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174화 (174/366)

174

174

“뭐,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대충 알 것 같긴 한데…….”

공항을 떠나 미국 지부로 향하고 있는 리무진.

적막한 공기가 흐르던 가운데 클로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불만이 있으면 말씀을 하세요. 그렇게 죽어라 노려보지만 말고.”

“말하다가 죽일 것 같아서 말이죠.”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저번 거래 때 죽이지 그랬어요?”

“그땐 공적으로 만난 거니 봐 드린 겁니다.”

“지금도 충분히 공적으로 만난 거예요. 나라고 좋아서 당신들 안내나 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녀가 대놓고 쏘아붙인다.

김민주와 한유빈은 주먹이 나가려는 걸 애써 참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럼 뭡니까? 아무리 봐도 우리 엿 먹이려고 일부러 이러는 거 같은데.”

“당신들 덕분에 제이슨 통제팀장 그렇게 되고 나서, 미국 지부 윗선이 줄줄이 잘려 나갔어요. 당연히 지부장도 바뀌었고요.”

“그런데요?”

“그 새 지부장님이 보낸 거예요. 작년 합동 작전에 참가했다는 걸 알았는지, 내가 맡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왜, PB 코퍼레이션 소속이 감시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지금 지부장님은 우리 쪽이랑 관계없는 사람이에요.”

클로이가 한숨을 팍 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미국 지부에요?”

“…뭐요?”

“당신들, 지금 해외 협회를 닥치는 대로 인수하고 있잖아요. 일본 지부 뺏어간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이번엔 미국 지부를 노리는 거냐고요.”

“그렇다면? PB 코퍼레이션에서 막으러 오나?”

“착각하지 마요. 우린 이제 당신한텐 별 관심 없으니까. 인수하든 뭔 짓을 하든, 내 알 바 아니니까 볼일이나 보고 조용히 돌아가시죠.”

“…….”

나는 한유빈과 김민주를 번갈아 바라보며 서로 눈치를 주고받았다.

관심이 없다, 그 한마디로 국제 협회의 상황을 알려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목표를 이뤘다, 이건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담담한 척 입을 열었다.

“인수는 무슨… 미국 지부가 뭐가 아쉬워서 저희한테 지부를 넘기겠습니까. 전 그냥 거래를 좀 하려고 온 겁니다.”

“무슨 거래요?.”

“당신 알 바 아니라면서요.”

“…….”

받은 걸 그대로 돌려주자 클로이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한 방 먹였다는 생각에 통쾌해진 그때.

“기사님.”

클로이가 리무진 기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손님들이 관광도 할 겸, 지부까진 걸어서 가겠다고 하시네요. 여기서 내려주세요.”

“알겠습니다.”

끼이익―.

차가 길가에 정차했다.

“내려요.”

“…….”

“…….”

진짜 치졸의 끝을 달리네.

됐다, 더러워서라도 걸어간다.

나머지 두 사람도 같은 생각을 한 건지 아무렇지 않게 차에서 내렸다.

리무진은 이내 우리를 남겨두고 휑하니 떠나 버렸다.

우린 뉴욕 한복판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래도 유빈 씨가 있어서 다행이네요. 길 알고 있죠?”

김민주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알긴 알죠.”

“그럼 뭐, 관광도 할 겸 천천히 걸어…….”

“지부가 뉴욕에 없어서 문제지.”

“……?”

뭐라고?

“뉴욕에 없다는 게 뭔 소립니까?”

“작년에 제이슨 그렇게 되고 나서 롱아일랜드로 옮겼다던데요.”

“…….”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 없네.

그냥 좀 참을걸.

“……택시 타고 갑시다.”

이아영 본부장이 결제 내역 확인하면 또 뒤집어지겠구먼.

***

PB 코퍼레이션 본사.

에마 대표는 사무실에 틀어박힌 채 연신 이마를 꾹꾹 눌러댔다.

어젯밤, 웨슬리 사무총장이 해주었던 이야기가 도저히 본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김준우가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니.

해도 해도 망상이 지나치지 않은가.

에마 대표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빌어먹을.’

그녀 또한 이젠 긴가민가했다.

전부 망상으로 치부하기엔, 그가 해준 설명이 맞아들어가는 부분이 상당했다.

던전은 물론, 몬스터와 사물 그리고 인간에게까지 루프를 걸 수 있다고 알려진 시간석.

웨슬리 사무총장은, 김준우가 그것을 이용해 미래에서 현재로 왔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젊은 나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단호한 판단력.

전 세계 어느 헌터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실력.

예지 수준의 무시무시한 촉.

무엇보다 돈을 위한 것도, 명예를 위한 것도 아닌 도저히 목적을 알 수 없는 행동들.

웨슬리는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의 능력들이 증거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미래의 김준우가 그렇게 뛰어난 능력자였다면, 굳이 시간석을 사용해서 과거로 올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 능력으로 돈도 명예도 모두 거머쥐었을 텐데, 뭐가 아쉬워서 그것들을 다 내려놓고 과거로 온단 말인가.

에마 대표가 그 부분을 지적하자 웨슬리 사무총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뱅크 아이템을 독점하는 걸 막기 위해 희생을 한 거라고.

그 대답을 들은 에마 대표는 머리에서 스파크가 튀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그제야 시간석의 용도가 브레이크라는 웨슬리의 말도 납득이 갔다.

전 세계 모든 던전과 이능력 그리고 헌터를 컨트롤 할 수 있게 되면, 그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물론 그 영향력으로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세계 평화를 위해 힘쓸 위인은 아니다.

만약 가까운 미래에 국제 사회 전체가 그의 발아래에 놓이게 된다면,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먼 세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웨슬리에게 저항하기 위해 반란 세력이 생겨났다면?

