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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었다고요?”
내가 되묻자 이아영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참 나…….”
아닌 게 아니라, 인수 건으로 홍콩 지부에 회신하자 그쪽 지부장이 거의 오열을 했단다.
뭐, 절박한 상황이었을 테니 마음은 이해한다만…….
‘그래도 뭘 울어 울긴…….’
어떤 성격인지 대충 알 거 같네.
“뭐, 그쪽이 더 급한 상황인 만큼 아마 협상 자체는 금방 끝날 거 같아요.”
“그렇겠죠.”
“그래서, 출국은 언제 하실 거예요?”
“예? 제가 갑니까?”
“…? 그럼 누가 가요?”
“아니, 책임자가 따로 있지 않습니까. 하성일 본부장이 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이아영 본부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뭐 그동안은 책임자가 없어서 직접 출장 다녔어요? 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아니, 그동안은 상황이 좀 특별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엔 그쪽 말대로 금방 끝날 일인데, 굳이 제가 갈 필요는 없죠.”
“뭐, 중국 협회 귀에 들어가기 전에 진행할 수 있으면 하 본부장님이 가도 상관없긴 한데…… 사람 일이라는 게 또 모르잖아요.”
그녀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썩 틀린 말은 아니다.
협상 전에 본부가 인수를 진행하고 있다는 걸 알아버리면 꽤 귀찮아질 것이다.
어떻게든 기를 쓰고 방해하려 할 테니까.
“만약 나중에 가서 일이 생기면 어차피 당신이 움직여야 해요. 그럴 바엔 그냥 처음부터 당신이 가는 게 낫지 않겠어요?”
“……일리는 있군요.”
내가 귀찮다는 것만 빼면.
이럴 거면 직원은 왜 뽑았대.
“아무튼, 출국 날짜는 되도록 빨리 정해줘요. 저도 스케줄 맞춰야 하니까.”
“그쪽도 가는 겁니까?”
“……왜요. 싫어요?”
“아니, 싫다기보다… 금방 끝날 일이라고 하기엔 어째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 같아서 말이죠.”
“뭐…….”
이내 이아영 본부장이 표정을 감추며 말했다.
“그냥 좀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요.”
“늘 하던 일인데 뭘 이제 와서 그러십니까. 예민해서 그런 겁니다.”
“뭐, 그런 거면 다행이고요.”
그녀가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볼일을 마친 듯 사무실을 나가려던 그때, 그녀는 무언가가 떠오른 듯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 혹시 민주 씨 요즘 무슨 일 있었어요?”
“갑자기 무슨 소립니까?”
“다른 게 아니라…… 미국 지부 다녀와서 갑자기 토벌 스케줄이 확 늘었거든요. 거의 자는 시간 빼고 가능한 모든 작전에 참여하고 있어요.”
“……?”
갑자기?
나도 처음 듣는 소린데.
“작전 본부장이잖아요. 필수 참가 인원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하나 싶어서요.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
“글쎄요. 딱히 짐작 가는 건 없는데.”
대개 헌터들이 작전에 열을 올리는 경우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 단기간에 랭크를 올리기 위해서.
두 번째는 실전 경험을 통해 순수하게 강해지기 위해서.
뭐, 전자는 조금이라도 야망이 있는 헌터라면 누구나 한 번쯤 시도해봤을 일이다.
최대한 실적을 쌓아서 랭크 심사에 가산점을 챙기는 동시에, 자신의 이능력을 극한까지 갈고 닦아 보다 높은 랭크를 노리는 거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실제로 본 적이 없다.
여기가 뭐 중원도 아니고.
요즘 시대에 누가 강해지는 데 목숨까지 건단 말인가.
다만…….
‘그 녀석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긴 한데…….’
나이에 맞지 않게 쓸데없이 무도가 기질이 있는 녀석이니까.
그런데 갑자기 왜 이제 와서?
지금도 충분히 강하다는 걸 걸 본인도 알 텐데, 왜 더 욕심을 내는 거지?
“확실히. 이상하긴 하군요.”
“한번 직접 만나서 물어봐요. 무슨 일 있냐고.”
“흐음…….”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이내 손사래를 쳤다.
“됐습니다. 개인사까지 물을 필욘 없겠죠. 에이스가 작전에 많이 참여해주면 회사 차원에서 좋은 일이기도 하고요.”
“……그러면 말고요.”
