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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뒤늦게 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에 방문했다.
이미 하루가 지난 후라 다른 직원들은 보이지 않았고, 최 반장을 비롯한 관계자와 소방대원들 몇 명이 뒷수습을 하는 중이었다.
“애벌레형 몬스터 내부에 가스가 차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갑자기 팽창하더니 폭발해버려서…….”
최용구 반장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사실 오기 전에 대강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직접 와서 보니 사태가 더욱 심각해 보였다.
시설은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내부는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설비가 대부분 흔적도 알아보기 힘들 만큼 녹아내렸고, 사방에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했다.
‘강철까지 녹여버리는 체액이 시설 한복판에서 터졌으니…….’
본부 지원팀이 터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런 일이…….
재수가 없으려니 참.
착잡한 마음을 달래며 상황을 확인했다.
“다친 사람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매달 대피 훈련을 해왔거든요.”
“그나마 다행이군요.”
“저 그런데…….”
최 반장이 우물쭈물하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강상우 상무가 사고 이후로 연락이 안 됩니다. 사고가 사고였던 터라 아무래도 충격을 먹고 잠수를 탄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안타까운 사고 가운데 달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사고 현장에서 티를 낼 순 없었다.
애써 담담히 말을 이었다.
“어쨌든 약속한 일주일을 못 버티고 나갔으니, 고소는 취하하겠군요. 사고 때문에 상심이 크시겠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
“아뇨.”
그때, 이제 막 현장에 도착한 이아영 이사가 대뜸 초를 쳤다.
“…뭐가 아닙니까?”
“GT 던전에서 하청 업체 고소, 진행했어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협의한 대로라면 당연히 취하해야…….”
그 순간,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기분에 말끝이 흐려졌다.
일주일을 못 버티고 도망쳤는데, 고소를 한다?
이건 한 가지로밖에 설명할 수 없지 않은가.
그냥 대놓고 뒤통수를 치겠다는 소리다.
‘이 새끼들 봐라…….’
나도 모르게 이가 으득 씹혔다.
“설마 강 상무 쪽에서 벌인 겁니까?”
“그건 아닐 거예요. 알아보니까, 어제부로 GT 축산 강원도 지부로 발령 났거든요.”
“그럼 그놈보다 윗선에서 결정한 일이겠군요.”
“그럴 거예요. 아마…… 고택수 부사장이 아닐까 싶네요.”
정말 이렇게 나오자는 건가.
이쪽에서 편법을 쓰긴 했지만, 원하는 대로 안 된다고 판은 엎어?
“어이가 없군요. 그래도 나름 대기업 계열사니까 최소한의 신뢰는 지킬 줄 알았는데…….”
“뭐, 그쪽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테니까요. 회사 존망이 달린 일이니, GT 던전도 선택지가 없었겠죠.”
“하아…….”
물론 그놈들이 뒤통수를 칠 거라는 걸 예상 못 한 건 아니다만……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뻔뻔하게 나올 줄이야.
예기치 못한 사고가 터지질 않나, 강 상무는 한 큐에 좌천을 가질 않나, GT 던전은 협의 따위 쌩 까고 고소를 진행하질 않나.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군.
“저, 대표님…….”
내가 잠시 녹아버린 시설을 보고 있자니, 최 반장이 다시 조심스레 불렀다.
“말씀하십쇼.”
“아무래도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일정에는 못 맞출 것 같습니다. 장비도 다 망가져서……. 그리고 무엇보다 카르마 코퍼레이션에서 맡긴 몬스터 사체랑 부산물까지 다 녹아내렸습니다.”
“…….”
“그, 그래도 너무 걱정 마시죠. 그 부분은 저희가 어떻게든 배상을…….”
“신경 쓰지 마십시오.”
“……네?”
“일정이고 배상이고 딱히 상관없으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고요.”
최 반장은 어째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아영 이사 또한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목소리를 높였다.
“자, 잠깐만요! 어떻게 상관이 없어요?! 여기 맡긴 부산물 다 합치면 액수가 얼만데?!”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떡하겠습니까. 손익 따진다고 녹아내린 부산물이 다시 원상 복구되는 것도 아닌데.”
