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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받지 말 걸 그랬나…….”
김준우 대표가 돌아간 후, 쇼이치 지부장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김 대표가 내민 리베이트에 혹해서 거래를 받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책이 없던 까닭이었다.
게다가 시범 테스트까지 요청하다니.
이 정도 규모 계약에서 그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만, 덕분에 이쪽만 곤란해졌다.
전해 듣자 하니 저 김준우라는 인간, 촉이 장난이 아니라는 모양이다.
실제로 만나 보니 그 말이 사실인 듯했다.
아마 시범 테스트는 어떻게 눈속임으로 넘긴다고 해도, 이후에 무기를 직접 받아본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단번에 눈치챌 것이다.
사실 국제 협회 헌터들에게서도 몇 번 컴플레인이 들어오긴 했다.
하지만 하라무라 공방에서 자격을 갖춘 자만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며 넘겨버렸다.
일본에 대한 환상이 있는 서양인들은 그걸 철석같이 믿었기에 지금까진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한국은 다르다.
정신론 같은 게 통할 상대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일본에 적대적인 놈들이라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반드시 물고 늘어질 것이다.
이상하게 일본과 관련된 일이라면 전 국민이 들고일어나지 않는가.
이번 역시 무기를 써본 적 없는 일반인들까지도 미친 듯이 달려들 게 뻔하다.
‘하여간 100년 전이고 지금이고 달라진 게 없는 놈들이라니까…….’
쇼이치 지부장은 그 이해할 수 없는 국민 의식에 혀를 찼다.
뭐, 사실 한국인들이 빽빽거리든 말든 귀 막고 무시하면 그만이다.
실제로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우리를 건드릴 수도 없으면서 그저 말로만 지껄일 뿐이니까.
다만, 카르마 코퍼레이션이 그들 맨 앞에 있다면 거슬린다.
한국 협회를 흡수하면서 민영화된 토벌권을 독점한 아시아 최대의 토벌 기업이자 독립 협회.
심지어 최근에는 해외 곳곳에 지부까지 두면서 몸집이 무시무시하게 커졌다.
카르텔 지정이라는 극단의 조처를 내렸던 본부가 일주일 만에 입장을 철회할 정도의 영향력.
이건 무시할 수가 없다.
이런 놈들에게 명분을 줬다가는 그걸 가지고 뭔 일을 벌일지 모른다.
‘이제 와서 계약을 엎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문제없이 넘길 수 있을까.
한참을 머리를 싸맨 채 고민하던 쇼이치 지부장은, 이내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지원팀 비품 창고로 걸음을 옮겼다.
굳게 잠가둔 창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결박된 하라무라와 다시 마주했다.
“선생님.”
“…….”
“그 특별한 무기, 혹시 진짜로 만들 수는 없겠습니까?”
쇼이치 지부장의 막무가내 요청에 하라무라는 고개를 저었다.
“진짜로 만들 수 있었으면 내가 왜 이 고생을 했겠나. 애초에 말도 안 되잖나. 자격을 갖춘 자에게 특별한 힘을 주는 무기라니, 무슨 영화도 아니고…!”
“방금 카르마 코퍼레이션 대표가 하라무라 공방과 수주 계약을 하고 싶다고 찾아왔습니다.”
“……뭐?”
하라무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저기 퍼진 소문 때문에 그놈들도 탐이 나는 건지, 꽤나 거액을 제안하더군요.”
“설마… 받아들인 건가?”
“네.”
“뭐, 뭐?! 거짓말인 걸 알면서 왜 그걸…!”
“압니다. 눈치 빠른 족속들이라 금방 눈치채겠죠. 심지어 의심도 많아서 시범 테스트까지 요청하더군요.”
쇼이치 지부장의 눈빛에 날이 시퍼렇게 섰다.
“그러니까 이렇게 부탁하는 거 아닙니까.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진짜로 좀 만들어 달라고.”
“…….”
하라무라는 고개를 떨어트렸다.
“……난 못하네.”
떨리는 목소리에 실린 대답에 쇼이치 지부장이 깊은 한숨을 쏟아 냈다.
“공법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짜로 무기를 만들 수도 없고…….”
“…….”
“제가 선생님을 살려 둘 이유가 있을까요?”
“……!”
하라무라의 얼굴에 공포가 자리했다.
어깨가 크게 떨리기 시작하는 그를 보면서 쇼이치 지부장은 미소를 지으며 다독였다.
“겁먹지 마세요. 지금 당장 어떻게 한다는 건 아니니까.”
쇼이치 지부장은 결국 최후의 수단을 꺼내 들었다.
“그럼 이건 어떻겠습니까?”
“무슨…?”
“일단 시범 테스트는 저희 쪽에서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거래가 진행되면… 선생님께선 카르마의 무리한 요구에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겁니다.”
그래, 이것밖엔 방법이 없다.
