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
208
핸드폰을 들고 서둘러 사무실을 나온 최종혁은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예, 이사님.”
「어떻게 되고 있어?」
“……진행 중입니다.”
「웃기고 있네. 근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어.」
“…….”
「에휴, 시벌. 이럴 줄 알았다.」
중년의 남성이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심사 종료까지 3일밖에 안 남았어. 내가 뭐 어려운 거 부탁했냐? 김민주, 그년 인적성 평가만 조져 놓으면 된다니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이런 시발, 내가 지금 그딴 소리 들으려고 너 승급시켜준 거 같냐?」
“…….”
최종혁은 속으로 한숨을 토해냈다.
그렇다.
그가 심사 내용을 알려주는 대가로 요구한 것은, 다름 아닌 김민주 작전 본부장의 실격 처리였다.
그뿐만 아니라 일이 잘 해결될 시, 국제 협회 스카우트라는 어마어마한 딜을 추가로 내걸었다.
모든 헌터들의 워너비자, 최종 목표.
국제 협회 소속의 헌터가 될 기회라는데 그 누가 거절할 수 있겠는가.
최종혁 또한 그 어마어마한 거래에 혹해 앞뒤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막상 본인이 그 값을 치러야 할 때가 되니, 마땅한 대책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상대는 김민주가 아닌가.
실력, 인성, 평판, 실적.
그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게 없는 인간이다.
무엇보다 모든 관심이 토벌에만 쏠려 있는 탓에, 횡령이나 뇌물 같은 게 통할 리도 없다.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긴 해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그 인간의 꼬투리를 잡는다는 건, 본인이 S랭크가 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그래서 최종혁은 그의 부탁을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뭐, 이렇게 재촉 전화까지 한 걸 보면 더 이상은 모른 척할 순 없겠지만.
「이번에 너희 팀에 인턴 들어왔다며? 너 설마 걔한테 수작 치느라 신경도 안 쓰고 있는 거 아니지?」
핸드폰 너머 중년의 남성이 날카로운 투로 쏟아냈다.
“……아닙니다.”
「아니긴, 시발. 너 아무튼 허튼짓하지 말고 시킨 것만 해라. 아니면 뭐, 심사 내용만 받아먹고 모른 척하겠다 이거야?」
“…설마요.”
「내가 말했지. 이거 국제 협회에서 나한테 직접 부탁한 거라고. 너 이번 일 잘되면 국제 협회 갈 수 있다니까.」
“하아…….”
「정 꼬투리 잡을 게 없다 싶으면 너 잘하는 거 하면 되잖아.」
“……예?”
「내가 왜 이번 일을 너한테 맡긴 것 같냐? 토벌은 뒷전이고 맨날 헌터 명함 내세워서 여자만 꼬시는 파렴치한 놈이 뭐가 이쁘다고.」
그 순간, 건너편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무슨 소린가 싶어 대답을 아끼기도 잠시.
“뭐… 본부장이랑 스캔들이라도 만들라고요?”
「그래 새끼야. 네가 잘하는 게 그거 말고 뭐가 있어?」
이내 그가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둘이서 술자리라도 한번 만들어 봐. 그 후엔 알아서 하고. 그림 좋잖아? 완전무결한 줄 알았던 작전 본부장이 스캔들에 휘말리면 충격적이기도 하고. 당연히 인적성 평가에도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 어때, 한 번에 보내기 딱 좋은 소스 아니냐?」
“아니… 그러다가 저까지 잘리면 어떡하라고.”
「야, 이 새끼야! 내가 그 정도도 커버 못 쳐줄까 봐? 그리고 어차피 이번 일 끝나면 한국 뜰 텐데, 얼굴 팔리는 거 정도야 감수할 만하지.」
최종혁은 이마를 턱 짚었다.
노인네, 말이라고 너무 쉽게 지껄이고 있다.
그 천하의 작전 본부장과 스캔들을 만들라니.
아니, 스캔들이고 나발이고 일단 전제부터가 글러 먹었다.
애초에 그 인간, 김준우 외의 사람에겐 관심도 없지 않은가.
술자리는 고사하고, 그 어떤 남자와도 단둘이 사적으로 만날 이유가 전혀 없는…….
“야! 최종혁!”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멀리서 이태범 팀장이 다급하게 달려오며 그를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최종혁은 통화를 하다 말고, 핸드폰을 슬쩍 감추며 대답했다.
