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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던 그때, 에마 대표에게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N-1 상황 발생했습니다. 한국으로 흘러 들어간 것 같습니다. 인원 모집을 되도록 빨리 부탁드립니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었지만, 에마 대표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뱅크 아이템이 발견됐다. 한국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밸런스팀 인원 모집을 서둘러 달라.
‘대체 무슨…….’
당황스러운 이야기였지만, 당장 자세히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그때,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성이 물었다.
에마 대표는 표정을 관리하며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업무 지시가 내려와서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역시 비밀 조직의 수장님이라서 그런지 바쁘시군요.”
남자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명백히 비꼬는 말투였지만, 일일이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계약 조건은 어떠신지? 원하는 게 있다면 더 말씀하셔도 좋아요.”
“흐음.”
남자는 앞에 놓인 계약서를 힐긋거렸다.
다름 아닌 PB 코퍼레이션 밸런스 조정팀 스카우트에 관한 내용이었다.
“말씀드렸다시피, 계약을 받아들이신다면 바로 팀장직을 맡으실 수 있습니다. 현재 티오가 난 상황이라.”
에마 대표가 덧붙였다.
그러자 남자가 씨익 웃었다.
“사실, 그쪽에 대해선 저도 들은 게 좀 있습니다.”
“그런가요.”
“유명하잖습니까. 국제 협회에 방해가 되는 놈들은 다 죽이는 비밀 조직이 있다, 그 조직을 통해 전 세계 토벌권을 통합하려고 한다……. 솔직히 다 도시 괴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설마하니 진짜일 줄은 몰랐군요.”
남자가 에마 대표를 지그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런 살벌한 곳의 팀장 자리가 공석이다? 그건 아무리 봐도 좋은 소식이 아닌 것 같군요.”
“…….”
“혹시 수틀리면 나도 그렇게 죽여 버리실 건가?”
남자의 눈빛이 살벌해졌다.
물론 그런 도발에 넘어갈 그녀가 아니었다.
“말씀을 좀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하, 하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그래서, 내가 거기서 뭘 하면 됩니까?”
“어려운 건 없습니다. 일단 주요 인물 암살이 주된 업무에요. 경우에 따라 수색, 납치, 정보 수집 그리고 때때로 전투를 벌여야 할 때도 있을 겁니다.”
남자의 표정이 어느 한 단어에 크게 반응했다.
그리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재밌을 것 같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에마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차에 남자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업무는 무조건 내 방식대로. 그리고 팀원도 내가 꾸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아요. 그 정도야 뭐.”
그제야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노아 웨스턴우드.
현 미국 1위 길드인 노아 길드의 대표이자, 세계 최초 S랭크를 달성한 헌터.
현 미국 랭킹 1위.
현 세계 랭킹 1위.
한때 PB 코퍼레이션 타깃 1순위였던 그가, 밸런스 조정팀에 정식으로 합류하는 순간이었다.
계약 성사 기념으로 에마 대표가 한 가지 조언을 던졌다.
“참고로 우리 쪽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는 남자가 한 명 있는데……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S랭크 입니까?”
“헌터는 아니에요.”
“그럼?”
“뭐라 딱 잘라 말하긴 어려워요. 던전 청소부 출신의 미친놈이라고 해야 하나?”
“……하하하하!”
너무나도 뜬금없는 이야기여서일까.
노아는 대놓고 웃음을 터트렸다.
“명색이 비밀 조직인데 고작 청소부 한 명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니, 너무 모양 빠지지 않습니까?”
“자만하지 마세요. 혼자서 밸런스팀 전체와 싸우고도 멀쩡한 놈이었으니까.”
“그래봤자 청소부잖습니까.”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었죠.”
에마 대표의 얼굴이 순간 팍 굳었다.
그래, 그럴 때가 있었지.
한국 파트 현장직들을 혼자서 쓸어버리기 전까진.
“조심하세요. 그 미친놈, 잘못 건드렸다간 당신 월급 나오기도 전에 목이 먼저 잘릴 수도 있으니.”
“수준 알 만하군.”
“전 경고 했어요.”
에마 대표는 그의 무례를 애써 무시하며 등을 돌렸다.
