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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 근처 한우집.
작전 5팀의 회식이 한창인 그곳에선 오후에 있었던 실기 시험에 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대부분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는 푸념이나, 옆 팀 누가 승급할 거 같다더라 하는 근거 없는 소문을 늘어놓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의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었으니.
“아, 맞다. 최종혁! 너 오늘 뭐냐?”
“너 씨, 이러다 승급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언제 우리 몰래 훈련했냐?!”
“이러다 팀장 달수도 있겠는데? 크크크!”
단연, 최종혁이었다.
오늘 있었던 실기 시험에서 보여줬던 모습 때문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실력으로 모두를 놀라게 하지 않았던가.
4팀과 함께 최초 투입 없이 지원조로 활동하던 그들에겐 흔치 않은 일이었으니,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훈련은 무슨…… 그냥 평소대로 한 거야.”
최종혁은 겸손을 떨며 술을 홀짝였다.
당연히 평소 실력은 아니었다.
여기서 말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쨌든 운이 좋았다.
설마하니 그런 좋은 제안이 본인에게 들어올 줄이야.
‘머저리들… 평생 여기서 썩어라.’
속으로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비웃으며 술을 털어 넘겼다.
물론 당장이라도 떵떵거리며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일을 그르칠 만큼 멍청이는 아니다.
무엇보다 다른 한편으로는 찝찝한 마음도 있었다.
새파란 후배였던 김민주가 보여준 모습.
그리고 청소부 출신의 대표가 대놓고 꼽을 준 것이 아직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까닭이었다.
그렇게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길 잠시.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죠.”
“아이고, 우리 인턴 왔네!”
“어서 와요, 어서 와!”
문소연이 뒤늦게 회식 장소에 도착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 소연 씨, 여기 앉아요.”
“네, 네. 감사합니다.”
자신의 옆자리에 그녀를 앉힌 최종혁은 곧바로 그녀의 잔에 술을 따랐다.
“오늘 첫날인데 힘드시진 않았어요?”
“아, 많이 도와주셔서 괜찮았어요.”
“다행이네. 더 귀찮게 해도 되니까 많이 물어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이내 문소연이 잔을 들자, 최종혁은 곧바로 자신의 잔을 내밀었다.
“저도 한 잔 따라줘요.”
“아, 네!”
“소연 씨 혹시… 남자친구 있어요?”
“네, 네?!”
“아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그렇게 놀라니까 내가 더 당황스럽네.”
최종혁은 이미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렇게 문소연에게만 온 신경을 쓰며 계속해서 말을 붙이기도 몇 시간.
“자, 한 잔 더 마셔요.”
그는 끊임없이 문소연에게 잔을 권했다.
하지만 이후 약속이 있는 문소연은 손을 내저으며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아, 아니에요. 저 이제 그만 가봐야 해서…….”
“에이, 빨리 받아요. 빼지 말고.”
“정말 가봐야 하는…….”
“스읍. 선배들 다 있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려고요? 이러면 정규직 전환 때 불리할 수도 있는데…….”
이내 최종혁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말했다.
문소연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
랭크 심사 평가 위원회 소속에게 이 무슨 같잖은 협박인가.
하지만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는 최종혁은 연신 그녀에게 유세를 떨어댔다.
“요즘 같은 시대에 믿을 만한 구석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나도 이번 심사에서 승급하면 어엿한 팀장급인데.”
“……선배님은 믿을 만한 구석이 있으신가 봐요?”
“…….”
문소연의 물음에 최종혁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감히 인턴이 지금 누구에게 그런 말을 지껄이는 건가 싶었다.
“야야, 그러지 마. 시대가 어느 땐데 술을 강요해?”
이태범 팀장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손을 휘저으며 최종혁을 말렸다.
“소연 씨, 약속 있으면 먼저 가 봐요. 괜찮으니까.”
“그, 그럼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먹고 싶은 사람들끼리 먹는 거지 뭐. 빨리 가 봐요.”
“그럼…….”
문소연은 이내 꾸벅 인사를 하곤 자리를 떴다.
최종혁은 가게를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쯧, 혀를 차길 한 차례.
그녀의 빈자리를 굳은 표정으로 흘기며 술을 홀짝였다.
