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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회에 참석하느라 또다시 벌어진 격차를 메우기 위해, 한창 토벌에 열을 올리고 있던 그때였다.
「김 대표님, 하성일입니다.」
하 사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하 사장님. 웬일이십니까?”
「그… 이번 협의회에서 법무팀 지원을 재고하겠다고 하셨다는데, 진짭니까?」
벌써 거기까지 소식이 들어간 건가.
빠르기도 하군.
“맞습니다. 물론 강상우 상무가 일주일 동안 시설에서 일해 보고, 그 뒤로도 고소를 취하할 생각이 없다면요.”
「스읍… 괜찮겠습니까?」
그가 미심쩍은 목소리를 냈다.
「강 상무 성격을 보면 일주일 일 한다고 생각이 바뀔 사람은 아닙니다. 일주일 후에도 고소 취하는 절대 안 해줄 텐데요.」
“뭐,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네?」
말꼬리가 크게 올라간다.
「그럼 왜 그런 합의안을 제안하신 겁니까? 법무팀 지원도 철회하면 법정 싸움에서 하청이 이길 리가 없잖습니까.」
“그렇겠죠. 결과적으로는 위약금을 물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엔 영업 정지 처분까지 받을 수도 있겠죠.”
그렇게 되면 연구소가 완공되기 전까지 국내 부산물을 미리 납품받아 놓는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이후로도 어려울 거고.
그리고 강 상무의 성격상 고소 여부는 이미 정해둔 상태일 것이다.
일주일 동안 시설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던 그는 고소를 취하할 생각은 절대 없겠지.
하지만.
“협의안에는 분명히 일주일 동안 일을 해본 뒤에 결정을 내리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요?」
“그 말은 고소를 취하하든 진행하든, 어떤 결정을 내리려면 최소한 일주일은 무조건 버텨야 한다는 소립니다.”
그렇다.
GT 던전이 결정권을 가지기 위해선 최소 조건인, 일주일 근무를 만족해야 한다.
만약 그 전에 떨어져 나간다면 자동적으로 결정권은 소멸, 더 이상의 고소는 진행할 수 없다.
처음부터 그걸 노린 제안이었지만, 어째 하 사장은 여전히 미심쩍은 듯한 반응이었다.
「에이… 그래도 일주일은 버티겠죠. 강 상무가 보기엔 그래도 뒷배도 없이 GT 그룹 임원까지 올라온 놈입니다. 꽤 독종이에요.」
“글쎄요.”
사람 일이란 닥쳐보지 않고는 모르는 법이다.
“아무리 독종이라고 해도, 여태까지 목숨 내놓고 일한 적은 없을 거 아닙니까.”
「죽을 만큼 열심히 하긴 했겠죠.」
“아뇨 제 말은… 진짜 죽을지도 모르는 일 말입니다.”
「…….」
하 사장의 대답이 끊겼다.
「설마… 죽일 생각은 아니시죠…?」
“하하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죽이긴 왜 죽이겠는가. 뭐 얼마나 큰 잘못을 했다고.
물론…… 정말로 죽어버리면 어쩔 수 없겠지만.
***
“상무님! 아직도 다 안 됐습니까!”
강안 물류.
방금 들어온 파충류형 몬스터, ‘헬리게이터’ 분해 작업에 한창이던 그때 최 반장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일찍이 사표를 던지고 시설을 나간 그였지만, 곽 대표의 끈질긴 설득에 못 이겨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 어떤 설득보다 ‘강 상무가 일주일 동안 근무하러 온다’라는 한 마디에 반응한 것이긴 했지만.
“재촉하지 마십쇼! 하고 있는 거 안 보입니까?!”
“무슨 이빨 뽑는데 하루 웬종일 걸리십니까?”
“이거 독 있다면서?! 서두르다가 찔리면 어떡합니까?”
“장갑 제대로 끼고 있으면 절대 찔릴 리 없으니까 걱정 말고 하십쇼.”
“아니, 그게 무슨…….”
강 상무는 기가 차다는 반응이었다.
근무 첫날째.
출근하자마자 강 상무가 맡게 된 업무는, 헬리게이터의 이빨을 모두 분해하는 것이었다.