일단 거래만 진행되면 어쨌든 이쪽이 얻을 수 있는 건 모두 얻는다.
이후에 하라무라가 카르마를 언급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국제 협회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공분을 사게 되겠지.
하라무라 가문의 소문이 거짓말이었다는 것도 묻을 수 있는 동시에, 카르마에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
혹여 카르마가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방법이 없다.
이미 진실을 알고 있는 자는 죽었고, 본인들이 그 책임을 지게 된 이상 누구도 그 말을 믿어 주진 않을 거다. 한낱 변명으로 치부되겠지.
“……뭐, 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소린가?!”
물론 당사자는 납득할 수 없겠지만.
“당연히 값은 후하게 쳐 드리겠습니다. 아드님 학비도 전액 지원해드리고, 졸업하면 저희 지부에서 일할 수 있게 신경 써드리죠.”
“이, 이런 법이 어디 있나! 사람들이 알면 가만히 안 있을…!”
“선생님.”
쇼이치 지부장이 그의 말을 끊었다.
“선생님이 죽고 나면 말할 사람이 없을 텐데,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
“그리고 말입니다. 여태까지 저희를 상대로 그런 거짓말을 해오셨으면, 마무리가 이렇게 될 거라는 각오 정도는 하셨어야죠.”
하라무라의 눈빛에서 생기가 빠져나갔다.
그동안 자신이 했던 거짓말이 기어이 자신의 목을 조여 오는 걸 느꼈다.
“아무튼, 시범 테스트 때까지는 불편하시더라도 이곳에서 지내시지요. 끼니는 제때 챙겨드릴 테니.”
쇼이치 지부장은 그 말을 뒤로하곤 비품 창고를 빠져나왔다.
“공법은 받아내셨습니까?”
밸런스팀 소속 일본 파트, 현장직.
타치바나 구미 동강회를 박살 내고 하라무라를 데려온 남자와 곧바로 마주했다.
저자는 아직 공법이 거짓인 걸 모른다.
만약 사실을 들킨다면 본부에 다이렉트로 보고를 넣겠지.
쇼이치 지부장은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지독한 놈이군요. 그깟 공법이 뭐라고 입을 열지 않는 건지.”
“저한테 맡겨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 아닙니다. 저희 일은 저희가 해야죠.”
어물쩍 넘어가자 남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돌아갈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해주십시오.”
그렇게 그가 등을 돌리려는데, 쇼이치 지부장이 그 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 혹시 카르마 코퍼레이션에 대해 잘 알고 계십니까?”
“……예?”
“전에 한국 파트장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쪽 대표가 저희에게 거래를 요청했는데, 좀 알고 있는 게 있으면…….”
갑자기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혹시 김준우 대표가 왔다 갔습니까?”
“예, 예.”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까? 가령 과하다 싶을 만큼 큰 액수를 제안했다거나.”
“아, 네 맞습니다. 그걸 어떻게…….”
그 순간, 남자가 피식 실소를 뱉었다.
“당신, X됐네.”
“네, 네? 그게 무슨…!”
쇼이치가 다급하게 되물었지만, 남자는 더 듣지도 않고 자리를 떴다.
***
“오, 사무실이 꽤 널찍하군요.”
히가시 구미 본부.
일본 언론과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꽉 잡은 거대 조직의 사무실로 들어서며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다.
“뭐야? 너 누구야.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히가시 회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소리쳤다.
“그건 알 거 없고. 지금 시간부로 히가시 구미는 제가 맡을 생각인데, 어떻게 곱게 넘겨주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하!”
히가시 회장이 헛웃음을 뱉었다.
“너, 혹시 그 새끼냐? 최근에 전국 조직들을 개박살 내고 있다는?”
“벌써 소문이 여기까지 났습니까?”
“이봐, 우린 그 머저리 새끼들이랑 달라. 여기까지 기어들어 온 이상 곱게 죽진 못할 거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일주일 동안 9개 조직을 만났는데, 다들 똑같은 말을 하더군요. 혹시 대본이라도 있는 겁니까?”
“하, 이 미친놈이!”
그 순간, 사무실에 모여 있던 부하들이 나를 둘러쌌다.
“숨만 붙여놔. 마무리는 내가 할 테니까.”
[고유 스킬 : 비스트 - 고릴라]
[고유 스킬 : 맹호쌍검]
쾅―!
스윽, 스으으윽―!
회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스킬이 맹렬하게 쏟아졌다.
‘자격이 정지된 이능력자들을 고용한 건가?’
시대에 발맞춰 가려는 노력이 보기 좋네.
쏟아지는 스킬들을 피하면서 뒤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내 역할은 어디까지나 시선 끌기에 불과하다.
“뭐 하고 있습니까? 후딱 안 끝내고.”
“하아…….”
