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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당연히 처음엔 반발이 심했다.
하긴, 관람하러 온 이들한테 갑자기 일을 하라는데, 그걸 순순히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한 10분이 지날 때까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배 째고 버티면 알아서 끝내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쉽게 끝내줄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다.
내 시간 할애해서 귀찮은 짓을 하는 만큼, 끝장을 볼 생각이다.
내 VIP들이 그걸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 건, 실습을 지시한 지 20분이 경과하면서부터였다.
“이거 진짜 해야 해…?”
“미쳤음?”
“시간 뻐기면 알아서 끝내줄걸?”
“아니 근데 20분 동안 가만히 있잖아.”
“시발, 진짜 해야 끝내주나?”
슬슬 반응이 오기 시작한다.
그들의 예상과 다르게 20분째 끝내줄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눈치만 보고 있던 그때였다.
내 예상을 깨고 나선 이가 있었다.
“아유, 진짜! 사람 데려다가 이게 뭐 하는 거예요! 하면 될 거 아니야, 하면!”
다름 아닌, 강순복 부녀회장이었다.
그녀는 호기롭게 장비를 챙겨선 모형 사체 앞으로 다가갔다.
그와 동시에 곧바로 코를 틀어막았다.
모양부터 질감, 그리고 냄새까지 완벽하게 재현한 사체였으니.
당연히 일반인들에겐 만지기조차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일단 징그러운 건 둘째 치더라도, 손이며 옷에도 냄새가 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학생들! 뭐 하고 있어! 그냥 후딱 하고 나가자고!”
“……아 씨.”
“존나 더러운데…….”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하는 학생들.
그들은 결국 모형 사체 앞으로 모여 해체를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특별관에서의 마지막 설명을 이어갔다.
“토벌 후 약 10분이 지나면 사체에서 유독성 가스가 방출되기 시작합니다. 보호 장비를 착용하더라도 약 1시간 30분 이상 노출된다면 피부와 호흡기에 피해를 받는 수준이죠.”
물론 내 말을 귀담아듣는 이는 없었다.
귀에 들어올 리도 만무했고.
그럼에도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가만히만 있어도 가스 때문에 목숨이 위험할 수 있지만, 사실 몬스터 해체에 비하면 안전한 수준입니다. 죽은 몬스터에 치명적인 독이 남아 있을 수도, 혹은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죠.”
“…….”
“…….”
“그렇기 때문에 단 1초라도 집중이 흐트러진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뭐, 문제없이 사체를 해체했다고 하더라도 던전 유지 시간을 넘겨버리면 마찬가지로 목숨을 잃을 거고요.”
작전팀에 가려져 있을 뿐, 청소팀 또한 매 순간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모르면 몰랐지, 알고 있는 이상 그 점은 인정해줘야 한다.
나 또한 처음에 우습게 보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으니.
“그럼에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그 위험한 곳에 뛰어듭니다. 헌터들이 토벌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요. 그런 직업입니다. 헌터들이 칼과 총으로 여러분들을 지킬 때, 빗자루와 걸레로 헌터들을 지키는 직업.”
“…….”
“…….”
뭐, 이 지루한 설명으로 그들의 인식이 바뀔 거라곤 생각하지도 않는다.
애초에 나도 형식상으로 설명해준 것뿐이고.
“하아, 하아…….”
“돼, 됐죠? 이제 빨리 끝내요!”
한창 혼자서 설명을 중얼거리고 있자니, 드디어 다들 해체를 마치고 나를 바라봤다.
조각조각 난 모형 사체를 훑으며 말했다.
“엉망이네요. 이렇게 막무가내로 토막을 내면 주변에 피가 많이 튀어서 오히려 더 작업하기 까다로워집니다.”
“아, 아니 우리가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해요?!”
“체험 실습이라면서!”
“진짜 빡 치려 그러니까 적당히 하고 보내주시죠?”
