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183
미국 유타주, 솔트 레이크 시티.
서부 임시 작전본부실.
“공격에 대비하라는 말은 들었지만…….”
노아가 무장을 한 수십 명의 인원 앞에서 넌지시 입을 열었다.
시선은 가장 앞에 있던 한 여성을 향했다.
“설마 네가 올 줄은 상상도 못 했군.”
“안녕. 오랜만이네?”
이윽고 가볍게 손을 흔들며 화답하는 여성.
이름은 단 샤오화.
현 국제 헌터 협회 중국 지부 작전 1팀장.
중국 랭킹 1위.
세계 랭킹 5위의 헌터로, 노아와는 과거 국제 협회에서 주최한 세계 랭커 회의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옛날엔 그나마 봐줄 만했는데… 어째 못 본 새에 국제 협회의 개가 됐네.”
노아가 대놓고 조롱했지만, 샤오화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쳤다.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제일 먼저 제 발로 국제 협회에 기어들어 가 놓고.”
“동급으로 보지 마. 난 스카우트 당한 거니까.”
노아가 어깨를 으쓱이자, 샤오화가 미소를 지었다.
언뜻 오랜 친구 사이처럼 보이는 편한 대화가 오갔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순간, 노아의 눈빛이 번뜩였다.
“진심으로 날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온 건 아니겠지?”
“그 쓸데없는 자신감은 여전하네.”
샤오화가 피식 실소를 뱉었다.
“본부에서는 작전본부만 파괴하고 철수하라고 했는데…… 이렇게 가기엔 좀 아쉽네. 랭킹 1위가 될 수 있는 기회인데, 그치?”
그녀의 말에 뒤에 있던 인원들이 일제히 공격 태세를 갖췄다.
노아 길드 또한 가만히 있진 않았다.
그들 역시 무기를 꺼내며 전면전을 준비했지만…….
“방해되니까 가서 불이나 끄고 있어.”
노아는 그들을 밀쳐내며 앞으로 나섰다.
[고유 스킬 : 아포칼립스]
“덤벼봐.”
거센 기류가 그의 전신을 타고 흘렀다.
그와 동시에 샤오화 또한 스킬을 시전했다.
[고유 스킬 : 소화홍극(小花紅棘)]
이내 그녀의 주변을 따라 수백 개의 작은 칼날들이 떠올랐다.
검을 쓰지 않는 유일한 검사 클래스.
고유 클래스, 검무.
허공에 흩날리는 수백, 수천 개의 칼날을 다루는 이능력자.
스으으으―!
이윽고 붉은 칼날들이 소용돌이치며 노아를 향해 불어 닥쳤다.
[생존 - 제5 법칙]
[강행돌파]
노아는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 수백 개의 칼날 사이로 몸을 던졌다.
파바바바박―!!
노아의 급소만을 노리며 파고든 칼날들.
하지만.
“…간지럽네.”
가디언 클래스인 그에게 그런 자잘한 공격은 큰 의미가 없었다.
이윽고 노아가 칼날 폭풍을 그대로 통과했고, 샤오화가 아차 하는 순간.
콰악―!
“…크윽!”
눈 깜짝할 새에 거리를 좁힌 노아가 샤오화의 목을 움켜쥐었다.
“딱 1분 지났군.”
“…하여간, 맷집만 더럽게 좋아 가지고.”
목을 붙잡힌 샤오화가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1분만 더 지나면 넌 절대 날 못 이겨.”
“…알아. 딱 5분만 지나도 전 세계에서 널 이길 수 있는 놈은 없겠지. 그런데…….”
[고유 스킬 : 소화홍극(小花紅棘)]
[개화]
촤악―!
노아의 몸에 박혀 있던 수백 개의 칼날이 그의 살을 찢으며 순식간에 거대해졌다.
“너, 지금은 B랭크 수준밖에 안 되잖아.”
“…….”
예상치 못한 공격에 노아의 동공이 흔들리길 잠시.
샤오화의 목을 움켜쥐고 있던 손에 힘이 풀렸다. 동시에 그의 무릎이 땅으로 털썩 떨어졌다.
“세계 랭킹 1위도 다 거품이네.”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진 노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샤오화가 싸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내 품속에서 통신기를 꺼내 들었다.
“북부 작전본부, 임무 완료했습니다.”
“…….”
“…알겠습니다.”
짧은 통신을 마친 샤오화가 이내 뒤에 있던 인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현장 마무리하고, 남아 있는 인원은 다 죽여.”
“네.”
“알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샤오화는 등을 돌렸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국제 협회의 공격.
이와 같은 습격을 받은 건, 비단 노아 길드뿐만이 아니었다.
미국 전역에서 같은 지시를 받은 이들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
“생각보다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네.”
미국 지부, 중앙통제실.
들이닥친 국제 협회 소속 헌터들과 대치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남의 나라에서 너무 대놓고 활개 치는 거 아닙니까? 국제 사회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텐데요.”
