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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지부장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고 나가자 라이 통제팀장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눈치챈 건가…….’
애초에 황 지부장은 늘 본부를 불신하고 있는 인간이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점이 있다면 어떻게든 파헤치려고 하겠지.
뭐, 던전 생성도 이쪽에서 계획한 거라는 건 모르고 있는 듯하지만.
애초에 그건 들켜도 증거가 없으니 상관이 없다.
다만 공항 폭격 건은 아니다.
본부가 허가하고, 국제 협회가 실행한 계획이라는 사실을 그가 알게 되면 여러모로 귀찮아진다.
최악의 경우 세간에까지 퍼져나갈지도 모른다.
‘쯧…….’
라이 통제팀장이 곤란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국제 사회의 시선은 둘째 치고, 당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본보기로 몇 명은 제거될지도 모른다.
귀찮아졌군, 그렇게 생각한 라이 통제팀장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협회장님, 라이비우입니다.”
「어. 무슨 일이야?」
라이 팀장은 잠시 망설이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공항 건 말입니다. 아무래도 황 지부장이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뭐…?」
“아마 던전 출현 지역과 몬스터 탈출 현황을 파악하다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쯧, 뭘 어떻게 해. 처리해야지.」
“명분은…….”
「비리 몇 건 묶어볼게.」
“알겠습니다.”
그제야 라우 팀장은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은 어때. 지휘권은 인계받았나?」
“예, 문제없이 인계받았고, 지금 파견팀 작전 투입 중입니다. 아마 지금쯤 현장에 도착했을 겁니다”
「그래, 특별히 정예들로 편성했으니 잘해보라고. 실수 없이 끝내야 지휘권을 계속 붙들고 있을 수 있으니까. 뭐, 이번 일 잘 끝나면 약속대로 홍콩 지부는 자네가 맡게 해줄 테니.」
“감사합니다.”
기다렸던 소식에 라이 통제팀장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걸로 필요한 준비는 모두 끝났다.
나머진 탈출한 몬스터와 던전만 처리하면 된다.
뭐, 그래 봤자 레드 등급 하나에 옐로우 등급 두 개.
지금 파견된 5개 팀 모두 전원 정예로 편성되었으니, 그 정도야 금방…….
삐빅―.
그 순간이었다.
“…뭐야?”
통제실에 설치된 던전 현황 모니터에 작은 점 하나가 나타났다.
다름 아닌 던전 출현을 알리는 표시였다.
라이 팀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봤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이상은 계획에 없던 던전이었다.
이건 그냥 자연 출현인가?
그런 생각이 라이 팀장의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삐빅, 삐빅, 삐빅, 삐빅, 삐빅―.
갑자기 모니터에 미친 듯이 점이 찍히기 시작했다.
***
프랑스 파리.
PB 코퍼레이션, 관리팀 산하 뱅크 아이템 컨트롤 센터.
“뭐, 뭐라고요?”
그곳의 책임자, 클로이 팀장에게 갑작스러운 지시가 떨어졌다.
“못 들었나요? 차원석 이능파, 최대치로 올리라고요.”
에마 대표가 냉담한 표정으로 다시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클로이는 원래 계획에서 벗어난 그 지시를 납득할 수가 없었다.
“지금만으로도 차원석 억제기가 불안정합니다. 최대치로 올렸다간 폭주할 수도 있어요! 애초에 던전은 세 개만 생성하기로 한 것 아니었습니까?”
“그랬죠. 그랬는데…… 사무총장님 특별 지시가 떨어졌어요. 이참에 중국 협회에도 본보기를 좀 보여주는 게 어떻겠냐고.”
“그게 무슨…….”
에마 대표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그녀로서도 원래 계획을 갑자기 변경하는 건 썩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최종 결정권은 그에게 있는 것을.
‘뭐, 아주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긴 한데…….’
이대로 중국 협회가 홍콩 지부를 무사히 탈환해버리면, 또다시 국제 협회 탈퇴를 무기 삼아 다른 자치구도 계속해서 흡수하려 들 수도 있다.
