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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 던전, 총 42개 시설에 고소장 접수 확인]
싸움은 기사 한 줄에서 시작되었다.
계획대로 곧장 시절 대표들을 모아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하청 업체와 GT 던전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이것만으로도 GT 던전에 한 방 먹인 셈이다.
여태껏 찍소리도 못 내다가 대놓고 이빨을 드러내리라곤 생각 못 했을 테니까.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강안 물류 최용구 반장 曰 ‘우린 그저 값싼 노예였다.’ 발언, 충격의 기자회견]
[납품가 후려치기, 무리한 일정 조율,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직접 찾아와 횡포… 하청 업체 직원들의 제보 잇따라]
[GT 던전이 짧은 시간에 상승세를 올릴 수 있던 이유는 ‘도 넘은 하청 압박?’]
[계속해서 불거져 온 GT 그룹의 갑질 논란, 이대로 괜찮은가]
[이능차원관리 협회, 李 협회장, ‘GT 던전의 행동은 명백히 토벌 시장을 무너뜨리는 갑의 횡포’ 발언 화제]
[한별 상사 하성일 사장, 개인 SNS에 GT 던전 맹비난]
미리 준비한 아군들이 예정대로 사정없이 물어뜯고 있다.
하성일 사장과 이두식 이사 또한 가세해주었고, 의도하진 않았지만 수많은 하청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인터넷에 올린 글 또한 한몫해주었다.
이런 현상은 연쇄작용을 일으켰다.
과거 GT 그룹 계열사에서 일했던 사람들과 계약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썰을 풀어놨던 것이다.
‘얘넨 그동안 뭔 짓을 한 거야. 어떻게 파도 파도 괴담만 나오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인터넷 반응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이 정도로 심할진 몰랐지.
“뭐, 그만큼 평소 행실이 좋지 않았던 거겠죠. 누구랑 달리.”
“……?”
옆에 있던 이아영이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그게 누군데? 라며 쳐다봤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뭐, 딱히 중요한 건 아니니까.
“어쨌든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끝났습니다. 이제부턴 그냥 앉아서 싸움 구경이나 합시다.”
“네? 여기서 끝이라고요? 더 세게 나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과유불급이라 했습니다. 너무 욕심부리다간 오히려 역풍을 맞을 겁니다.”
“그래도…… 이걸로 끝내기엔 좀 애매하지 않아요? 결국 여론몰이만 한 셈인데, 저쪽에서 그냥 무시해버리면 아무 의미도 없잖아요.”
“최소한 눈치는 보게 할 순 있죠.”
그럼에도 이아영 이사는 여전히 불안한 듯했다.
“눈치만 보게 하면 뭐해요. 실제로 GT 던전에 타격을 주는 것도 아닌데! 아마 조금만 잠잠해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걸요?”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여론은 사실상 그 자체만으론 GT 던전에 어떠한 대미지도 주지 못한다.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하는 사업도 아니니 불매 운동 같은 움직임이 일어날 리도 없고.
무엇보다 이미 다져놓은 발판이 워낙에 튼튼하니 이 정도의 이슈로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거 없습니다. 이제부턴 우리 대신 다른 쪽에서 움직여 줄 테니.”
“……다른 쪽이요?”
중요한 건, GT 던전은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공분을 사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몇천 명, 몇만 명 수준이 아니라 수십만 명 수준으로.
그리고 대개 이 정도 상황까지 오면…….
[GT 던전 토벌권 압수 청원, 벌써 35만 명 돌파]
[청와대 ‘해당 청원에 대해 면밀히 검토 중’ 입장 발표]
정부가 움직일 수밖에 없다.
“전국적인 기업 이슈를 가만히 내버려둘 수도 없을 테니까요.”
조금 있으면 세무조사든 국정감사든 들어가겠지.
물론 거기서 뭔가 꼬투리가 잡힌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사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상관없다.
정부의 타깃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GT 던전은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할 테니까.
GT 던전은 지금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 온갖 짓을 다 해야 할 것이다.
[카르마 코퍼레이션, 국내 토벌 시장 독점 야망? ‘토벌 시장에 빨간불’]
[서울대학교 이능차원학과 천승호 교수, ‘토벌은 시민들의 목숨이 달린 문제,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순간 균형 무너져’ 발언]
[국내 부산물 유통까지 장악? 카르마 코퍼레이션 독주 막는 게 급선무]
[협회와 손잡고 해외 지부 인수 사업 벌인 카르마 코퍼레이션, 국민보다 해외가 더 중요한가]
바로 이것처럼.
