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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정체가 뭐야, 저 새끼…….’
노아는 나가떨어진 김준우를 바라보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분명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지만, 오히려 당황스러운 쪽은 노아 본인이었다.
그도 그럴 게 고작 한 방이었다.
무려 30분 동안 전력을 다해서, 고작 한 방을 먹인 것이다.
그전까진 제대로 된 공격은커녕 이렇다 할 대미지조차 줄 수 없었다.
‘시발, 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길래…….’
무엇보다 소름 끼치는 건…… 저놈, 자신에게 죽일 생각은 없다고 했다.
정말 죽일 각오로 덤비고 있는 자신과 다르게 죽이지 않을 만큼만 힘을 쓰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랭킹 1위인 자신을 상대로 힘을 아껴 가면서 싸울 수 있는 헌터?
그게 존재한단 말인가.
“이거 놀랍군요.”
그때, 잔해 속에서 김준우가 몸을 일으켰다.
“순수하게 힘으로만 저한테 한 방 먹인 사람은 당신이 처음입니다. 확실히 세계 랭킹 2위 딱지가 그냥 붙은 건 아니군요.”
“…어이가 없군. 네놈이 비공식 1위라는 소리냐?”
“비공식이라뇨?”
김준우의 시선이 노아를 향했다.
“아직도 감이 안 오십니까?”
여전히 묘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여태까지와는 전혀 달랐다.
마치 사냥감을 앞에 둔 포식자의 눈빛이다.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빌어먹을…….’
그가 이를 으득 씹었다.
슬슬 몸에 무리가 오고 있다.
스테이터스를 이렇게까지 끌어올린 건, 1년 전 레드 등급 던전 이후로 처음이었다.
다시 말해, 저 새끼는 지금 혼자서 레드 등급 몬스터에 가까운 힘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다.
과연 그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 새끼의 스킬은 어중이떠중이 같은 헌터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무엇이다.
‘강자, 그 위의 강자인 건가…….’
그간 수많은 세계 랭커들을 만나왔지만.
저놈을 마주한 지금, 그 모든 게 애들 장난이었다고 느껴질 정도다.
‘이길 수 있는 건가…….’
잠시 의문이 생겼지만 그뿐이다.
노아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래, 언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싸워왔는가.
매일 같이 양부모에게 두들겨 맞았을 때도, 소피아와 함께 집을 나왔을 때도, 처음 던전에 들어갔을 때도, 랭킹 1위에 올랐을 때도 딱 하나만 생각했다.
그저 살아남는 것.
오늘도 그 연장선이다.
“하아압!!”
노아는 우렁찬 기합과 함께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고유 스킬 : 아포칼립스]
[생존 – 제1 법칙]
[무관용]
쾅, 콰광―!!
내지른 주먹 한 방에, 주변의 잔해가 하늘로 솟구쳤다.
하지만 김준우는 또다시 빠른 속도로 그 공격을 피했다.
현재 노아의 스테이터스 총합은 19만.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다.
김준우도 이를 안 건지 피하는 데 집중했다.
콰직―!
쾅, 콰광―!!
퍼버버벙―!!
노아는 피할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김준우도 당하고만 있진 않았다.
[고유 스킬 : 마왕 - 독재자]
[제작 스킬 : 마검 소환]
허공에서 커다란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유 스킬 : 아포칼립스]
[생존 – 제3 법칙]
[강탈]
슈우우욱―!
검은 노아가 아닌, 김준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쾅―!!!
“…크윽!”
땅이 흔들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충격.
모든 공격을 회피하던 김준우도 이번만큼은 꽤나 대미지를 받은 듯했다.
공격을 소멸시키는 김준우의 스킬은 이제 무용지물이 된 듯했다.
즉석에서 스킬을 만들어도 뺏으면 그만이다.
당장에 놈을 쓰러트릴 수 없지만, 스테이터스가 최대치에 도달하면 가능성은 있다.
최대치에 도달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10분.
공격을 막아내며 딱 10분만 버틴다면…….
이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건 좀 위험하겠군요.”
김준우의 소름 끼치는 눈빛이 노아를 관통했다.
전신이 오싹해지는 기분에 움츠러들기도 잠시.
“그럼 그 전에 날 죽여 보던가.”
[고유 스킬 : 아포칼립스]
[생존 – 제5 법칙]
[강행돌파]
파앙―!!
땅을 박차고 다시 한번 앞으로 달려들자, 공간이 흔들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일었다.
[생존 – 제1 법칙]
[무관용]
온 힘을 주먹에 실어 넣으며 김준우를 향해 내뻗었다.
[고유 스킬 : 마왕 - 각성]
김준우의 전신에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기류가 터져 나왔다.
[각성 스킬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현 시간부로 시전자는 기존의 클래스를 초월합니다.]
[각성 클래스 : 절대 군주]
“……어?”
노아의 몸이 갑자기 우뚝 멈췄다.
순간 김준우의 스킬 효과인가 싶었지만.
‘아니, 이건…….’
본능이다.
본능이 몸을 막아선 것이다.
더 다가가면 정말로 죽는다는, 그 압도적인 공포심을 느낀 본능이.
“시, 시발…!!”
노아는 고함을 내지르며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고유 스킬 : 아포칼립스]
[생존 – 제3 법칙]
[강탈]
하지만…….
[……스킬 시전 불가]
“……뭐?”
[올바른 시전 대상이 아닙니다.]
[대상을 다시 지정하십시오.]
“시, 시발, 무슨 말도 안 되는…….”
당혹감에 노아의 머리가 순간 하얘졌다.
그사이 김준우의 손가락이 자신에게 향했다.
눈을 마주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엄청난 위압감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떨어졌다.
