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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언론이고 인터넷이고 할 것 없이 전국이 떠들썩했다.
[오늘 아침, 대한민국 이능차원관리 협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조직 해체를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이두식 협회장은 민영화 시장에서 비영리 기구로는 지속적인 토벌이 힘들 것이라 판단, 보다 안정적인 운영을 위하여 카르마 코퍼레이션과의 병합을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김준우 대표는 이번 합병을 기회 삼아 국내는 물론 해외 토벌 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갈 것이라 다짐하며…….]
온갖 매체들이 해당 소식을 전하기에 바빴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도배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인터넷 반응도 굉장히 뜨거웠다.
― 이…이게 머선 일이고…?
― 뭐임??? 그럼 이제 협회는 없어지는 거임?
└ ㄴㄴ없어진다기보단 그냥 이름만 바꾼 거 같은데
└ 그게 결국 없어진 거지;; 독립 기구가 기업한테 조직을 통째로 넘겨준 건데;;;
― 와 살다살다 협회가 사라지는 걸 보네;;
― 근데 진짜 이래도 되는 거 맞음?? 요즘 세상에 협회 없는 나라는 저쪽 윗동네밖에 없지 않나?
└ 민영화되고 나서 카르마가 협회 역할 다 해줬는데 이제 와서 없어진다고 별로 달라질 건ㅋㅋㅋ
└ ㅇㅇ 다른 기업도 아니고 카르마잖아 협회 없어도 충분함
― 그럼 이제 국내 토벌권은 거의 다 김준우가 관리하는 건가?
└ ㅇㅇ 다른 토벌 기업이 나오지 않는 한 그럴 듯
└ 나오긴 할까? 어떤 정신 나간 놈이 협회까지 흡수한 카르마랑 경쟁하려고 하겠음ㅋㅋㅋㅋ
― 와 씨 김준우가 ㄹㅇ로 대한민국 다 먹었네ㅋㅋㅋㅋ
└ 차라리 잘 됐음 한 명이 딱 중심 잡는 게 낫지ㅇㅇ
└ 솔직히 다른 놈이 독점했다고 하면 불안했을 텐데 ‘그’라면 뭐~
└ ㄹㅇㅋㅋ 든든하잖어~
인터넷에서 나는, 청소부로 시작해 불과 1년 만에 전국 토벌 시장은 물론 한국 협회까지 모조리 집어삼킨 미친놈으로 통하고 있었다.
다행히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물론 심심치 않게 비판적인 의견이 있긴 했다.
그중 토벌 시장을 독점해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돈 놀음을 하면 어쩔 거냐는 의견이 가장 대표적이다.
뭐, 그 밑으로 ‘김알못’이라는 댓글이 도배되는 바람에 금방 지워지긴 했지만…….
아무튼, 온갖 언론과 기사에서도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인력, 협회의 시스템 그리고 한별 그룹의 자본이 합쳐져 괴물이나 다름없는 조직이 만들어졌다고 떠들어댔다.
실제로 그 기세가 먹혀든 건지 토벌 시장이 다시금 정상화된 지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토벌 기업은 등장하지 않았다.
‘지금 추세로 보면 앞으로도 안 나올 것 같긴 한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시 예전처럼 하나의 조직이 한국 토벌 시장의 중심에 서게 됐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그 조직의 우두머리가 협회장이었지만 지금은…….
“어이구 김 대표! 아니, 아니지. 협회장이라고 해야 하나?”
“…….”
나라는 거겠지.
“제발 평범하게 불러주시죠.”
“하하하! 누구보다 평범하지 못한 놈이, 호칭만은 평범하고 싶나 보네.”
박인범 전 협회장이 호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사실 협회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 그에게 귀띔을 해줬다.
누가 뭐래도 지금의 협회는 그가 혈혈단신으로 세운 것이 아닌가.
협회가 해체한다면 아무리 은퇴를 했다고 해도 그에게 먼저 알리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했다.
뭐, 소식을 전하면서도 상당히 못마땅해할 줄 알았지만…… 의외로 그는 이 결과를 만족스럽게 여겼다.
“뭐, 아무튼 축하하네. 기어이 내 자리를 이어받는구먼.”
그가 건넨 악수를 떨떠름한 표정으로 받았다.
