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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헌터 협회 소속, 일본 도쿄 지부.
“본부에 대한 국제 사회의 시각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전 조사에서 큰 문제가 발견되진 않았으니 활동하는 데 지장은 없겠습니다만…….”
히나 보좌관이 지부장에게 보고하던 중 말끝을 흐렸다.
쇼이치 지부장이 전혀 듣지 않고 있었던 탓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굳이 보고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 아닌가.
한국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국가 전체를 카르텔로 규정했다는 건 그 사안이 매우 심각하다는 뜻이다.
애초에 장난이나 사소한 오해로 내릴 리 없는 규정이니 말이다.
그런데 ‘양측 간 오해’가 있었다며 카르텔 규정 일주일 만에 입장을 철회했다.
국제 협회에 대한 시각이 안 좋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쇼이치 지부장은 이마를 짚었다.
국제 협회의 평판이 떨어지는 건 이번 번복 사태 때문만이 아니다.
불과 며칠 전에 아프리카 지부 통합 사건으로 구설에 휘말려 전수 조사까지 들어가지 않았던가.
결과적으로 증거가 없다고 수사가 종료되긴 했지만, 국제 협회의 위치를 감안했을 때 이런 이슈가 자꾸 일어나는 건 좋지 않다.
‘아니, 사실 국제 사회가 본부를 어떻게 보든 우리랑은 상관없긴 한데…….’
어쨌든 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평판이 떨어지는 것 정도로 문제가 됐으면 그렇게 커질 수도 없었다.
설령 문제가 된다고 한들 각 지부에까지 피해가 갈 리도 없고.
중요한 건 국제 사회의 시선이 아니라… 각 국가의 국내 시선이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일본 협회에 있어 하라무라 가문의 시선이겠지.
하라무라 가문.
과거만 해도 작은 공방을 운영하는 대장장이 가문이었지만, 한 소문이 퍼지면서 슬금슬금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들이 만든 검이 몬스터를 상대로 특별한 힘을 발휘한다는 소문이었다.
뭐, 이 나라에선 오래전부터 요도니, 명도니 하는 소문이야 늘 있었지만, 이건 실제 사례가 존재했다.
몇 년 전, 레드 등급 던전에서 토벌대가 전멸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때 하라무라 공방제 검을 가지고 있던 C급 헌터가 홀로 보스를 쓰러트렸다.
이 사건은 삽시간에 일본 전역으로 퍼졌고, 하라무라 가문은 한순간에 명가로 도약했다.
이후 일본 내에 모든 검사가 하라무라 공방의 검을 찾기 시작했다.
심지어 검사 클래스가 아닌 헌터들도 검을 쓰는 기현상까지 생겨났다.
그들의 명성은 결국 국제 협회까지 퍼지며, 본부 쪽에서 먼저 인수합병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하라무라 가문이 일본 협회의 국제 협회 가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국제 협회 소속이 된 직후, 5대 공방장인 그놈은 검 외에 다른 무기도 제작하기 시작했다.
창, 둔기, 활, 트랜스폼 웨폰… 심지어는 총기까지.
국제 협회의 헌터 또한 너도나도 하라무라제 무기를 찾게 되었다.
암시장에선 하라무라제 검 하나가 수백억 원에 팔린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하라무라제 무기의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하다 보니, 그들의 영향력은 국내를 넘어 국제 협회마저 쥐고 흔드는 수준이 되었다.
그런 가문이 최근 국제 협회의 행보를 탐탁지 않게 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냥 변덕인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이슈가 터진 이후로는 아무 이유 없이 무기 수주를 거부하고 있으니…….
‘진작 기강을 잡아놨어야 했는데…….’
이전에도 바로잡을 시점은 분명 있었지만, 지금에 와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라무라 가문이 가진 영향력은 한 지부가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국제 협회 소속 헌터들은 여전히 그들의 무기를 찾고 있는데, 이렇게 갑자기 등을 돌려버리면…….
지부는 망한다.
최악의 경우, 국제 협회에서 손절할지도 모른다.
“공방에는 찾아가 봤어?”
“회견을 요청했지만, 만나주질 않습니다.”