가뜩이나 헌터 인원도, 협회 지부도 너무 거대해서 늘 신경이 쓰이는 곳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몸집을 키웠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금이야 옥이야 키운 개가 주인을 물려고 들지.
웨슬리 사무총장은 원하는 것을 쥐여주되 쉽게 주진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더불어 도시 하나쯤 쑥대밭 만드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걸 보여줄 겸, 던전을 추가로 생성하자고 했다.
다시 말해, 이건 순수하게 중국 협회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들의 머릿속에 확실한 서열을 심어주려는 것뿐.
“아무튼, 시키는 대로 해요. 괜히 토 달지 말고.”
“너무 위험합니다. 자칫 차원석이 폭주하면 던전이 걷잡을 수 없게 생성될 수도…….
“클로이 팀장!”
에마 대표의 서슬 퍼런 눈빛이 그녀를 관통했다.
“제가 왜 당신을 살려뒀는지 잊지 마세요.”
“…….”
클로이 팀장은 이를 꽉 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직원들을 향해 돌아서며 입을 열었다.
“차원석 이능파…… 최대치로 가동해!”
지이이잉―.
명령이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원석에서 보라색 빛이 미친 듯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서, 선생님?!」
여전히 잔해 속.
「괜찮은 거예요? 지금 어디예요! 아영 씨는요?!」
김민주에게 전화를 걸자마자 곧바로 다급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공항 잔해에 깔려있지만 모두 괜찮아. 생존자도 있고.”
「지금 가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저희 쪽 파견팀이 바로 작전 투입해서…!」
“아니, 늦었어.”
「네, 네?」
“이미 당국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지휘권을 인계받고 본부 파견팀이 토벌을 시작했을 거야. 지금은 우리가 끼어들 권한도, 명분도 없어.”
「그, 그럼 직접 나서지 말고 지부 병력을 지원하는 쪽으로…….」
“그것도 힘들 거야. 당국 입장에선 이번 작전은 온전히 본부의 지휘와 병력으로 성공시켜야 할 테니까. 지부 병력이 이 작전에 손을 댔다간 큰일 날 수도 있어.”
「그럼… 어떡하려고요? 이대로 중국이 수습해버리면 지휘권은 영영 못 돌려받을 텐데요.」
“혹시 본토에서 보낸 병력, 얼마나 되는지 파악되냐?”
「잠시만요.」
1분 정도 지나서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본부 통제팀장을 비롯한 지휘 병력 10명, 작전 병력 50명 이상 파견된 거로 추정하고 있어요. 적어 보이긴 해도 모두 정예로 편성된 팀이라 아마 충분할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네.”
「다행이라뇨…?」
“그 정도 인원으로는 절대 이번 일 수습 못 하거든.”
이내 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방금까지 내가 갇혀 있는 곳에 던전이 생성됐어. 입구 색깔을 보아하니 등급은 또 옐로우.”
「네, 네?!」
“너도 알겠지만, 지금 홍콩에서 출현한 던전은 국제 협회가 차원석으로 임의 생성하고 있을 확률이 높아. 뭐, 국제 협회를 탈퇴하지 않는 대가로 탈환을 도와주려는 거겠지.”
정황상, 이것도 국제 협회 쪽에서 생성한 던전일 것이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미 출현한 세 개의 던전만으로도 홍콩 지부는 지휘권을 잃었다.
지부 탈환을 도와주는 목적이라면 굳이 추가로 던전을 생성시킬 이유가 없다.
오히려 당국이 일을 수습하기가 더 어려워지기만 할 뿐이니까.
그런데도 추가로 던전을 생성했다?
‘이건 한 가지로밖에 설명이 안 되지.’
아예 현장을 초토화해서 이번 기회에 중국 협회도 눌러버리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쿠구구구궁―!
또다시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으며 통화를 이어갔다.
