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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137화 (137/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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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사무실에 깊은 한숨만이 울려 퍼졌다.

직접 두 발로 뛰어다니며 고생한 결과가 암담하기 그지없었기에, 퍽 마음이 착잡했다.

“설마하니 다 거절할 줄이야…….”

“그러게요. 뭐, GT 던전 눈치를 안 볼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모두 거절할 줄은 몰랐어요.”

이아영 이사 또한 당혹스럽다는 반응이었다.

전국 거의 모든 부산물 처리 시설과 컨택을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론 모두 거절.

대부분이 현재 상황으로선 우리 수주까지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쯧, GT 던전이 어디가 그렇게 이쁘다고…….’

물론 그들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을이 쉽사리 독자적인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이미 내가 청소부로 협회 내에서 숱하게 당해왔던 거기도 하고.

하지만 한편으론 그렇기에 왜 그들은 현상 유지를 선택하는 건가 의문이다.

부당한 게 확실하고,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이참에 바꿔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는가.

못마땅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굳이 GT 던전과 카르마 코퍼레이션을 비교하자면, 시가총액 외엔 모든 면에서 우리가 훨씬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거기다 한별 그룹과 동맹도 맺었고, 협회와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으니 당연히 우리를 선택해줄 줄 알았는데…….

안일했다.

생각보다 GT 던전의 눈치를 심하게 보고 있다.

“애초에 시설들이 원청 기업에 대한 불신이 기본적으로 높아서, 우리나 GT 던전이나 별반 다를 거 없는 놈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아영 이사가 첨언했다.

“뭐, 이해는 갑니다. 괜히 미디어에서 떠는 것만 믿고 도박을 할 순 없겠죠. 둘 다 계약이 가능하다면 모를까, 양자택일해야 한다면 더욱이 안정적인 걸 선택할 수밖에 없고요.”

“……그렇게까지 알고 있었으면서 거절할 줄은 몰랐다고요?”

“예.”

아무리 안정을 생각한다고 해도… 이미 흘러나온 정보들이 있지 않은가.

중앙아프리카 대규모 지부 인수.

프렉탈을 비롯한 최고급 부산물 납품 계약 체결.

한별 그룹과 한국 협회 그리고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동맹.

“아무리 하청 업체여도 최소한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시점에 어디에 붙어야 할지 정도는 과감하게 판단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

“근데 뭐, 제가 과대평가했나 보군요.”

냉정한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이아영 이사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럴 여유가 없는 거예요.”

“예?”

“시설 상황, 당신도 잘 알잖아요. 당장 납품 기한 맞추기도 바쁜데 그런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겠어요.”

“…….”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꽤나 정곡을 찔렀다.

“……경솔했군요.”

“그럴 수도 있죠. 뭐, 그런 것보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부터 고민해봐요.”

이아영 이사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물론 우리도 몇 군데 시설과는 이미 계약이 되어 있다.

우리 또한 나름 민간 토벌 기업인 만큼, 당연히 사체를 처리할 루트는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앞으로 만들어질 연구소 규모를 고려해본다면 그 몇 군데로는 공급을 충족시킬 수 없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계약을 따내야 하는데…….

다들 GT 던전이 더 안전빵이라고 생각하는 이상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앞으로의 토벌 시장 동태를 설명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곤란하게 됐네.

“그나저나 연구소 착공일은 언제입니까?”

“한별 건설에서 벌써 준비는 마쳤대요. 빠르면 이번 달 안에 공사 들어갈 거라던데요.”

“최소한 그 안엔 계약을 따내야겠군요.”

“가능하겠어요?”

“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지금부터 생각해봐야죠.”

“…….”

“너무 걱정 마시죠.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표정 봐라.

이젠 아주 대놓고 미심쩍어하네.

뭐, 나 또한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애초에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많지 않다.

하루아침에 인식이 바뀔 리도 없고…….

GT 던전에서 뻘짓을 하지 않는 이상 계약을 따낼 방법은…….

따르릉―.

“음?”

때마침 울리는 전화.

하성일 사장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예, 하 사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대표님! 지금 GT 던전에서 시설들의 부산물 납품 일정을 엄청 앞당기고 있답니다.」

……?

갑자기 뭐라는 거야.

“……그런데요?”

