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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은 예상대로 금방 끝이 났다.
오렌지 등급의 고위험도 던전, 게다가 패턴 분석이 어려운 악마형 몬스터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토벌 인원이 전 랭킹 1위와 현 랭킹 1위인데.
‘애초에 저놈 한 명이 웬만한 길드급 전력과 맞먹는 수준이니…….’
가벼운 운동을 한 것처럼 작게 숨을 헐떡이는 그를 보며 중얼거렸다.
어쨌든 토벌도 완료됐겠다, 슬슬 마무리하고 나가려던 그때였다.
“이제 대답해 줄 때가 된 것 같은데.”
노아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어왔다.
보아하니 애초에 토벌 따윈 안중에도 없었던 모양이다.
“내 여동생에 대한 일,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흐음… 설명하기 좀 어렵긴 한데.”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아영과 클로이를 슬쩍 흘긴 후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사실 당신에 대해선 이것저것 아는 게 많습니다.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백인 부모에게 입양되었지만, 줄곧 가정폭력에 시달렸다. 뭐 그런 것들…….”
“……!”
“그러다가 이능력이 발현되고 나선 양부모를 던전에 처박았다죠, 아마?”
순간 노아의 동공이 흔들렸다.
“뭐 아무튼 그렇게 동생과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당신은 운 좋게 꽤 괜찮은 길드에 들어가게 됐고, 동생도 미국 지부 청소부로 들어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작업 중 사고로 사망했죠.”
“시발. 대체 어떻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끝을 흐린다.
참 나, 어떻게 알고 있긴.
회귀 전에 네가 국제 협회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려는 걸 막으러 갔을 때, 본인이 직접 다 말한 건데.
“뭐, 내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설명해드릴 순 있는데……. 그것보다 진짜 궁금해야 할 건 따로 있지 않습니까?”
“뭐?”
“당신 여동생… 정말로 사고로 죽었을까요?”
[고유 스킬 : 아포칼립스]
[고유 스킬이 지속되는 한, 시전자의 모든 스테이터스가 지속적으로 상승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스킬을 발동하며 내 멱살을 움켜쥐었다.
노아 웨스턴우드.
가디언 클래스로 세계 랭킹 1위를 달성한, 역대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인 헌터.
하지만 높은 방어력과 체력으로 아군을 지켜주는 여느 가디언들과 달리, 그의 클래스는 조금 특별하다.
그가 지키는 건 아군이 아니라, 오직 본인 한 명뿐이다.
‘특히나 각성 스킬이 꽤 까다로운 놈이기도 하고…….’
아포칼립스 각성 스킬, 최후의 생존자.
스킬의 효과로 놈은 상대가 많을수록, 그리고 전투가 길어질수록 무적에 가까워진다.
덕분에 쉽게 죽일 수도 없을뿐더러, 만약 스테이터스가 최대치에 다다르면…… 나조차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너…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간 그가 위협적인 목소리로 묻는다.
“글쎄요. 여기서 더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똑바로 대답해! 죽고 싶지 않으면!”
“보는 눈이 있지 않습니까. 정 더 듣고 싶으시면… 따로 날짜를 잡도록 하죠.”
“아니, 난 지금 당장 들어야겠어. 말 못 하겠다면 죽여서라도 불게 할 거야.”
“쓰읍. 저 없이 던전을 나가면 밖에 있는 제 직원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까?”
“그놈들이 날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나?”
“…….”
그러고 보니 그러네.
아무리 김민주, 한유빈 듀오라고 해도 이놈한테는 어림도 없겠지.
“그러니까 제 말은 그 이후 말입니다. 거래도 끝난 마당에 멋대로 남의 나라에서 전투를 벌이는 건 본부에서도 좋게 보지 않을 겁니다. 자칫하다간 당신이 원하는 걸 찾기도 전에 잘릴지도 모르죠.”
“…….”
다행히 그 설득은 먹힌 건지 노아의 기세가 점차 사그라졌다.
