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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모던 바.
나는 최종혁과 함께 박장목 이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빈손으로 가게에 앉아 있을 순 없었기에 각자 마실 것을 시켰지만, 나도 그렇고 그 또한 음료에 입을 대진 않았다.
하긴, 이 상황에서 그 누가 느긋하게 칵테일이나 홀짝이겠는가.
‘흐음…….’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각인 새벽 3시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 박장목 이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이곳이 맞습니까?”
“네, 네. 이번 일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눈 곳이니 여기가 확실합니다.”
“근데 왜 이렇게 안 오는…….”
말을 꺼내기 무섭게.
“대표님.”
밖에 대기시켜놨던 직원이 허겁지겁 나에게 다가왔다.
“도착했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곧바로 최종혁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제가 일러준 대로만 하세요. 핸드폰 녹음기 꼭 켜두시고.”
“저, 정말 시키는 대로만 하면 정상참작 해주시는 겁니까?”
“뭐… 그거야 본인 하기 나름이겠죠.”
단호하게 대답하곤 곧장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야는 닿지 않지만 집중하면 목소리는 들릴만한 거리.
그곳에서 출입문을 바라보고 있자, 드디어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사님, 여깁니다.”
“그래. 택시가 안 잡혀서 좀 늦었어.”
박장목 이사.
이능차원협회 시절, 박인범 협회장을 몰아내고 협회 내 권력을 쥐려고 했던 송철식 이사 라인 중 한 명.
물론 그중 대다수가 본부 개혁 당시 줄줄이 모가지가 잘려 나갔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자리만 지키는 수준이었던 그는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있는 둥 마는 둥 목숨만 부지하다가, 카르마 코퍼레이션과 합병이 되고 나서부터는 급속도로 영향력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가 엄청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도, 입지를 한 방에 역전시킬 만한 계약을 따낸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쯤 되니 본인보다 힘센 놈들이 남아있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래서 존버, 존버 하는 건가…….’
그냥 운이 좋은 놈이라고 밖엔 설명할 수 없다.
그것도 아주 더럽게 좋은 놈.
어쨌든 입지가 올라간 만큼, 이번 평가 위원회 소속이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국제 협회와 손잡은 놈이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전에 쳐냈겠지만.
“혼자 온 거지?”
“네, 네.”
“본부 상황은 어때? 경찰 조사는?”
“아직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가진 않았는데…… 늦어도 내일 안에는 착수할 것 같습니다.”
나는 시선을 앞으로 고정한 채 귀를 최대한 열었다.
아직까진 내가 지시한 대로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나저나… 본부장을 어떻게 찾으실 생각이십니까?”
“방법 있냐? 사람 풀어야지.”
“그건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경찰도 곧 수색에 들어갈 텐데. 섣불리 사람을 풀었다가 괜히 눈에 띌 수도…….”
“…….”
박장목 이사는 대답을 아꼈다.
그 틈을 타 최종혁이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만약 우리가 먼저 찾는다고 해도… 그다음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이제 와서 이실직고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설득해서 복귀시키기에도 명분이 없지 않습니까.”
그 질문은 박장목 이사에게 꼭 물어보라고 지시한 것 중 하나였다.
자신에게 칼이 들어온 상황.
예상치 못한 그 위기를 해결하려다 보면 필시 본인이 숨기고 있는 패를 꺼내 들기 마련일 테니까.
본인들이 퍼트린 스캔들.
거기에 휘말린 김민주.
여태까지는 그저 출처 모를 소문에 불과했지만, 김민주가 실종되면서 모든 게 틀어져 버렸다.
이제 모두가 주시하는 사건이 된 이상, 언제까지고 익명 뒤에 숨어 있을 수가 없게 됐다.
나아가 경찰까지 나서게 되면 반드시 꼬리를 밟힐 것이다.
그걸 피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사건을 무마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박장목 이사가 이 상황에서 정말 사건을 해결할 방법을 꺼내 든다면, 그것이 곧 그가 여태껏 숨기고 있던 패.
국제 협회와의 연결고리가 될 테니까.
“……방법이 있어.”
이윽고 박장목 이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그의 말에 집중했다.
“들어와.”
그 순간, 박장목 이사가 가게 출입문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누군가를 향해 손짓했다.
이내 껄렁한 차림을 한 몇 명의 남자들이 박장목 이사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딱 봐도 동네 양아치들로 보이는 남자들이 최종혁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이, 이분들은…?”