언뜻 보면 그리 어려울 게 없는 작업.
하지만 헬리게이터의 이빨은 그 개수만 족히 수백 개에 달했다. 무엇보다 이미 목숨이 끊겼음에도 이빨 하나하나가 여전히 치명적인 독을 내뿜고 있었다.
자칫 손에 찔리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는 작업.
하지만 최 반장은 그런 사정 따위, 일일이 봐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무튼, 10분 내로 완료해주십시오. 다른 공정 늦어집니다.”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최 반장님이 책임지실 겁니까?”
“…무슨 소리십니까!”
최 반장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강 상무님도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사고가 나는 한이 있더라도 납품 기한은 맞추라고.”
“…….”
강상우 상무의 표정이 바싹 굳었다.
“지금 나 맥이려고 일부러 이러시는 겁니까?”
“……뭐라고요?”
“설마 내가 지금 여기 있다고 진짜 최 반장님 부하 직원인 줄 아는 건 아니죠? 그동안 좀 섭섭하게 굴었다고 이렇게 나오는 건 좀 유치하시네.”
“아, 그러니까 강 상무님 말씀은… 제가 강 상무님 맥이려고 일부러 더 빡세게 굴리고 있다, 이 말입니까?”
“그럼 아닙니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습니까. 무슨 독니를 10분 만에 뽑으라고 하질 않나. 순 억지지 이건.”
그 순간, 주변에서 쿡쿡거리는 웃음소리들이 들려왔다.
강 상무가 눈을 부릅뜨고 주변으로 시선을 옮기자, 대화를 엿듣고 있던 직원들이 부리나케 고개를 돌렸다.
“강 상무님이 이쪽 바닥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그때, 최 반장이 입을 열었다.
“저희 원래 이렇게 일합니다. 억지는 제가 부리는 게 아니라, 그동안 그쪽이 부렸던 거겠죠.”
대답을 들을 틈도 없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거, 카르마 코퍼레이션 쪽에서 밑 작업을 해줘서 그나마 할 게 없는 겁니다.”
최 반장은 그 말을 끝으로 잔말 말고 일이나 하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등을 돌렸다.
‘저 새끼가 진짜…….’
강 상무는 이를 으득 씹었다.
며칠 전만 해도 찍소리도 못하던 놈이 이젠 아주 눈에 뵈는 게 없나 보군.
강 상무는 다시 GT 던전에 복귀하면 저 새끼부터 날려버리리라 다짐했다.
‘일단 그건 둘째치고…….’
강 상무의 시선이 다시금 헬리게이터의 사체로 향했다.
찔리는 순간 바로 비명횡사할지도 모르는 사체를 10분 만에 처리하라니.
이게 억지가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그리고 뭐?
본인들은 원래 이렇게 일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대체 어느 인간이 쥐꼬리만 한 월급 받으며 정말 죽을지도 모르는 일을 한단 말인가.
‘시발 때려치울 수도 없고…….’
이내 해체용 나이프를 들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GT 던전이 결정권을 가지기 위해선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서 일주일을 버텨야 한다는 걸.
무엇보다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되면, 이번에 추진 중인 GT 던전 부산 지부를 맡기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아무리 X 같아도 무조건 버텨야 한다.
‘그래, 시발… 못할 게 뭐 있어.’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곤 다시 작업에 착수했다.
조금이라도 상처가 나면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
그 생각에 강 상무는 그 어느 때보다 바짝 긴장한 채로 최대한 집중을 이어갔다.
그렇게 한 30분쯤 지났을까.
‘…다 했다.’
겨우 모든 이빨을 분해했다.
최 반장이 말한 시간에서 세 배나 더 걸렸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최대인걸.
이내 긴장이 풀리자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갔지만…….
“뭐 하고 있습니까! 다음 작업 안 하세요?!”
“……?”
쉴 틈도 없다는 듯, 강 상무 앞에 다른 몬스터가 들어왔다.
“……바로 이어서 하라고요?”
“네. 안 그럼 시간 못 맞춥니다.”
최 반장이 즉답했다.
“……오늘 몇 개나 더 해야 합니까?”
