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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게 무슨 개소리야?!”
한국, 카르마 코퍼레이션 본사.
긴급 뉴스를 확인하던 이아영 본부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거 지금…… 국제 협회 소속 외에는 토벌을 통제하겠다는 겁니까?”
하성일 본부장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이아영 본부장은 이를 으득 씹으며 말했다.
“본격적으로 전 세계 던전과 헌터를 통제하려는 거예요. 차원석으로 던전 수를 조절하고, 이능석과 반능석으로 헌터를 관리하겠다는 건데…….”
“그러면 남아 있는 독립협회들은…….”
“모두 국제 협회에 가입하려고 하겠죠. 살아남으려면.”
이아영 본부장이 주먹을 꽉 쥐었다.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다.
이 시간부로 독립협회, 토벌 기업, 헌터를 포함한 전 세계가 국제 협회 편에 설 것이다.
물론 그들 또한 스스로 목줄을 차는 꼴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던전은 곧 그들의 밥줄이고, 국제 협회가 그 밥줄을 쥐고 협박을 하는 이상 그들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쨌든 살아는 남아야 할 것 아닌가.
그리고 그건.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카르마 코퍼레이션도 마찬가지겠지.
하성일 본부장의 물음에 이아영 본부장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국제 협회 가입 유예 기간은 단 한 달.
만약 그 안에 국제 협회에 가입하지 않으면, 저번에 카르텔로 지정되었을 때처럼 자체 토벌이 아예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카르마 또한 그 안에 국제 협회에 붙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선.
하지만.
“그럴 수는 없죠.”
이아영이 말했다.
“카르마 코퍼레이션은, 대표님이 국제 협회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에요. 그런 조직이 국제 협회 아래로 들어가는 건 있을 수 없어요.”
“하지만 토벌권을 국제 협회가 관리하게 되면, 저흰 더 이상 토벌이 불가능해집니다.”
“…….”
알고 있다.
하지만 김준우는 여태까지 우리를 위해 목숨마저 마다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살겠다고 그를 저버리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무엇보다 앞으로도 계속 국제 협회에 대항한다는 건, 전 세계와 맞서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게 정말 가능할까요?”
이아영 본부장이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왜, 쫄려요?”
“…….”
하성일 본부장은 순간 당황했다.
“어차피 지금 국제 협회에 가입해봤자 결국 놈들 손아귀에서 놀아날 거예요. 조금이라도 눈 밖에 나면 또다시 토벌권으로 협박을 하겠죠. 국제 사회는 점점 본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겠고……. 그렇게 정신 차리고 보면 어느샌가 목줄이 채워져 있을 거예요.”
“…….”
“그럴 바엔 그냥 죄다 물어뜯고 알거지 되는 게 낫지.”
이아영 본부장이 뚝심을 굳히자, 하성일이 미소를 지었다.
“하, 하하! 맞는 말씀이군요. 좋습니다. 버텨보죠!”
“우리는 그렇다 쳐도, 직원들이 문제에요. 토벌이 막혀버리면 월급 줄 돈도 없을 거예요.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을 해야 할 수도…….”
“에이, 직원들이 회사를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우리 욕심 때문에 그들을 버릴 순 없죠.”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요?”
“제가 있잖습니까.”
“……?”
하성일 본부장이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래 봬도 저 재벌입니다.”
“…….”
그게 뭐? 어쩌라고?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성일 본부장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는 사이,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접니다.」
다름 아닌 김준우 대표였다.
“뉴스 봤어요?”
「봤습니다. 일단 회사는 유지해야 하니까, 지금 당장 국제 협회에 가입하는 게 좋을 것…….」
“아뇨.”
단호한 목소리로 김준우의 말을 끊었다.
“버틸 거예요. 하 본부장님도 동의했고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럼 회사는 어떻게 하려고요. 토벌이 막히면 당장 직원들 월급도 못 주는…….」
“제가 있잖습니까, 대표님.”
그때, 하성일 본부장이 끼어들었다.
“회사는 걱정 마십시오. 제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
“당신이 만든 회사지만, 우리가 키운 회사에요. 누구 마음대로 국제 협회에 넘겨 버리려고?”
「이게 지금 자존심 부릴 일입니까?」
“자존심 때문이 아니에요.”
이아영이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 때문이지.”
「…….」
“제2의 국제 협회, 만들고 싶다면서요.”
「……참 나, 알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시죠.」
“그래서, 미국 지부 인수는 어떻게 됐어요?”
「불발 났습니다.」
“또?!”
「그래도 협력은 해주겠다고 합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미국 전역 던전을 모조리 토벌할 겁니다. 인원이 많이 필요한 만큼, 우리 쪽에서도 작전팀을 좀 파견해야 할 것 같군요.」
“얼마나요?”
「가능한 만큼.」
“……알았어요.”
이아영 본부장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만약에 한 달 안에 에덴을 못 찾으면요?”
「한 달이 지나면 우린 토벌 활동이 불가능해질 테니, 영영 못 찾겠죠.」
이아영 본부장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뭐, 당신이 알아서 하겠죠. 파견 가능한 인원 집계되면 다시 한번 연락 줄게요.”
「알겠습니다.」
“수고해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그 직후, 이아영과 하성일 본부장이 동시에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어, 아빠.”
“예, 할아버님.”
각자 이두식 이사와 하덕수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국내 토벌 가능한 최소 인원만 남기고 모든 지부랑 길드, 모조리 미국으로 파견해야 할 것 같은데… 가능할까?”
“예예, 저흰 버티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만, 앞으로는 자금 지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혹시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각자 무어라 대답을 듣길 잠시.
“오케이, 땡큐.”
“감사합니다!”
두 명 다 원하는 걸 얻고는 통화를 종료했다.