“뭐, 맞습니다. 실습이니까 너무 깊게 파고들 필요는 없죠.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그제야 험악했던 표정들이 조금 수그러들었다.
“아 참,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게 있는데……. 오늘 실습에 참가하셨던 분들에겐 별도의 실습 비용이 지급될 겁니다.”
“실습 비용…?”
“돈을 준다고요?”
“어, 얼마 주는데요?”
갑자기 얼굴에 생기가 돈다.
“뭐, 그리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한 분당 100만 원씩 지급해드릴 예정입니다.”
“……!”
“……!”
“옷에 냄새도 뱄을 거고. 무엇보다 조금 강압적이었던 실습에 대한 사과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비용 받으실 계좌번호 적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입막음용에 가깝다.
나중에 카르마 코퍼레이션 대표가 자신들을 감금하고 강제로 하기 싫은 일을 시켰다고 고소라도 하면 귀찮아질 테니.
내민 종이에 허겁지겁 계좌번호를 적곤 입꼬리가 귀에 걸려선 곧바로 출구로 향하는 찰나였다.
“아, 잠시만요. 마지막으로 해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내가 그들을 불러 세웠다.
그들이 해체한 사체 모형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건물 나가시면 임시 보관소라고 적힌 창고가 있습니다. 해체하신 사체를 그곳으로 옮겨 놓으셔야 실습을 모두 수료하신 거로 인정됩니다.”
“……옮겨다 놓기만 하면 되는 거죠?”
“예. 다만 한 분이라도 도중에 버리고 가시면 전체 인원의 수료가 인정되지 않으니 주의하시고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각자 해체한 모형들을 곧바로 주워든다.
100만 원을 준다는데 그 정도야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반응들이다.
다들 싱글벙글 미소를 지은 채, 부산물을 짊어지고 건물을 빠져나갔다.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지금 VIP들 퇴장하십니다.”
곧바로 한유빈에게 무전을 날렸다.
“그럼 준비한 대로…… 임시 보관소 폐쇄해주십시오.”
「알겠어요.」
짧은 무전을 마치자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VIP를 위한 특별 서비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짜 실습은 모든 관람이 끝난 후,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
“뭐, 뭐야…?”
강순복 부녀회장은 창고 앞에 붙은 쪽지를 발견하자마자 표정을 구겼다.
분명 김준우가 임시 보관소라고 안내해준 그곳은, 어째선지 폐쇄라는 문구와 함께 단단히 잠겨 있었다.
“아, 시발 뭐야!”
“폐쇄? 그럼, 여기가 아니라는 거야?”
“그럼 이거 어디에다가 놓으라고?!”
“야, 저기 담당자 지나간다. 쟤한테 물어봐봐.”
때마침 명찰을 차고 그 근처를 지나가던 작은 체구의 여성.
한 학생이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 저기요! 이거 임시 보관소에 갖다 놓으라던데, 여기 왜 잠겨 있어요?”
“아, 죄송합니다. 컴플레인이 들어와서요. 관람객분들이 냄새가 난다고 하셔서 부득이하게 여기는 이용이 힘드실 것 같습니다. 다른 곳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담당자는 매우 친절한 목소리로 양해를 구했다.
“다, 다른 곳이요? 어딘데요?”
“부지 밖으로 나가셔서 오른쪽으로 쭉 올라가시면 다른 임시 보관소가 있습니다.”
“아, 시발!”
갑자기 터지는 욕설에 담당자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애써 접대용 미소를 유지했다.
“X 같아서 못 해 먹겠네, 시발!”
“아, 나 그냥 버리고 갈래.”
“미쳤냐? 한 명이라도 버리면 다 수료 못 한다잖아!”
“그럼 시발, 이 냄새 나는 거 들고 밖으로 나가겠다고?”
“학생들! 요 앞이라잖아! 잔말 말고 들고 와!”
