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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구역 임시 보관소.
그 앞에서 나와 청소 2팀, 그리고 강순복 부녀회장은 잠자코 박근태 부장을 기다렸다.
한편 강순복 부녀회장은 여전히 두고 보자는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청소 2팀원들은 그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안절부절못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몇 분쯤 지났을까.
“허억, 허억…….”
저 멀리서 박근태 부장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어째 박근태 부장 혼자가 아니었다.
문소연 청소과장, 한상혁 청소 1팀장.
그리고 기획본부장, 한유빈까지.
청소팀이 소속된 부서의 책임자들이 총출동한 것이다.
“그렇지, 그렇지! 내가 전화 한 통 하니까 아주 싹 달려오는 거 봐.”
그들을 보자마자 강순복 부녀회장이 나를 향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너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지?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감이 좀 와?”
“…….”
“사람 무시하는 것도 봐가면서 해야지. 너 오늘 아주 임자 제대로 만났어.”
내가 퍽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자, 강순복 부녀회장이 이때다 싶었는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내가 당황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설마 다 달려올 줄이야…….
그야 난 지금 여기 있으면 안 될 사람이지 않은가.
‘농땡이 치고 있는 거, 들키는 건 아니겠지…….’
빌어먹을.
지금이라도 도망칠까?
잠시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기획본부장 한유빈이라고 합니다.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내 한유빈이 나를 슬쩍 흘기더니, 강순복 부녀회장에게 물었다.
그러자 강순복 부녀회장이 눈썹을 쭉 올렸다.
“본부장? 그럼 박 부장보다 높은 건가?”
“……직책으로 따지면 그렇습니다.”
“그럼, 말 잘 통하겠네. 아니 글쎄! 내가 오늘 분명히 박 부장한테 여기 보관소 이용하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이 인간들이 또 여기다가 사체를 보관하고 있잖아요!”
“이 인간들…?”
한유빈의 눈이 순간 가늘어졌다.
그 날카로운 표정에 내가 더 놀랐지만, 강순복 부녀회장은 눈치가 없는 건지 제 할 말만 계속해서 쏟아냈다.
“아유, 이 징그러운 걸 어떻게 사람 사는 동네에다가 보관할 생각을 하는 건지! 아무튼, 빨리 이 인간들 다른 데로 보내고, 이제부턴 여기 이용 못 하게 해요!”
“그렇게 바로 처리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빠른 시일 내에 해결책을 마련해볼 테니…….”
“아니! 저기 옆 동네 골든 팰리스 쪽은 말하자마자 폐쇄했다면서! 나만 무시하는 거야 뭐야! 자꾸 이러면 나 구청에 민원 넣어요? 시민을 위해서 일해야 할 회사가 시민 요청 무시한다고?”
“…….”
한유빈의 어깨가 착 가라앉는 것이 보였다.
말이 쉽게 통할 상대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대충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았다는 듯, 머리를 쓸어넘긴다.
그리고 그때.
“아 그리고! 대체 이 인간은 뭐 하는 놈이에요?! 아니, 내가 지 상사한테 다 말해 놓은 거라고 하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돌아갈 것이지! 얻다 대고 두 눈 똑바로 뜨고 말대답을 해?”
“…….”
“…….”
“…….”
강순복 부녀회장의 역정에, 한유빈을 포함한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일동 얼어붙었다.
“직원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건지 참. 이건 나 그냥 못 넘어가! 당신들이 대신 사과하던가, 아니면 내가 당신들 대표한테 직접 가서 얘기할 거야!”
“…….”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이내 한유빈이 담담한 투로 입을 열었다.
“……그러시겠다는데요, 대표님.”
“그래! 당신 대표한테 내가……. 잠깐, 대표…?”
강순복 부녀회장이 나를 바라봤다.
에휴.
괜히 귀찮아질까 봐 일부러 말 안 하고 있었는데…….
이쯤 되면 일부러 멕이는 건가 싶다.
