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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한국 임시 작전 본부.
국제 협회와의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긴박했다.
“제세동기 가져와!”
“출혈이 너무 많습니다!!”
“혈액 팩 여분 없어?!”
“RH+ AB형! 긴급 헌혈 가능하신 분 있습니까?”
한유빈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의료진은 계속해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고, 다른 이들 또한 분주하게 움직이며 응급처치를 도왔다.
김민주를 비롯한 각 팀장들은 꽤나 긴장된 모습으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살행위.
본인의 피를 소모하여 어마어마한 힘을 끌어올리는 한유빈의 각성 스킬.
하지만 그만큼 큰 부작용이 따르는 스킬이며, 한유빈 또한 처음 클래스를 각성했을 때를 제외하면 한 번도 그 스킬을 쓴 적이 없을 정도였다.
스킬 시전 직후부터 목숨을 위협하는 부작용.
1분간 스킬을 유지하면 몸속 혈액의 10%가 증발하며, 2분 이상 유지하면 30%에 달하는 혈액이 증발한다.
그리고 그 이상 스킬을 사용하면 당연히 사망에 이른다.
그런 스킬을 이곳에서 썼다.
그것도 본인이 직접 쓰러뜨리려는 게 아닌, 오로지 김민주가 집중할 틈을 만들어주기 위해.
만약 김민주가 조금이라도 주춤했거나 혹은 공격에 실패했다면…… 한유빈은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김민주는 굉장히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의식 돌아왔습니다!”
“한유빈 씨! 호흡하세요! 호흡!”
의료진의 그 말에 김민주와 차석현, 유지우는 곧바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유빈 씨! 괜찮아요? 유빈 씨!”
“…소리 지르지 마요. 골 울리니까.”
겨우 의식을 찾은 한유빈이 힘겨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떻게 됐어요……?”
“상황 종료됐어요. 다들 무사해요.”
“……다행이네.”
배시시 웃는 한유빈.
김민주는 그 모습을 보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너무 무모했어요.”
“난 그쪽처럼 테크니컬하지 못하잖아요. 어떻게, 몸으로라도 때워야지.”
“그래도 다음부턴 이러지 마요. 죽으면 무슨 소용이에요.”
“참 나, 본인이 할 소린 아닌 것 같은데.”
그 말에 김민주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다른 구역은요? 그쪽도 공격받았대요?”
“네. 각 구역을 동시에 습격한 모양이에요. 서부 본부는 상황 종료됐고, 연합 토벌대 쪽이랑 미국 지부 쪽은 아직 접전 중인가 봐요.”
“네, 네? 그럼 우리가 빨리 지원해줘야…… 윽!”
“우, 움직이시면 안 돼요!”
한유빈이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하자, 의료진이 바로 그녀를 제지했다.
그럼에도 한유빈은 김민주를 붙잡고 고집을 부렸다.
“국제 협회가 세계 랭커들을 풀었어요. 그쪽 인원만으로는 위험할 거예요. 지금이라도 우리가 지원을…….”
“알고 있어요. 그래도 유빈 씨는 안 돼요.”
김민주가 꽤나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 기세에 한유빈이 잠시 주춤하던 그때.
“누나!!”
전투 소식을 들은 한상혁이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꽤나 놀란 듯, 곧바로 한유빈에게 달려들었다.
“피, 피 뭐야?! 괜찮은 거 맞아?! 이거 보여?! 몇 개야?!”
“참 나, 다쳤다니까 걱정은 되디?”
“……뭐, 뭐래 병신이. 안 죽었으면 됐어!”
한유빈이 너스레를 떨자, 한상혁은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김민주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를 짓다가, 이내 검을 들고는 몸을 일으켰다.
“미, 민주 씨? 어디 가려고?”
“다른 구역 지원해줘야 한다면서요.”
“그니까 저도 같이…!”
“유빈 씨는 꼼짝 말고 쉬고 계세요. 지원은 제가 갈 테니까.”
김민주는 그 말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한유빈의 성격상 아무리 뜯어말려도 따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순간 김민주의 얼굴에 여태껏 본 적 없는 극도의 분노가 내비친 채였으니까.
덕분에 한유빈조차 순간 얼어붙어 멀어지는 김민주에게 더 이상 토를 달 수가 없었다.
***
“유이토 헌터님!‘
미국 동부.
지부 연합 임시 작전본부.
국제 협회 소속의 한 헌터가 젊은 남성에게 다가와 황급히 보고를 올렸다.
“북부의 쌍둥이와 서부의 샤오화, 남부의 레오 모두 연락이 안 됩니다.”
“……뭐?”
젊은 남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설마… 작전 실패한 건가요?”
“그, 그런 것 같습니다.”
“아니, 서부랑 북부는 그렇다 쳐도. 남부는 왜? 어쭙잖은 독립협회 연합에다가 랭커도 없을 텐데요?”
“저도 거기까진 잘…… 아무래도 다른 쪽에서 지원을 나온 모양입니다.”
“에휴, 머저리 같은 새끼들.”
남성이 고개를 저으며 옅은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그때.
“너, 너희들… 대체 뭐야…….”
그의 발밑에서 힘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름 아닌, 동부 토벌대를 맡은 숀 작전팀장이었다.
“흐음…….”
하지만 젊은 남성은 대답 대신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와타나베 유이토.
전 일본 지부 소속의 작전 1팀장이었지만, 몇 년 전 돌연 협회를 떠나 프리랜서로 전향한 헌터.
현 SS랭크의 메카닉 클래스.
현 일본 랭킹 1위.
그리고, 현 세계 랭킹 2위.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어마어마한 실력자.
