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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연락으로 인해 한걸음에 달려온 연구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뱅크 아이템을 찾았다뇨.”
이클립스로 들어서자마자 이아영 이사부터 찾았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땐, 농담인 줄 알았다.
최근 뱅크 아이템의 최소 출현 등급인 오렌지 이상의 던전 출현도 없었을뿐더러, 희귀 아이템 출현 보고도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회귀 전 기억으로는 시간석 외에 추가적인 뱅크 아이템이 발견됐다는 이야긴 들어본 적도 없었다.
물론 죽고 나서 발견됐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일단 따라와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나를 안내한 곳은 중앙 연구실에서 더욱 안쪽에 위치한 구역이었다.
공간에 들어서자 푸른빛으로 빛나는 부산물이 눈에 들어왔다.
보자마자 농담이 아니라는 걸 그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몇 달 전에 앙골라 지부에서 보내온 부산물 기억나요?”
“지원팀이 실험하다가 사고 냈던 그거 말입니까?”
이아영 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말하길, 그 부산물이 뱅크 아이템인 것 같다고 해서 확인차 여기로 보냈는데…….”
“어떻게 나왔습니까?”
“뱅크 아이템 맞아요. 그것도 전 세계 통틀어서 여태까지 딱 하나 발견된 이능석이에요.”
“미친…….”
이능석.
뱅크 아이템 중 가장 희귀한 녀석이자, 가장 위험한 효과를 가진 아이템.
기본적으로는 이능력을 부여해주는 효과지만, 그 대상이 사람, 동물 등 모든 사물을 가리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을 무기화시킬 수 있는 물건이자, 마음만 먹는다면 수십만 명의 이능력 부대를 만들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런 아이템이 한국에 들어오다니.
‘쯧, 확실히 뭔가 이상하긴 했는데…….’
작은 건물 하나를 날려버릴 정도의 강력한 폭발이었는데, 정작 부산물은 멀쩡하지 않았던가.
평범한 부산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만, 설마하니 그게 뱅크 아이템…… 그것도 이능석이었을 줄이야.
‘아프리카 쪽 물건이라 그냥 좀 특별한 부산물인 줄 알았지…….’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러자 이아영 이사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좋아하지 않으시네요?”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니까요.”
“안 좋을 건 또 뭐예요. 이능석이잖아요. 전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던 물건인데. 무엇보다 이걸로 한국은 뱅크 아이템을 두 개나 보유한 국가가 되는 거잖아요. PB 코퍼레이션 놈들 총알에서 추출한 반능석까지 합치면 3개나 되고요. 뭐… 극소량이긴 하지만.”
“그래서 문제라는 겁니다.”
여전히 의아하다는 반응.
그걸 설명하기 위해선 일단 짚고 넘어가야 할 게 몇 가지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알아낸 내용을 잠시 정리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국제 협회가 예전부터 전 세계의 토벌권을 통합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들어가는 시간과 자본 대비 메리트가 없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토벌권 하나 통합했다고 정말로 전 세계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돈은 많이 벌겠죠. 그런데…… 돈이 목적이라기엔 배꼽이 너무 큽니다. 조금만 방해가 된다 싶으면 전 세계 거물급 인사도 가차 없이 죽여 버리고 있는데, 그 이유가 돈 때문이다?”
“그건 수지가 안 맞죠.”
“사실 마르크 팀장한테도 슬쩍 물어봤는데… 그놈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이아영 이사 또한 덩달아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뭐… 돈이 목적이 아니라면, 사실 정황상 하나밖에 없지 않습니까.”
“……!”
그제야 이해했다는 얼굴.
“뱅크 아이템이 목적이라는 거예요?”
“물론 추측이긴 하지만.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저번엔 시간석을 회수하겠다고 협회 작전팀 절반을 수장시켜버리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서, 설마 그때 수중 던전도 PB 코퍼레이션에서 움직였던 거예요?!”
