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192화 (192/366)

192

192

홍콩 국제공항.

이젠 슬슬 이 낯선 상황이 익숙해진 건지, 나는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주변부터 훑었다.

마중 나올 직원을 찾기 위해서였지만, 어째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

“이상하네요. 지부에서 시간 맞춰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는데…….”

이아영이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동시에 내가 볼멘소리를 냈다.

“출장을 많이 다닌 건 아니지만, 어째 제시간 맞춰 나오는 적이 없군요.”

“뭐, 조금 늦을 수도 있죠. 전화 한번 해봐요.”

이아영의 요청에 저장해둔 담당자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응답 없는 연결음만 계속해서 들려올 뿐, 어째 전화를 받질 않는다.

그 후로 몇 번이나 다시 걸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것 참…….”

결국, 나는 통화를 포기하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공항에는 나오지도 않고, 연락은 안 되고… 급하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매너가 없어서야.”

“긴급 출동이라도 걸린 거 아니에요?”

“뭐 얼마나 긴급이라고 약속 시각까지 어긴답니까?”

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건 매너가 아니지 않은가.

백번 양보해서 시간에 늦을 수는 있다고 쳐도, 최소한 연락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나?

나오지도 않고, 연락도 안 받으면 우리보고 뭐 어쩌라는 건데.

“뭐, 그냥 택시 타고 가도 되긴 하는데, 우리가 그냥 가버리면 엇갈릴 수도 있으니까 좀 더 기다려보죠. 근처 카페라도 갈래요?”

“하아…….”

시작도 전에 영 기분이 언짢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우린 이내 공항 안에 있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공항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람이 붐비는 그곳에서 가만히 연락을 기다리길 10분, 20분.

그리고 어언 1시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연락은 없었다.

“슬슬 화가 나는군요.”

“이상하네요. 이렇게까지 기다리게 할 리가 없을 텐데.”

“이 정도면 그냥 까먹은 거 아닙니까? 이 사람들, 그렇게 안 봤는데 아주 일 처리가 개판이네.”

이건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다.

만나면 단단히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때였다.

위이이이잉―.

난데없이 공항에 사이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공항 내 승객분들께 긴급 속보를 전달해드립니다.」

곧바로 공항 내부에 긴급 방송이 울려 퍼졌다.

「현재 홍콩 지부에서 2시간 전에 출현한 레드 등급 던전의 작전 실패를 선언했습니다.」

“……뭐?”

전혀 예상치도 못한 소식에 나와 이아영 본부장이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충격적인 소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더불어 동 시간대 출현한 옐로우 등급 던전의 토벌 상황 또한 좋지 않으며, 몬스터 탈출 움직임이 보고되었으므로 승객분들께선 서둘러 안전한 장소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저, 저게 무슨 말이에요…?”

“레드 등급이랑 옐로우 등급이 동 시간대에 출현했다고?”

「새로 들어온 소식입니다. 현재 동부에서 옐로우 등급 던전이 추가 출현했다고 합니다.」

“……!”

레드, 옐로우 등급이 동시에 출현한 것도 모자라서 두 시간 만에 옐로우 등급이 추가 출현했다고?

대체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또한, 의회에서 현 시간부로 2급 비상령을 발령했습니다.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몬스터 탈출 위험이 있으니, 승객 여러분들께선 가까운 지하철역 및 대피소로 서둘러 대피하시길…….」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카페를 포함해 공항에 있던 수천, 수만 명의 사람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패닉에 빠진 얼굴들.

사람들이 출구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덕분에 공항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때 마침 울리는 핸드폰.

비로소 홍콩 지부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 미처 연락드리지 못했습니다. 지금 어디십니까? 무사하신 겁니까?」

“아직 공항입니다. 그것보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1년에 한 번 출현할까 말까 한 던전들이 2시간 만에 세 개나 출현하다니요.”

「저희도 지금 상황 파악 중에 있습니다. 일단 저희 쪽에서 바로 구조팀을 보낼 테니… 거기서 움직… 마시고… 대피소로… 피신…….」

“여보세요, 여보세요!”

지지직―.

전파가 불안정해진 듯, 통화가 끊겨버렸다.

덕분에 지금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 일단 나가서 상황을 좀 살펴보는 게 어떨까요?”

이아영 본부장이 슬쩍 물었다.

나는 대답을 아끼곤 생각을 정리했다.

정말 몬스터가 탈출했다면 조기 대응이 너무나 중요하다.

하지만 작전이 실패했다고 하는 걸 보면, 현재 지부 상황으로선 시가전 준비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아영 본부장 말대로 우리가 일단 수습이라도 해놓는 게 낫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이었다.

쿵―!!

무언가 거대한 것이 건물을 들이받은 듯, 공항 전체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전해졌다.

그와 동시에.

쩌저적―!

천장이 갈라지며 잔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밑에는 미처 대피하지 못한 수백, 수천 명의 시민이 있었다.

“주, 준우 씨!!”

“…빌어먹을!”

[습득 스킬 : 프로텍션 블라섬]

곧바로 꽃의 형상으로 방어막이 펼쳐졌다.

쿠구구궁―!!

공항이 그대로 폭삭 무너져 내렸다.

***

“시발 대체 이게 무슨…!”

황가휘 지부장은 이 상황을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홍콩은 애초에 던전 출현이 많은 곳이 아니다.

해봐야 월평균 100개 안팎.

평균 출현 등급은 고작 블루.

게다가 마지막으로 레드 등급 던전이 출현한 건 무려 8년 전이었다.

그런데 이능파가 감지도 안 된 레드 등급이 나타난 것도 모자라, 옐로우 등급이 동시에 출현한다고?

황 지부장은 본인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현실은 보다 냉혹했다.