“전직 헌터들. 지금은 자격 박탈되고 동네 클럽 관리하고 있어.”
그 말에 내 눈썹이 꿈틀거렸다.
전직 헌터로 이루어진 조직 폭력배?
‘국제 협회가 아니라…?’
나는 이를 으득 씹었다.
이건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전개였다.
분명 국제 협회에 도움을 요청할 줄 알았는데…….
‘대체 저놈들이 여기서 왜 튀어나오는 거야…?’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던 그때였다.
“자, 잠시만요…!”
최종혁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사람들을 어떻게 믿고…….”
“이봐, 최종혁이.”
그 순간 박장목 이사의 눈빛이 번뜩였다.
“이 사람들을 소개해준 분이 누군지는 알아?”
“……예?”
“미래민주당 소속 의원님이야.”
“그게 무슨……?”
또다시 등장한 제3의 인물에 내 귀가 맹렬히 반응했다.
이번엔 국회의원이야?
“국제 협회랑 딜을 했다고 했잖아. 사실 나한테 다이렉트로 연락이 온 게 아니야. 그분한테 먼저 본부 내에 쓸 만한 사람 없냐고 연락이 왔고, 나를 연결해 준 거지.”
“그럼 이번 일도 그분이…….”
“아니, 그분은 이번 일에 대해선 몰라. 김민주를 떨어트리라는 지시도 국제 협회 쪽에서 한 거고.”
박장목 이사가 목이 타는지 앞에 놓인 칵테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
그렇게 된 거였군.
‘이제야 연결고리가 좀 보이네…….’
애써 미소를 숨기며 계속해서 그들의 대화를 경청했다.
“귀국하면서 연락을 드리니까 이놈들을 소개해주더군. 소속도 연고도 없는 놈들이라, 잡을 수도 없고 꼬리 밟힐 위험도 없어. 이런 일엔 딱이지. 무엇보다 일 처리도 확실하고.”
“…….”
최종혁의 표정에 당혹감이 묻어 나왔다.
이렇게까지 일을 벌일 줄은 예상도 못 했다는 반응.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설마하니 또 다른 꼬리가 숨어 있을 줄이야.
“우리가 먼저 찾으면, 익명으로 경찰에 제보하면 돼. 어차피 실종자 수색이 우선일 거 아니야. 본부장만 찾으면 주동자 조사는 시들해질 거다. 우리는 그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그게 가능할 리가…….”
“내가 이 자리까지 오면서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게 뭔 줄 아나?”
박장목 이사가 눈을 부릅뜨곤 최종혁을 향해 물었다.
“버티기만 하면 이긴다는 거야. 어차피 김민주만 찾으면 경찰이 할 일은 끝나. 물론 내부적으로는 계속 주동자를 찾으려 하겠지만… 그게 언제까지 가겠어?”
“…….”
“어차피 이런 가십은 금방 시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그렇잖아. 그러니까 우린 그냥 숨 틀어막고 쥐 죽은 듯이 버티기만 하면 돼. 알아들어?”
“……알겠습니다.”
“에휴, 시발 이게 뭔 지랄이냐. 그러게 정도껏 했어야지. 무작정 밀어붙이니까 이 꼴이 나는 거 아니야.”
“…….”
“알아들었으면 이제 가봐. 난 내일 아침 비행기로 다시 일본으로 갈 테니까.”
“다시 가시는 겁니까?”
“심사 기간에 해외 출장 간 놈이, 일 터지자마자 귀국하면 의심받을 거 아니야.”
최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박장목 이사가 그렇게 가게를 나서려던 그때.
“그나저나 이사님.”
최종혁이 다시금 그를 불러 세웠다.
“그, 미래민주당 소속의 의원이라는 분 말입니다. 대체 어떤 분이신지…….”
최종혁이 넌지시 묻자, 박장목이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그걸 네가 알아서 뭐 하게.”
“아, 아니. 한배를 탄 입장으로서 저도 알아두면…….”
“이봐, 최종혁이.”
그 순간, 그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네 분수를 알아. 넌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주제넘게 다른 것까지 넘보려고 하지 말고. 응?”
“…알겠습니다.”
“뭐, 이번 일 잘 넘어가면 국제 협회 스카우트 건은 내가 어떻게든 해줄 테니까 걱정은 마.”
박장목 이사는 그 말을 뒤로하고 다시 등을 돌렸고.
그 순간.
삐리리―.
때마침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 뭔데?”
“어어.”
“……뭐?”
“그거 확실한 거야?”