강 상무의 질문에 최 반장이 손가락을 차례로 접는다.
“8구요. 오늘은 좀 적은 편이군요.”
“…….”
이 짓을 여덟 번이나 더 해야 한다고?
강 상무의 황망한 시선이 방금 들어온 거대한 애벌레형 몬스터에 고정됐다.
이미 다른 직원들은 곧바로 분해 작업에 착수했다. 마치 머릿속에 작업 외에 다른 생각은 없다는 것처럼.
‘쯧…….’
어쩔 수 없지.
강 상무는 다시금 해체용 나이프를 쥐었다. 그렇게 몬스터를 향해 다가가던 그때였다.
그르르르―.
“어, 어…? 이거 왜 이래?”
몬스터가 갑자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안에 가스가 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몬스터, 체액이 강한 산성이라 터지면 다 위험합니다!”
“빌어먹을… 일단 호스 연결해서 압력부터 낮춰!”
“아, 안 됩니다! 너무 빠르게 팽창하고 있어요!!”
그르르르―.
손 쓸 틈도 없이 팽창하는 몬스터.
결국, 최 반장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안 되겠다! 피해!!”
“3단계 상황 발생! 모두 대피해!”
“장비 챙기지 말고 다 밖으로 나가!”
이윽고 평소 훈련했던 대로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대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한 명은 그러지 못했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당혹감에 판단력이 흐려진 건지, 강 상무 홀로 그 자리에 바싹 얼어있었다.
“강 상무님! 뭐합니까!!”
“빨리 피하라고요!”
이미 그에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거대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사체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런 시발…!”
밖으로 대피하던 최 반장이 다시 안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
GT 던전, 본사.
부사장실.
“……그리고 오늘 오후에 한별 건설에서 연구소 착공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비서실장이 고택수 부사장에게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고했다.
동시에 고 부사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벌써? 아니 뭐, 동네 구멍가게 짓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빨리 들어갔다고?”
“저쪽에서도 워낙 이를 간 사업이라……. 완공도 빠르면 두 달 안에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쯧…….”
고 부사장은 꽤나 아니꼽다는 표정이었다.
하청 업체 건도 제대로 마무리가 안 됐는데, 벌써 착공에 들어가다니.
게다가 두 달 안에 완공이라면 더욱 시간이 없다.
만약 완공되기 전까지 이번 일을 어떻게든 해결하지 못하면, 국내 부산물은 죄다 카르마 코퍼레이션 쪽으로 넘어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여태까지 국내 토벌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했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청 업체 고소를 진행해야 한다.
사전에 하청 업체들로 하여금 강제적으로 본인들과의 계약을 이행하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
“강 상무, 그놈 일주일에 우리 회사 존망이 걸려 있군.”
“상무님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래야지.”
그래, 그놈이 어떤 놈인데.
그 흔한 연줄 하나 없이 악바리로 임원까지 올라온 놈이 아닌가.
그깟 하청 일 따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부, 부사장님!”
그때 한 직원이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강안 물류에서 사고가 났답니다!”
“사고…?”
“네, 네. 작업 중이던 몬스터 사체가 폭발했다던데…… 피해가 꽤 큰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현장에 강상우 상무도 있었다나 봅니다.”
“……뭐?”
직원은 꽤나 심각한 표정이었지만, 고 부사장은 퍽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강 상무가 다친 건가?”
“아, 아뇨. 다치진 않으셨는데…….”
직원은 잠시 망설이던 끝에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꽤 충격을 받으셨는지, 도저히 못 하겠다고…….”
“……?”
이런 시발.
“이제 어떻게 합니까……?”
고 부사장이라고 쉽게 대답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고작 사고 한 번에 회사 존망이 달린 일을 엎는다고?
미치지 않고서야 그게 말이나 되는가.
‘시발, 다 된 일에 재를 처뿌리고 앉았네.’
자연스레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잠시, 이내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 상무, GT 축산으로 보내버려. 강원도 지부에 자리 하나 만들어서.”
“…알겠습니다.”
“그리고…….”
결정을 내리기까지 한참을 망설였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협의 무시하고 고소 진행해.”
회사를 위해서라면 그깟 약속이 뭐가 대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