시설이 이렇게 된 이상 보상을 받더라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애초에 그깟 부산물, 좀 모자라면 어떻고 늦으면 어떻습니까. 작업할 사람들만 멀쩡하면 되죠. 뭐, 장비야 새로 사면 그만이고.”
어차피 중요한 건 연구소 완공 이후에 지속적으로 부산물을 납품받는 거다.
지금 당장 작업이 늦어진다고 해도 크게 상관은 없다.
“……그러네요. 당신 말이 맞아요.”
조금 당황한 듯했던 이아영 이사도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지금은 대놓고 뒤통수를 친 GT 던전 놈들을 어떻게 할지부터 생각해봅시다. 이대로라면 전국 부산물 처리 시설들이 GT 던전과의 계약을 강제 이행하게 될 겁니다.”
“……법무팀, 지원해줘야겠죠?”
“글쎄요, 잘 모르겠군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렇게까지 뻔뻔하게 나오는 걸 보면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했다는 걸 텐데, 그만큼 법정 싸움에 자신이 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아영 이사의 표정이 퍽 어두워졌다.
그래, 나도 그 부분이 걱정이다.
다른 건 몰라도 법정 싸움은 내 멋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솔직히 이길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지고 이기고를 떠나서 시간만 끌어도 저쪽이 무조건 이기는 싸움입니다.”
짧아야 1년, 길면 5년 이상 이어질지도 모른다.
당연히 그 기간 동안 시설이 제대로 가동될 리 없다.
연구소가 완공되어도 부산물 독점은 고사하고 처리 자체도 힘들어질지 모른다.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시간은 안 된다.
내게 남은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히든 스킬 : 업보]
[제한 시간 : 약 3년 11개월]
대략 4년 정도.
그 안에 한국 협회를 키워서 국제 협회를 잡아먹은 후 사무총장까지 달아야 한다.
추후 해야 할 다른 작업까지 생각하면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떻게든 이 일을 빠르게 마무리 지어야 한다.
물론 문제없이 깔끔하게.
“조금 더 확실하고 빠른 방법으로 가보죠.”
“…그게 뭔데요?”
“감성팔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저쪽이 흙탕물 싸움으로 갔으니, 우리라고 신사답게 해줄 필요는 없겠지.
“우리도 아군을 좀 모아봅시다.”
기업은 법보다 이미지를 더 무서워한다고 했던가.
설마 내 뒤통수를 치고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
“우리 이제 어떻게 합니까…?”
김 대표 일행이 돌아가고 난 후, 최용구 반장은 곽철수 대표를 만나 의견을 물었다.
곽 대표는 꽤나 복잡한 표정이었다.
협의회까지 열렸고, 강 상무도 도중에 도망을 쳤으니 이젠 정말 해결됐다고 생각했는데…….
설마하니 협의를 무시하고 고소를 진행할 줄이야.
“나도 모르겠다…….”
그냥 처음부터 GT 던전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나,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후회할 시간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하청 업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건 한정돼 있다.
‘결국 GT 던전에 고개를 숙이냐, 아니면 문 닫는 한이 있더라도 카르마 코퍼레이션이랑 가느냐인데…….’
곽 대표는 그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최 반장을 향해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뭐가 말입니까?”
“카르마 코퍼레이션 말이야.”
곽 대표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해졌다.
“우리가 그쪽을 믿으면, 그쪽도 끝까지 우리를 도와줄 것 같아?”
“…….”
최 반장은 잠시 대답을 아꼈다.
그리곤 불과 며칠 새의 일을 곰곰이 곱씹어보았다.
처음 계약서를 들고 왔을 때부터 범상치 않았다.
여태껏 그런 금액을 제시한 기업이 얼마나 됐던가.
하물며 위험한 작업은 미리 청소팀 선에서 밑 작업을 해주질 않나, 이쪽 일정과 작업량을 이해해주고 납품 기한을 조율해주질 않나.
무엇보다 사고가 터졌을 때 GT 던전은 바로 뒤통수칠 생각부터 한 반면, 김 대표는 직원들의 안전부터 확인했다.
이미 둘의 차이는 명백했다.