이아영 본부장은 떨떠름하게 대답하곤 사무실을 나섰다.
그녀가 나가자마자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흐음…….’
말은 그렇게 했다만 어째 신경이 쓰이긴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제2의 국제 협회 프로젝트가 점점 윤곽이 잡혀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 갑자기 실적에 열을 올린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했다.
무언가를 노리고 있는 게 아닌 이상은.
‘그럼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턱을 쓰다듬으며 하나씩 짚어보기 시작했다.
만약 우리가 새로운 국제 협회가 된다면, 한 가지 중대한 사항을 결정해야 한다.
바로, 누가 새로운 국제 협회의 사무총장이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
물론 그건 당연히 나여야 하고, 상황적으로도 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능력 향상에 힘쓰고 있다고?
새로운 국제 협회의 탄생.
사무총장 결정 사항.
그리고 뜬금없이 무언가에 욕심을 내고 있는 그 녀석.
이거 설마…….
‘사무총장 자리를 노리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아주 가능성 없는 소리는 아니다.
랭크나 연봉에는 관심 없어도, 야망은 있는 녀석이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감히 배은망덕하게 내 자리를 노려?
‘하, 절대 그렇겐 못 하지.’
어디 해볼 테면 해보든가.
나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
“후우…….”
일산에 위치한 어느 던전 앞.
막 토벌을 마친 김민주가 던전을 빠져나오며 한숨을 쏟아냈다.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마침 청소 작업을 위해 그곳을 찾은 한유빈이 그녀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갑자기 랭크 욕심이라도 생기셨나?”
“아하하, 그런 거 아니에요.”
김민주가 멋쩍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럼 왜…?”
“저번에 유빈 씨가 그랬잖아요. 선생님을 사무총장 자리에 올려놓자고.”
“그런데요?”
“그러려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국제 협회와 부딪혀야 하는데…… 그때마다 선생님만 나설 순 없잖아요.”
어째 낯간지러운 이야기에 김민주는 시선을 슥 피하며 말을 이었다.
“저번에 랭커와 붙었을 때를 생각해 보니까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아서요.”
그 말에 한유빈이 피식 실소를 흘렸다.
부족하다고?
세계 랭킹 11, 12위를 거의 혼자서 상대해놓고?
‘겸손한 건지, 바보인 건지…….’
속으로 중얼거리길 잠시.
“하여간 고집은 알아줘야 해. 뭐… 열심히 해봐요.”
공감은 못 해도 그녀를 이해해주기로 했다.
“유빈 씨도 같이하는 건 어때요?”
“글쎄요, 난 별로 앞날을 준비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래도 모르잖아요. 정말 위험한 순간이 오면 저희가 선생님을 지켜야 하는데.”
“뭐…….”
한유빈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정말 그런 날이 오면, 그땐 몸으로 때울게요.”
“…….”
그 말을 뒤로하고 한유빈은 청소팀을 이끌고 던전으로 들어섰다.
김민주는 이내 시간을 확인하곤, 곧바로 다음 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아, 선생님?”
다름 아닌 김준우에게 온 전화였다.
「너 지금 어디야?」
“지금 일산이에요. 방금 막 작전 끝내고 서울로 이동하려고…….”
「아니, 가지 마.」
“…네, 네?”
「가지 말라고. 너 지금 며칠째 작전 참가 중이야?」
“일주일 정도…….”
「너 미쳤냐?」
화가 잔뜩 난 목소리.
여태 들어본 적 없는 그 단호함에 김민주는 순간 움츠러들었다.
「작전 본부장이라는 놈이 기본 규칙도 몰라? 누가 허락도 없이 연속 참가하래?」
“……죄, 죄송합니다.”
김민주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게, 사실 이건 엄연히 규칙 위반이었다.
헌터는 컨디션과 안전을 위해서 원칙적으로 이틀 연속 작전 참가가 불가능했으니까.
「그리고 작전 본부장이 그렇게 쉬지도 않고 작전 참가하면 밑에 놈들은 어떡하라고? 쉬고 싶어도 눈치 보여서 못 쉬는 거 몰라?」
“…….”
그녀의 고개가 점점 떨어졌다.
「하아, 다 알만한 녀석이 왜 그러냐.」
“…….”
「아무튼, 나 조만간 홍콩 갔다 올 거니까 그때까지 작전 참가 중지야.」
“그, 그건…!”