“이 새끼들, 던전을 계속해서 생성 중이야. 이참에 중국 협회도 한번 눌러주려는 생각인 것 같은데…… 아무리 정예라고 해도 이 정도 숫자를 토벌하는 건 불가능해.”
「그럼…….」
“반드시 본토에 추가 병력을 요청하겠지.”
「결국, 이러나저러나 똑같은 거 아니에요? 혹시 헌터 관리 권한으로 후퇴시키려고요? 유예 기간 동안엔 저희도 권한 행사가 불가능하잖아요.」
“후퇴시키는 게 아니야. 추가 병력이 도착하지 못하게 하려는 거지.”
아무리 본토에 병력을 요청해도, 그들이 홍콩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현재 인원으로는 계속해서 생성되는 던전을 막을 수 없으니, 좋든 싫든 살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겠지.
제삼자에게 도움을 요청해서라도.
“홍콩으로 통하는 도로랑 헬리포트 전부 부숴버리자고.”
「…….」
“나머지는 뭐… 자칭 정예라는 놈들이 도망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돼.”
「알았어요.」
“그러니까 일단…….”
주변을 슬쩍 둘러보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나부터 좀 꺼내줘.”
일단 여기서 나가야 뭘 하든 말든 하지.
***
“마, 말도 안 돼…….”
홍콩 젠사쥐 구.
공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그곳에 막 발을 들여놓은 본부 파견팀은 눈앞의 광경에 충격을 받은 얼굴들이었다.
“마치 폭격이라도 당한 것 같군.”
“아수라장이 따로 없네요.”
“분명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아직 피해가 크진 않다고 했는데…….”
파견 1팀원들은 그 참혹한 풍경을 바라보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하지만 그들의 리더, 장시엔 팀장은 말없이 주변을 살필 뿐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생성 던전은 총 세 개.
그중 하나에서 몬스터가 탈출했다곤 하지만, 도심까지의 진격은 하루 이상 걸릴 것이었다.
근데 고작 몇 시간 만에 도심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이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리 홍콩 지부가 경험이 부족하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될 리가 없는데…….’
장 팀장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쿠구구구궁―.
눈앞에서 갑자기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타난 또 다른 던전.
옐로우 등급의 던전이 추가로 출현했다.
“뭐, 뭐야!”
“던전이 또 출현했다고…?”
“이거 계획에 있는 거야?”
예상치 못한 던전의 출현에 팀원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건 장 팀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달받은 대로라면, 임의 생성한 던전은 레드 하나에 옐로우 두 개.
그 이상 던전이 출현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
‘그런데 왜…….’
던전이 계속 생성되고 있는 것인가.
더 이상은 안 된다.
이 이상 던전이 출현하면 현재 전력으론 막을 수가 없다.
장 팀장은 곧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라이 팀장님, 장시엔입니다!”
「아, 마침 잘 됐다! 혹시 지금 그쪽에 던전 출현했냐?!」
“네? 마, 맞습니다!”
「이런 시발…!」
라이 통제팀장의 분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 지금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겁니까? 왜 던전이 계속 생성되는 건지……. 혹시 이것도 계획된 겁니까?”
「시발, 그럴 리가 없잖아. 나도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몰라. 일단 본부에 얘기는 해놨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그럼…?”
대답이 끊기길 잠시.
「지금 젠사쥐 구에만 생성된 옐로우 등급이 10개가 넘었다.」
“……!”
「이거, 너희들만으로 토벌 가능하냐…?」
장 팀장은 그 물음에 침을 꿀꺽 삼켰다.
옐로두 등급 10개를 토벌하라고?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무전기마저 떨어트린 채, 황망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던 그때.
“빨리빨리 움직여주세요!”
“크레인 진입 조심하시고요! 바닥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습니다!”
“김 대표님 위치는 확인됐으니까, 일단 거기부터 구조 시작해 주세요! 수색조는 다른 생존자 위치 파악 부탁드립니다!”
“네!”
저 멀리에서, 수십 명의 인원이 온갖 중장비를 이끌고 어디론가 급히 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