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150화 (150/366)

150

150

“특정 던전. 소재 파악됐습니까?”

결국, 웨슬리 사무총장은 기다리다 못해 통제팀에 직접 발걸음했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직원들 사이로 통제팀장이 직접 그를 맞이했다.

“죄, 죄송합니다. 아직 파악된 게 없습니다. 일단 최대한 찾아보고 있긴 한데…….”

“그래도 몇 개는 찾았을 거 아닙니까?”

“그, 그게…….”

통제팀장이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이었다.

“아직…… 하나도 못 찾았습니다.”

“…….”

웨슬리 사무총장 이마의 핏줄이 꿈틀거렸다.

“20분이나 지났는데 하나도 못 찾았다는 게 자랑입니까?”

“하, 한국에 미토벌 던전이 너무 많아서 특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희 쪽 감지 시스템만으로는 그걸 전부 파악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요. 지부들의 도움을 받으면 모를까, 저희들만으로는…….”

저도 모르게 변명을 늘어뜨리는 통제팀장.

하지만 웨슬리 사무총장의 눈빛이 관통하자, 통제팀장은 아차 싶었는지 곧바로 입을 틀어막았다.

“후우…….”

사무총장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물론 억지를 부린다고 해결될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애초에 특정 던전을 그냥 찾아내는 것도 힘든데, 심지어 다른 미토벌 던전들까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카르텔로 규정해 버려서 국내 토벌을 할 수가 없었을 테니 당연한 상황이다만…….

어쨌거나 그런 곳에서 1시간 안에 특정 던전을 모두 파악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

‘빌어먹을…….’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채웠던 족쇄가 도리어 본인의 발목을 붙잡을 줄이야.

여태껏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그의 얼굴에 기어이 분노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때 통제팀장이 넌지시 의견을 던졌다.

“일단…… 기다려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쪽도 설마 죽을 생각은 아니겠죠. 마지노선까지 가면 저쪽에서 먼저 토벌할 겁니다.”

“그러다 던전이 닫히면. 뱅크 아이템은 당신이 만들어 줄 건가요?”

“그, 그건…….”

통제팀장이 말끝을 흐린다.

사실 그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다.

김준우는 야망가이지, 도박꾼이 아니다.

여태까지 그가 해온 일들을 보면 그 어느 것 하나 확신 없이 벌인 일이 없었다.

언뜻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항상 철저한 계산과 작전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 그가 이제 와서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할 리가 없다.

아니, 애초에 목숨까지 걸 만한 일도 아니다.

우리가 뱅크 아이템을 안 넘기면 죽이겠다는 것도 아니고, 고작 해봐야 토벌권을 막았을 뿐이지 않은가.

심지어 그마저도 우리에게 전권을 넘긴다는 선택지가 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전권을 넘긴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는가? 그것도 아니다.

쉽게 생각한다면 이러나저러나 아무 상관이 없는 문제다.

그러니 목숨을 걸어서라도 그걸 막을 만한 이유가, 최소한 그들에겐 없다.

김준우는 지금 치킨 레이스를 하는 중이다.

시간이 아슬아슬해지면 먼저 꼬리를 말지도 모른다.

웨슬리 사무총장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발…….’

그건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

불확실한 추측에 도박을 걸기에는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 컸다.

어쨌거나 뱅크 아이템이 두 개나 걸려 있는 일인 만큼, 급한 건 이쪽이다.

그래, 뱅크 아이템이 목적인 이상…… 결국 김준우의 요구를 따르는 수밖엔 없다.

“이런, 시발!!”

콰광―!!

콘크리트 벽이 종잇장처럼 무너져 내렸다.

통제팀 직원들 모두가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사, 사무총장님…….”

“……어쩔 수 없지.”

분노에 찬 거친 숨을 내뿜길 잠시, 다시 입을 열었다.

“카르텔 규정… 철회합시다.”

“…네, 네?”