반박 기사, 화제 전환, 감정 호소.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길 바란다.
계속해서 헛짓거리하다 보면, 결국 한 가지 선택지밖에 안 남을 테니까.
***
반박 기사를 낸 지 고작 1시간도 채 안 된 시각.
GT 던전의 사무실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고택수 부사장은 이번 건을 어떻게든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갈 생각이었다.
서로가 추태를 드러내며 지리멸렬하게 싸움을 이어간다면, 조금씩 사람들의 입에선 이런 말이 나올 테니까.
‘저놈이나 이놈이나 똑같음’.
그럼 모든 걸 무마할 수 있다.
나쁜 놈도, 착한 놈도 없어지는 그 마법 같은 한마디를 위해, 입장표명 대신 반박 기사를 먼저 낸 것이었는데…….
└ 응~ GT 던전 언플 개 추하죠?
└ 병신들ㅋㅋ 이 타이밍에 카르마 까는 기사 내면 우리가 바로 눈 돌릴 줄 알았냐?
└ 저 새끼들은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어디서 갓르마를 건드리냐 ㅅㅂ
└ ㄹㅇ 머가리 수준 개텅텅
└ 독점은 ㅅㅂㅋㅋ 지들이 하고 있던 게 독점이지
└ 지들이 먼저 처맞을 짓 해놓고 이제 와서 발악하네
└ 저 인터뷰 한 교수 알아보니까 GT 던전 부사장 사촌임ㅋㅋㅋㅋ
└ 그걸 어케 찾았누…?
댓글을 확인하던 비서실장이 고개를 저었다.
“보시다시피 저희 쪽에서 대응 기사 아무리 쏟아내도 씨알도 안 먹혀요.”
“……시발.”
고택수 부사장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건 뭐 기업이 아니라 종교 수준이잖아…….’
대체 저쪽이랑 우리랑 다를 게 뭐라고 여론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건가.
저쪽도 결국 다 돈이 목적이지 않은가!
“여론이 너무 안 좋습니다. 슬슬 정부 쪽에서도 움직일 것 같고요.”
“……자네 생각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좋을 것 같나?”
고 부사장이 묻자, 비서실장이 그늘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싸움이 길어질수록 저희만 손해입니다. 일단 지금 상황을 끝내는 게 급선무인데……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곤 있지만, 아무리 봐도 방법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고소 취하…… 말인가?”
“……네.”
고 부사장이 쓰게 웃었다.
그래, 하청 업체 고소로 시작된 싸움이다.
불씨를 제거하면 연기는 사그라들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이걸 노렸군…….’
법정 문제로 넘어가면 불리하니, 아예 시작도 못 하게 만들겠다는 건가.
고 부사장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고소를 취하하면 모든 시설이 카르마 코퍼레이션에 넘어갈 게 불 보듯 뻔하다.
그럼 더 볼 것도 없이 이쪽은 망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싸움을 계속 이어나가기도 힘든 상황이다.
법정 싸움 이전에 정부가 나설지 모른다.
‘시발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됐냐…….’
고작 하청 업체 좀 건드렸다고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이야.
닥치고 따라야 하니까 하청이고, 우린 그 대가로 돈을 주는 건데…….
대체 왜 이렇게 된 건가.
‘이게 다 김준우, 그 미친놈 때문에…….’
고 부사장의 이가 으득 갈렸다.
그래도 이대로 무릎을 꿇을 순 없다. 모든 걸 건 싸움이다.
여기까지 어떻게 올려놓은 회사인데, 고작 하청 놈들 때문에 망할 수는 없다.
“서 실장.”
고 부사장의 시선이 비서실장에게 향했다.
“타깃 바꾸자.”
“네, 네?”
“카르마 코퍼레이션 말고, 김준우를 노리자고. 단체보단 개인을 노리는 게 더 효과적일 것 같으니까.”
지금 상황에서 꺼낼 수 있는 묘수라 여겼다.
하지만 정작 비서실장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글쎄요. 워낙 흠잡을 게 없는 사람이라, 노릴만한 게…….”