내가 묻자,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활개는 우리가 아니라 당신들이 치고 있는 거죠. 공식적으로 미국 지부는 해체된 거 모르십니까? 우린 무단으로 미국에서 토벌 행위를 하고 있는 비공식 조직을 철수시키려는 것뿐입니다.”
“아직 유예 기간이 3주나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건 뭐,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거고… 늘 예외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참 나.
그냥 되는대로 막 갖다 붙이는군.
그냥 더는 에덴을 찾게 둘 수 없으니, 싸그리 밀어버리려는 걸 누가 모르는가.
뭔 비공식 조직 철수가 어쩌고저쩌고…… 어이가 없어서 원.
“아무튼, 현 시간부로 이곳은 더 이상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국제 협회가 관리하게 됐으니 순순히 비키십시오.”
“거절한다면?”
“무력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진지하게 뱉은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게 남자의 심기를 건드린 듯,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쯤이면 각 작전본부에도 병력이 도착했을 겁니다. 아마 모두 철거됐겠죠. 물론 순순히 철수 명령에 따른다면 위협을 가할 생각은 없으니…….”
“그깟 건물, 다시 세우면 그만입니다. 중요한 건 작전본부가 아니라 작전 인원이겠죠.”
내가 그의 말을 자르며 입을 열었다.
“작전 인원이 남아 있는 한, 우린 계속 작전을 진행할 겁니다. 당신들이 정말로 우리 작전을 막을 생각이라면 다 죽여야 할 겁니다.”
“……진심입니까?”
“제가 허세 부리는 것 같습니까?”
“그럼… 어쩔 수 없군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남자가 이내 품에서 통신기를 꺼내 들었다.
“각 파트장에게 추가 지시 사항 전달합니다. 현 시간부로 각 작전본부에 남아 있는 인원들…… 전원 사살하십시오.”
그 한마디를 마치고 남자가 다시 나를 바라봤다.
“후회하지 마십시오. 저흰 최대한 무력 충돌은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럴 리가요.”
어깨를 으쓱였다.
무력 충돌은 피하고 싶었다?
개소리하고 있네.
지들 마음대로 우리 작전에 훼방을 놓고 있으면서, 우린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
그 어떤 구역도 그 꼴은 못 볼 것이다.
전투가 벌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차라리 끝을 보고 말지.
그런데 만약에.
“시작하기 전에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만약에 우리가 당신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면…….”
남자에게 바짝 다가가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그땐 어떻게 되는 겁니까?”
“…….”
그 순간 남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럴 일은 없을…….”
“길고 짧은 거야 대보면 알겠죠.”
내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가서 사무총장한테 전하십시오. 지금이야 당신들이 칼자루를 쥐었으니 다들 눈치를 보고 있지만, 우위에 섰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모든 걸 통제하려고 하면 언젠간 반드시 돌려받을 거라고.”
경험자인 내가 장담할 수 있다.
“아, 생각해보니…….”
깜빡하고 있던 게 떠올라, 내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여기서 다 죽으면 전달할 입이 없겠군요.”
[고유 스킬 : 마왕]
***
미국 북부, 미네소타주.
무너져 내린 임시 작전본부 앞.
[고유 스킬 : 천수관음 - 각성]
[육관음중일(六觀音中一)]
[제1격 - 성관음(聖觀音)]
슥, 스슥―!
김민주의 검격이 연신 허공을 갈랐다.
하지만 그 어느 공격도 에반스 남매에게 닿지 못했다.
그들은 가볍고 빠른 발놀림으로 능숙하게 공격을 피했다.
회피력만 본다면 김준우와 견줄만한 움직임.
“칫…!”
김민주는 더욱더 속도를 올려야 했다.
[육관음중삼(六觀音中三)]
[제3격 - 마두관음]
슥, 스스스슥―!
“……!”
세 개의 검을 휘두르는 듯한 엄청난 속도의 검격에 에반스 남매가 순간 흠칫했다.
[육관음중육(六觀音中六)]
[제6격 - 여의륜관음]
스윽―.
김민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가장 고요하고 날카로운 일격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고유 스킬 : 비스트 - 케르베로스]
쾅―!!
그 회심의 일격은 난데없이 나타난 괴물에 의해 허무하게 막혀버렸다.
짐승의 형태로 모습을 변형하는 비스트 클래스, 데이빗 에반스의 스킬.
지옥의 파수꾼 케르베로스를 실제로 마주한 김민주는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동시에 세 개의 머리가 그녀를 향해 입을 쩍 벌리는 순간.
“정신 놓지 마!”
[고유 스킬 : 하이패닉 버서커]
뻐억―!
한유빈의 주먹이 괴물의 턱을 강타했다.
이어서 차석현과 유지우 또한 그 틈을 타서 공격에 가세했다.