“방법이 없잖습니까. 지금 우리한텐 뱅크 아이템이 더 중요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무총장의 눈빛은 여전히 이글거리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기자회견 준비하겠…….”

“아뇨. 녹화로 준비하세요.”

“예…? 노, 녹화 말입니까?”

사무총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뱅크 아이템도 뱅크 아이템이지만, 또다시 김준우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게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더미를 녹화해서 클로이한테 전송합시다. 김준우만 속이면 나머진 다 해결될 테니까.”

그는 끝까지 김준우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

던전 안으로 들어온 지도 30분이 지났다.

그간 한마디도 없이 어색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다.

물론 살갑게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사이는 아니지만.

‘흠…….’

클로이와 노아를 힐끔거리며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시도라도 해볼까…….’

그래, 저 둘이면 혹시 설득이 가능할지도 모르니까.

침묵을 깨고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클로이 씨는 어쩌다가 PB 코퍼레이션에 들어가게 됐습니까?”

“…….”

말을 건 게 의외였던 건지, 나를 슬쩍 흘겼지만 대답은 없다.

뭐, 충분히 예상한 반응이다.

“아니, 뭐 들어간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돈이라든지, 명예라든지. 아, 비밀 조직이라 명예는 아니겠네. 그럼 대체 얼마를 주길래 그런 똥통에 있는 겁니까?”

“…….”

“거참, 대화 좀 하자는데…… 이러고 있는 것도 좀 아깝잖습니까. 마지막을 같이 할 사람일지도 모르는…….”

“연구하려고요.”

클로이가 포기한 듯 대답했다.

“연구? 뱅크 아이템을 말입니까?”

“네. 애초에 영입 조건도 뱅크 아이템을 마음대로 연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고.”

“흠… 그럼 연구만 할 수 있으면 딱히 PB 코퍼레이션이 아니어도 된다는 소립니까?”

그녀의 시선이 가방에 달린 렌즈로 향했다.

싱긋 웃으며 그녀는 대답했다.

“그럴 리가.”

“……그거 아쉽게 됐군요. 마침 우리 쪽에 신설 연구소가 들어와서 스카우트 좀 해보려 그랬는데.”

“들어봤어요. 이클립스? 연구소장이…… 그쪽이라던데.”

클로이가 이아영 이사를 슬쩍 흘기며 실소를 뱉었다.

“되지도 않는 사람을 앉혀 놨네요.”

“저기요. 혹시… 뒤질래요?”

“성질하고는.”

“쓰읍, 진짜 성질 한번 보여줄까요?”

얘넨 왜 갑자기 싸워?

“그만들 하시죠. 어차피 30분 후면 저승길 동행할 사이인데.”

신경전을 벌이는 두 여자를 말리며, 곧바로 노아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럼 그쪽은 이유가 뭡니까?”

“뭐?”

“당신은 왜 PB 코퍼레이션에 들어간 겁니까. 세계 1위잖습니까. 굳이 남의 밑에 들어갈 이유가 없는데.”

“세상이 많이 편해졌군.”

그가 묘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청소부 출신이 말도 다 붙이고.”

“하, 하하하…….”

꽤나 노골적인 반응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적대적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듣자 하니 당신 여동생도 청소부라던데.”

“……!”

“국제 협회 소속 청소부라면서요. 거긴 뭐 나름 처우도 좋고 연봉도 세다던데? 아무튼, 부럽습니다. 나도 이왕 청소 일 할 거였으면 국제 협회로 들어갔어야 했는데. 나중에 혹시 괜찮으시면 여동생분한테 저 좀 꽂아달라고…….”

그리곤 일부로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 죽었댔나?”

그 순간이었다.

[고유 스킬 : 아포칼립스 - 각성]

[최후의 생존자]

[상대의 수와 전투 시간에 비례하여 시전자의 모든 스테이터스가 대폭 증가합니다]

“힘 좀 쓰는 놈이라고 해서 기대했더만……, 그냥 주둥이만 나불거리는 놈이었군.”

