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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제 와서 하는 소리지만 사실 박람회 개최에 대해선 꽤나 걱정이 많았다.
조금 충동적으로 뱉은 말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다른 부서에서 강력하게 반대할 게 뻔했으니까.
토벌의 전체적인 메커니즘과 그것을 구성하는 팀들의 역할을 알리려는 목적이긴 해도…… 사실상 다른 팀보단 청소팀이 메인이지 않은가.
당장 토벌에만 신경 쓰기도 바쁜 팀들에겐 박람회가 그다지 달가운 소리는 아닐 것이었다.
그런데 웬걸, 예상외로 작전팀을 비롯한 타 부서 또한 흔쾌히 협조해주었다.
무엇보다 총 책임자인 한유빈이 기획부터 진행까지 진두지휘하면서 신경을 써준 덕에, 정작 말을 꺼낸 나는 딱히 손을 델 게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오늘.
양재역 근처, 어느 컨벤션 센터.
모두가 열과 성을 쏟은 박람회가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던전 토벌 박람회를 방문한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대한민국 이능차원관리 협회의 정신을 이어받은 아시아 최대 민간 토벌 기업, 카르마 코퍼레이션에서 주최한 이번 던전 토벌 박람회는 총 8개관, 16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1관에선 던전 토벌의 시작, 지휘통제팀의 역할에 대해…….」
이곳저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녹음된 음성.
그걸 가만히 듣다가 한유빈을 향해 물었다.
“저거 누가 녹음한 겁니까? 어째 익숙한 목소린데.”
“민주 씨요.”
“……?
“해보고 싶었대요. 저런 거.”
“허, 그럴 성격으로는 안 보이는데…….”
적잖은 충격에 잠시 멍하니 서 있자, 한유빈이 슬쩍 물었다.
“그런데 축사 같은 건 안 해도 돼요? 들인 돈을 떠나서 이거 꽤 공들인 일이잖아요. 사람들한테 이번 박람회의 취지나 의미 정도는 설명해줘야죠.”
“의미를 설명해주면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이런 의미가 있다, 저런 의미가 있다, 백날 말해주면 뭐 하는가.
애초에 그게 통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고.
‘본인들이 직접 경험해봐야지.’
입장 줄에 선 사람들을 바라봤다.
대부분이 학교 단체로 현장 체험학습을 온 학생들이었고, 간혹 가족이나 친구끼리 온 개인 관람객도 있었다.
여느 박람회가 그렇듯, 우리 또한 개별 관람과 단체 관람으로 나누어 진행할 예정이다.
당연히 단체 관람이 직접 안내를 받으며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단체 관람은 아무나 신청할 수 없다.
내가 직접 초청한 VIP들에게만 주어진 특별 서비스니까.
그 VIP들의 안내를 맡아줄 이는 박근태 부장, 문소연 과장, 한상혁 팀장을 비롯한 청소팀 직원들이다. 그리고…….
“정말 직접 안내하실 거예요? 일도 많으시다면서.”
나 또한 이번 박람회의 안내를 맡았다.
“뭐, 어차피 한 회차만 하는 거잖습니까.”
“그렇긴 한데, 왜 하필 구문 고등학교 애들을 맡으시겠다는 거예요? 거기 애들 질 안 좋기로 꽤 유명하잖아요. 스트레스 좀 받으실 것 같은데.”
“배 팀장님한테 듣자 하니, 그쪽 구역으로 작업을 나가면 구문 고등학교 애들이 그렇게 조롱을 한다는군요.”
“……그래요?”
“뭐, VIP 대접은 직접 해야죠.”
난 마이크를 착용했다. 그리곤 입구 앞에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을 향해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던전 토벌 박람회 안내를 맡은 김준우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
“…….”
아무도 반응이 없다.
그 대신 작게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준우?”
“김준우라면… 대표 아니야?”
“무슨 개소리야. 설마 대표가 직접 안내하겠어?”
내가 니들 친구냐.
시작부터 어째 정수리가 따끔따끔하네.