“그 이번 주 작전 스케줄 정리한 거, 혹시 네가 확인했냐?!”
“……아뇨.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지금 통제팀에서 연락 왔는데, 3팀 일정이랑 완전히 겹쳐서 동선 꼬였댄다. 이미 우리 쪽에선 토벌 투입 보냈고……. 아 씨, 귀찮게 됐네.”
“인턴한테 맡기셨잖습니까. 그쪽이 실수했나 보죠. 가서 한마디 하시죠.”
“……아, 아니 뭐 그렇게까지 큰일 난 건 또 아니고.”
인턴 이야기가 나오자, 이 팀장이 어째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잠시 망설이던 끝에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일단 네가 수정 좀 해주라. 괜찮지?”
“아니 그걸 왜 제가…….”
“부탁 좀 하자, 이놈아. 나 다시 회의하러 가야 해. 한 번만 좀 도와줘라.”
“……하아.”
“아, 그리고 이것 좀 내 책상에다가 가져다 놔줘. 급하게 가느라 들고 와버렸네.”
그가 건넨 것은 다름 아닌 모텔 키였다.
집이 멀기도 했고, 작전이 잡힌 날에는 밤낮없이 본부에서 살아야 했기에 그는 며칠씩 방을 빌려 생활하곤 했다.
보아하니 요즘에도 모텔에서 출퇴근하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부탁 좀 한다!”
“…….”
이태범 팀장은 막무가내로 그에게 일을 떠맡기곤, 왔던 길로 황급히 돌아갔다.
최종혁은 이 팀장이 건넨 열쇠와 그의 뒷모습을 번갈아 바라봤다.
「…야, 야! 최종혁! 내 말 안 들려?!」
“생각해보니까 말입니다…….”
마침 좋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굳이 제가 엮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뭐?」
“뭐, 일단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최종혁은 그렇게 전화를 끊고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내 그가 사무실 문을 박차며 들어갔다.
“야, 인턴!!”
그 목청에 자리에 앉아 있던 문소연이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방금 통제팀에서 연락 왔는데, 덕분에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팀까지 완전히 일정 꼬여서 지금 난리도 아니란다. 너 대체 일을 어떻게 한 거야?”
“네, 네…?”
“너 때문에 작전 다 날리게 생겼다고.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작전 하나에 들어가는 돈이 얼만데, 너 그거 물어낼 수 있어?!”
“…….”
물론 그 정도까지 큰일이 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최종혁은 최대한 과장되게 포장할 필요가 있었다.
정직원 전환에 사활을 건 인턴에게 위기감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제, 제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보겠습니다…….”
기다렸던 대답이 들려오자, 최종혁은 애써 미소를 감추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고?”
“네? 네…….”
“그럼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할 수 있겠냐?”
“……네?”
최종혁은 조금 전 이 팀장에게 받았던 모텔 키를 꺼내 들었다.
***
“위원회에 최종혁의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다고요?”
서울 본부, 랭크 심사 평가 위원회 사무실.
이때까지 알아낸 걸 말해주자, 그녀 또한 꽤나 놀란 반응을 보였다.
“아니, 그 인간 쓸 데가 어디 있다고…?
“그거야 모르죠. 혈연이나 학연일 수도 있고.”
물론 대충 알아본 결과, 최종혁과 친분이 있을 만한 사람은 없었지만…….
“위원회에 심사 내용을 미리 알고 귀띔해줄 수 있을 만한 사람은 많이 없어요. 저랑 당신, 아빠를 제외하면…….”
“고병철 사외이사, 금은숙, 박장목 이사. 이렇게 세 명뿐이죠.”
“금은숙 이사님은 이번 실기 시험 논의 때 다른 일 때문에 참가 못 하셨으니 아니에요.”
“그럼 남은 건 두 명이군요.”
나는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솔직히 둘 다 의심스럽다.
고병철 이사는 어떤 인물인지 정보가 없고, 박장목 이사는 협회 시절부터 특정 정당의 접대 의혹으로 이래저래 말이 많았던 놈이고.
‘이제 와서 인원을 갈아치우기엔 아직 심사 기간이 3일이나 남았으니…….’
답답한 마음에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누가 범인인지는 둘째 치고. 대체 목적이 뭘까요?”
이아영 본부장이 의아한 목소리로 질문을 이어갔다.