아무렴, 본인도 의심하고 있지 않은가.
동생의 죽음에 본부가 개입돼있을 거라고.
그래서 회귀 전, 국제 협회를 상대로 그렇게 난장을 벌인 거다.
아마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국제 협회에 잠입했을 거다.
기껏 들어갔는데 아무런 수확도 없이 나갈 수는 없겠지.
“……날짜 잡아.”
“그건 추후 연락을 드리죠.”
“만약 이러고 그때 가서 모른 척하면…… 정말 각오해야 할 거야.”
“명심하도록 하죠. 아, 그리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예. 만날 때 당신이 가져오셔야 할 게 있습니다.”
애초에 내 미끼를 물어버린 이상, 처음부터 놈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본론을 꺼냈다.
***
분할 던전을 빠져나온 직후, 우린 별다른 인사도 없이 각자 갈 길로 걸음을 옮겼다.
노아와 클로이가 멀어진 걸 확인한 이아영 이사가 곧바로 물었다.
“토벌하고 나서 그 남자랑 무슨 얘기한 거예요?”
“뱅크 아이템이 그쪽으로 넘어가는 게 불안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미끼를 좀 던졌습니다. 물지 않곤 못 배길 미끼.”
“……네?”
흠,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최대한 짤막하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저 노아라는 사람 말입니다. 사실 국제 협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동생이 미국 지부에서 일하다가 사망했거든요.”
“음? 그런데 왜 지금은…….”
“의심하고 있는 겁니다. 사고가 아니라, 뭔가 다른 일이 있었을 거라고. 그래서 PB 코퍼레이션에서 영입 제안이 왔을 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겠죠. 직접 조사해볼 수 있을 테니까. 그걸 빌미로 관심을 좀 끌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여동생 이야기를 꺼낸 거예요?”
“예. 뭔가 알고 있는 듯 이야기를 흘리면 분명히 반응이 올 테니까요.”
실제로 바로 반응이 오기도 했고.
“아무튼, 토벌 끝나고 정보를 조금 흘려줬습니다. 아마 조만간 소식이 오겠죠.”
“그 말은… 당신은 그 사람 여동생이 왜 죽었는지 알고 있는 거예요?”
“……아뇨.”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거기까진 본인이 말 안 해줬는데.
“네, 네? 본인도 모르면서 막 던진 거예요?! 그것도 가족 일을?!”
“그렇게 막돼먹은 놈은 아닙니다. 뭐… 저도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그 사건, 솔직히 좀 구린 냄새가 나긴 하거든.
뭔가가 있는 건 분명하다.
무엇보다…….
‘뭐… 저쪽 친구 일이랑 비슷한 부분도 있고.’
“어쨌든 그건 나중 일이고. 그때까진 우리 일에나 집중합시다. 오늘부터 꽤나 바빠질 테니.”
“……알았어요.”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과 합류했다.
“죄송합니다…….”
김민주가 나를 보자마자 곧바로 허리를 푹 숙인다.
왜 이러나 싶어 당황하기도 잠시, 금세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내가 분명 후퇴하라고 지시했을 텐데.”
“…….”
“왜 토벌을 진행한 거야?”
한참을 우물쭈물하던 김민주가 끝내 입을 열었다.
“아직…….”
“뭐?”
“아직 월급 못 받아서요.”
“…….”
…뭐라고?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건가?
귀를 의심케 하는 대답에 잠시 생각이 멈췄다.
하지만 하루 이틀 이상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라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쯧…… 그래, 어차피 예상한 일이기도 했고.’
물론 내 명령을 어긴 건 사실이다.
자칫하면 계획이 틀어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목적은 이뤘고…….
‘덕분에 산 것도 사실이고.’
한마디 더 해줘야 하나 싶었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진 않았기에 그만두기로 했다.
이전처럼 일일이 지적받을 정도로 본인 잘못을 모를 애도 아니고.
“됐다. 다음부턴 잘해.”
