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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어딘가.
방금 막 토벌이 완료된 던전 앞에서, 나와 청소 2팀원들은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장비를 체크하는 중이었다.
분주하게 작업 준비를 하는 팀원들 사이에서, 나는 그들이 가져온 장비를 뒤적거리며 딴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 방호복 내가 청소팀일 때 쓰던 건데 이걸 왜 아직까지 쓰고 있어…?’
심지어 방독면과 기타 청소 장비들도 모두 옛날 것이다. 그마저도 여분이 충분하지 않은지, 며칠 동안 똑같은 장비로 작업을 한 모양이다.
냄새며 얼룩이며, 아주 개판이네.
“어, 어…? 대, 대표님은 안 들어가셔도 됩니다. 작업은 저희끼리 할 테니 여기서 기다리시는 게…….”
내가 장비를 만지작거리고 있자, 배 팀장이 화들짝 놀라며 나를 말렸다.
“아뇨. 동행하겠다고 했는데, 정작 작업을 안 하면 너무 염치없지 않습니까.”
“마, 말씀은 감사한데… 대표님이 쓰기엔 장비도 더럽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왜 아직도 이런 장비를 쓰고 있습니까? 분명 최근 던전 관리부에 예산 편성도 해줬는데…?”
던전 관리부.
이번에 협회와 합병하면서 내가 새롭게 만든 부서다.
이전 협회에선 작전, 지원, 통제, 청소팀이 모두 이능운용부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그 때문에 비교적 힘이 약한 청소팀은 매번 다른 팀에게 간섭을 당하지 않았던가.
그것을 막기 위해선 토벌 팀과 비토벌 팀을 따로 나눌 필요가 있었다.
나는 기존 청소팀을 이능운용부에서 빼서 아예 새로운 부서를 편성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획 본부 소속의 던전 관리부.
책임자는 박근태 부장.
그 밑에 문소연 청소과장.
청소과 아래에는 던전 투입 파트인 청소팀과 후속 관리 파트인 부산물 처리팀으로 나누었다.
이렇게 아예 지휘 체계가 다르면 이전처럼 작전팀이 청소팀에게 함부로 간섭하는 일도 없을 거고, 보다 체계적인 작업이 가능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간섭은 둘째치고 예산이 공중분해 될 줄이야.
‘설마 박근태 부장이 삥땅 쳤을 리는 없고…….’
이해가 안 가는데.
“그, 그게…….”
배 팀장은 여전히 나에게 말하기 껄끄러운 건지 자꾸만 말끝을 흐렸다.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우범진 사원을 바라봤다.
“이번 일로 임시 보관소를 이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사설 유통 업체를 고용하다 보니, 장비 교체가 힘들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역시나 청산유수다.
“무엇보다 컴플레인을 걸고 있는 몇몇 아파트 단지에서 정신적 피해 보상 명목으로 합의금을 요구하기도 해서…… 그쪽으로도 지출이 큰 모양입니다.”
“대단하군요. 신입이라면서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습니까?”
“모두 선배님들이 말씀해주신 내용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배 팀장과 김 대리를 바라본다.
‘새끼, 볼수록 마음에 드네.’
흡족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도 잠시.
피 같은 회사 예산이 엉뚱한 곳으로 새고 있네.
죽 쒀서 개 주고 있는 꼴이 아닌가.
‘이건 어떻게든 해야겠는데…….’
일단 어느 부분이 어떻게 문제인지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으니.
“뭐, 알겠습니다. 일단 작업부터 들어가시죠. 더 지체하면 위험해질 테니.”
“예, 예? 대표님도 들어가시려는 겁니까?”
“그럼 저 혼자 밖에서 뭐 합니까. 사람 많으면 작업도 빨리하고 좋죠.”
“아… 그, 그래도…….”
“걱정 마세요. 방해될 정도는 아닐 테니까.”
나는 서둘러 방호복을 착용했다.
예산 편성을 했는데도 이런 장비를 쓰고 있는 게 어이가 없긴 했지만, 사실 내가 청소팀일 때에 비하면 이 정도는 깨끗한 편이지.
“그럼 다들 타이머 맞추시고, 준비되셨으면 들어갑시다.”
내가 먼저 던전으로 들어섰다.
***
“아니, 그래서 우리 동네에 있는 임시 보관소는 대체 언제 폐쇄할 거예요?”
기획 본부, 던전 관리부.
