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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거 말입니까?”
미련 없이 등을 돌린 그 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웨슬리 사무총장은 다급하게 나를 불러 세웠다.
슬쩍 걸음을 멈추며 입을 열었다.
“아직도 협상할 생각입니까?”
“우리한테 원하는 게 있으니, 그렇게 에덴을 찾았던 거 아닌가요? 뭐든 말씀하시죠. 최대한 들어드릴 테니.”
웨슬리 사무총장은 애써 침착하게 말했지만, 표정은 그렇지 못했다.
뭐, 당연하겠지.
절대적인 칼자루가 우리한테 넘어왔으니까.
웨슬리 사무총장의 목적은 전 세계 토벌권을 통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두 가지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첫 번째는 전 세계 던전과 이능력을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뱅크 아이템들을 모두 소유해야 할 것.
두 번째는 에덴이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반드시 막을 것.
에덴은 50년간 이어져 온 기현상의 가장 큰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시 말해, 에덴을 이용한다면 이 기현상을 없앨 수도 있다는 뜻이다.
던전과 몬스터, 헌터와 이능력 모두 존재하지 않는 평화로웠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토벌권 통제고 나발이고 국제 협회 자체가 사라지겠지.
웨슬리 입장에선 그것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한다.
그에게 있어 던전은 재앙이 아닌, 그저 사업 수단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나 또한 에덴을 손에 넣었다고 한들, 이용할 수 없다.
내 목표는 국제 협회 사무총장이 되는 거다.
당연히 던전과 헌터가 사라진 세상에서 그 목표를 달성할 순 없으니, 내게도 에덴은 휘두를 수 없는 칼자루인 셈이다.
그럼에도 기를 쓰고 에덴을 찾으려고 했던 건, 에덴이 웨슬리 손에 들어가는 걸 막음과 동시에…… 협상을 통해 국제 협회가 전 세계를 통제하려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스읍,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협상을 할 이유가 없군요. 뭘 내걸든 이 현상을 없애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당신도 이 바닥에서 돈을 벌고 있는 이상, 던전이 사라지는 것보단 보다 실리적인 이득을 챙기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웨슬리 사무총장의 목소리는 간절함을 넘어 절박함까지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나는 하마터면 미소를 지을 뻔했다.
“확실히 그렇긴 합니다만. 사무총장님이 내세울 조건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일단 말씀하시죠.”
“제가 만약 전 세계 토벌권 통제를 철회하라고 하면, 하실 겁니까?”
“…….”
절대 못 하지.
토벌권 통제만을 위해 그렇게 기를 쓰고 뱅크 아이템을 모아왔는데.
“거 보세요. 당신은 통제를 원하고, 저는 독립을 원합니다. 서로 이해관계가 완전히 반대인데, 이게 협상이 될 것 같습니까?”
“…….”
웨슬리 사무총장이 이를 빠득 갈았다.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좋습니다.”
무언가를 각오한 듯, 결의에 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한발 물러나도록 하죠.”
“어떻게 말입니까?”
“카르마 코퍼레이션을 독립 토벌 기구로 인정해드리겠습니다. 또한, 토벌권을 저희가 관리하는 대신 헌터 관리 권한은 그쪽에 넘겨드리죠.”
나는 속으로 작게 감탄했다.
헌터 관리 권한을 주고, 토벌권을 갖겠다.
이는 여전히 국제 협회의 허가 없이는 독자적인 토벌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반대로, 국제 협회 또한 우리 쪽의 파견 허가 없이는 함부로 토벌을 진행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한쪽이 통제권을 갖지 않는, 나에겐 더 없이 이상적인 조건.
두 가지 통제권 중 하나를 뚝 떼어주겠다는, 꽤나 파격적인 조건임은 틀림없지만…….
“글쎄요. 그거로는 조금 부족한 것 같은데…….”
겨우 그 정도로 만족할 거였으면 시작도 안 했지.
“……더 원하는 게 있습니까?”
“솔직히 이번과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희를 독립 기구뿐만 아니라, 작전 관리 기구로도 인정해주셔야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앞으로 국제 협회에서 진행하는 모든 작전을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으면 한다는 겁니다.”
웨슬리 사무총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작전 관리 감독 권한까지 갖게 되면, 국제 협회는 더 이상 이번과 같은 작전을 진행할 수 없다.
동시에 음지에서 활동할 수도 없을뿐더러, 우리를 뒤통수치려는 작전은 시도조차 못 하겠지.
다시 말해, 앞으로는 우리를 건드릴 수 없게 쐐기를 박겠다는 뜻이다.
물론.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시간석과 차원석은 국제 협회에서, 이능석과 반능석을 저희 쪽에서 관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말로만 권한을 넘겨주겠다고 하면 신뢰성이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너무 과하군요.”
“에덴을 걸고 하는 협상인데, 이 정도는 돼야지 않겠습니까.”
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웨슬리 사무총장이 떨리는 한숨을 쏟아냈다.
얼굴은 누가 봐도 분노를 참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 조건을 모두 들어주면 에덴을 저희에게 넘겨주실 겁니까?”
“글쎄요, 에덴을 어느 한쪽이 가지고 있는 건 아무래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조건을 받아들이신다면 저희 쪽에서 책임지고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그 말을 어떻게 믿고…….”
“못 믿으시면 어쩔 수 없죠.”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걸었지만, 심지어 에덴은 넘겨주지도 않겠다.
얼핏 보면 절대 받아들일 이유가 없는 불합리한 협상이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국제 협회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는 물건인 이상…….
