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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사쥐 구, 조던 역 인근.
그곳에 여전히 발이 묶여 있는 중국 협회 소속의 파견팀.
“빌어먹을…….”
장시엔 팀장이 작게 중얼거렸다.
다른 던전에서 탈출하기 시작한 몬스터가 진영을 옥죄어 오고 있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플레임 리자드 무리의 리더.
그 보이지 않는 몬스터가 언제 어디서 또다시 공격해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티, 팀장님…….”
“저, 저희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추가 병력은 대체 언제쯤…….”
팀원들은 완전히 겁에 질린 채,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움직이면 죽는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저 수십 마리의 몬스터 먹이가 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아무리 정예들이라고 해도 패닉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크르르르르―!
키에에엑―!
어찌할 줄 몰라 망설이던 사이, 기어이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그들을 둘러쌌다.
흉포한 플레임 리자드가 이빨을 드러내자 장시엔 팀장을 비롯한 팀원들은 눈을 꾹 감았다.
‘시발…….“
죽음을 직감하자, 장 팀장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설마하니 처음부터 끝까지 이쪽에서 계획한 작전에서 목숨을 내놓게 될 줄이야.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눈을 감고 생각하기도 잠시.
이내 그들의 머리 위로 굶주린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유 스킬 : 천수관음- 각성]
[육관음중사(六觀音中四)]
[제4격 -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슥―.
스스스스슥―!
순간, 날카로운 무언가가 주변을 훑었다.
그 기척에 장 팀장이 천천히 눈을 떴다.
“……뭐야?”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두 동강이 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심에 서 있는 한 여성.
“다, 당신은 아까 그…?”
“이번 작전의 지휘권은 현 시간부로 카르마 코퍼레이션이 인계받았습니다.”
조금 전 공항으로 구조를 나가던 그 여성.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작전 본부장, 김민주였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당신, 내가 끼어들지 말라고 분명히…!”
“말싸움할 시간 없습니다. 같이 싸울 거 아니면 빠지세요.”
“……!”
그녀의 눈빛이 장 팀장을 관통했다.
아까 만났을 때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확 달라진 기세였다.
압도적인 분위기에 움찔하기도 잠시, 순간 잊고 있던 게 떠오른 장 팀장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보, 보스…! 근처에 레드 등급 보스가 있어!”
“……?”
“플레임 리자드의 리더. 은신 스킬을 쓰는 녀석이야. 움직임을 감지하고 공격하는데, 보이지가 않아서 대응할 수가 없어! 일단 움직이지 말고…!”
무척이나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김민주는 담담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들었다.
“젠사쥐 조던 역 인근에서 레드 등급 몬스터가 출현했습니다. 리자드 형에 인비저블 타입이라고 하니 마법사 클래스 지원 부탁드립니다.”
무전을 끝내고 다시금 검을 쥐고 공격 태세를 갖추는 김민주.
그 모습에 장 팀장은 격양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 뭐 하는 거야! 내 말 못 들었어?! 움직이면 바로 모가지가…!”
슈우우우―!
그 순간, 그들의 머리 위로 마법 탄환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바, 방어 스킬! 방어 스킬!”
파견팀원들은 황급히 방어 스킬을 시전했지만, 김민주는 여전히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검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쾅! 콰과과광―!!
탄환들이 그대로 주변 땅을 직격했다.
자욱한 흙먼지가 주위를 뒤덮었다.
그 안에서 김민주는 허공을 맴돌고 있는 먼지를 집중해서 살폈다.
이윽고 보이지 않는 형체가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고유 스킬 : 천수관음 - 각성]
[육관음중육(六觀音中六)]
[제6격 - 여의륜관음]
스윽―.
한 번의 일격이 보이지 않던 몬스터의 목을 그었다.
키에에에엑―!!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하는 리자드.
물론 한 번의 공격으로 쓰러트릴 수는 없었지만…….
“피, 피가…!”
“보인다!”
몬스터의 목에서 세차게 흐르는 피가 몸을 적시며 형체가 완전히 드러났다.