“원래 지금 바로 관람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아직 오지 않은 분들이 계셔서 조금만 더 기다릴까 합니다. 괜찮을까요?”
“아뇨!”
“안 괜찮은데요~.”
“누가 또 와?”
“몰라. 아 시발, 기다리기 싫은데.”
“빠르게 한 대, 고?”
역시 잡음이 많다.
한유빈이 괜히 한 소리는 아니었구만.
‘쯧. 애들한테 화내 봤자 나만 손해지.’
학생들의 반응을 애써 무시하며 아직 오지 않은 손님을 기다렸다.
그렇게 몇 분을 더 기다리길 잠시.
“오셨군요.”
“…….”
“…….”
강순복 부녀회장, 그리고 일전에 우리에게 실언한 모자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다 오신 것 같으니까, 안내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들어가시죠.”
모두를 이끌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
서울의 한 카페.
이두식 이사는 오랜만에 박인범 전 협회장을 만나 근황을 주고받았다.
“던전 박람회?”
이두식 이사의 말에 박인범 전 협회장이 흥미롭다는 듯 반응했다.
“네. 김준우 그놈이 직접 개최했다더군요.”
“이야, 그걸 여는 놈이 있긴 하구만. 우리 때도 말은 계속 나왔었는데 결국 다 엎어졌잖냐.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뭣보다 예전에 최호성이가 분당에 개최하려고 했다가 그렇게 되고 나선…… 뭐, 그 후론 완전히 백지화됐죠.”
최호성 본부장 이야기에 분위기가 순간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박인범 전 협회장이 애써 목소리를 키우며 물었다.
“그나저나 왜 갑자기 지금 와서 개최한 거냐? 조금 뜬금없지 않나?”
“뭐, 저도 보고만 받은 거라 자세히는 모르는데…… 청소팀 쪽에 임시 보관소를 폐쇄해달라는 요청이 너무 많이 들어온다더군요.”
“임시 보관소를? 허, 이기적인 놈들.”
“인식이 예전보다 좋아졌다곤 해도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니까요. 이번 기회에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취지가 아니겠습니까.”
“새끼……. 하여간 지 직원들 관련된 일에는 아주 앞뒤 없이 달려든다니까.”
언뜻 뒷담화를 하는 것 같지만, 박인범의 표정을 보면 결코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뭐, 그런 취지라면 잘 생각했네. 언젠가 한 번쯤은 필요한 일이긴 했지.”
“그러게 말입니다. 게다가 직접 안내까지 한다더군요.”
“김준우 그놈이?”
“네. 대표가 안내라니, 모양새가 좀 웃기긴 해도… 뭐, 보기 좋지 않습니까?”
“흐음…….”
이두식 이사가 꽤나 자랑스레 말했지만, 어째선지 박인범은 이번엔 꽤나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아니 다른 게 아니라. 그놈 성격에 고분고분 안내만 할 것 같진 않아서 말이지.”
“……네?”
“설마 관람객들이 신경 좀 긁었다고 화내고 그러진 않겠지?”
“하하, 설마요. 그놈도 나름 대푠데.”
“…….”
“…….”
곧바로 이어지는 침묵.
사실 두 남자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지 않은가.
김준우라면 그러고도 남는다는 걸.
“…몰래 한 번 가볼까요?”
“……그러자.”
결국, 두 남자는 아직 반도 안 마신 커피를 내버려둔 채,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
7관 마지막 구역.
이제 관람까지 1관만을 앞둔 그곳에서, 나는 관람객들을 향해 말했다.
“자, 이렇게 해서 통제팀, 지원팀 그리고 작전팀의 역할과 전체적인 토벌 시스템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야, 시발! 이거 진짜 칼이냐?”
“병신아 진짜겠냐.”
“야, 이거 봐봐! 여기 총도 있음!”
“미친, 저건 리얼 진짜 같네.”
물론 제대로 듣는 놈은 없었다.
‘후우…….’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깊은 한숨이 쏟아졌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저 상태다.