“…네, 네!”
그녀를 뒤로하고 준비해뒀던 차량에 탑승했다.
때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뉴스 봤다, 어떻게 잘 마무리했냐?」
“네, 협회장님. 잘 마무리했습니다.”
「수고 많았다. 네 덕분에 우리뿐만 아니라, 한국 전체가 살았어.」
“칭찬이 너무 과합니다.”
「과하긴 시벌, 너 아니었으면 진짜 X 됐어 인마!」
왜 갑자기 욕을 하고 그럴까.
「그, 아무튼 이번에 수고한 대가로 선물을 좀 준비해뒀다.」
“……예?”
「저번에 네가 말한 그 흡수 건 있잖냐. 카르마 코퍼레이션을 협회에 넘겨준다는…….」
“아, 네네. 어떻게, 생각해보셨습니까?”
「내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건 별로 메리트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예 이참에 협회를 해체할 생각이다.」
“…….”
뭐?
지금 뭐라고?
“협회장님… 혹시 약주 하셨습니까?”
「아니? 맨정신이다.」
“…….”
저딴 개소리를 맨정신에 뱉었다는 게 더 충격이네, 시발.
“협회장님, 지금 어디십니까?”
「본부인데.」
“거 꼼짝 말고 계십쇼. 제가 지금 바로 갈 테니까.”
하여간, 이놈이고 저놈이고 제정신인 사람이 없다니까.
***
거래를 마친 후, 클로이와 노아를 태운 배가 인천항을 출발한 지 얼마 안 된 시각.
“그래서…….”
뱃머리에서 생각에 잠긴 노아에게 클로이 팀장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한 거죠?”
“이야기라니?”
“토벌 직후에 말이에요. 멱살까지 잡으시던데.”
“……그냥 또 시비를 걸어와서.”
노아는 애써 대수롭지 않은 척 대답했다.
“당신 성격에 잘도 참으셨네요.”
“나도 공과 사는 가릴 줄 알아. 엄연히 PB 코퍼레이션 소속이니, 업무 내용만 따라야지.”
무난하게 대답했건만.
클로이는 여전히 꽤나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그나저나 던전에서 김 대표가 말했던 여동생 이야기는 뭐죠?”
“……별거 아니야.”
“국제 협회 소속 청소부였다고요? 난 그런 소리 처음 듣는데.”
“이봐.”
계속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던 노아가 슬그머니 노기를 드러냈다.
“별거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선배한테 못 하는 말이 없네요.”
“대접 바라는 거면 관둬.”
“기대도 안 했어요.”
클로이는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 등을 돌렸다.
한편 노아의 시선은 자꾸만 슈트케이스로 향했다.
그리고 그때 울리는 전화.
에마 대표에게 온 거였다.
「뱅크 아이템, 확보하셨나요?」
“네. 문제없이 받았습니다. 그… 거래 과정에서 있었던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두려움에 가까운 사죄였다.
그녀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거래 현장에 있었다.
진행 상황을 보았다면 사무총장이 상당히 분노했을 게 분명했다.
자칫하면 그 화가 자신에게까지 번져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무총장님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하니까. 뭐 그건 둘째치고…….」
에마 대표가 본론을 꺼냈다.
「확인해볼 게 있어서 그러니 뱅크 아이템은 도착하는 대로 본부로 가져오세요.」
“통관에서 걸리지 않으려면 연구 장비로 들여와야 합니다. 그러면 무조건 연구소로 직행할 수밖에…….”
「노아 팀장에게 맡기면 될 거예요. 세계 랭킹 1위의 아이템이라면 그렇게 까다롭게 검사하진 않으니까.」
통화 내용이 들렸는지 노아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알겠습니다.”
클로이는 전화를 끊곤 잠시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노아에게 슈트케이스를 내밀었다.
“당신이 본부로 가져다줘야 할 것 같네요.”
“그러지.”
노아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마치 뱅크 아이템이고 뭐고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