접견실에서 박근태 부장에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중년 여성은 플래티넘 파크 단지의 부녀회장, 강순복이었다.
박근태 부장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주만 벌써 몇 명째인가.
마음 같아선 호통쳐서 돌려보내고 싶지만, 독립 기구였던 협회와 다르게 엄연한 기업인 카르마 코퍼레이션은 시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자칫하다간 저번처럼 여론이 악화하거나, 혹은 또다시 정부에서 견제가 들어올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박근태 부장은 다른 이들에게도 했던 말을 또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
“양해를 좀 해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지금 12구역 임시 보관소는 선생님 단지에서 꽤나 거리도 있고, 무엇보다 해당 보관소는 저희에게 너무나 중요한 곳이라…….”
“아니, 제가 뭐 그쪽 일하는 거 방해하려고 이래요? 보관소 길목에 초등학교 있는 거 알죠? 낮이고 밤이고 사체를 실은 트럭이 왔다 갔다 하는데, 우리 애들이 그걸 보면 정서적으로 얼마나 안 좋을지 생각해보셨어요?”
“저희 쪽에서도 그 점을 인지하고 최대한 잘 봉인해서 운반하고 있습니다.”
조금 강경한 투로 설명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원래는 보관소에서 하루에 한 번, 밤에만 운반합니다. 그런데 요즘 보관소 이용 제한 요청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보관소를 이용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낮에도 운반할 수밖에…….”
“그건 그쪽이 어떻게든 해야지! 아무튼, 우리 동네 보관소도 당장 폐쇄해요. 안 그럼 진짜 정신적 피해로 고소할 거예요!”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박근태 부장의 말을 자르며 고함을 질렀다.
“……빠른 시일 내에 대책을 마련해보겠습니다.”
결국, 박근태 부장은 또다시 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벌써 몇 번째 똑같은 레퍼토리, 똑같은 결과.
이번 부녀회장 또한 자신이 승리했다는 듯, 퍽 만족스러운 얼굴로 사무실을 벗어났다.
그와 동시에 박근태 부장은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오늘도 왔다 갔어요?”
그때, 문소연 청소과장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엉. 12구역 보관소까지 폐쇄해달라더라.”
“네?! 거긴 절대 안 돼요! 이제 강남 쪽에서 이용할 수 있는 보관소가 거기 하나뿐인데 거기까지 막아버리면…….”
“나도 알지. 거기도 막혀버리면 이제 아예 다른 구까지 넘어가서 보관해야 하는데…… 그러면 일정이 너무 꼬여버리고.‘
박근태 부장의 대답에 문소연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작업 하나 끝날 때마다 다른 구까지 운반하게 되면 팀원들 휴식 시간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고요.”
“그렇지…….”
“어떻게 하시게요…?”
그녀가 묻자 박근태 부장이 고개를 저었다.
“뭐 어쩌겠냐. 저번처럼 지원금 쥐여 주고 폐쇄만이라도 막아야지.”
“예산 남아있어요?”
“간당간당해.”
“청소팀 장비 교체해야 하는데…….”
“으으! 미치겄다, 진짜!”
쌓여만 가는 문제에 박근태 부장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준우 씨… 아니, 대표님한테 얘기해보는 게 어때요?”
“요즘 해외 사업으로 바쁜 사람한테 이런 것까지 어떻게 얘기하냐.”
“……하긴.”
“그래도 이번에 청소 2팀이 건의를 넣어서 담당자 내려왔다니까 기다려보자. 뭐, 어떻게든 해결해주지 않겠냐?”
“글쎄요. 대표님이 내려오는 게 아닌 이상 힘들 것 같은데…….”
“하아…….”
박근태 팀장은 대답을 아꼈다.
그 또한 문소연 과장과 같은 생각인 까닭이었다.
물론 이번 일이 아예 작업 자체가 불가능할 만큼 큰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모든 직원이 큰 불편을 겪고 있는 이상,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다만…….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네.’
본인들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본인들이 더욱 잘 알고 있었다.
***
꽤나 간만에 한 청소 작업이 마무리된 직후.
해체한 부산물을 가지고 던전 밖으로 나오자 배 팀장이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야, 대표님 정말 이겁니다, 이거! 웬만한 청소부보다 훨씬 잘하시는데요?”
“하하, 감사합니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게 감사해야 할 일인가 싶다.
청소부 출신이 청소 잘하는 게 그리 놀랄 일이야?
“그럼… 이제 부산물 운반은 어떻게 하십니까?”
