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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가 첫날, 이른 아침.
나는 약속 장소에서 이아영 본부장과 마주치자마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사도 생략한 채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녀는 애써 내 시선을 피하며 꽤나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로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옷이 왜 저따구야…?’
맨날 정장 아니면 단정한 셔츠만 입던 그녀가 원피스를 입고 나왔으니.
심지어 회귀 전에도 본 적 없는 그 모습에, 나는 어질어질한 기분까지 들었다.
심지어 풀 메이크업?
이건 대체 무슨 꿍꿍이지?
“저, 저는 그냥 가도 된다고 했는데. 유빈 씨가 억지로…….”
“…….”
본인도 자신의 모습이 어색한지 말끝을 흐린다.
나는 그녀가 들고 온 짐으로 슬쩍 시선을 흘겼다.
피난이라도 가는 건지, 짐도 아주 한가득이었다.
대체 뭘 그렇게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건가.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봐요.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으니까 너무 창피한데요.”
“어…….”
나는 잠시 망설이던 끝에 입을 열었다.
“그 옷 입고 어떻게 조사를 하려는 겁니까?”
“……네?”
“……?”
잠시 벙찐 표정을 짓던 그녀가 이내 넌지시 물었다.
“조, 조사라뇨…? 놀러 가는 게 아니라…?”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박장목 이사 뒤를 봐주고 있는 의원 조사하러 가는 건데.”
“…….”
그 순간이었다.
이아영 본부장의 얼굴이 여태껏 본 적 없는 수준으로 싸늘하게 식었다.
***
본사, 기획본부장실.
“두 분 지금쯤이면 만났겠죠?”
한적해진 시간에 한유빈을 찾아온 김민주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한유빈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왜요. 질투 나요?”
“아뇨, 그런 건 아닌데…….”
김민주는 이 복잡한 심경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몰라 말끝을 흐렸다.
그도 그럴 게, 김준우는 자신에게 무척이나 특별한 존재였으니까.
김준우를 이성으로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감정을 추슬러왔다.
김준우는 그저 존경의 대상일 뿐, 그 이상의 관계는 주제넘은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이아영 본부장과 단둘이 휴가를 간다고 해도…… 아니, 설령 둘이 연인이 된다고 해도 본인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오묘한 기분이 드는 건, 그저 어린애 같은 심술 때문이겠지. 존경의 대상을 누군가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물론 그것도 이 복잡한 마음을 확실하게 설명해주는 건 아니다.
김민주는 턱을 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좀… 복잡하네요.”
“풉…!”
“……?”
“아, 미안해요.”
한유빈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연신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뭐가 그렇게 웃겨요…?”
김민주는 그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그냥… 반응이 귀여워서.”
“네…?”
“설마 그 인간이 같이 휴가 가자고 한 거 진짜로 믿는 건 아니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진짜로 같이 가자고 한 거 맞지 않아요?”
“풉, 푸하하!”
한유빈은 결국 폭소를 터트렸다.
그리곤 새어 나온 눈물을 닦으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그 인간에 대해선 그쪽이 제일 잘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네.”
“……무슨 소리예요?”
“일밖에 모르는 인간이잖아요. 아마 이번에도 그냥 일손이 필요한 거뿐일걸요?”
“서, 설마요…….”
“설마는 무슨. 그 인간이 정말 단둘이 놀러 가고 싶어서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해요?”
“…….”
김민주는 대답을 아꼈다.
실제로 김준우가 그럴 거라고는 전혀 상상이 가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었던 거고.
“뭐, 보나 마나 누구 뒷조사나 아니면 이번 일 마무리하려는 거겠죠.”
한유빈은 안 봐도 뻔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 그럼 유빈 씨는 왜 굳이 아영 씨한테 쇼핑하러 가자고 한 거예요…?”
“그거야…….”
한유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재밌을 것 같아서?”
“…….”
“지금쯤 둘 다 당황해서 서로 벙쪄 있을걸? 뭐, 그쪽 반응도 재밌었고.”
한유빈은 생각만 해도 재밌는지 자꾸만 쿡쿡 웃음을 뱉었다.
김민주는 그런 그녀를 보며 진심으로 고개를 저었다.
***
“…화 푸시죠?”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르는 차 안.
아까부터 꽤나 험악한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이아영을 향해 말했다.
“뭐래. 화 안 났거든요?”
“……표정은 안 그런 것 같은데.”
“화 안 났다니까?!”
……아니면 아닌 거지, 왜 소리를 질러.
됐다, 신경 끄자.
본인이 아니라는데 더 말 걸어봐야 나만 답답하지.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아 씨! 생각할수록 열 받네?!”
“…화난 거 맞구만.”
“아니, 단둘이 휴가 가자고 하면 당연히 오해할 만하지 않아요?! 기껏 꾸미고 왔더니, 뭐? 조사?! 이게 말이야 방귀야!”
“그러게 제가 편하게 오라고 했잖습니까.”
“그게 그런 말인 줄 누가 알아요! 나만 완전 바보 됐잖아! 쪽팔려 죽겠네, 진짜!”
“본인이 오해한 걸 왜 저한테 그러십니까. 그리고 막말로, 저희가 뭐 단둘이 여행 갈 사이도 아니잖습니까.”
“그 말이 더 열 받네!!”