***
“일단 미국 전역을 크게 네 구역으로 나눌 겁니다.”
미국 지부, 작전 기획실.
마이클 지부장과 글렌 통제팀장, 숀 작전팀장.
노아와 한유빈, 김민주까지 모두 자리한 가운데 입을 열었다.
“동쪽은 미국 지부가 맡아주십시오. 그리고 서쪽은 노아 길드가, 북쪽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그럼 남쪽은?”
“남쪽은 다른 분들이 도와주실 겁니다.”
“다른 분이라니…?”
“뭐, 제가 도움을 청할 곳은 한국만 있는 게 아니라서. 그나저나 슬슬 오실 때가 됐는데…….”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돌리자, 타이밍 맞춰 그들이 도착했다.
“김!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한 달 만에 뵙는군요.”
베트남 지부의 비엣 지부장.
콩고 지부의 브루스 지부장.
그리고 일본 지부의 하라무라 지부장까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락을 돌렸는데, 다들 흔쾌히 한걸음에 달려와 주었다.
받은 게 있으니 당연히 도와주겠다나 뭐라나.
“남쪽은 이쪽 연합이 맡아주실 겁니다.”
“…….”
“…….”
그들을 마이클 지부장과 노아에게 소개하자, 두 명 다 퍽 당황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러던 중, 노아가 미심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상황이 어떤지는 알고 도와준다는 거야? 자칫하다간 국제 협회에 찍힐지도 모르는데…….”
“그런 게 무서웠으면 애초에 김이랑 손을 잡지도 않았을 겁니다.”
비엣 지부장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다른 이들 또한 표정을 보아하니 같은 생각인 듯했다.
예전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어째 다들 나사가 하나씩 풀린 것처럼 보인다.
테이블 위에 펼쳐 놓은 지도를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던전이 출현하면 한 시간 내에 바로 토벌을 진행해야 합니다. 그 이상 지체되면 국제 협회가 에덴의 이능파를 감지하고 움직일 겁니다.”
“한 시간이면…… 꽤나 빠듯하군요.”
“그걸 한 달 동안 계속 진행해야 합니다. 루틴은 제가 맞춰드릴 테니, 제 지시대로만 움직여 주시면 됩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덴의 외형에 대한 정보는 각 팀에 전달해 놓겠습니다. 발견 즉시 저에게 보고해주시면 됩니다. 단, 절대 던전 밖으로 가지고 나오면 안 됩니다.”
던전 밖으로 나온다면 국제 협회가 곧바로 이능파를 감지할 테니까.
“한 달 동안 어마어마한 양의 던전이 토벌될 겁니다. 당연히 뒤처리해줄 청소팀도 많이 필요합니다.”
“일단 저희 쪽에서 공고는 올려놨습니다.”
“좋습니다. 이젠 각 구역에 가서 대기하고 계십시오. 인원이 준비되는 대로 즉시 작전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모두가 해산했다.
이어서 김민주와 한유빈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도 슬슬 준비합시다.”
“네.”
“알았어요.”
작전에 참가한 국가만 총 5개국.
토벌 참가 인원은 약 3만 명.
비토벌 인원까지 합치면 총 5만 명의 인원이 투입된 전무후무한 규모의 작전.
만약 한 달 내에 에덴을 찾지 못하면, 나를 도운 그 5만 명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
그러니 무조건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한다.
실패하면 제2의 국제 협회는커녕, 평생을 웨슬리의 개로 살아야 할 테니까.
***
기자회견 후 일주일이 지난 현재.
국제 헌터 협회, 본부.
“현재 중국, 러시아를 포함해 총 19개 협회가 추가로 가입했습니다. 헌터 등록은 총 86%가 완료됐습니다.”
수행비서가 웨슬리 사무총장에게 현황을 보고했다.
“한국 쪽은 어떻게 됐습니까?”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그들이 인수한 해외 지부들 또한 마찬가지고요.”
“뭐, 아직 3주나 남았으니 천천히 생각해보겠죠.”
“만약에 끝까지 가입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요?”
“기업은 토벌이 막히고, 헌터는 일자리를 잃을 텐데, 뭘 그런 걸 신경 씁니까. 알아서 도태될 겁니다.”
수행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전 세계가 국제 협회 손에 들어왔다.
더 이상 본인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이는 없다.
이제부턴 모든 것이 국제 협회에 의해 결정되고, 움직일 것이다.
그렇게 미소가 지어지던 그때.
“웨슬리!”
에마 대표가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뭐야?”
“요 일주일 새에 미국 내 토벌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고 있어.”
“난 또 뭐라고. 열심히 토벌하면 좋은 거지,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거야.”
“지난주 대비 1,500%가 상승했는데도?”
“……뭐?”
웨슬리 사무총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상식을 벗어난 수치다.
애초에 현재 미국 지부 인원으로 일주일 만에 그 정도 토벌은 불가능하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원이 닥치는 대로 토벌을 진행한다면 모를까.
‘……잠깐.’
어마어마한 인원이 닥치는 대로 토벌을 진행하고 있다?
그것도 미국 내에서?
‘설마, 이 새끼들…….’
에덴을 찾고 있는 건가…….
“지금 당장 노아 팀장한테 연락해서, 마이클 지부장 처리하라고 해.”
“그게…… 연락이 안 돼.”
“뭐?”
“며칠 전에 전투가 있었는데, 그 뒤로 연락이 끊겼…….”
“이런, 시발!!”
웨슬리 사무총장이 책상을 쾅 내리쳤다.
“에마.”
“…….”
“나 여기까지 정말 어렵게 왔어.”
이내 그가 화를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에덴만큼은 안 돼. 그놈들이 에덴을 발견하면 모든 게 끝이야. 그러니까…….”
그의 시선이 이내 에마를 관통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