***
서울 본부 근처 카페.
홀로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던 참에 마침 기다리던 사람이 도착했다.
“미안해요. 좀 늦었죠?”
인적성 평가위원회 작전 5팀 담당, 문소연이었다.
“괜찮습니다. 저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그녀를 부른 이유는 어디까지나 중간 점검을 위해서였지만, 그보다는 최종혁의 동태를 살피려는 목적이 조금 더 컸다.
근데 어째 마주 앉은 그녀의 두 볼이 꽤나 상기되어 있었다.
“술 마셨습니까?”
“아, 네. 오늘 5팀 회식이 있었거든요.”
“미팅도 있는데, 좀 적당히 빼지 그랬습니까.”
“그럴 생각이었는데…… 선배가 자꾸 권해서 어쩔 수 없이…….”
“허, 시대가 어느 땐데……. 선배 누구요?”
“최종혁 씨요.”
“…….”
이럴 줄 알았다.
하여간 마음에 안 드는 놈이라니까.
“뭐, 일단 그건 둘째 치고. 어떻게, 심사는 잘 되고 있습니까?”
“네, 대체로 특별히 문제 될 만한 건 없어요.”
그녀가 가방에서 평가 시트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이태범 팀장님은 기본적으로 성실하시고 팀원들이랑도 사이가 좋아요. 작은 부분까지 잘 챙겨주시려고 하고요. 다른 분들도 모두 좋은 분들이에요. 다만…….”
“다만?”
“최종혁 씨가 조금…….”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그 이름이 튀어나왔다.
“물론 많이 도와주시고 있고, 나쁜 분은 아닌데…… 뭐랄까, 조금 강압적인 면이 있어요.”
“하아…….”
역시나.
그 성격은 어딜 가질 않는군.
“혹시 사적인 부탁이나 직급을 내세워서 뭔가를 강요한 적은 없었습니까?”
“가끔 그러시긴 하는데… 뭐, 농담이겠죠.”
“문소연 씨.”
나는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게 농담인지 아닌지는 듣는 사람이 판단하는 겁니다.”
“…….”
“그래서… 정말 농담이었습니까?”
그녀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반응으로 보나, 그 새끼 성격으로 보나 절대 농담일 리가 없다.
내버려 두다간 회귀 전처럼 일을 내도 낼 놈이다.
웬만하면 이번 기회에 잘라내고 싶은데.
“감점될 만한 요소는 더 없습니까? 폭언이나 폭력을 행사한다던가.”
“아뇨.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그럼, 다른 점은요?”
“전혀요. 솔직히 강압적인 부분이 있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감점 사유가 안 되고요. 무엇보다 업무 태도, 대인관계 등. 평가 기준으로만 따지면 모두 상위권이에요.”
“쯧.”
헌터 이름에 먹칠을 할 새끼라는 걸 알면서도 내쫓을 수가 없다니.
뭐라도 일이 하나 터질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건가.
‘아니지…….’
그러면 지금 이 고생을 하는 게 다 무슨 의미가 있겠어.
“아, 그러고 보니 방금 회식 자리에서 이상한 말을 했는데…….”
“이상한 말이요?”
내가 되묻자, 문소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한테, 요즘 같은 시대에 믿는 구석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요?”
“그래서 제가 선배님은 그런 구석이 있냐고 되물으니까…… 대답을 못 하시더라고요. 이게 무슨 뜻일까요?”
“뭐…… 뻔하죠.”
본인한테도 믿을 만한 구석이 있다는 거지.
‘누군가 최종혁의 뒤를 봐주고 있다?’
설마 실기 시험에서 높은 성과를 보여준 것도 그것과 연관이 있는 걸까.
만약 뒤를 봐주고 있는 놈이 미리 귀띔이라도 해준 거라면…….
‘평가위원회 중 한 명이라는 소린데…….’
이 씨 부녀를 제외하면 남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외 이사 한 명과 사내 이사 세 명.
그중 한 명이 최종혁과 연관이 있다.
“그러면 제가 인적성 평가 담당자라는 것도 알고 있지 않을까요?”
“아뇨. 그렇진 않을 겁니다. 인적성 평가는 저랑 이아영 본부장 둘이서 진행하고 있는 일이니까. 알고 있다고 해봤자 각 팀장뿐이겠죠.”