[절대 군주 : 디스트로이어]
────!
이내 주변 소리가 사라졌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웨슬리 이 미친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놈을 적으로 둔 건가.
***
올리버의 집을 포함해 완전히 초토화가 된 걸 보고, 난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설마하니 각성 스킬까지 쓰게 될 줄이야.
하지만 나 또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지막 순간, 노아의 스테이터스는 총합 25만을 돌파했었으니까.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희미하게 느꼈던 위기감을 털어내자 김민주가 다가왔다.
“서, 선생님…?”
“걱정 마. 안 죽였어.”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노아를 흘기며 대답했다.
사실 마지막 공격에 녀석이 어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어쭙잖게 힘 조절을 하면서 싸울 만한 놈이 아니었으니까.
‘이걸로 죽으면 어쩔 수 없겠거니 했는데…….’
겨우 의식을 잃은 것으로 끝날 줄이야.
이놈이었으니까 가능했지, 다른 놈 같았으면 이미 저세상행이었을 거다.
‘확실히 강한 놈이긴 하네.’
녀석의 끈질긴 생명력에 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여, 역시! 말은 그렇게 해도 구해줄 줄 알았다니까!”
그때, 김민주가 구해준 올리버가 목소리를 높였다.
저놈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건가.
“착각하지 마시죠. 아직 쓸모가 있어서 살려둔 것뿐이니까.”
“어 어…?”
“당신도, 저기 쓰러져 있는 놈도, 국제 협회에 대항하려면 아직은 필요합니다. 물론 도움이 안 된다면 그땐 제 선에서 처리하겠지만.”
“…….”
올리버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노아를 여기서 죽이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PB 코퍼레이션에 소속되어 있지만, 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여동생의 복수다.
그 복수 대상에 국제 협회가 들어가 있는 이상, 그의 칼날은 언젠간 본부를 향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본부 입장에서도 껄끄러운 존재겠지.
여기서 노아를 죽인다면, 본부의 골칫거리를 하나 줄여주는 것밖엔 안 된다.
무엇보다…….
‘저놈도 생각이라는 게 있으면 이제 아군, 적군 정도는 구분하겠지.’
도와주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녀석이 국제 협회에 맞서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이니까.
‘하아…….’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뱅크 아이템은 결국 회수하지 못했고, 국제 협회는 전 세계 던전과 헌터를 컨트롤 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에덴까지 그놈들 손에 들어가게 되면…… 더는 국제 협회를 막을 방법이 없다.
제2의 국제 협회.
5년 이내에 사무총장 취임.
업보 스킬 해제.
원래 몸으로 복귀.
전부 불가능한 일이 되겠지.
그러니 일단은…… 어떻게 해서든 우리가 먼저 에덴을 손에 넣는 게 우선이다.
“3년 전 에덴이 발견됐던 던전 정보, 혹시 기억하십니까?”
“어… 그, 그게… 옐로우 등급의 차원형 던전이었던 것 같은데…….”
차원형 던전.
던전 중에서 재출현 기간이 가장 긴 던전이다.
하긴, 그러니까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겠지.
차원형 던전의 평균 대기 기간은 3년…….
딱 재출현할 시기다.
문제는 미국 어디에 재출현할지 모른다는 건데…….
‘운 좋게 우리가 매입한 지역에 출현하면 좋겠지만.’
말도 안 되는 확률이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운에 기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접니다.”
「어떻게 됐어요?」
전화를 받은 이아영 본부장이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거래는 불발됐습니다.”
「……네?!」
“거기다 3년 전에 에덴이 발견됐다더군요.”
「에, 에덴이요? 그게 정말 실존했다고요?!」
“그런 모양입니다. 뭐, 알고 계시겠지만 만약 에덴이 국제 협회 손에 들어가게 되면 다 끝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하는데…… 우리가 미국 전역 던전을 관리하는 게 아닌 이상 불가능하겠죠.」
「그 말은…….」
“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미국 지부, 우리가 인수합시다.”
***
국제 헌터 협회, 본부.
“방금 미국 트렌턴에서 전투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들어 왔습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고 하는데…….”
웨슬리 사무총장에게 보고하던 수행비서가 그의 눈치를 보며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이후로 노아 웨스턴우드와의 연락이 끊겼습니다.”
“연락이 끊겼다고요? 사망한 게 아니라?”
“네.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걸 보면 사망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허.”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기어이 아무도 죽지 않은 건가.
‘쯧, 이러면 귀찮아지는데…….’
그 인간은 머릿속에 오로지 여동생의 복수밖에 없는 놈이다.
그 대상에 국제 협회가 들어 있는 한, 언젠간 반드시 우리를 공격하려 들겠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김준우와 손이라도 잡는다면…… 그건 확실히 곤란하다.
어쩔 수 없지.
예정보단 이르지만, 슬슬 움직이는 수밖에.
“지금 당장 기자회견 준비해주세요.”
“네, 네?”
수행비서가 화들짝 놀랐다.
“아, 아직 에덴도 발견되지 않았는데, 벌써 움직이시는 건 조금 위험한…….”
“그때까지 기다리다가 김준우나 노아가 공격이라도 해오면, 당신이 책임질 건가요?”
“…….”
“그들이 이빨을 드러내기 전에 국제 사회를 장악해둬야 합니다. 때를 기다리는 건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아요.”
“……죄송합니다.”
수행비서가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일단 우리 소속 지부 이외, 모든 국가의 던전 출현을 제한하는 것부터 시작하죠.”
웨슬리 사무총장의 음성이 낮게 깔렸다.
“이제부턴 전 세계 모든 던전과 헌터…… 우리가 관리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