쯧, 어쩔 수 없지.
“소개가 늦었습니다. 카르마 코퍼레이션 대표, 김준우입니다.”
“……그, 그쪽이 대표라고?”
“그렇습니다.”
“아, 아니 무, 무슨 대표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강순복 부녀회장이 갑자기 말끝을 흐린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듯 벙찐 표정을 지었다.
“요즘 임시 보관소에 관련된 컴플레인이 많이 들어와서 직원들이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확인 중이었습니다. 뭐, 상황을 보니 더 확인할 것도 없긴 하군요.”
“…….”
강순복 부녀회장은 그제야 상황 파악을 한 듯, 한유빈을 비롯해 한걸음에 이곳으로 달려온 이들을 바라봤다.
조금 전과 다르게 바짝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세 기세를 되찾으며 목청을 높였다.
“대, 대표면 뭐?! 오히려 잘됐네! 내가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여기 보관소 앞으로 이용 못 하게 해요!”
“이유를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왜긴 왜야. 아파트 근처에 이런 게 있으면 당연히 불편한 거 아니에요?! 몬스터 사체랑 같은 동네에서 먹고 잔다고 생각하면…!”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강순복 부녀회장이 미소를 지었다.
“이해했다니 다행이네. 그럼 알아들은 거로 알고…….”
“요컨대, 아파트를 없애버리면 된다는 말씀이시죠?”
“……어?”
순식간에 동그래진 눈.
뭘 들은 건가 싶은 반응이다.
“아파트 근처에 보관소가 있는 게 싫으시다면, 아파트가 없어지면 해결되는 문제 아닙니까. 뭐, 마침 잘 됐군요. 안 그래도 직원들 사택이 필요했는데, 이참에 통째로 사버리도록 하죠.”
“아,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하하, 강순복 부녀회장님.”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습니까?”
친절한 미소로 되묻자, 어째선지 그녀의 표정이 바싹 굳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임시 보관소 폐쇄는 없습니다. 현재까지 폐쇄된 보관소 또한 다시 복구할 생각이고요. 아시겠습니까?”
“아, 아니… 이게 우리만 불편해서 하는 소리예요? 근처에 초등학교까지 있는데, 애들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그럼 초등학교도 없애…… 아 그건 아이들에게 너무하겠군요.”
“…….”
어디서 핑계인가.
그냥 본인들이 싫어서 막무가내로 구는 거면서.
몬스터 사체랑 같은 동네에서 먹고 자는 게 불편하다?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그래, 말 잘했다.
“거기, 선생님.”
근처에서 상황을 구경하고 있던 여성과 그녀의 아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조금 전, 우리를 대놓고 모욕한 그 모자였다.
“에…? 저, 저요?”
“아까 뭐라고 하셨죠? 공부 안 하면 우리처럼 된다? 돈도 얼마 못 번다?”
“아, 그… 교육 차원에서 한…….”
“따지려는 게 아닙니다. 아직 그런 인식이 남아 있다는 건 저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실언한 건 사실이지만, 이걸 그들의 탓만으로 돌릴 순 없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어디 그녀 한 명뿐이겠는가.
이번 일도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기에 발생한 것이다.
이번 일은 절대 눈앞에 있는 것만 처리해선 답이 없다.
그냥 직원들이 참고 멀리 떨어진 보관소를 이용하든, 아니면 지원금 명목으로 입을 닫게 하든, 딱 그 순간만 효과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인식이 박혀 있는 한 같은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겠지.
그러니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아무런 피해를 주지도 않는 임시 보관소를 그저 불쾌하다는 이유만으로 폐쇄하려는 게 얼마나 이기적인 일인지.
던전 청소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왜 필요한지.
그리고 그들이 내 돈을 얼마나 빨아먹는지.
그 모든 걸 한 번에 때려 박을 수 있는 해결책.
“뭐, 그걸 한 명 한 명 찾아가서 설득할 수는 없겠죠. 무엇보다 백 번 듣느니,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말도 있고.”