“아직 축하받을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상 크게 달라진 것도 없고요.”
“그게 무슨 소리냐. 엄연히 한국 토벌 시장의 정점에 섰는데. 그것도 기업가로서 말이야. 오히려 협회장이 된 것보다 더 대단한 거지.”
과장된 표현을 섞으며 추켜세워줬지만, 원해서 받은 자리도 아닌지라 기쁜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귀찮은 걸 떠맡아서 찜찜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조직 시스템이나 그런 거 말이야.”
박인범 전 협회장이 마주 앉으며 물었다.
“전반적인 시스템은 기존 협회의 것을 그대로 유지할 생각입니다. 뭐, 기획과 세부적인 사항들은 제 방식대로 하겠지만요.”
“음. 각 부서 담당 인사는?”
“생각해 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보다 잘해줄 겁니다.”
“더할 나위 없군.”
그가 씨익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어깨를 툭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깨 좀 펴라. 이렇게 좋은 날에 왜 그리 축 처져 있어.”
“……이번 합병 때문에 조금 돌아가게 생겨서 말이죠.”
“뭐, 제2의 국제 협회 건 말이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 이름을 달고 진행하는 거랑 기업 이름을 달고 하는 건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아무리 해외 지부 사업을 벌인다 한들 결국 비즈니스일 뿐이지, 국제기구로써 인정받을 순 없을 겁니다.”
“글쎄다. 그것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은데.”
“…예?”
“청소부로 입사한 지 고작 1년 만에 자네는 대통령한테 인정을 받았어. 아니, 대한민국 모두에게 인정을 받았지.”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겁니까?”
“야 인마! 만약 서민철이가 협회를 흡수해서 전국 토벌권을 독점하겠다고 했어 봐! 사람들이 지금처럼 박수 치며 가만히 냅뒀겠냐?!”
“…….”
그것참 단번에 와 닿는 가정이네.
“아무튼, 국제 협회 건도 지금에서 발전하면 되는 거야.”
박인범 전 협회장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카르마 코퍼레이션을 국제기구로 인정받으려 애쓸 필요 없이, 자네만 국제 사회에서 인정을 받으면 나머진 알아서 따라올 거라는 소리지.”
“그건… 너무 어렵군요.”
“무슨 소린가. 지금처럼만 하면 되는데.”
“……예?”
“……음?”
뭐야.
지금 같은 상황을 생각하는 거 맞겠지?
뭔가 약간 핀트가 어긋난 것 같은데.
그도 뭔가 이상한 걸 느낀 모양이지만, 이젠 그러려니 하는 태도로 넘겨 버렸다.
“아무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자네 마음대로 해봐. 이젠 방해할 사람도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다른 사람들이 들어왔다.
“오랜만입니다, 대표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가장 먼저 편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따라 김민주, 한유빈 그리고 이아영과 하성일이 모습을 드러냈다.
“축하드려요. 선생님.”
“아니, 이젠 협회장님이라 불러야 하나?”
“따지고 보면 협회는 아니니까…… 그럼 회장님?”
“회장님은 너무 늙어 보이지 않아요?”
각자 한마디씩 내뱉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뭐, 호칭은 각자 편한 대로 하시고…….”
더 소란스러워지기 전에 맥을 끊곤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이들을 부른 건 다름 아닌 나다.
“여러분들을 부른 이유는 앞으로의 인사이동 건에 대해 공지할 사항이 있어서입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준비해둔 서류를 확인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의 전신은 엄연히 협회니까 조직 구성은 기존과 동일하게 하려고 합니다. 먼저 이아영 씨.”
“네.”
“앞으로 지원팀과 더불어 이클립스 운영 총괄을 맡아주십시오.”
그녀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한유빈 씨는 던전 청소팀을 비롯해 특수 작전 기획 총괄을 맡아주시고요.”
“알았어요.”
“아, 그리고 부산물 처리 시설들 계약 관리랑 발주 관리도 해주시고. 또 연수원 청소 파트 교육도 맡아주십시오. 혹시 인원 모자라면 작전 파트 교육도 지원해주시고요.”
“……XX.”
아주 이젠 대놓고 욕을 하네.
물론 그녀의 도발에 반응하는 건 하수다.