그걸 확인한 김민주가 다시금 무전을 들었다.
“가시화 완료했습니다. 해당 구역 안전 확인됐으니, 다들 진행해주세요. 저는 계속해서 다른 구역 수색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멀리서 다른 인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체 뭐야 저 인간…….’
장 팀장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작전 본부장이 선두에서 현장 수색을 맡는다고? 그것도 혼자서?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등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뭐해요!”
그녀의 시선이 장 팀장에게 향했다.
“아직 안 죽었으면 일어나서 좀 도와요.”
“……여기서 너희들을 도우면 본부가 가만히 안 놔둘 거야.”
“참 나, 이 상황까지 와서 아직도 지부 탈환 걱정이나 하고 있어요?”
김민주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안 도와줄 거면 시민들을 홍콩 밖으로 대피라도 시키세요. 당신들도 작전팀이라면, 최소한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
“그것도 싫으면 어디 가서 작전팀이라고 떠들지 마. 쪽팔리니까.”
시퍼렇게 날이 선 눈빛이 장 팀장을 향했다.
「기, 김민주 팀장님!」
그때, 홍콩 외곽 수색을 맡은 조에게서 다급한 무전이 왔다.
“무슨 일이에요?”
「지금 공안들이 홍콩을 봉쇄하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육로랑 항로까지 전부 막아버렸어요! 홍콩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이 새끼들… 홍콩을 포기했어요!」
“빌어먹을…….”
김민주가 입술을 깨물었다.
본인들이 갖지 못할 바에는 누구에게도 주지 않으려고 묻어버리겠다는 건가.
“그, 그럴 리가…….”
그때, 그 충격적인 소식에 반응한 건 다름 아닌, 장 팀장이었다.
“봉쇄라니?! 분명 본부가 추가 병력을 보내주기로 했어! 게다가 아직 우리가 여기 있는데 당국이 우리를 포기할 리가…!”
그는 말끝을 흐렸다.
말로는 그럴 리 없다고 했지만, 머릿속에선 그러고도 남을 인간들이라는 걸 예상한 까닭이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장 팀장이 절망에 빠진 채 소리치는 사이, 김민주의 무전이 다시금 울렸다.
“네, 선생님.”
「너 지금 어디야?」
“조던 역 인근 수색 완료하고 다음 구역으로 이동하려고…….”
「아니. 이 시간부로 저지 작전은 미룬다. 너도 한유빈이랑 합류해서 던전 토벌부터 먼저 진행해.」
“네, 네…?”
「일이 좀 생겼어. 지금 생성된 던전, 전부 처리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출현할 거야.」
“하, 하지만 저희가 전부 토벌에 투입되면 시민들이 위험해져요! 게다가 지금 홍콩을 봉쇄해버려서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요! 대피소까지 들이닥치는 건 시간문제에요. 저지를 맡아줄 최소한의 인원은 있어야…….”
그 순간, 김민주의 시선이 다시금 장시엔 팀장에게 향했다.
장 팀장 또한 그 시선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주먹을 꽉 움켜쥐며 한참을 망설이던 끝에 그가 답했다.
“저지는… 우리가 맡는다.”
이를 악물고 그는 일어섰다.
“괜찮겠어요? 우리를 도우면 본부가 가만 안 놔둘 거라면서요.”
“시발! 다 X까라 그래. 뒤통수는 그쪽이 먼저 쳤어!”
그가 소리쳤다.
“도와줄 테니까, 어떻게든 성공시켜!”
“이젠 좀 작전팀 같네요.”
김민주가 무전기를 들고 말했다.
“1팀, 전원 던전 집합. 현 시간부로 2팀과 합류해서 던전 토벌 진행합니다. 모두 처리할 때까지 쉬는 시간 없으니까, 단단히 각오들 하세요.”
「네!」
「물론입니다!」
이내 조금 전 보았던 압도적인 기세가 다시금 그녀의 전신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
홍콩 지부, 중앙 통제실.
“쯧…….”