깊은 한숨 소리와 동시에 스킬이 발동됐다.
[고유 스킬 : 하이패닉 버서커]
스으으으―.
한유빈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움직였다.
몸 주변에 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며 스킬의 효과가 자리를 잡는다.
빠각―.
“……?”
“……?!”
한 방에 제일 앞에 있던 놈의 턱이 돌아갔다.
보이지도 않는 공격에 조직원들이 순간 당황했지만…….
퍽, 퍼억―.
빠악―!
콰직, 쾅―!!
“……으억, 어억.”
“끄으으…….”
“어버, 어버버…….”
이변은 없었다.
30초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이 공간 안에서 날뛰던 모든 조직원이 자신의 턱을 부여잡으며 주저앉았다.
“…….”
히가시 회장은 그 짧은 순간 구석에 몸을 숨겼다.
거참, 상황 파악 하나는 빠르네.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너, 넘겨 드리겠습니다! 사, 살려만 주십쇼!!”
“…….”
아직도 말도 안 했는데 그는 바닥에 넙죽 엎드린다.
……태세 전환도 빠르네.
뭐, 어쨌든 이걸로 여기도 마무리됐다.
“대충 준비는 됐군요. 수고 많았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더 세면서 왜 나만 시켜요?”
“누가 하든 무슨 상관입니까. 그리고 뭐, 그쪽한테도 기념이지 않습니까.”
사무실을 슥 훑었다.
“일본 전역의 야쿠자 조직을 통합시킨 장본인이 됐는데.”
“……별로 안 기쁜데.”
참 나, 뭘 모르네.
도쿄에 요시오미 구미, 오사카에 다케다 구미, 교토에 오니즈카 구미 그리고 지금 나고야에 히가시 구미까지.
정치, 언론, 경제를 포함해 일본 대부분 분야에 뿌리내리고 있는 거대 조직들을 모두 손에 넣지 않았는가.
이건 다시 말해 일본 전역을 손에 넣었다는 거나 다름이 없는 소리다.
그것도 단 두 명…….
아니지, 단 한 명이서.
“그래서… 지부를 인수하는데, 깡패들 통합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
아니, 그걸 이제 와서 물어보는 건가?
그럼 일주일 동안 이유도 모르고 수백 명을 패고 다닌 거라고?
……그냥 즐긴 거구만.
하여간 어떤 의미로 보면 무시무시하다니까.
“국제 협회 본부가 일본 지부를 잡고 있는 이유가 뭔 것 같습니까?”
대뜸 묻자 한유빈이 잠시 고민하던 끝에 입을 열었다.
“경제력, 연구시설, 하라무라 가문 정도?”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진짜 이유는 일본 지부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동아시아를 견제할 수 있다는 겁니다.”
“네?”
“중국, 한국을 포함해서 주변국이 모두 독립 협회입니다. 물론 지금이야 다들 잘 나가고 있지만, 독립 협회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죠.”
“국제 협회 지부들처럼 다른 협회와 교류하기 힘들다는 거요?”
“오……!”
생각지도 못한 정답에 나는 작게 감탄했다.
이럴 때 보면 머리는 꽤 쓰는 것 같은데…….
“맞습니다.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독립 협회가 몸집을 키우긴 거의 불가능하죠. 그래서 우리가 해외 지부 사업에 열을 올리는 거기도 하고요.”
“그게 일본 지부랑 무슨 상관이에요?”
“만약 내부에서 처리하기 힘든 던전이 출현하기라도 하면, 반드시 주변국에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일본 지부는 동아시아 독립 협회들의 최후의 보루라는 거죠.”
그제야 한유빈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겠네요.”
“그것만으로 일본 지부는 국제 협회에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독립 협회가 멋대로 몸집을 키울 수 없게 하는 브레이크가 되어주니까요.”
나는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만약 일본 지부가 더 이상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어떨까요?”
“본부가 일본 지부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어진다?”
“그렇죠.”
“그럴싸하긴 한데…… 그게 말처럼 쉽게 될까요?”
“그래서 일주일 동안 이 고생을 한 거 아닙니까.”
시선을 아래로 던졌다.
“어떻게, 저희를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
히가시 회장은 잠시 주춤하다가 이내 고개를 땅에 처박았다.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목숨을 걸고 하겠습니다.”
“…….”
과하다 과해.
원래 이쪽 사람들은 다 이런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젓고 있던 그때, 하성일 본부장에게서 일주일 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예. 본부장님.”
「대표님……. 지금 여당에서 토벌권 제한에 대한 법안을 상정했습니다.」
“…….”
「아마 내일 발표가 날 것 같습니다. 지금 여론으로 봤을 땐 통과될 확률이 높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희도 되도록 빨리 준비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모쪼록 빨리 진행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전화를 끊고는 한유빈에게 말했다.
“이제 슬슬 갑시다.”
계약 마무리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