「아마 저희 쪽 계획을 눈치채고, 연구소가 세워지기 전에 국내 부산물을 독점하려는 움직임 같습니다.」

저쪽에서 먼저 움직인 건가.

「이건 좀 문제가 큽니다. 가뜩이나 국내 토벌 시장은 GT 던전이 좀 더 우세한 상황이라, 토벌되는 던전 양도 상당하고요. 이렇게 되면 아마 이번 달 안으로 국내 부산물 80%는 GT 던전으로 들어갈 겁니다.」

“……연구소가 완공되기 전에 어떻게든 우리를 견제하려는 거군요.”

「맞습니다. 아니면 후에 독점한 부산물을 몇 배나 부풀려서 되팔려고 하는 걸 수도 있고요.」

어느 쪽이건 달가운 소식은 아니군.

“그런데 시설들은 군소리 없이 그걸 받아들였답니까? 그쪽 상황으로 봐선 무턱대고 일정을 당긴다고 소화할 수 있을 양이 아닐 텐데요, 반발은 없었습니까?”

「뭐… 그들로선 도리가 없을 테니까요. 머리를 꽤 잘 썼습니다.」

“……글쎄요.”

먼저 과감하게 움직인 건 칭찬해주겠는데 말이지…….

“제가 볼 땐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 같군요.”

「……예?」

“일단 기다려봅시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황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무래도 하늘이 우릴 도우려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GT 던전은 우리를 견제할 생각에 혈안이 된 나머지 중요한 걸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토벌 사이클은 어느 한 곳을 쪼아댄다고 효율이 올라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수록 역효과만 난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비핵심 팀이라 할지라도, 어느 한 곳이 삐거덕거리기 시작하면 반드시 전체가 무너져 내린다.

‘나도 회귀 전엔 한 번도 고려해본 적 없는 사항이긴 한데.’

청소부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그 짧은 시간 동안, 몇 번이고 경험하지 않았던가.

이건 우리에게 기회다.

“방법이 좀 생겼어요?”

이아영 이사가 내 표정을 읽은 건지, 대뜸 물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뭘 하면 돼요?”

“일단… 이번 분기 예산 좀 털어서 국내 던전 매입 좀 합시다.”

“얼마나요?”

“가능한 한 많이.”

알아들었다는 듯 그녀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리고 김민주 팀장이랑 한유빈 팀장한테도 연락 좀 부탁합니다.”

“그쪽은 왜요?”

“간만에 합을 맞출 기회가 생길 것 같아서요.”

이미 내 머릿속에서 몇 가지 그림들이 빠르게 스쳐 가고 있었다.

***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강한 물류 안에서 때아닌 고성이 터졌다.

“일주일 치 양을 던져 놓고 모레까지 맞추라뇨! 이렇게 일하다간 누구 한 명 죽습니다!”

최 반장이 GT 던전에서 날아든 통보를 확인하곤 곧바로 대표 사무실로 찾아가 항의했다.

하지만 정작 곽 대표도 곤란하긴 매한가지였다.

“나도 몇 번이나 안 된다고 했는데… 끝까지 밀어붙이더라. 어쩌겠어, 시벌. 원청이 하라는 대로 해야지.”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이럴 바엔 차라리 계약 해지하고 카르마 코퍼레이션에 붙는 게 낫죠!”

“하아…….”

곽 대표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대체 어디까지 달래줘야 하나 싶었다.

이러라고 반장 달아준 것도 아닌데.

“어차피 일정 조율 통보, 우리한테만 온 것도 아니야. GT 던전이랑 계약된 시설들은 전부 같은 상황이라더라.”

“……그래서요.”

최 반장의 목소리가 점점 날카로워졌다.

그에 맞춰 곽 대표의 인내심도 슬슬 한계에 도달했다.

“그래서 뭐 어쩌자는 겁니까? 뭐, 다 힘드니까 참고 해라 이겁니까?”

“마음에 안 드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말조심해라. 그리고, 그렇게까지 역정 부릴 일이야? 일정 당긴 만큼 돈도 더 준다잖아.”

“참 나, 그 돈을 저희가 받습니까?”

“……뭐?”

그 순간 곽 대표의 표정이 크게 요동쳤다.

“어차피 월급쟁이 신세, 상여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센티브가 붙는 것도 아닌데, 계약금으로 얼마를 받든 제가 알 바 아닙니다.”

“야! 너 지금 말 다 했냐?”