게다가 조금 전 김 대표가 무심하게 던진 한마디.
‘사람만 멀쩡하면 다른 건 상관 없다라…….’
이미 최 반장의 마음은 정해져 있었다.
“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카르마 코퍼레이션이라면 분명 끝까지 우릴 도와줄 겁니다.”
“……여태까지 그런 기업이 있긴 했나?”
“여태까지 없었으니 이제 하나쯤은 나올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최 반장이 씨익 웃었다.
하지만 곽 대표는 여전히 고민스러웠다.
직원 신분이야 당연히 지 좋다는 놈 편을 드는 게 당연하지만, 대표의 입장에선 그렇게 간단히 결정을 내릴 만한 사항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고민도 잠시뿐이었다.
“그래, 시벌. 죽기밖에 더 하겠어.”
어차피 더는 물러날 곳도 없다.
많은 걸 잃은 상황에서 더 잃어봤자 뭐 잃을 게 있겠나 싶었다.
“우린 카르마 코퍼레이션이랑 끝까지 간다. 지금 당장 전국 시설 대표들에게 연락 돌려. 고소고 나발이고 앞으로 GT 던전 수주, 절대 받지 말자고.”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말하다 문득 떠오른 게 있어 물었다.
“너 혹시 인터넷 같은 거 잘하냐?”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요즘 인터넷에 글 하나 쓰면 파장이 어마어마하다면서. 하루 만에 전 세계 사람들도 다 보고.”
“그렇죠……?”
“우리도 여론몰이 좀 해보자.”
웬일로 곽 대표답지 않게 꽤나 신세대적인 발상.
최 반장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목을 물어뜯을 거면 확실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
“어떻게 되고 있어?”
GT 던전, 고택수 부사장의 물음에 비서실장이 서류를 건넸다.
“강안 물류 외 42개 업체에 대한 고소장, 전부 접수했습니다. 빠르면 이번 주 안으로 검찰 송치될 겁니다.”
“오케이.”
고 사장이 손가락을 튕겼다.
하지만 비서실장은 어딘가 불안한 표정이었다.
“저…… 그런데 이래도 될까요?”
“뭐가?”
“이건 기존 협의를 완전히 무시하는 거잖습니까. 카르마 코퍼레이션 쪽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그놈들이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쩔 건데?”
“한별 상사와 손을 잡고 법정 싸움에 나선다면…….”
“하라 그래. 어차피 재판 결과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아. 시간만 끌어도 우리가 무조건 유리하니까.”
고 부사장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엔 하청들에게 결정권은 없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좋든 싫든 본인들과의 계약은 계속 이행해야만 한다.
그것만으로도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부산물 독점을 완벽히 견제할 수 있을뿐더러, 운이 따라준다면 아예 이 바닥에서 뜨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후의 승자는 버티는 자라 했다.
고작 개미들이 거대한 바람에 버틸 재간이 없다.
고 부사장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그냥 처음부터 이렇게 갈 걸 그랬어.’
괜히 협의회니, 뭐니 해서 시간만 버렸군.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비서실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무튼, 저쪽에서 무슨 반응이 오든 싹 다 무시해. 괜히 일일이 대응해주면 오히려 약점 잡힐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이 인사와 함께 사무실을 나가려던 그때.
“부, 부사장님!”
경영팀 직원이 사무실로 뛰쳐 들어왔다.
“지금 카르마 코퍼레이션에서…!”
“아 난 또 뭐라고. 무시해, 무시해.”
“아, 아뇨!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뭐?”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카르마 코퍼레이션에서 저희랑 계약된 전국 하청 대표들 모아놓고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인터넷에선 하청 직원들의 글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고요!”
“……?!”
“뿐만 아니라 한별 상사랑 한국 협회에서도 계속해서 저희에 대한 제보가…….”
보고가 끝나기가 무섭게, 비서실장이 먼저 핸드폰을 열어 인터넷을 확인했다.
머지않아 잿빛이 된 얼굴로 고 부사장을 바라봤다.
“부사장님…….”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GT 던전 토벌권 압수… 청와대 청원 서명이 20만 명이 넘었답니다…….”
“…….”
고택수 부사장의 눈앞이 캄캄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