“대체 원하는 게 뭐래? 이유라도 좀 알려주던가. 아무 말도 없이 잠수 타 버리면 우리보고 어쩌라는 거야!”
쇼이치 지부장은 결국 참다못해 목소리를 높였다.
하라무라 가문과 국제 협회 본부 사이에 낀 입장인 만큼 지금의 상황은 매우 곤란했다.
“직접적인 말은 없지만, 눈치를 보아하니 국제 협회에서 탈퇴하길 바라는 게 아닐지……. 그 가문, 예전부터 신뢰를 중요시하지 않았습니까. 더는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뜻일 수도…….”
히나 보좌관이 조심스레 덧붙였다.
쇼이치 지부장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워낙 보수적인 가문이니, 사실 그거 외엔 생각할 수가 없다.
“만약 국제 협회에서 탈퇴하면 우리에게 붙어줄 것 같냐?”
“그건 잘 모르겠지만, 탈퇴하지 않으면 이대로 영영 등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빌어먹을…….”
쇼이치 지부장은 넥타이를 풀어 재꼈다.
하라무라 가문과 국제 협회를 등에 업은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든든한 지원 덕에 전 세계 협회 중 규모 면에서 5위에 들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아직도 독립 협회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 협회를 그토록 신나게 까댔는데…….
든든한 지원자 중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모르긴 몰라도 어떤 식으로든 다른 한쪽의 보복을 각오해야 한다.
“……잠깐.”
그때, 불현듯 쇼이치 지부장의 머릿속에 번뜻 묘안이 스쳤다.
“생각해 보니까…… 하라무라 가문이 특별한 게 아니라, 그놈들이 가지고 있는 공법이 특별한 거 아닌가?”
“네, 네…?”
“공법만 있으면 만드는 사람은 딱히 상관없는 거 아니냐는 거지.”
“…….”
히나 보좌관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것이다.
“오히려 잘 됐어. 어떻게 해서든 공법만 손에 넣으면, 하라무라 가문을 내칠 수 있어. 언제까지 그 근본도 없는 가문 눈치만 볼 순 없지.”
“그럼 국제 협회 탈퇴는…….”
쇼이치 지부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그놈들 공법을 뺏어올 생각이나 하자고.”
***
“……시간 있냐고요?”
“예.”
한창 업무 중이던 한유빈 기획 본부장이 도끼눈을 뜨고 나를 쏘아봤다.
“왜, 또 시간 있으면 토벌 지원이나 나가라고요?”
“…….”
왜 이렇게 날이 서 있는 거지.
오늘 기분이 안 좋나?
“이번에 일본 지부에 출장 갈 건데, 같이 갈 수 있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
“그래서 시간 됩니까, 안 됩니까?”
“아, 그… 정말이에요? 저랑 같이 가는 거…….”
“그럼 뭐 이걸로 장난치겠습니까. 시간 없으니까 빨리 일정이나 확인하고 대답이나 주시죠.”
“자, 잠깐만요!”
한유빈 본부장은 이내 퍽 당황한 듯 서류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될 것 같아요. 다음 달까진 특수 작전도 없고.”
“잘됐군요. 그럼 내일모레 출국할 예정이니 준비해주세요.”
“그런데… 왜 하필 저예요? 아영 씨랑 민주 씨는 어쩌고.”
“둘은 필수 인원이지 않습니까.”
“……전 아니라는 거예요?”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비교적. 애초에 그쪽, 미국 지부에서 일하기 전에 일본 지부에서 몇 년 있었다면서요.”
“몇 개월이에요. 지부 간 협력 사업 때문에 잠깐 파견 갔다 온 게 다예요.”
“어쨌든 일한 적은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하죠.”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게 도통 성가신 게 아니다.
무서워서 뭔 말을 못 하겠네.
“그래서, 일본에는 왜 가는 건데요?”
“일단 지원 사업 계약이 명목이긴 합니다만…….”
“명목 말고 진짜 목적은요?”
“일본 지부가 국제 협회를 탈퇴할 거라는 찌라시가 돌고 있습니다. 그걸 확인하려고 가는 겁니다.”