“지부장님, 지금 홍콩 국제공항이 공격받아서 무너졌다고 합니다!”

채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또 다른 재앙이 날아들었으니.

“고, 공항이 무너졌다고…?”

“네! 구조대가 바로 출동했는데, 입구고 뭐고 완전히 붕괴돼서 생존자 파악도 안 된답니다. 아직 대피하지 못한 인원이 수천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빌어먹을…!”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레드 등급 토벌은 실패.

상황을 수습하기도 전에 추가로 출현한 옐로우 등급 던전.

몬스터 탈출 임박.

거기에 기어이 공항까지 공격을 받았다.

이건 명백히 지부가 해결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

‘본토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나? 아니면 국제 협회에…….’

아니, 그건 정말 최후의 수단이다.

서둘러 지부를 카르마 코퍼레이션에 넘겨버린다면, 그들이 알아서 처리해줄 수도 있다.

그래, 미국 지부에서 대규모 작전도 지휘하던 이들이 아닌가.

이 정도 상황은 충분히 해결해줄 수…….

“잠깐.”

그 순간, 황 지부장이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을 크게 떴다.

“김 대표… 김 대표는 어떻게 됐어? 그 사람도 공항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구조한 거야?!”

“그, 그게 바로 출동은 했는데, 한발 늦어서…….”

“…….”

이내 황 지부장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김 대표가 아직 공항에 있다고?

종이짝처럼 내려앉은 저 건물 안에…….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며, 황 지부장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X 됐다.”

진짜 X 됐다.

***

“크윽…….”

어두컴컴한 공간 속,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방어막을 펼쳤는데도 모든 충격을 흡수하지 못한 듯,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쥐포가 됐겠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폈지만,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그곳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뿐이었다.

“준우 씨, 준우 씨!”

이아영 본부장이 핸드폰 플래시를 비추며 나를 찾았다.

“주, 준우 씨! 괜찮아요?!”

“예. 뭐……. 다른 사람들은 무사합니까?”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이아영 본부장이 플래시로 주변을 비췄다.

그와 동시에 함께 이곳에 갇힌 수백 명 생존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들 모두가 하나 같이 넋이 나간 얼굴로 온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모두가 패닉에 빠진 상황.

난데없이 닥친 재앙 앞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아영 본부장이 중얼거렸다.

그리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몬스터가 공격한 걸까요?”

“정황상 그렇겠죠. 다만…….”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흐렸다.

그래, 일순간에 공항 전체가 무너질 정도면 몬스터의 공격을 받은 게 확실하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 몬스터 탈출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

아무리 레드 등급이라고 해도, 던전 출현 2시간 만에 몬스터가 탈출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몬스터가 던전을 탈출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시간이 흐를수록 던전의 이능파가 점점 불안정해지기 때문이다.

던전을 이 세계에 유지시키는 힘, 이능파.

던전 등급과 안정도는 이 이능파의 강도에 비례한다.

하지만 던전 유지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능파는 점점 불안정해지고, 동시에 던전 또한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더 이상 던전을 유지하기 힘들어지면, 그때 비로소 몬스터가 탈출한다.

그러니 고작 2시간 만에 몬스터가 던전을 탈출하려면, 출현할 때부터 이능파가 극도로 불안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애초에 그 정도로 이능파가 불안정하다면 던전 출현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상황은 아예 말이 안 된다는 것.

연속으로 출현하고 있는 고위험도 등급 던전.

출현 직후부터 극도로 불안정한 이능파.

출현 2시간 만에 던전을 탈출해버린 몬스터들…….

나는 그것들을 곰곰이 짚어보던 도중.

‘시발, 설마…….’

머릿속에 무언가가 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설마…….

국제 협회 짓인가…?

만약 국제 협회가 차원석으로 던전을 임의 생성한 거라면 모두 설명이 된다.

이전에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어째서…?

우리를 공격한 건 적대적 인수합병을 위해서였다고 해도, 홍콩 지부는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아직 가입 유예 기간까진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굳이 홍콩 지부를 공격할 이유가…….

“……아무래도 들켰나 보군요.”

이내, 생각을 마친 나는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들켰다니, 뭘요?”

“저희가 홍콩 지부를 인수하려는 것 말입니다. 기어이 중국 협회 귀에 들어간 모양입니다.”

“……!”

이아영 본부장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

“보나 마나 국제 협회에 도움을 요청한 거겠죠.”

“설마 차원석으로 던전을 임의로 생성했다는 소리예요?”

“그것 외엔 생각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최대한 난장판을 만들어서 계약을 지연시키려는 거겠죠.”

“그렇다는 건…….”

“예.”

내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저희가 여기 갇혀 있는 동안, 홍콩 지부를 탈환하려고 하는 겁니다.”

“…….”

이아영 본부장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졌다.

단순한 재앙이 아닌, 계획된 인재.

그 사실에 분노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부수고 나가죠.”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잖아요. 당신이라면 이 정도 잔해는 그냥 부숴버릴 수 있으니까…….”

“안 됩니다.”

“네?! 어째서요?!”

“공간이 너무 좁지 않습니까.”

내가 주변을 훑으며 말하자, 그제야 이아영 본부장이 작게 탄식했다.

그래, 잔해에 파묻힌 것 정도야 스킬을 쓴다면 어렵지 않게 탈출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불가능하다.

좁디좁은 공간에 수백 명의 사람이 모여 있다. 이런 곳에서 스킬을 썼다간 저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어디에, 얼마나 더 생존자가 남아 있는지도 모르니 섣불리 잔해를 치울 수도 없다.

“그럼 어떡해요? 이대로 있다가 홍콩 지부가 넘어가 버리면…….”

“뭐, 어쩌겠습니까.”

나 또한 착잡한 심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전에 구조대가 오길 바라는 수밖에.”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