현재 상황에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클로이마저 도움을 요청할 정도면, 생각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 건 틀림없다.
게다가 홍콩 봉쇄령까지 떨어져서 시민들을 홍콩 밖으로 대피시킬 수도 없고.
‘설마하니 홍콩을 포기할 줄이야.’
어차피 틀어진 계획, 차라리 다 묻어버리겠다는 건가…….
그나마 중국 협회 본부 병력이 저지를 맡아줘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며 모니터를 다시금 확인했다.
현재 홍콩 전역에 출현한 던전은 무려 56개.
등급은 모두 옐로우 등급 이상.
토벌에 필요한 최소 인원은 B급 헌터 기준 20명.
현재 총 병력을 최소 토벌 인원에 맞춰 편성한다면 총 5개 팀이 만들어진다.
즉 한 팀당 11개의 던전을 토벌해야 한다는 뜻이다.
‘되려나…….’
이 정도 작전이면, 석 달을 철저히 준비해도 모자라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준비는커녕 장비도, 지원도 압도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이아영 본부장이 임시 지원팀을 꾸리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11개의 던전을 연속으로 토벌하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안 되겠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황 지부장님.”
“예, 예?”
“잠시 지휘 좀 부탁드립니다. 저도 현장에 가봐야겠습니다.”
“예?! 자, 잠시만요…!”
황 지부장이 다급하게 불렀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통제실을 빠져나왔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눈에 들어온 풍경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건물이고 도로고 완전히 무너져 내린 그곳에는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체들만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카아아아아악―!
그때, 마침 나를 발견한 몬스터들이 곧바로 달려들었다.
[습득 스킬 : 아토믹 스피어]
촤악―!
곧바로 꺼내든 창으로 담담하게 녀석의 배를 꿰뚫었다.
수십 마리의 보스급 몬스터들 앞에서 나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몬스터들을 마주한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이거 어느 세월에 다 청소하냐?’
그것뿐이었다.
***
“봉쇄라니…….”
김준우 대표가 통제실을 나선 직후.
라이 팀장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계속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 그럴 리 없어. 당국이 우리를 버릴 리가…….”
“뭐, 그럼 본부가 목숨 걸고 당신들을 지켜줄 줄 알았습니까?”
황 지부장이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지부 하나 먹으려고 도시 전체를 파괴한 놈들입니다. 그깟 작전팀 몇 명 버린다고 눈 하나 꿈쩍하겠습니까?”
“……아니야, 본부가 그럴 리 없어!”
“이보세요, 라이 팀장님. 저 남자를 보고 뭐 느낀 거 없습니까?”
황 지부장은 김준우가 달려 나간 방향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남자… 지휘권을 잡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게 무리하지 말라는 명령이었습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성공시키라는 게 아니라, 위험하면 언제든 후퇴하라고 했다고요.”
“…….”
“심지어 상황이 안 좋아지니까 곧바로 직접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부하들한테는 무리하지 말라면서, 본인은 부하들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고요.”
황 지부장은 고개를 저었다.
“저게 조직을 이끄는 책임자입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봐온 본부는 책임자였습니까, 아니면 뒤에서 명령이나 내리는 권력자였습니까!”
“…….”
라이 팀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본인도 대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셨으면 이제 그만 포기하시고, 도와주세요.”
“…….”
하지만 라이 팀장은 여전히 고개를 떨어트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황 지부장은 혀를 찼다.
됐다, 사람이 그리 쉽게 변하겠는가.
더는 신경을 쓰지 않으려는 그때.
“……청샤완 구 북서쪽으로 내륙과 이어지는 지하도로가 있다.”
그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20년 전, 독립운동 진압 당시에 당국에서 공안을 투입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비밀통로야. 지금은 입구를 막아놨지만, 그것만 치우면 홍콩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어.”
“……예?”
“우리 애들한테 그곳으로 시민들 대피시키라고 전해.”
라이 지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은 내가 책임질 테니까.”
그의 눈빛은 이후의 일을 모두 각오한 듯한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