드디어 기대했던 반응이 나왔다.

서슬 퍼런 눈빛이 정확히 나에게 날아든다.

그래, 저 정도는 돼야 세계 랭킹 2위 하지.

“혼자서 밸런스팀을 박살 냈다면서?”

“소문이 벌써 났습니까.”

“너 같은 놈한테 당한 거 보니, 무슨 수준인지 알 것 같군.”

“그쪽도 다를 거 없을 겁니다.”

“하! 하하하!”

과장된 웃음소리가 돌아왔다.

그가 눈을 부릅뜨며 나에게 손짓한다.

“일어나. 죽여줄게.”

“흠, 이제 30분 남았는데…….”

담담한 표정으로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다.

“어떻게, 그 안에 가능하시겠습니까?”

[고유 스킬 : 마왕]

스스스스―.

검은 기류가 던전 안에 가득 퍼지기 시작했다.

노아는 잠시 경계하듯 주춤했지만, 그것도 잠시.

쿠구구구―!

그의 주변을 따라 공간이 진동했다.

“…….”

“…….”

우린 가만히 서서 서로를 응시했다.

서로를 관찰하며 기 싸움을 이어가던 그때.

“그만 하세요.”

클로이가 나서서 노아를 제지했다.

“네가 뭔데 나한테 명령이지?”

“상황종료 됐어요. 이제 그만 하세요.”

“……뭐?”

그녀가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기자들 앞에 선 웨슬리 사무총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마이크 앞에서 입을 열었다.

「조금 전 한국 협회를 비롯해 책임자를 만나 대화를 해본 결과, 양측 간에 오해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담담한 목소리.

「그러므로 현 시간부로 한국 토벌 조직을 카르텔로 규정했던 발언을 정식으로 철회하는 바이며, 아울러 정확한 확인 절차 없이 섣불리 판단한 것에 진심 어린 사과를…….」

화면을 보다 보니 자연히 미소가 지어졌다.

“당신 요구대로 규정 철회했습니다. 이제 물건 넘기고 토벌 진행하세요.”

클로이의 요구에 나는 핸드폰을 꺼내 김민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말씀하세요, 선생님.」

“아직 애들 던전 앞에 대기 중이지?”

「네. 지금 바로 토벌 진행하면 되나요?」

“아니… 전원 철수시켜.”

그 순간, 클로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새끼들이 끝까지 수작질이네.”

“…….”

설마 내가 모를 줄 알았는가.

내가 기자회견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고.

사무총장이 이전 발언을 철회하는데 플래시 하나 안 터지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냥 끝까지 가보지, 뭐.”

전화를 끊었다.

협상은 결렬이네.

***

“철수… 하래요.”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에 김민주는 퍽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물론 전해 들은 한유빈 또한 마찬가지였다.

“네, 네?! 이제 20분도 안 남았어요! 지금 당장 토벌 시작 안 하면, 정말 소멸할 거라고요!”

“…….”

“정말 토벌 안 할 거예요?! 저러다 진짜 죽어요! 우리가 누구 보고 여기까지 왔는데!!”

한유빈이 격양된 목소리로 설득했지만, 김민주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고작 이런 일 때문에 대표님 죽는 꼴 못 봐요. 민주 씨가 안 하면 나라도 토벌 진행 요청할 거예요!”

“…….”

김민주는 고개를 떨어트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먼저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니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우리가 멋대로 토벌해 버리면, 김준우가 목숨까지 걸고 진행하려던 거래가 무용지물이 된다.

하지만 토벌하지 않으면, 김준우를 잃는다.

그녀로선 무엇 하나 고를 수 없는 상황.

그렇게 인생 최악의 선택지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죄송해요, 선생님…….’

이내 그녀가 마음을 굳혔다.

“토벌… 진행해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김준우의 명령을 어기기로 결정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