이내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한유빈 본부장님.”
“네.”
“바로 다음 달에 전국 초, 중, 고 대상으로 던전 박람회를 개최할 생각이니 준비해 주세요.”
“박람회요?”
“예. 토벌이라는 게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진행하는지. 기획 단계부터 청소와 부산물 처리까지 어떤 과정이 있는지, 이번 기회에 자세히 알릴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대답은 알겠다면서 표정은 왜 저래.
뭐, 일단 그건 둘째치고.
곧바로 강순복 부녀회장과 모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기 계신 세 분에겐 제가 VIP 표를 드릴 테니, 부디 꼭 참석해주십시오. 물론 선택은 자유지만, 만약 참석하지 않으시겠다면…….”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직원 사택, 이번 기회에 마련하겠습니다.”
“…….”
“…….”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았겠지.
“대충 이야기도 끝난 것 같으니, 이만 돌아갑시다. 여기 다 나와 계시면 일은 누가 합니까?”
먼저 발걸음을 떼자, 곧바로 한유빈이 뒤를 바짝 따라왔다.
“제발 오지 마라…….”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순 또라이 아니야 저거.
***
“그래서….”
회사로 복귀하자마자 한유빈이 나를 기획 본부실로 끌고 갔다.
그녀는 상석에 앉아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왜 거기 있었는지부터 설명해 봐요.”
“아까 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직원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건지 확인을…….”
“그렇다고 청소 작업에 보관소까지 따라가요? 뭘 얼마나 자세하게 확인하려고?”
“…….”
“서류 작업은 다 끝냈어요?”
“…….”
“아영 씨가 알면 진짜 가만 안 둘 텐데.”
“……그 사람한텐 제발 말하지 말아 주시죠.”
아니, 어이가 없네.
이래 봬도 대표인데 직원들 눈치 보는 게 정상이야?
아니 그것보다 대체 지금 직원이 대표를 혼내고 있는 게 정상이야?!
‘회사 꼴 아주 개판이네…….’
나 땐 상상도 못 하는…….
“하아, 알았어요. 비밀로 할게요.”
“……감사합니다.”
시발.
천하의 김준우가 이런 거에 감사해야 한다니.
“그런데…… 제가 비밀로 한다고 해도, 아영 씨 귀국하면 어차피 들킬 텐데요.”
“그러니까 그 전에 끝내야죠.”
“박람회가 그렇게 하루 이틀 만에 뚝딱 나오는 거예요?”
“그걸 왜 저한테 물어봅니까? 어차피 그쪽이 할 일인데.”
“…….”
표정 한번 살벌하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숨을 팍 내쉬며 그녀가 말했다.
“뭐, 알았어요. 어떻게든 준비해볼게요.”
“정말입니까?”
“그럼 뭐 어떡해요. 대표님 지시인데. 그리고 뭐…….”
멋쩍은 표정으로 턱을 긁적이며 말을 잇는다.
“저도 솔직히 아까 좀 짜증 났거든요. 잘됐죠, 뭐.”
그리곤 어깨를 으쓱인다.
“그런데 저는 그렇다 쳐도… 대표님은 이유가 뭐예요?”
“뭐가 말입니까……?”
“이번 일요. 농땡이 피우려고 한다기엔 너무 본격적이고……. 그리고 사실 컴플레인이 들어와도 무시하면 그만이잖아요. 물론 욕은 좀 먹겠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어요?”
“뭐, 굳이 따지자면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은 제가 청소팀한테 주는 월급이 꽤 많다는 겁니다.”
“돈을 주는 것만큼의 가치는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엄연히 제 돈을 투자하는 건데, 그 가치가 개판이면 어떡합니까. 무엇보다 신입 받는 데도 문제가 있을 거고요.”
“흐음.”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두 번째 이유는요?”
“그건 뭐…….”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피식 실소를 뱉었다.
“그쪽이랑 같은 이유입니다.”
곧바로 사무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