‘버릇없는 애송이……. 시간석만 회수했으면 이미 진작 내 손에 뒈졌을 텐데.’
에마 대표는 그를 영입하는 게 무척이나 못마땅했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토벌권 회수팀, 뱅크 아이템 관리팀은 몰라도 밸런스 조정팀은 지금 당장 필요했으니까.
무엇보다 웨슬리가 직접 내린 명령이기도 했고.
‘그나저나 한국에 뱅크 아이템이 또 흘러 들어갔다는 건…….’
조금 전 문자 내용을 곱씹었다.
시간석도 모자라, 그새 뱅크 아이템을 하나 더 획득한 건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웨슬리 성격상 더는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만에 하나 그 뱅크 아이템이 이능석이라면…… 그땐 정말 일이 커진다.
한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할지도 모르니까.
‘뭐… 이젠 괜찮으려나.’
물론 정말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젠 딱히 상관없다.
노아를 영입했으니까.
저놈을 조금이라도 긴장하게 만들기 위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경고는 필요 없었다.
저 미친놈이 날뛰기 시작하면 전 세계 군대가 출동해야 할 정도니까.
***
“하암…….”
서울 기획 본부, 이두식 협회장의 사무실.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자 이두식 협회장이 곧바로 면박을 던졌다.
“하품은 좀 가려서 해라, 이놈아.”
“죄송합니다. 제가 며칠 잠을 잘 못 자서.”
“왜? 일이 많이 바빠?”
“예. 이아영 씨랑 할 게 좀 있어서요.”
“……?”
이두식 이사의 눈이 갑자기 동그래졌다.
“야, 야, 이 씨…! 너 그게 지금 내 앞에서 할 소리야?!”
“……무슨 생각하시는 겁니까. 연구소 일입니다, 연구소.”
“…….”
뒤늦게 멋쩍은 듯 괜히 큼큼 헛기침한다.
뭘 생각한 건데…….
“그래서, 요즘 부산물 납품은 잘 되고 있나?”
“문제없습니다. 양이 워낙 많아서 직원들이 고생 좀 하고 있긴 하지만요. 뭐 그러라고 그 돈 주고 데려온 거니 감수해야죠.”
“다행이군.”
그가 차를 홀짝이며 말을 이었다.
“국내 던전 지분도 압도적이고, 부산물 납품도 거의 독점을 했고. 토벌 인력도 국내 최고에, 전원 최상급 장비까지…….”
뭘 말하려는 건지 상당히 뜸을 들인다.
“정말 그거 전부 우리한테 넘겨줄 생각인가?”
“못 믿으시겠습니까?”
“설마! 내가 자네를 못 믿을 리가 있나. 딸내미면 몰라도.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이내 그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는 말이야.”
“……예?”
“아프리카 건 이후로 국제 협회도 주춤하고 있지 않나. 그 덕에 큰 방해 없이 이렇게 몸집을 키울 수 있었고.”
“그렇죠.”
“그런데…… 커져도 너무 커졌어. 솔직히 말해서, 그걸 홀랑 받아먹기엔 내 배포가 그렇게 크지 않네.”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는 발언.
본인도 그걸 아는지, 내 시선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난 지금 협회, 꽤 만족스러워. 그거 아나? 민영화가 발의되고 나서 다른 기업에 던전 뺏길까 봐 이사들이 두 팔 걷어붙이고 토벌권 매입에 힘쓰고 있다는 거.”
“그 꼰대들이 직접 영업을 뛴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니까. 뭐, 협회가 망하면 본인들도 개밥그릇 신세가 될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한데…….”
놀라운 일이다.
자리싸움에만 관심 있던 놈들이 일을 하다니.
“그런데 갑자기 자네 회사가 우리 쪽에 흡수되면 어떻게 되겠나.”
“뭐… 훨씬 안정화 될 테니, 다들 예전처럼 돌아오겠죠.”
“안 봐도 비디오지.”
“그래서 이사님 말씀은…… 지금의 협회를 유지하기 위해 지금까지 진행한 프로젝트를 엎자는 겁니까?”
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빌어먹을…….’
여태까지 내가 한 모든 일은 전부 한국 협회를 제2의 국제 협회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것 때문에 카르마 코퍼레이션을 설립했고, 지부 사업도 벌였으며, 전국 토벌 시장을 장악했다.