내가 묻자 김동혁 대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운반하겠습니다. 원래 제 담당이거든요.”
“그렇습니까? 그럼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아하하, 대표님이 가시는데 저희가 안 따라갈 수 없죠. 이번엔 다 같이 가는 걸로 합시다.”
배 팀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결국, 배 팀장과 김 대리 그리고 우범진 사원까지 부산물을 실은 트럭에 모두 탑승했다.
“그래서, 운반은 어디로 합니까?”
트럭에 오르자마자 운전대를 잡은 김 대리에게 물었다.
“원래는 근처에 있는 19구역 보관소로 갔었는데…… 그 근처가 싹 다 폐쇄돼서 강남에 있는 12구역 보관소로 갑니다.”
“12구역이면 좀 멀지 않습니까?”
“그렇긴 해도 뭐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다른 구로 넘어가지 않는 게 어딥니까! 하하하!”
김 대리가 과장되게 웃음을 터트렸다.
우린 그렇게 15분가량을 달려 12구역 보관소에 도착했다.
작은 상가 건물 지하에 위치한 보관소다.
모두가 트럭에서 사체를 내려 그곳으로 운반하려던 그때.
“오늘 학원 안 가면 안 돼?”
“쓰읍! 또 이상한 소리 한다!”
마침 주변을 지나던 한 모자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신경 쓸 만한 일도 아니었기에 무시하며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엄마가 뭐랬어? 학원 안 가고 공부 안 하면 저기 저 사람들처럼 된다 그랬지?”
“우…….”
“저 사람들처럼 죽은 몬스터나 만지면서 살고 싶어? 돈도 얼마 못 벌면서?”
그 순간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 들려왔다.
“…….”
“…….”
동시에 배 팀장과 김 대리가 또다시 얼어붙었다.
“하, 하하! 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쇼, 대표님.”
“마, 맞습니다. 저희보고 하는 소리지, 절대 대표님한테 하는 말이 아니니…….”
“그건 무슨 소립니까?”
내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내가 여러분들이 길거리에서 욕이나 처먹으라고 그 돈 주고 데리고 있는 줄 아십니까?”
“예, 예…?”
“스스로 품격도 못 지킬 거면 내 돈은 왜 받아 가십니까? 그럴 거면 도로 뱉어내시던가!”
나는 그렇게 말하며 모자를 향해 돌아섰다.
“저기, 잠시만요. 거 방금 뭐라고…!”
그렇게 입을 뗀 순간.
“아니! 지금 뭣들 하는 거야!! 내가 여기 닫으라고 오늘도 가서 말하고 왔는데!!”
어디선가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음성이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리니 웬 중년 여성이 성이 잔뜩 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봐요! 여기다가 보관하지 말라니까?! 위에서 얘기 못 들었어?! 초등학교도 있고 아파트도 있는데, 우리가 대체 언제까지 참아줘야 해! 이거 빨리 치워!!”
“……누구시죠?”
“어머어머, 이것 봐라? 나 몰라? 하, 참 나 직원 교육 개판이네, 진짜.”
중년 여성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뱉으며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었다.
“나 요 앞 플래티넘 파크 부녀회장이야! 강순옥 몰라, 강순옥? 내가 니네 부장을 얼마나 찾아갔었는데!”
“글쎄요, 처음 듣는 성함인데.”
“이거 안 되겠네, 진짜. 너 여기 딱 기다리고 있어. 내가 지금 당장 네 상사한테 다 얘기할 테니까!”
상사?
나한테 상사가 있었나?
대체 뭐가 그렇게 화가 난 건지 모를 그 여자는 이내 핸드폰을 꺼내 들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 박근태 부장님. 강순옥이에요. 아니 글쎄! 내가 오늘 여기 보관소 이용하지 말라고 했는데, 지금 또 여기다가 보관하고 있잖아요! 이거 어떻게 할 거예요?!”
여성은 숨도 안 쉬고 할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직원 이름? 야, 너 이름 뭐야.”
“……김준우라고 합니다.”
“김준우래요! 나 모르는 거 보니까 신입인 거 같은데!”
곧바로 핸드폰 너머로 전달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
“너 이제 큰일 났다. 네 상사가 이리로 온다니까, 너 여기서 딱 기다려!”
“아…… 예.”
나는 무신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근태 부장이라…….’
차라리 잘됐네.
안 그래도 내가 큰맘 먹고 내려준 예산을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사람들한테 쓰고 있는 건지, 단단히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