“랭크 심사는 헌터들에게나 중요한 사안이지, 민간인들한테는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잖아요. 특정 누군가를 승급시킨다고 해도 본인들에게는 아무런 이득도 없을 텐데?”
“누군가를 올리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떨어트리는 거라면 이득이 될 수도 있겠죠.”
“……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가 심사 설명회 때 못을 박지 않았습니까. 인적성 평가에서 실격되면, 헌터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아, 설마…….”
“그걸 이용해서 눈엣가시였던 누군가를 고의로 떨어트리려는 거라면, 누군가에겐 분명히 이득이 되지 않겠습니까.”
생각보다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걸 느낀 건지, 이아영 본부장의 표정이 퍽 굳었다.
“그래서, 누구를 떨어트리려고 하는 걸까요?”
“헌터 자격이 박탈되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이득이 될 만한 인물이라고 하면…….”
뭐, 한 명밖에 없지 않은가.
현재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주축이자 최고 전력.
“김민주 작전 본부장.”
“……!”
그녀의 이름이 나오자, 이아영 본부장이 반사적으로 손을 입에 가져다 댔다.
그래, 그녀가 아무리 작전 본부장이고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주축이라고 해도 지금은 여느 헌터와 마찬가지로 심사 대상 중 한 명일 뿐이다.
만약 그녀가 모종의 이유로 인적성 평가에서 실격 처리된다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자격 박탈을 막을 수가 없겠지.
“하지만… 민주 씨가 떨어진다고 해서 협회 내에서 이득을 볼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 자리에 아무나 올라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맞습니다. 그 녀석이 떨어진다고 해서 이득 볼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 협회 내에는 없죠.”
나는 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국제 협회라면 또 모를까.”
“……!”
김민주는 명실공히,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최고 전력이다.
단순히 개인의 능력이 뛰어난 것뿐만 아니라, 현재 거의 모든 작전을 진두지휘하며 엄청난 실적을 올리고 있다.
무엇보다 내 오른팔로써 그 어떤 임무도 성공적으로 해결해내는 든든한 전력이다.
그런 인물이 떨어져 나간다면, 필연적으로 카르마 코퍼레이션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말로 이번 심사에 누군가 개입해서 김민주를 떨어트리려고 한다면, 그건 분명히 높은 확률로 국제 협회일 것이다.
“이사 중 한 명이 국제 협회와 접촉했을 거라 생각하는 거예요…?”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입니다. 자세한 건 이제부터 확인을 해봐야겠죠.”
나는 이아영 본부장을 향해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고병철 이사랑 박장목 이사, 두 사람 다 여기로 불러주세요. 한 명씩 대화를 좀 해봐야겠습니다.”
“알았어요.”
그녀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때.
“대표님!”
문소연이 꽤나 다급한 얼굴로 사무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문소연 씨…? 무슨 일이십니까?”
“그, 그게 최종혁 씨가 방금 저한테 이걸 주면서, 민주 씨 사무실에 가져다 놓으라고 하던데…….”
그 말과 함께 문소연이 꺼내 든 것은 다름 아닌 모텔 키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
“…….”
허.
이 새끼 봐라?
***
“아니, 진짜로?!”
“조용히 해, 인마.”
본부 옥상.
그의 동기인 고현종, 박태하와 함께 담배를 피우던 최종혁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렇게 호들갑 떨지 마. 내가 잘못 본 걸 수도 있으니까.”
“아니, 어쨌든 팀장님이랑 본부장이랑 모텔로 들어가는 걸 봤다는 거 아니야?”
“팀장님, 이번에 둘째 돌이라면서? 사모님 얼굴 어떻게 보려고 그러냐…….”
“아, 잘못 봤을 수도 있다니까. 호텔에서 회의라도 했을 수 있잖아.”
최종혁은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애써 수습하는 척 손을 저었다.
물론 진심으로 그들을 감싸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야, 그게 말이 되냐!”
“대표한테 꽂혀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완전 여우네.”
“그러니까 말이다. 충격이다, 충격이야.”
그저 이런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이내 최종혁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두 사람에게 속삭였다.
“아무튼, 이거 비밀이다. 내가 오해한 거면 두 사람한테 미안하잖아. 알았지?”
“알았어, 새끼야.”
“당연히 입단속 해야지.”
그렇게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지만, 사실 최종혁은 알고 있었다.
이 스캔들이 퍼지는데, 하루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