김준우가 그 반란 세력의 우두머리이고, 웨슬리를 막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서 과거로 돌아온 거라면…?

‘빌어먹을, X벤저스도 아니고…….’

에마 대표가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그녀 또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말이 안 되진 않는다는 것을.

무엇보다 김준우라면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그래서, 그놈을 막을 방법은 있는 거야?

대화 막바지쯤, 에마 대표가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웨슬리 사무총장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직까진 몰라. 어쨌든 시간석이랑 연관되어 있는 건 확실하니, 그걸 좀 더 연구해보면 뭔가 답이 나올 것 같은데…….

에마 대표는 웨슬리가 말끝을 흐린 이유를 금세 알 수 있었다.

뱅크 아이템을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전문가.

뱅크 아이템 관리팀장, 클로이가 현재 미국 지부에 가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쪽 지부장이 손님 안내를 부탁했다고 했던가…?’

어딘가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에마 대표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노아 팀장, 물어볼 게 좀 있는데…….”

「말씀하시죠.」

“혹시… 최근 카르마 코퍼레이션에서 미국 지부를 인수하려는 움직임이 있나요?”

「아직 그런 정보는 없습니다. 그나저나 그건 갑자기 왜…?」

“이번에 미국 지부에 손님이 왔다고 해서요. 클로이가 안내책으로 불려간 걸 보면 아무래도 한국 놈들인 것 같은데, 혹시나 해서 물어봤어요.”

「…….」

“됐어요, 이제 뭐 인수를 하든 말든 사무총장님은 관심도 없을 테니… 그냥 무시하세요.”

노아 팀장의 대답이 끊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혹시, 제가 전해드린 이능석이랑 시간석…… 아직 본부에 있습니까?」

“네. 사무총장님이 직접 관리하고 있어요. 그건 왜?”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흐음…….”

에마 대표는 끊긴 핸드폰을 바라보며 미심쩍은 한숨을 쏟아냈다.

***

“흠, 지역 토벌권을 매입하고 싶으시다고요?”

롱아일랜드에 위치한 미국 지부.

마이클 지부장을 만나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예. 현재 미국은 던전 출현이 너무 잦아서 오히려 곤란한 상황이라고 들었습니다.”

마이클 지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합니다. 전국 곳곳에 작전 지부를 두고 있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죠. 그렇다고 무작정 작전 지부를 늘리기가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저희한테 지역 토벌권을 매각하신다면 신경 쓰기 어려운 지역의 토벌을 저희가 관리하는 셈이니, 미국 지부 입장에선 부담이 조금 덜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우린 지역 토벌의 부담을 줄이고, 당신들은 추가적인 토벌로 수익을 내겠다는 거군요.”

“정확합니다.”

“아시겠지만, 저희가 수익성이 좋은 지역의 토벌권을 매각할 이유는 없습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시골과 사막 지역 위주가 될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상관없습니다.”

아무리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토벌 활동이 가능한 지역이 늘어나는 셈이다.

초기 토벌 시스템만 갖춘다면 이후로는 무조건 수익을 뽑아낼 수 있다.

뭐, 따지자면 틈새시장인 거지.

‘물론 그게 진짜 목적은 아니지만…….’

어쨌든 여기선 철저하게 장사꾼인 척을 해둘 필요가 있다.

“……좋습니다.”

이내 마이클 지부장의 허가가 떨어졌다.

“네바다주에 토노파라는 소도시가 있습니다. 그 근방 50km까지의 토벌권을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물론 저희 쪽에서만 결정할 순 없고, 국방부의 허가도 필요합니다. 신청은 저희 쪽에서 해둘 테니, 허가가 떨어질 동안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한 일주일 정도 걸릴 겁니다.”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다, 문득 뭔가 떠오른 척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 청소팀은 되도록 현지에서 구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신입보단 경력자가 좋을 것 같아서 말이죠. 혹시 추천할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글쎄요. 지금 지부에 소속된 인원 외에 경력 있는 던전 청소부가 그리 많진 않아서…….”

“기존에 퇴사하신 분이어도 괜찮습니다.”

“…….”

그의 눈썹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 3년 전쯤에 퇴사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굉장한 베테랑들이었죠. 실력도 매우 좋았고요.”

“그럼 그분들을 좀 만나봐야겠군요. 혹시 연락처를 가지고 계신가요?”

“가지고는 있지만…… 아마 만나기는 어려울 겁니다. 듣자 하니 아예 사람이랑 담을 쌓았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좋은 일로 퇴사한 게 아니라서 다들 상태가 좀…….”

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히 모르고 한 소리가 아니다.

애초에 정말 청소팀으로 고용할 생각도 아니고.

그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알아내면 그만이다.

“뭐, 일단 만나보겠습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연락처는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곤 사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사람들은 왜 찾아요?”

“……!”

갑자기 튀어나온 클로이가 나를 가로막았다.

시발, 너무 놀라서 소리도 못 냈다.

낌새를 보아하니 안에서 했던 이야기를 다 들은 모양이다.

“신입보단 경력직이 여러모로 편하지 않겠습니까.”

“정말 그 이유에요?”

“…그럼 또 뭐가 있습니까?”

“…….”

그녀가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당신, 정말 거래하러 온 거 맞아요?”

“참 나… 아까는 뭘 하든 신경 안 쓴다면서요. 이제 와서 왜 이렇게 관심이 많으실까?”

“그건 어디까지나 선 안에서 이야기고. 선을 넘을 생각이라면 말이 좀 달라지죠.”

“…….”

“가령 3년 전 사건을 이제 와서 조사하겠다거나.”

“…….”

…허.

이것 봐라?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