만약 정말 평가위원회 중 한 명이 뒤를 봐주고 있다면 더욱 곤란해진다.
실격 처리는 둘째 치고, 모든 심사를 높은 성적으로 마무리하겠지.
쯧, 그 새끼가 뭐가 이쁘다고…….
‘……잠깐.’
별다른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문득 그 말이 머릿속에 꽂혔다.
왜 그런 놈의 뒤를 봐주고 있는 거지?
서로 좋아 죽는 사이라 아무런 대가 없이 밀어주는 게 아니고서야, 분명 주고받는 게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놈은 그래 봤자 C급 헌터.
이사급에게 도움이 될 만한 걸 줄 수 있는 능력도, 권한도 없을 텐데?
‘아니면 도리어 낮은 직급만이 가능한 일을 부탁했다거나…?’
그렇게 한참 동안 머리를 굴렸지만, 마땅히 이렇다 할 만한 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은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죠.”
지금 상황으로선 뭔가를 판단하기엔 정보가 부족하다.
조금 더 알아보는 수밖에.
“뒤를 봐주고 있는 게 누군지는 저희 쪽에서 알아볼 테니, 문소연 씨는 계속 평가 진행해주세요.”
“네, 맡겨주세요.”
“그럼 들어가시죠. 힘들어 보이는데 집에 가서 푹 쉬시고.”
나는 그녀가 내민 평가지를 챙기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면서도 내 머릿속에선 조금 전 이야기가 계속해서 맴돌았다.
뒤를 봐주고 있는 누군가.
그리고 C랭크 헌터에게 부탁할 만한 일.
대체 무슨 거래가 있었던 걸까.
***
“아, 소연 씨! 잠깐 이리로 와줄래요?”
이른 오전, 작전 5팀 사무실.
문소연이 출근하자마자 이태범 팀장이 다급하게 그녀를 호출했다.
“이거 이번 주 작전 스케줄 초안이거든? 내가 지금 급하게 회의 가야 해서 그런데, 이거 마무리 좀 해서 통제팀에게 넘겨줘요.”
“마, 마무리요?”
“어려울 거 없어요. 날짜랑 시간, 장소만 정리해서 표로 만들기만 하면 되니까. 하다가 모르겠으면 종혁이한테 물어보고요.”
“아,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 좀 할게요. 급한 거니까 점심시간 전까지는 보내주고요.”
이 팀장은 그 말을 뒤로하고 곧바로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문소연은 자리로 돌아가 건네받은 종이를 살펴봤다.
‘……하나도 못 알아보겠는데.’
상형 문자라고 해도 믿을 만한 필체로 휘갈긴 글씨들.
어떻게든 눈을 부릅뜨고 읽어보려고 했지만, 아무리 뚫어지게 봐도 단 한 문장도 알아볼 수 없었다.
결국, 문소연은 해독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 위해 사무실을 둘러봤다.
하지만 모두가 토벌을 나간 건지 사무실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최종혁, 한 명뿐이었다.
김준우가 했던 말이 꽤나 마음에 걸렸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기에 문소연은 결국 그에게 다가갔다.
“저… 선배님, 이거 뭐라고 쓰여있는 건지…….”
“지금 일하고 있는 거 안 보여?”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최종혁.
어제와는 상반된 그의 모습에 문소연은 퍽 당황스러웠다.
“아. 죄송합니다, 선배님. 그래도 이것만 좀 봐주시면…….”
“아 씨… 야, 내가 왜 니 선배야. 헌터도 아니면서.”
“…….”
“그리고, 내가 뭐 도와달라고 하면 무조건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야? 좀 오냐오냐해줬더니 아주 예의를 밥 말아 처먹었네?”
그가 손가락질과 함께 마구잡이로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문소연은 갑작스러운 호통에 겁을 먹기보다, 하루아침 새에 사람이 바뀌어버린 것이 더 당황스러웠다.
“하여간 요즘 것들은…….”
최종혁이 그렇게 중얼거리던 차에 때마침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
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굳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들고 서둘러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어쩔 수 없지.”
최종혁이 나간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문소연은 결국 별다른 소득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곤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