가볍게 무시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편 팀장님은 이전처럼 계속 통제팀을 맡아주십시오. 그리고 하성일 씨는 해외 지부 사업 총괄을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맡겨주십쇼.”
“그리고 김민주, 너는…….”
이윽고 마지막 순서.
어딘가 긴장한 듯 보이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넌 이제부터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작전 본부장이다. 앞으로 국내 모든 토벌은 네가 담당해.”
“……네?”
”할 수 있지?“
“…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바로 서며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 저 정도 되는 녀석을 아직까지 작전팀장이나 시키고 있었던 게 오히려 낭비라면 낭비였지.
이걸로 기본 세팅은 끝났다.
함께 새로운 협회를 이끌어 갈 인재는 현재 상황에서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우리 목표는 1년 안에 국제 토벌 기구로 인정받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지만……, 한 가지는 주의해주셨으면 합니다.”
현재 상황 자체는 순조롭지만, 경계할 게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내 경험상 가장 끈질기고 지독한 녀석.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어도, 아무리 대단한 명성을 가져도 단 한 번에 상황을 밑바닥까지 처박을 수 있는 유일한 녀석.
“‘업보’에 꼬투리 잡힐 만한 짓은 하지 마십시오.”
“…….”
“…….”
모두가 뭔가 잘못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더 설명해 줄 생각은 없었다.
‘업보’란 것을 설명한다고 아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면 경고로썬 충분하고 잘 알아들을 거라 생각한다.
“뭣들 하고 있습니까. 할 이야기는 끝났으니 가서 일들 하세요.”
***
“자네도 참 자네야.”
종로 어딘가 작은 카페.
박인범과 이두식.
각각 1대, 2대 협회장을 위임했던 두 남자가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등 떠밀려 협회장이 된 것도 억울할 만한데, 이제 좀 괜찮아질 만하니까 다른 놈한테 조직을 통째로 넘겨줄 줄이야.”
“하하,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엔 없었습니다.”
“아쉽진 않나?”
“전혀요.”
이두식이 즉답했다.
“애초에 원해서 협회장이 된 것도 아니잖습니까. 까놓고 말해서 협회가 어떻게 되든, 토벌만 안정적으로 할 수 있으면 그만이고요.”
“그렇긴 하지.”
“무엇보다…… 형님도 염두에 두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언젠간 김준우, 그놈한테 협회를 물려줄 거라고.”
“……맞아.”
“뭐, 지금이 그때인 거죠.”
박인범은 커피를 홀짝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잠시 천장을 바라보며 넋두리를 뱉었다.
“난 가끔 김준우 그놈이 헌터가 됐으면 어땠을까 싶어.”
“실력 있는 놈이니 국내 탑 랭킹은 금방 달성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니, 국내가 아니라 세계 랭킹에서도 꿀리지 않았을 거다. 뭐, 내가 그놈 능력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잘만 한다면 국내 최초 S랭크…… 아니, 세계 랭킹 1위도 노려볼 만하지 않았을까.”
“에이, 랭킹 1위로 되겠습니까? 한 SSS랭크 쯤 달성했다고 칩시다.”
“야 인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갔지.”
“어차피 상상인데 뭐 어떻습니까.”
이두식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쯧, 뭐 아무튼 그놈이라면 헌터고 청소부고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존경받는 헌터가 됐을 텐데.”
“지금도 그러고 있지 않습니까.”
“…하하, 듣고 보니 그렇군.”
물론 이들이 김준우가 실제로 SSS랭크의 헌터였으며, 실제로는 모두에게 경멸받는 헌터였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는 김준우 그놈 어떻게 생각하나?”
“예? 방금 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아니. 사위로서 말이야.”
풉―.
이두식의 입에 들어갔던 차가 사방으로 튀었다.
“가, 갑자기 그게 뭔 개…… 아, 아니, 무슨 뚱딴지같은 말씀입니까?”
“아니, 듣자 하니 아영이랑 허구한 날 붙어 다닌다면서. 비슷한 또래 남녀가 그렇게 붙어 있으면 뭔 일이 나도 안 나겠냐?”
아니면 이미 났을 수도 있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혼잣말이 이두식의 귀에도 들어간 모양이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