“예, 다 했습니다.”

최 반장이 그 자리에서 작업복을 벗어 던졌다.

“그동안 강 상무, 그 개새끼 눈 밖에 날까 봐 어떻게든 애들 다독여가면서 작업했는데… 이젠 일 시키는 것도 미안해서 못 하겠습니다.”

“너, 너 인마…!”

“저희요, 하루 종일 몬스터 사체 만지고 한 달에 꼴랑 180 받아 갑니다. 근데 그중에 반이 병원비로 나가요. 눈병이고 피부병이고 안 걸린 놈들이 없습니다.”

“…….”

“우리 사정, 조금이라도 생각하셨으면 그 요청 어떻게든 거절하셨을 겁니다.”

최 반장은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이 등을 돌렸다.

곽 대표는 끝내 그를 붙잡지 못했다.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건, 비단 강안 물류뿐만이 아니었다.

경북, 경주의 편백 부산물 처리 시설.

전남 목포의 빅토리.

강원, 원주의 하이테크 및 기타 등등…….

이외에도 총 42개 시설에서 GT 던전에서 일방적인 일정 조율 통보가 내려온 후 일주일 만에, 총 171명의 직원이 파업을 선언하거나 퇴사를 신청했다.

***

“부, 부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GT 던전 부사장실에 강 상무가 급히 방문했다.

“뭐야. 무슨 일인데?”

“시설에 인원이 모자라서, 납품 일정을 도저히 맞출 수가 없답니다.”

“뭐?! 어디 시설이?”

“……저희랑 계약된 모든 시설이 같은 상황입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고 부사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뭐 사고라도 났어?! 인원이 왜 갑자기 모자라!”

“그, 그게… 일정 조율에 반발한 직원들이 대거 이탈했다고…….”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고택수 부사장의 눈썹이 마구 요동쳤다.

원청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하청의 역할이지 않은가.

근데 그걸 못 참고 나가버린다고?

그것도 한두 곳도 아니고 전국 시설에서?

‘이게 대체 무슨…….’

납득하기 어려워 황망한 표정도 잠시, 아쉽게도 나쁜 소식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부, 부사장님!”

GT 던전 소속의 작전 A팀장, 금혁수 또한 다급하게 그를 찾았다.

“토벌을 잠시 중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뭐? 토벌은 또 왜?”

“몬스터 사체를 처리할 수가 없어요. 지금 임시방편으로 창고에 쌓아두고 있긴 한데, 부피도 그렇고, 부패가 너무 심해서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으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굉장히 크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때.

“저, 부사장님…….”

마지막으로 비서실장이 쐐기를 박는 소식을 전달했다.

“카르마 코퍼레이션에서 이번 달 국내 출현 던전…… 70%를 매입했다고 합니다.”

“…….”

휘청하는 틈을 타서 치고 올라오겠다는 건가.

하지만 부사장은 그 상황을 조금 다르게 해석했다.

“이건 차라리 잘 됐어.”

“……네?”

“지금 전국 부산물 처리 시설이 작동을 멈췄는데, 그놈들이라고 그 많은 양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아?”

“…….”

“이때다 싶어서 멋모르고 매입한 것 같은데, 시설들이 멈춘 이상 그놈들도 사체 처리는 불가능해.”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멋모르는 말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GT 던전과 카르마 코퍼레이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하나의 선택지가 사라졌다.

이제부턴 시설들이 누구 편에 설지는 너무도 뻔한 일이었다.

***

“예, 카르마 코퍼레이션 김준우 대표입니다.”

“아, 예예. 어떻게…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럼 저희야 감사하죠. 일정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 달 안에만 해주시면 되니.”

“예예, 부디 안전하게만 작업해주십시오.”

“네, 그럼…….”

전화를 끊곤 이아영 이사를 향해 물었다.

“이걸로 몇 개나 붙었습니까?”

“편백, 빅토리, 골리앗, 금화… 그리고 강안 등등. 총 19개 시설과 가계약 체결했어요.”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이제 맘 놓고 토벌이나 해봅시다.”

“민주 씨랑 유빈 씨도 대기 중이에요. 일단 기획은 두 팀 메인으로 잡고…….”

“아뇨. 세 팀이 필요합니다.”

“……네?”

“저도 참가할 거니까.”

어깨를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로 오랜만의 현장이다.

옛 기분 좀 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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