“……알았어. 일단 끊어봐.”
짧은 통화 후, 그는 최종혁을 향해 돌아섰다.
“최종혁이.”
“네, 네?”
“김민주 본부장 말이야.”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최종혁을 관통하길 한 차례.
“실종된 적 없다는데?”
“…….”
그 비수에 최종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쯧, 생각보다 빨리 들켰군…….’
급하게 내부 사람한테 알아보게 시킨 건가.
“지금 이게 뭐 하자는…….”
이윽고 그가 한 번 더 입을 뗀 순간, 그의 동공이 크게 벌어졌다.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길 잠시.
탓―!
이내 무언가 낌새를 눈치챈 건지, 곧장 가게 문을 박차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물론 난 그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다 했던가.
그가 도망쳐 나간 바깥은, 호랑이 굴이었으니까.
***
“시발!”
뭔가 이상하다 했다.
그 천하의 김민주가 실종이라니.
애초부터 되지도 않은 말이지 않은가.
그럼 왜 최종혁은 그런 거짓말을 한 거지?
설마 다른 놈한테 들킨 건가?
들켰다면 어디까지?
자신도 연관되어 있다는 걸 불었나? 혹시 국제 협회 건까지?
‘그것도 아니면…….’
방금 대화 자체가 모두 자신을 끌어내기 위한 미끼?
“시발, 진짜!!”
박장목 이사의 머릿속에는 온갖 의문들이 꼬리를 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무작정 앞으로 달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퍽―!
갑자기 튀어나온 누군가와 부딪히며,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런 씨…! 눈 똑바로 안 뜨고 다녀?!”
“울고 있더라고.”
누군가가 깊게 눌러 쓴 후드를 젖히며 입을 열었다.
“그 천하의 작전 본부장이 화장실에서 울고 있더라니까?”
“너, 너…!”
그녀는 다름 아닌, 박장목 이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한유빈 기획 본부장이었다.
“네가 여긴 어떻게…!”
“내가 웬만한 개새끼들은 다 만나봤는데… 넌 진짜 용서가 안 된다.”
냉담한 목소리에 차가운 눈빛.
온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그 모습에 박장목 이사는 자기도 모르게 손이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를 향해 터벅 다가오자, 그가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그, 그래서! 네가 뭘 어쩌게! 여기서 나 건드리면 네 딴 게 무사할 것 같아?! 너도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상관없어.”
“……뭐?”
“상관없다고. 쫓겨나든 말든.”
한유빈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고유 스킬 : 하이패닉 버서커]
이윽고 그를 향해 주먹을 치켜들었고, 곧바로 그의 안면을 향해 내리꽂으려는 순간.
“어허.”
저 멀리서 또다시 김준우가 그녀를 말렸다.
“약속했잖습니까. 안 죽이기로.”
“…죽일 생각은 없어요.”
“그렇게 치면 죽습니다. 그 사람 일반인이에요.”
한유빈은 어쩔 수 없이 주먹을 거뒀다.
그와 동시에 박장목 이사가 김준우를 향해 허겁지겁 무릎걸음으로 다가갔다.
“기, 김 대표! 마침 잘 왔네! 글쎄 저년이 감히 날 건드리려고…!”
뚜둑―.
그 순간, 박장목 이사의 오른팔이 바깥쪽으로 완전히 돌아갔다.
“끄아아아아악!!!”
귀를 찢을 듯한 비명 소리.
그럼에도 김준우는 박장목에게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아시겠습니까?”
그는 한유빈을 향해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뭐든지 그렇게 폭력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보세요. 이렇게 팔다리만 부러뜨려도 얼마나 고분고분해집니까.”
“…….”
한유빈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와중에도 박장목 이사는 여전히 고통에 몸부림치는 중이었다.
“아프십니까?”
김준우는 그제야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박장목과 눈을 맞췄다.
“뭐, 너무 억울해하진 마시죠.”
김준우는 그의 부러진 오른팔을 톡톡 치며 말을 이었다.
“제 오른팔을 먼저 건드린 건 이사님이니까.”
“으으…….”
“아무튼, 은퇴 축하드립니다. 박장목 이사님.”
“기, 김 대표… 내가 다 설명을…….”
“그리고 이건…….”
이내 그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
뚜둑―.
“끄아아아아악!!”
이번엔 그의 오른 다리가 돌아갔다.
“은퇴 선물입니다.”
고통 섞인 비명과 김준우의 담담한 목소리가 함께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