[고유 스킬 : 스팀펑크]
[트랜스 폼 : 펑크 독]
[고유 스킬 : 아르테미스]
[탄환 - 보름]
[장전 확인]
콰과광―!!
그들의 공격은 정확히 괴물에게 직격했다.
괴물은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한 번 더 가요!”
“네!”
한유빈의 외침에 김민주는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었다.
[육관음중육(六觀音中六)]
[제6격 - 여의륜관음]
그렇게 다시 꺼내든 일격.
하지만 이번에도 그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다.
[고유 스킬 : 비스트 - 스핑크스]
카아아아아―!!
이번엔 데이빗의 여동생, 솔트가 그녀를 막아선 것이다.
거대한 사자 괴물이 입을 쩍 벌렸다.
지이이잉―.
큰 입에 강렬한 빛이 모이기 시작했다.
“피, 피해!”
“뒤로! 무조건 뒤로 빠져!!”
“민주 씨!!”
한유빈과 차석현 그리고 유지우가 소리쳤지만 어째선지 김민주는 움직이지 않았다.
“후우…….”
피하긴커녕, 공격이 날아오는 한복판에서 눈을 감고 온 신경을 검에 집중할 뿐이었다.
이윽고 작전본부실을 단숨에 날려버린 브레스가 그녀를 향해 정면으로 쏘아졌다.
[고유 스킬 : 천수관음 - 각성]
[육관음중오(六觀音中五)]
[제5격 - 준세관음]
틱―.
순간 가벼운 마찰음과 함께 김민주의 검이 브레스의 궤도를 틀어버렸다.
“…미친.”
“저, 저게 말이 돼?!”
“어떻게 볼 때마다 괴물이 돼가냐, 저 사람은!”
뒤로 빠져 있던 한유빈과 차석현, 유지우는 그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정작 김민주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비스트 클래스 중에 이런 녀석들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대개 실존 동물로 변형하는데 아주 가끔 전설 속 존재로 변형하는 놈들이 있어요. 게다가 케르베로스에 스핑크스라면… 랭킹 12, 13위의 그놈들일 거예요.”
한유빈은 시선을 쌍둥이에게 고정했다.
그들은 어느샌가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별로 싸우고 싶지 않은데.”
“그냥 보내주면 안 돼? 어차피 할 일도 끝났고.”
그들이 졸린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자, 검을 쥔 김민주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현재 다른 본부 상황이 어떤지 모른다.
아직 공격을 받지 않았을 수도, 혹은 이미 전투를 벌이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 저들을 보내줬다간 다른 곳이 공격받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절대 보내줄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어디선가 통신기가 울렸다.
다름 아닌 데이빗 에반스가 들고 있는 통신기다.
“응.”
통신기를 꺼내든 데이빗이 여전히 졸린 목소리로 응답했다.
“건물은 부쉈어. 근데 얘네가 안 보내주는데.”
“……알았어.”
이내 무전기를 내려놓고는 귀찮은 표정을 짓는다.
솔트가 슬쩍 물었다.
“뭐래?”
“다 죽이래.”
“귀찮네.”
“그러니까.”
쌍둥이는 누구랄 것 없이 깊은 한숨을 한 차례 내쉬었다.
[고유 스킬 : 케르베로스]
[고유 스킬 : 스핑크스]
카아아아악―!!!
시야에 다 담기지도 않을 만큼 거대한 생명체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김민주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죽이라고?
그럼 여태까지는 죽일 생각이 없었다는 건가?
‘빌어먹을…….’
세계 랭커는 다르다 이건가.
그동안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세계 랭커 발끝에도 못 미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잠시.
“쫄지 마요.”
한유빈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툭 올렸다.
“우리가 쫄면 믿고 맡긴 대표님은 어떡해요.”
“……그러네요.”
김민주는 그제야 실소를 뱉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서 포기하고 철수하면 더 이상의 작전 진행은 불가능하다. 당연히 국제 협회를 견제할 마지막 수단도 놓치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국제 협회는 명실공히 전 세계의 통제권을 쥐게 된다.
모든 독립 협회, 길드, 기업은 사라지고 오로지 국제 협회에 의해서만 토벌이 가능해질 것이다.
국제 협회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협회를 만들기 위해 김준우가 목숨 걸고 노력해온 지난 시간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셈이다.
그래.
김준우가 그동안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건 것만 몇 번인가.
그러니 이제 와서 무섭다고 내뺄 수는 없다.
“차석현 길드장님, 유지우 길드장님.”
“말씀하십쇼.”
“남자 쪽은 저희가 맡을게요. 두 분은 여동생 쪽을 맡아주세요.”
두 길드장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김민주의 전신을 따라 푸른 기운이 맴돌기 시작했다.
“해보죠.”
[고유 스킬 : 천수관음 - 각성]
[육관음중외]
[접신 - 관세음(觀世音)]
[정법명왕여래(正法明王如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