장이 거의 모든 업무에 개입하고 있어요. 솔직히 이젠 누가 대표인지 모를 정도로요. 무엇보다 여기저기서 투자자들 끌어오는 것도 심상치 않고요.”

“…….”

“그 투자자들이 죄다 한별 그룹 계열사들인 건 알고 있죠? 이거 자칫하다가 당신 해임당하고 회사 통째로 넘어갈 수도 있어요.”

진심으로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어째 회사가 수익 악화로 망하기 직전일 때보다 심각하다.

“뭐, 너무 걱정 마시죠.”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한별 그룹 지분이 과반이라도 넘으면…….”

“이아영 씨.”

그녀의 말을 자르며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설마 눈 뜨고 당할 놈으로 보이십니까?”

“…….”

이아영 실장은 그제야 입을 꾹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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