“……빠른 시일 내에 연락드리죠.”
웨슬리는 이번 협상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번엔 내가 먼저 그에게 다가가 악수를 건넸다.
하지만 그는 애써 무시하며 등을 돌렸다.
그 찰나의 순간 분노로 구겨진 표정이 보였지만, 어쩌겠는가.
칼자루는 이미 내 손에 넘어왔는데.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웨슬리 사무총장은 내 인사를 뒤로 한 채 대동한 직원들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그가 완전히 멀어지고 나서야 나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괜찮을까요?”
옆으로 다가온 김민주가 걱정스레 물었다.
“헌터 관리 권한에, 작전 관리 감독 권한까지. 조건은 더할 나위 없는데, 뭐가 또 걱정이야.”
“그 좋은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인 게 걱정이에요. 나중에 뒤통수칠 수도 있잖아요. 특히나 여태까지 해왔던 짓을 보면…….”
“지금은 걸린 게 무게가 달라. 에덴은 저들에게 있어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이 없거든. 아마 뒤통수칠 생각은 죽어도 못할 거야.”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어쨌든 뱅크 아이템도 나눠 받게 됐고, 독립 기구로 인정도 받았어. 국제 협회의 권한이 공식적으로 분할된 셈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
“그 조건으로 기껏 찾은 에덴을 다시 놔줘야 하잖아요. 권한 분할이 아니라 전 세계를 뒤집을 수도 있었는데…….”
“뭐, 확실히 그랬을 수도 있지.”
나는 김민주를 슬쩍 흘기며 말을 이었다.
“정말 에덴을 찾았다면.”
“……네?”
순간 김민주의 눈이 동그래졌다.
하지만 나는 대답 대신 한쪽 입꼬리를 쓰윽 올릴 뿐이었다.
***
미국 지부, 중앙통제실.
이아영 본부장은 그곳에 홀로 남아 연신 손톱을 물어뜯었다.
남부로 지원을 나간 김준우가 벌써 몇 시간 째 연락이 없던 까닭이었다.
뭐, 그 남자가 죽었을 리는 없겠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꽤나 초조한 표정으로 몇 분째 사무실 안을 왔다 갔다 하던 도중.
결국, 불안함을 참지 못하고 통신기를 들었다.
「예.」
“여, 여보세요?”
짧은 연결음이 끝나고, 김준우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됐어요?! 상황은요? 다친 사람 있어요? 왜 이렇게 연락을 안 줘요, 걱정되게!”
「…….」
안도함과 동시에 잔소리를 쏟아냈지만, 어째선지 김준우는 대답이 없었다.
이아영 본부장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곤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요? 왜 말이 없…….”
「…정말입니까?」
그러자 날아든 상당히 뜬금없는 대답.
“……? 갑자기 뭔 소리예요. 뭐가 정말이에요?”
이아영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김준우는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갈 테니, 잘 보관해주세요.」
“아니, 뭔 소리를 하는 거예요! 좀 알아듣게 설명을…!”
뚝―.
그렇게 일방적으로 끊긴 통신.
이아영 본부장은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꺼진 통신기를 바라봤다.
대체 뭐야, 이 인간?
***
“…….”
웨슬리 사무총장의 전용기가 미국 상공을 가로지르며 국제 협회 본부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륙 직후부터 기내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내려앉은 채였다.
사실 직원들은 방금 협상에 대해 할 말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누가 봐도 굉장히 분노한 듯한 웨슬리의 표정에 그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 수 없었다.
“저…….”
그때, 한 직원이 총대를 메고 조심스레 목소리를 냈다.
“사무총장님, 이번 협상은 아무리 봐도 말이 안 되는…….”
[고유 스킬 : 천지창조]
[11차원의 고유 공간을 창조합니다]
서걱―.
그 순간, 입을 연 직원의 상체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동시에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몸뚱이.
충격적인 광경에 다른 직원들 모두가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웨슬리 사무총장은 순식간에 반 토막이 난 직원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공포감에 휩싸여 모두가 감히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던 그때였다.
“정말 조건을 들어주실 건가요?”
웨슬리의 수행비서가 싸늘하게 식은 직원을 대신해 말을 이었다.
그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고도 꽤나 담담한 목소리였다.
“…….”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이 타이밍에 갑자기 에덴을 찾았다뇨. 거짓말인 게 분명…….”
“아니면?”
“……네?”
웨슬리 사무총장의 서슬 퍼런 눈빛이 그녀에게 닿았다.
“만에 하나라도 거짓말이 아니면, 그땐 당신이 책임질 겁니까?”
“그건…….”
“도박을 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이내 웨슬리 사무총장이 크게 호흡했다.
“뼈아프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은 저들의 조건을 들어주는 수밖에.”
“하지만 헌터 관리 권한에 뱅크 아이템까지 넘겨주면, 저희는…….”
“원래 계획대로는 안 되겠죠.”
전 세계 던전과 헌터를 통제한다는 그 계획.
김준우의 조건을 들어준다면 그건 모두 물거품이 된다.
하지만 이미 그가 에덴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계획에는 차질이 생긴 셈이다.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여기선 어쩔 수 없이 한발 물러나야 한다.
“일단은 상황을 지켜봅시다. 이후에 에덴을 처리한 게 확실해지면…… 우리도 손해를 감수해보죠.”
“그 말씀은…….”
“최후의 보루를 준비하자는 말입니다.”
최후의 보루.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꺼내 들어야 하는 마지막 수단.
그건 곧, 전쟁을 의미했다.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에 수행비서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