그의 싸늘한 시선이 숀 작전팀장을 떠나 주변으로 향했다.
수백 명에 달하는 인원이 피를 흘린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처참한 광경이 그의 눈에 담겼다.
“대, 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야…!”
숀 작전팀장이 절규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잘못이라…….”
유이토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길 잠시.
“약한 게 잘못이라면 잘못 아닐까요?”
“……뭐?”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대답을 내놓았다.
“하, 하하… 어이가 없군.”
“뭐, 이해 못 하면 어쩔 수 없고.”
유이토가 숀 작전팀장의 말을 자르며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메카닉 클래스가 사용하는 트랜스 웨폰.
스킬에 따라 자유자재로 모습이 변하는 그 무기를 쥐자, 회중시계가 조잡한 칼날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그 칼날이 숀 작전팀장의 목에 날아들던 그때였다.
“맞는 말이야.”
어디선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약한 게 잘못이지. 세상이 그래. 허구한 날 당하기만 하고, 아무리 억울해도 찍소리 한 번 못하고 말이야.”
“…….”
“그게 다 힘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니겠어?”
유이토는 눈을 가늘게 뜨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봤다.
“예전에 네가 나한테 그랬듯이 말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동양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본 적 없는 얼굴이었지만, 유이토는 단번에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김준우.
비공식 SS랭크로 판정된 이레귤러.
이 바닥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그 남자.
“설마 남부 쪽을 처리한 게 당신인가……?”
유이토가 물었지만, 김준우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
유이토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갔다.
그가 잘 나가던 작전팀장 자리를 내려놓고 프리랜서로 전향한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몬스터가 아닌 다른 것과 싸우고 싶었으니까.
제아무리 강한 몬스터를 쓰러뜨려도, 수백 수천 마리의 몬스터를 죽여도 가슴 속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는다.
성취감과 쾌감.
오로지 강자에게 굴복하는 약자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만 얻을 수 있지, 짐승에 불과한 몬스터를 잡는 거로는 절대 채울 수 없다.
프리랜서로 전향한 뒤로는 토벌보다 세계 랭커를 찾아다니기에 바빴다.
자칭 강자라고 착각하는 그들이 죽음 앞에서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정말이지 가슴이 벅차올랐으니까.
세계 랭커 킬러.
혼자서 전 9위부터 2위까지 모조리 죽여 버린 미친놈.
세계 랭커들 사이에서 비상이 걸리기 시작할 때쯤, 유이토는 기어이 세계 랭킹 2위에 올라섰다.
김준우에 대한 소문은 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유이토가 국제 협회에 들어온 이유도 오로지 그 때문이었다.
김준우를 만나기 위해.
그를 쓰러뜨려 성취감을 채우기 위해.
그렇기에 이번 작전에서도 중앙통제실을 맡고 싶었는데, 웨슬리 사무총장이 절대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지 않았던가.
너무나 아쉽지만, 이번 작전에선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가 제 발로 찾아오다니.
“운이 좋네요!”
유이토가 입이 찢어질 듯 웃으며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고유 스킬 : 태엽 시계]
[되감기 - 정각]
“아니. 넌 운이 존나 나빠.”
김준우의 낮은 목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졌다.
[고유 스킬 : 마왕 - 각성]
[각성 스킬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현 시간부로 시전자는 기존의 클래스를 초월합니다]
“이번만큼은 옛날 기분 좀 낼 거거든.”
그 순간, 김준우의 두 눈에서 검은 기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각성 클래스 : 절대 군주]
***
전투가 끝난 현장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나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와타나베 유이토.
회귀 전에도 세계 랭커만 골라 살인을 일삼던 미친놈이다.
그를 체포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고 수백 명의 헌터를 투입했지만, 모두 제대로 손을 쓰지 못했다.
결국, 국제 협회는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나는 유이토를 마주한 지 단 10분 만에 그의 무릎을 꿇렸다.
그리고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노아 때처럼 자비를 베풀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초토화가 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생존자를 확인하고 있던 그때였다.
“선생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김민주가 몇 명의 헌터를 이끌고 현장에 도착한 채였다.
“북부 구역은 어떻게 하고 여길 왔냐?”
“저희 쪽은 상황 종료됐어요. 혹시 몰라서 지원 나온 건데…….”
그녀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이거… 선생님이 한 거예요…?”
너무나 처참한 현장에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
뭐, 그렇겠지.
회귀한 이후로부턴 이렇게까지 한 적은 없었으니까.
“…….”
“…….”
무거운 침묵이 흐르길 잠시.
“…어쨌든 이걸로 다 끝난 거죠?”
그녀가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는 듯,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래. 수고했어.”
나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통신기를 꺼내 들었다.
“각 구역에 전달합니다. 현 시간부로 모든 상황 종료됐습니다. 긴급 방어 체제 해제하겠습니다. 각 구역의 의료진은 부상자 우선으로 처치하고 현장 수습 마무리되면 피해 상황 보고해주십시오. 반복합니다. 현 시간부로…….”
그리고 그 순간.
“대단하네요. 정말.”
한 남자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
“……!”
예상치 못한 손님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소한 본부 하나는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도 정말 곤란해지는데 말이죠.”
불청객은 현장을 두리번거리며 말했고, 나는 그를 똑바로 마주 보며 대답했다.
“총책임자라는 분이 상황 다 끝나서야 오시는군요. 조금 늦으신 거 아닙니까?”
“하하. 부릴 말이 많으면 당신처럼 직접 나설 이유가 없죠.”
그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정면에서 마주한 나는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아닌 게 아니라, 드디어 그가 직접 행차했다.
“반갑습니다, 웨슬리입니다.”
국제 헌터 협회 사무총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