고작 20명밖에 안 되는 인원인데, 통제도 안 될뿐더러 심지어 몇 명은 아예 중간부터 보이질 않는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설명 사이사이에 헛소리가 너무 심하다.
질문이라도 하는 순간 답은커녕 별별 개소리가 날아드는 통에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괜히 직접 안내하겠다고 나섰나…….’
그냥 사무실에서 일이나 할걸.
하지만 후회도 잠시.
나는 애써 표정을 숨기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 8관에서는 비토벌팀, 그러니까 던전 청소와 부산물 관리를 맡은 던전 후속 관리팀들에 대해 알아볼…….”
“아 뭐야, 끝났네.”
“이제 그냥 나가면 안 돼요?”
“시발, 개 웃기네. 청소부 얘기를 우리가 왜 들어.”
……쥐어팰 수도 없고.
“하하, 거의 다 끝났습니다. 자자, 마지막까지 집중해서 따라와 주세요.”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탄식을 애써 무시하며 8관으로 들어섰다.
“뭐야, 여기 존나 어두워.”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존나 던전 같네.”
“던전 들어가 본 적은 있음?”
“있겠냐 시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운 공간.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우선 던전 청소팀의 역할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작전팀 따까리?”
“크크크. 아, 미친놈 개웃기네.”
“근데 청소부 얼마 벌어요?”
“왜, 많이 벌면 너 하게?”
“아니? 월급 싸면 나도 고용해서 내 방 청소 좀 시키게.”
“시발 미친놈이네, 킥킥킥.”
후우.
“던전 청소팀은…….”
“응~. 작전팀 따까…….”
“아 시발, 진짜 거 말 드럽게 많네.”
지이잉―.
마이크가 바닥에 떨어지며 공명했다.
동시에 정적이 찾아왔다.
“니들 꼬라지 보니까 백날 공부해도 사람 되긴 글렀다.”
“……?”
“……?”
“아까 청소부분들이 얼마 받냐고 물었죠? 아마 학생이 쌔빠지게 공부해서 들어가게 될 회사보다 두 배는 더 받을 겁니다. 아니, 보니까 세 배는 더 받겠네.”
“……뭐, 뭐요?”
“그리고 작전팀 따까리? 토벌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게 청소팀 일정이라는 거 다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제대로 쳐 듣질 않으니 그렇게 머리에 똥 찬 소리나 하죠.”
“…….”
지금 본인들한테 하는 말인지 의심이 가는 듯한 표정들이다.
암, 본인들한테 하는 말이고 말고.
나는 8관의 불을 켰다.
“왓, 시발!”
“뭐, 뭐야 이거!!”
“이거 시발 몬스터야?!”
그제야 눈에 들어온 광경에 모두가 경악했다.
뭐, 이해한다.
설마하니 박람회에 몬스터 사체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까.
물론 실제 몬스터와 비슷하게 제작된 모형이지만. 뭐, 그걸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여기가 바로 이번 박람회의 메인이자, 청소팀이 공을 쏟아부은 구역.
실제 던전 후속 처리 과정을 체험해볼 수 있는 특수관.
“원래 개별 관람객들은 담당자의 안내에 따라 간단히 체험만 하는 곳인데. 단체 관람객, 그러니까 여기 계신 VIP분들은 조금 다릅니다.”
나는 그들에게 장비를 던져 주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직접 청소를 하셔야 합니다.”
“……?”
“……?”
어리둥절해 하는 학생들과 강순복 부녀회장.
하지만 곧바로 여기저기서 헛웃음이 튀어나온다.
“아니, 지금 장난하세요?”
“우리보고 이걸 치우라고요?”
“응, 안 해~.”
거드름을 피우는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여러분.”
그래.
아무리 백번 박람회를 열고, 설명해 봐야 애당초 들어먹지 못할 놈들에겐 의미가 없다.
“제가 지금 장난하는 거로 보이십니까?”
“…….”
“…….”
직접 경험해 보는 게 아닌 이상.
“뭣들 하십니까. 시작하십쇼.”
다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이게 진짜 VIP만을 위한 특별 서비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