한유빈 본부장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지더니 턱을 한차례 쓰다듬었다.
“아마 무작정 지원 계약 건으로 찾아가면 무조건 거절당할 거예요. 알잖아요. 게네들 자존심 드럽게 센 거.”
“어차피 상관없잖습니까. 진짜 계약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탈퇴할 건지 안 할 건지만 알아보러 가는 건데.”
“그걸 계약도 안 하는 사람한테 알려줄 이유는 없죠. 외부인한테 티를 낼 놈들은 더더욱 아니고요.”
“…….”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럼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습니까?”
“지부를 바로 공략하는 게 아니라, 그 주변부터 접근해야 할 거예요.”
“예를 들면?”
“흐음…….”
그녀가 생각에 잠기길 잠시.
“하라무라 공방부터 시작해보죠?”
꽤나 그럴싸한 해답을 내놓았다.
“유명한 공방이잖아요. 재료 수출 계약 건으로 접근하면 이야기는 나눠볼 수 있을 거예요. 운 좋으면 지부 상황도 알아낼 수 있을 거고요.”
티는 내지 않았지만… 실로 괜찮은 접근이다.
맨날 잡일만 시켜서 새삼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전 국제 협회 소속 작전팀장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경력은 아닌가 보군.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하고, 출국 준비부터 합시다.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주시고요.”
“알았어요.”
이야기를 마치고 사무실을 빠져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아닌 게 아니라,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조짐이었다.
***
도쿄 근교, 사이타마현.
하라무라 공방 앞.
“…….”
“…….”
우린 굳게 닫힌 공방의 문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하고 말았다.
문 앞에 붙은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지부 관계자 출입금지, 수주 계약 건 일절 사절]
“……뭡니까? 이게.”
“영업을…… 안 한다는 뜻인 거 같은데요.”
“그걸 몰라서 물어본 것 같습니까?”
“…….”
뭐?
공방에 접근이 어쩌고 어째?
‘이 인간을 믿은 내 잘못이지…….’
한숨을 푹 내쉬며 등을 돌렸다.
마침 길거리를 지나가는 한 중년 여성이 있길래 붙잡곤 물었다.
“저… 실례합니다. 말씀 좀 여쭤도 될까요?”
“예? 뭔가요?”
“다른 게 아니라, 여기 언제부터 문 닫은 건가요?”
“아 하라무라 씨? 며칠 됐죠.”
중년 여성은 당시의 상황을 상기하는 듯, 눈을 위로 뜬 채 말을 이었다.
“한 일주일 전쯤인가? 요 앞에서 웬 사람들이랑 막 싸우시더라고요. 시비라도 걸린 줄 알았는데, 보니까 지부 관계자들 같았어요.”
“지부와 마찰이 있었다는 건가요?”
“나야 모르죠. 듣자 하니 공법을 사겠다느니 했던 것 같은데. 뭐, 하라무라 씨가 팔 리가 없겠죠.”
그녀가 어깨를 으쓱인다.
지부 사람들이 공법을 사겠다고 찾아왔다?
뭔가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이네.
“그럼 지금 하라무라 씨는 어디에 계신가요? 혹시 자택 주소나…….”
“글쎄요. 저도 그것까진 모르겠는데…….”
“알겠습니다. 실례 많았습니다.”
“호호, 아니에요.”
여성은 그 말을 끝으로 가던 길을 재촉했다.
“…….”
“…….”
또다시 찾아온 침묵.
나는 고개를 털며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죠. 원래 계획대로 갑시다.”
“지부에 직접 알아보려고요?”
“그것밖에 더 있습니까.”
죽치고 있어봤자 아무런 소득도 없지 않은가.
이럴 바엔 정면 돌파라도 해보는 수밖에.
‘무엇보다…… 둘 사이에 뭔 일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렇게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던 그때였다.
“저…….”
“……?”
웬 젊은 남자가 자전거를 끌고 쭈뼛거리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호, 혹시 하라무라 씨 손님이신가요…?”
나와 한유빈은 잠시 서로 눈을 맞췄다.
“네.”
“네, 맞아요.”
마치 처음부터 정해둔 것처럼 동시에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