아, 이건 말 안 했었나.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어디까지 이야기했는지 헷갈린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아무튼, 지금 국제 협회는 이상하리만치 뱅크 아이템 회수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엔…… 그동안 국제 협회의 목적을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토벌권을 통합하기 위해 뱅크 아이템을 회수하는 게 아니라, 뱅크 아이템을 회수하기 위해 토벌권을 통합하려는 거다?”
“그렇죠.”
이아영 이사가 머리를 짚으며 신음했다.
그제야 내가 곤란하다고 말했던 게 이해가 간 모양이었다.
국제 협회와 전면전을 위해 전력증강을 한 거지만, 말 그대로의 전쟁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헌터들로 전쟁을 벌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설령 그런 짓을 벌인다고 해도 우리 또한 너무나 많은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전면전은 말 그대로의 전쟁이 아닌, 보다 수준 높은 토벌 경쟁력을 앞세워 국제 협회와의 인수전을 벌이겠다는 뜻에 가까웠다.
그놈들도 결국 토벌권 통합을 위해선 전쟁이 아닌, 비즈니스를 해야 할 테니까.
‘그런데… 국제 협회의 진짜 목적이 뱅크 아이템이라면 말이 달라지지.’
앞으론 굳이 비즈니스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수틀리면 무력으로 뺏어오는 방법이 있으니까. 수중 던전 사건 때처럼.
‘시간석 하나만으로도 그런 짓을 벌였는데, 다른 뱅크 아이템을 획득했다는 게 저쪽 귀에 들어가면…….’
심지어 다른 것도 아닌 이능석이다.
사용 조건과 범위가 매우 까다로운 다른 뱅크 아이템과 달리, 가장 활용도가 높다.
한국에 있다는 걸 알면 정말 전쟁을 벌이려 할지도 모른다.
‘아니, 차라리 그뿐이면 다행이지.’
전 세계 각 지부가 거기에 가세하기 시작하면, 최악의 경우 세계 대전으로까지 확대되고 만다.
그럼 내 손으로 해결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 그 누구도 멈추지 못할 테지.
“혹시 협회장님한테 보고하셨습니까?”
“아뇨. 아직요.”
“그나마 다행이군요. 일단 확인 결과 뱅크 아이템은 아니었다고 보고해주세요.”
“……알겠어요.”
별 이견 없이 그녀는 수긍했다.
아직은 비밀에 부치는 데 동의한 것이다.
“아, 그리고 시간석은 아직 협회에서 보관 중입니까?”
“그럴 거예요.”
“그럼 그것도 여기로 가져와서 같이 보관합시다. 여기서 같이 관리하는 편이 더 낫겠죠.”
“……저 그런데 말이에요.”
이아영 이사는 목소리를 팍 죽이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이거 그냥 우리가 가공해서 쓰면 안 돼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물론 불법이긴 한데, 국제 협회도 이미 뱅크 아이템을 가공해서 쓰고 있잖아요. 우리라고 안 할 이유가 없지 않아요?”
뱅크 아이템은 사회에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2차 가공 및 무기화가 금지된 아이템이다.
하지만 먼저 약속을 어긴 건 어디까지나 국제 협회다.
앞으로의 분쟁을 생각하면…….
그녀 말마따나 우리라고 못 할 건 없다.
무엇보다 이능석을 사용한다면 전 세계의 군대를 상대로도 대항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최악의 경우에는 강제로 제2의 국제 협회를 세우는 것도 가능하다는 소리다.
얼핏 들으면 너무나 쉽고 빠른 방법이지만…….
“저쪽이 먼저 했다고 우리도 똑같이 할 필욘 없지 않습니까. 자존심이 있지.”
“자존심 챙길 만한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요.”
“자신 있으니까 하는 말입니다.”
“네?”
“그런 꼼수 안 써도 국제 협회, 충분히 박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려고 이렇게까지 준비한 거 아닙니까.”
“…….”
“그리고 말입니다.”
리스크 관리 차원도 있지만, 내겐 헌터로서 자존심이 있었다.
“헌터의 적은 몬스터지, 사람이 아닙니다.”
“…….”