의견이 충돌했지만, 강순복 부녀회장이 곧바로 중심을 잡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불만이 서린 표정들이었지만, 이내 다시 부산물을 짊어진 채 담당자가 안내해준 다른 임시 보관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바라보던 담당자가 피식 실소를 뱉었다.
목에 걸린 명찰에는 한유빈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지금 2차 보관소로 이동 중이에요. 슬슬 거기도 준비해주세요.”
곧바로 문소연 과장에게 무전을 날린다.
「준비는 다 했는데…… 이거 정말 이래도 될까요?」
“뭐가요?”
「그래도 엄연히 일반인인데…… 조금 너무한 것 같기도 하고…….」
“뭐, 따지고 보면 저희가 강제로 시키는 건 아니잖아요. 본인들이 하기 싫으면 언제든 버리고 가도 되는 건데.”
「…….」
“하여간 사람 굴리는 덴 도가 텄다니까.”
“어떻게 됐습니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 했던가, 김준우 대표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한유빈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평정심을 찾으며 대답했다.
“큼큼, 2차 보관소로 이동했어요.”
“문소연 과장 담당 보관소군요. 연락은 해뒀습니까?”
“당연하죠.”
“그럼 그다음은…….”
“한상혁, 개새… 아니, 한상혁 팀장 담당의 3차 보관소, 박근태 부장 담당의 4차 보관소까지 순서대로 진행할 거예요.”
“좋습니다. 그럼 우린 카페 가서 구경이나 합시다.”
“…….”
새삼 느끼는 거지만 이 인간,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
어떻게 일반인을 상대로도 봐주는 게 없냐.
한유빈마저 혀를 내두르던 사이,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야, 김준우, 이놈아!!”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니, 니들 일반인들 상대로 뭔 짓거리하는 거냐?!”
“야, 인마. 왜 소리를 치고 그러냐. 딱 봐도 재밌는 거 하고 있구만! 크하하!”
“이, 이두식 이사님…? 협회장님까지? 두 분이 여긴 왜…….”
이두식 이사와 박인범 협회장.
뜬금없는 손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네가 안내를 맡는다고 해서 뭔 일이 있겠거니 싶긴 했는데, 설마 이런 것까지 준비했을 줄이야. 재밌네, 재밌어!”
“형님! 이게 지금 웃을 일입니까? 이거 잘못하다가 저희 회사 큰일 날 수도 있습니다!”
“야 인마, 니 회사지 내 회사냐? 크하하하!”
“…….”
상반된 반응 속, 김준우 대표는 대놓고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구먼.”
“흐음…….”
박람회 내부에 있는 카페테라스.
박인범 전 협회장과 이두식 이사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자, 그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와 합병되면서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이사가 된 이두식에겐 간략히 보고를 올리긴 했지만. 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몰랐을 테니.
그때, 박인범 전 협회장이 넌지시 물었다.
“근데 설마 그 몇 명 때문에 박람회를 연 거냐? 수지가 너무 안 맞는데?”
“설마요. VIP 실습은 그냥 겸사겸사 한 겁니다. 시민들에게 토벌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한 번쯤은 알릴 필요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렇긴 하지. 잘 생각했어.”
박인범 협회장이 한쪽 입꼬리를 쓱 올린다.
한편 이두식 이사가 걱정스레 물었다.
“그런데… 요즘 일 많다고 하지 않았나? 박람회 준비할 시간이 있었어?”
“…하하하.”
대답 대신 멋쩍은 웃음을 흘리자, 이두식 이사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영이가 알면 너 죽었다, 이놈아.”
“모르면 그만 아닙니까. 어차피 한국에 돌아오려면 한 달은 더 있어야…….”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
온몸에 소름이 돋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마냥, 박인범 협회장과 이두식 이사의 표정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바짝 긴장하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지금 뭐 하고 있냐니까?”
“…….”
그곳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이아영 본부장이 있었다.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