“그놈이 협회에 있을 때 본부 개혁에 가담해서 윗놈들 다 날려버렸다면서?”
“네, 네 그렇죠.”
“그중에 연락되는 사람 없나?”
뭔가 떠올랐는지 그는 곧바로 이곳저곳에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당시 사건에 관련된 인물 하나를 물어왔다.
“서민철 지부장이라고, 본부 개혁 때 잘려 나간 대표 격인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은 울릉도 지부에 있다고 합니다. 여기 연락처입니다.”
고 부사장은 곧바로 쪽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착신음이 흐르길 잠시.
「여보세요.」
힘이 쭉 빠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GT 던전의 고택수 부사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요?」
“다른 게 아니라 뭣 좀 여쭤보려고 하는데……. 혹시 과거에 김준우 대표한테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일을 당하신 적이 있습니까?”
「…….」
상대방의 대답이 끊겼다.
고 부사장은 뒤늦게 너무 갑자기 본론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없습니다.」
짤막한 대답이 들려왔다.
“제보자 신원은 저희가 철저하게 보호를 해드릴 테니, 그 점은 염려 마시고 편하게…….”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당혹스러울 만큼 단호했다.
고 부사장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재차 입을 열었다.
“기, 김준우 대표 때문에 작전 본부장 자리에서 물러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자세한 건 모르지만, 분명 무슨 사정이…….”
「고택수 부사장님. 제가 조언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예, 예. 말씀하십시오.”
긴말을 끊고 수화기 반대편에서 돌아온 말은 이전보다 더 단호했다.
「당장 그만두십시오.」
“……예?”
「뭘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그 인간을 건드릴 생각이시라면 지금 당장 그만두라고요.」
“그게 무슨…….”
「장담컨대, 절대 좋은 꼴을 못 보실 겁니다.」
“…….”
말속에 뼈가 있음을 느끼고 고 부사장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 반응이 답이었던 건가.
「아니면, 뭐… 이미 늦었을 수도 있겠군요.」
“…….”
「아무튼, 더 용건이 없으시면 이만 끊겠습니다.」
전화는 어이없게 끊겼다.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잠시 인지하지 못한 채 고 부사장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방문자를 확인하고 고 부사장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회, 회장님?!”
GT 그룹의 총수, 오강태 회장이 직접 행차한 것이다.
“회, 회장님이 여기까진 어쩐 일로…….”
“자네 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오 회장의 목소리에 바짝 날이 서 있었다.
유구무언.
뭘 묻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에 고 부사장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자네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일을 어떻게 이 지경까지 만들어?”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게 다 회사를 위해서…….”
“회사를 위해서? 지금 이 꼴이 회사를 위한 건가?”
“…….”
날카로운 눈초리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제, 제가 어떻게든 수습하겠습니다.”
“이미 늦었어.”
“네…?”
턱―.
수행원이 건넨 서류 몇 장을 고 부사장에게 던졌다.
“국정감사 날짜 잡혔다.”
“……!!”
“이번 일에 대한 책임, 모두 자네가 져줘야겠어.”
이윽고 청천벽력 같은 지시가 떨어졌다.
“사퇴해.”
***
“이게 정말 되는군…….”
천하의 하덕수 회장조차 당황스러운 소식이었다.
싸움이 벌어진 지 단 하루 만에 GT 던전이 백기를 든 것이다.
세부 자료를 확인하던 하성일 사장이 입을 열었다.
“모든 고소를 취하했습니다. 그리고 시설을 돌아다니며 사과를 한다네요. 다신 이런 일이 없도록 계약을 다시 진행하겠다는군요.”
“소 잃고 부랴부랴 외양간 고치고 있군.”
“네. 이미 대다수 업체가 다시 계약하지 않겠다는 반응입니다.”
“그럼…… 끝났구만.”
부산물 처리가 막혀버렸으니 더 이상의 토벌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GT 던전의 토벌 사업은 사실상 끝났다 봐도 무방하다.
“대가를 치른 게야.”
하덕수 회장이 클클 웃음을 흘렸다.
그래, 이게 다 업보가 아니겠는가.
“아무튼, 이제 방해꾼도 사라졌겠다…… 본격적으로 먹어보자고.”
하덕수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국 토벌 시장.”
판은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남은 건 입맛대로 세팅하는 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