근데 이제 와서 지금 상황이 좋으니 엎어버리자고?
‘대놓고 떠먹여 준다는 대도 뱉어버리면 뭐 어쩌자는 건데…….’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려고?
절대 그렇겐 안 되지.
“이사님. 아니…… 협회장님.”
“음?”
“국제 협회는, 협회장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악랄하고 무서운 놈들입니다.”
“…….”
“지금이야 당연히 조사가 진행 중이니 주춤할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그게 언제까지 갈 것 같습니까?”
그가 대답을 아꼈다.
당연히 할 말이 없겠지.
“장담컨대, 조사가 끝나고 눈치가 시들해지면 바로 다시 치고 나올 겁니다. 이전보다 훨씬 대범하고 강경하게. 그때 가서 대응하려고 하면 늦습니다.”
“……무조건 그런다는 보장도 없지 않나. 누가 알아, 이번 일로 국제 사회 눈치 때문에 잠잠해질지.”
“아니, 제가 방금 말씀드렸지…….”
“일단은.”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내 말을 끊었다.
“우리, 다시 생각해보자고.”
“…….”
아무래도 이번은 만만치 않을 듯싶었다.
귀찮아지겠네.
***
본부를 빠져나온 직후, 답답한 마음에 한숨부터 쏟아냈다.
‘시발, 진짜…….’
이두식은 한번 결정을 내린 사항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밀어붙이는 인간이다.
설득하려면 최소한 국제 협회에서 우리에게 선전포고라도 해야 할 것이다.
‘하여간 저 외골수…….’
그런 점이 회귀 전엔 방해가 돼 잘라버렸고, 지금에 와선 도움이 되었기에 옆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방해가 된다면…….
어쩔 수 없지.
다시 칼을 드는 수밖에.
그렇게 마음을 먹은 그때, 전화가 울렸다.
아니나 다를까 이아영 이사였다.
「뉴스 봤어요?!」
“갑자기 뭔 소립니까 또.”
「빨리 뉴스 봐봐요! 큰일 났으니까!」
평소 같지 않은 격한 말투에,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나는 곧바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뭔 일이 있었는지 새로운 기사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메인 토픽에서 떠오른 동영상을 눌렀다.
[국제 헌터 협회 사무총장, 웨슬리입니다.]
한 남자의 연설 녹화본이 흘러나왔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저희 국제 헌터 협회는 전 세계 시민들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세계 각국에 총 78개의 지부를 세우고, 적극적인 토벌 지원 및 헌터 육성에 힘 써온 지도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
[물론 그 긴 시간 동안만큼 많은 고비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린 굴복하지 않고, 시민의 안전만을 생각하며 활동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목이 메는 듯, 물을 마시곤 다시 말을 잇는다.
[저번 중앙아프리카 사건 당시, 한국에서 퍼트린 터무니없는 소문 때문에 우린 무척이나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부산물 유통 육로 독점, 중앙아프리카 지부 강탈까지……. 한국 협회는 지속적으로 우리를 괴롭혀오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 소속 헌터들이 사망하거나 크게 다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뭐?
[하지만 조사 결과, 우리에겐 그 어떠한 혐의도 없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젠 떳떳하게 다시 활동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국제 헌터 협회는 근거 없는 소문으로 우리 명예를 실추시키고, 나아가 그것을 빌미로 천문학적인 손해를 입힌 점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할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국제 헌터 협회 사무총장으로서 이 자리를 빌려 선언하겠습니다.]
[현 시간부로 국제 헌터 협회는, 한국 협회를 비롯한 한국의 모든 토벌 기업을 ‘토벌 조직’이 아닌, ‘카르텔’로 판단. 국내외에서 벌이는 모든 토벌 행위를 국제 토벌법 위반으로 간주하겠습니다. 해당 경고에도 불구하고 한국 협회가 지속적으로 토벌을 시도할 시…….]
[국제 헌터 협회는 국제 토벌법에 따라, 카르텔 소탕을 위해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습니다.]
“이런 개……!”
설마 했던 일이 벌어졌다.
정말로 국제 협회에서 선전포고를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