「토 달지 마. 명령이니까.」
“…….”
「에휴, 지 몸 하나 관리 못 하는 녀석이 무슨 작전 본부장이라고…….」
그 중얼거림과 함께 통화가 끊겼다.
김준우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야단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기분이 나쁠 만도 했지만, 실상 김민주의 표정은 그와 정반대였다.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으니까.
그래, 그런 사람이다.
본인의 비전보다 부하의 상태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의 명령을 어떻게 거스를 수 있겠는가.
‘아쉽긴 하지만…….’
김민주는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렸다.
***
중국 베이징.
국제 헌터 협회 소속 중국 지부.
리제이징 지부장은 계약서를 앞에 두고 한참을 고민 중이었다.
“신중하시군요.”
몇 분이 지났음에도 펜대나 굴리고 있자, 마주 앉은 백인 여성이 슬쩍 입을 열었다.
PB 코퍼레이션의 수장, 에마 대표였다.
“어려울 것 없지 않습니까. 중국 지부가 원하는 걸 본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겠다는 것뿐입니다. 물론 국제 협회에서 탈퇴하지 않겠다는 조건만 지켜주신다면요.”
“흐음…….”
리 지부장은 여전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사실 그로서도 중국 협회가 이렇게 된 것에 꽤나 뼈가 아팠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단연 최고의 독립 협회이지 않았던가.
하지만 언젠가부터 한국 협회가 치고 올라오면서부터는 그것도 옛말이 되었다.
무엇보다 한국 놈들이 국제 협회의 눈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외에 지부를 두기 시작하자 완전히 상황이 역전되었다.
그러던 중 국제 협회가 토벌권 통제를 발표했다.
기회다 싶어 곧바로 가입했지만…… 결과적으로 실책이었다.
고작 일주일 만에 한국 놈들이 독립 기구로 인정을 받아버렸으니.
이렇게 되면 대국의 입장이 뭐가 되겠는가.
가뜩이나 국제 협회의 습격 건 때문에 조사까지 들어갔고, 이미지도 나락 끝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마당에 더는 국제 협회에 붙어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일단 탈퇴를 하고 한국처럼 독립 기구 인정을 요구해볼 생각이었다.
만약 안 되면 그냥 다 무시해버리고 제3세력을 만들면 되니까.
그렇게 공식적으로 탈퇴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예상외의 변수가 발생했다.
국제 협회 본부에서 딜이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꽤나 어마어마한 딜이.
“우선, 중국 지부에 한해서만 자체 운영권과 토벌권을 넘겨드릴 생각입니다. 소속만 국제 협회일 뿐, 성격은 독립 협회라고 보시면 됩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나요?”
“……이해합니다.”
소속은 있지만, 독립 협회의 성격을 지니는 곳.
리 지부장은 이미 그런 곳을 한 군데 알고 있었다.
당국의 골칫거리인 동시에 요충지인 그곳.
바로 홍콩 지부였다.
에마 대표는 리 지부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챘다는 듯,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부장님이 요청하신 대로, 홍콩 지부 탈환 또한 지원해드리겠습니다.”
“…….”
“아시겠지만,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홍콩 지부는 독립하게 될 겁니다. 홍콩 하나 떨어져 나가는 건 그렇다 쳐도, 홍콩이 독립하게 되면 다른 자치구도 가만히 있지 않겠죠.”
리 지부장 또한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가까스로 붙잡고 있는 자치구들이 독립을 요구하며 들고 일어난다면 당국이 본인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책임을 물려서 처형할지도 모른다.
여긴 그런 곳이니까.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홍콩 지부를 탈환해야 한다.
다만, 지금까지는 국제 사회의 눈치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국제 협회가 도와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게다가 운영권까지 넘겨준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대신 본부가 요청할 때엔 언제든 협력하겠다는 조건만 지켜주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그건 기밀 사항입니다.”
에마 대표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리 지부장은 다시 펜을 쥐었다.
그렇게 계약서에 펜을 가져다 대던 그 순간.
“지부장님!”
한 직원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홍콩 지부에 심어둔 저희 쪽 직원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이내 그가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홍콩 지부가 이번에 카르마 코퍼레이션과 인수합병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뭐?!”
날벼락 같은 소식에 리 지부장의 동공이 크게 벌어졌다.
시선이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리길 잠시.
그의 시선이 에마 대표에게 향했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원하시는 대로.”
에마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