내 대답에 이아영 이사가 잠시 대답을 아꼈지만, 곧 미소를 띠었다.
“뭐, 맞는 말이네요.”
***
“하아…….”
국제 헌터 협회 본부, 사무총장실에 한숨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철창만 없다 뿐이지 감옥이 따로 없군.’
웨슬리 사무총장은 천장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아프리카 지부 건 이후 조사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본부 내 모든 업무를 감시당하는 것도 모자라, 무언가 움직임이라도 보이면 곧바로 서류 검토부터 들어가고 있다.
‘그렇게 애써 봤자 잡힐 만한 것도 없는데.’
들킬 염려는 없지만 맘대로 하지 못한다는 건 정신적으로 피곤한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답답한 건, 본부가 이렇게 주춤하는 동안 김준우가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불안이다.
다행히 최근엔 한국 내에서만 움직이는 것 같은데…… 혹시 모르는 일이다.
우리와의 전면전을 위해 전력을 가다듬고 있을지.
그동안 본부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게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괜히 섣불리 움직였다가 정상들 눈에 찍히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렇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가운데, 노크 소리와 함께 수행비서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죠?”
“이번에 한국 협회가 인수한 앙골라 지부 쪽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말해보세요.”
“저, 그게…….”
수행비서가 문 쪽으로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N-1 사항입니다.”
“…….”
순간 웨슬리 사무총장의 표정이 굳었다.
그 또한 사무실 문을 슬쩍 흘겼다.
본부 내에 조사원이 쫙 깔린 이상, 여기서 대화는 어려웠다.
이내 손가락을 튕겼다.
[고유 스킬 : 천지창조]
[11차원의 고유 공간을 창조합니다]
지이이잉―.
사무실의 외벽이 마구 뒤틀리며 어딘지 모를 공간으로 변했다.
수행비서는 동그래진 눈으로 자신이 서 있는 공간을 두리번거렸다.
우주, 혹은 심해처럼 어둡고 울렁이는 공간.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떠 있는 건지, 서 있는 건지도 모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N-1 사항이면 뱅크 아이템 관련 보고입니까?”
“……네, 네.”
그녀 또한 사무총장의 고유 공간에 들어오는 건 처음이었기에 내심 당황했지만, 이내 곧바로 정신을 다잡고 말을 이었다.
“앙골라 지부에서 오렌지 등급 던전이 토벌되는 순간, 통제팀에서 엄청난 이능파를 감지했습니다.”
“원래 던전이 소멸할 땐 꽤 많은 이능파를 방출하지 않나요? ”
“확인 결과, 통상 던전이 소멸하며 발생하는 이능파에 15배에 이르는 수치였다고 합니다.”
“……!”
웨슬리 사무총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확실히 비정상적인 수치다.
그 정도의 이능파를 내뿜을 만한 현상은 많지 않다.
강한 몬스터가 소멸했다거나, 아니면 말도 안 되게 강력한 아이템이 출현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만약 후자라면 수행비서의 말대로 뱅크 아이템일 확률이 너무나 높았다.
‘확실히 의심이 가긴 하는데…….’
직접 확인해볼 수가 없으니, 아직 확신할 순 없다.
“그런데 며칠 전 서울에서 같은 크기의 이능파가 감지되었다고 합니다.”
“……뭐?”
“그 시간대 한국 기사를 확인해보니, 서울 본부 지원팀에서 부산물 하나가 폭발을 일으켰다고 하더군요.”
“……앙골라 지부, 한국 협회가 인수한 지부 맞죠?”
“네.”
“두 곳에서 똑같은 이능파가 감지됐고?”
“…….”
수행비서는 이번엔 대답을 아꼈다.
웨슬리 사무총장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 있던 까닭이었다.
“하, 하하하…!”
이윽고 그는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우리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이려고 했는데…… 기어이 이렇게 되는군.”
어느 정도 예상했던 상황이라는 듯 그는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마한테 연락해서, 밸런스팀 인원 빨리 모집하라고 하세요.”
“네, 네…?”
“선전포고를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웨슬리 사무총장의 눈빛이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