이아영 본부장은 짜증을 주체할 수가 없는 건지, 몸을 가만히 두질 못했다.
“알았습니다. 제가 사과할 테니까 이제 그만…….”
“아, 저 새낀 왜 끼어들고 지랄이야! 야, 꺼져!”
“…….”
입을 꾹 다문 채 정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됐다, 건들지 말자.
이러다 한 대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말을 아끼기도 잠시.
“그래서, 대체 무슨 조사를 하려고 휴가까지 내서 가는 거예요?”
그녀가 분이 삭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 대놓고 하기엔 조금 찜찜한 일이라…….”
슬쩍 그녀의 눈치를 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저번에 박장목 이사 캘 때, 그가 데려온 놈들이 있었습니다. 뒤를 봐주고 있는 의원님이 소개해줬다고 하는데, 뒷세계에서 활동하는 전직 헌터들이더군요.”
“전직 헌터?”
“예.”
내 대답을 들은 이아영 본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도 그런 놈들이 남아 있어요? 예전에 다 처리하지 않았나?”
“저도 그런 줄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몰랐다고만 할 문제가 아닌데요? 자격 박탈된 헌터는 5년 동안 정부에서 감시를 받잖아요.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니고, 폭력 조직에서 활동하는 걸 안 걸릴 수 있나요?”
“말했잖습니까. 그 의원님이 소개해준 사람들이라고.”
“……설마.”
“예.”
나는 창문에 팔을 괴며 대답했다.
“우리 잘나신 의원님께서 개인적으로 몰래 투견을 기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헌터의 자격이 박탈될 만한 사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횡령, 뇌물, 폭행, 보복, 협박…….
그리고 살인까지.
통상의 힘을 초월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건 일어날 수 있는 일 중, 가장 최악의 경우다.
특히나 자격이 박탈되어 협회의 통제권을 벗어난 헌터들은 더더욱 범죄에 쉽게 노출된다.
그래서 전직 헌터… 특히, 강력 범죄 사유로 자격이 박탈된 헌터들은 국가에서도 가장 위험인물로 분류된다.
이능의 힘을 지닌 그들이 던전이 아닌 곳에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니까.
그런 놈들이 폭력 조직을 만들어서 활동한다는 건, 단순히 불법 수준이 아니라 국가안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항이다.
아닌 게 아니라, 마음만 먹는다면 군대도 박살 낼 수 있는 이능력자들이 비공식적으로 모여 있는 것 아닌가.
심지어 멀쩡한 놈들도 아니고, 이미 한 번씩 일을 저지른 놈들이니, 그 위험성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정부에서는 두 번째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리고 대대적으로 불법 헌터 조직을 박멸하는 데 나섰다.
물론 회귀 전 나 또한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게 벌써 5년 전 일이고, 이후로도 자격 박탈 헌터는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기에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직도 그런 놈들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그것도 국회의원 밑에서?
이건 누가 봐도 뻔하지.
조직을 박장목 이사의 뒤를 봐줬다는 의원님께서 직접 키우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든 혹은 다른 사업을 위해서든.
“그래서, 그 조직을 캐면 위에 누가 있는지도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이아영 본부장이 이내 이해가 간다는 듯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조직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최근, 포항에 2만 평가량의 리조트 건설이 확정되었답니다.”
꽤나 뜬금없는 대답이었는지, 이아영 본부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포항이요?”
“예. 골프장이랑 스키장, 워터파크까지 들어선다는 모양이더군요. 시공은 GT건설이 입찰을 따냈고요. 그런데 다른 업체랑 마찰이 좀 있었던 모양입니다.”
“입찰 경쟁이라도 붙었대요?”
“그런 게 아니라…… 해당 부지에 어느 중소기업의 공장이 들어서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답니다. 계약도 다 됐고, 착공 날짜만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업이 엎어진 거죠.”
“네? 그게 말이 돼요? 이미 계약까지 된 땅을 어떻게 억지로…!”
“자세히는 모릅니다.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은 거라. 다만, 해당 지역구 의원이 미래민주당 소속이더군요.”
“……!”
그 순간,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엇보다 예전부터 GT그룹이랑 미래민주당 관계에 대해선 말이 많지 않았습니까. 아마 의원이랑 GT건설이 합심해서 작당을 벌인 거겠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반발은 없었어요?”
“없었겠습니까. 그 중소기업 대표가 직접 나서서 시위했답니다. 직원들도 모두 발 벗고 나섰고요. 그러다 보니 지역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죠. 덕분에 여론도 조금씩 중소기업 쪽으로 쏠렸고요.”
“그런데도 리조트 사업을 진행한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억지로 밀어붙였다간 일이 더 커질 텐데…….”
“유감스럽게도 그럴 일은 없었습니다.”
“네?”
난 대답 대신 신문 한 장을 내밀었다.
헤드라인도 아닌, 중간 페이지 구석에 조그맣게 실린 기사.
그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 기업 대표, 죽었거든요.”
“……!”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 정확히 말하면 실종이지만. 의미가 달라지진 않겠죠.”
“그, 그게 대체 무슨…….”
“아무튼, 대표가 사라지고 나서 거짓말처럼 모든 언론에서 이번 사건을 싹 내려버렸습니다. 인터넷도 조용하고요. 그나마 있는 게 신문 구석의 기사 한 줄이죠.”
이아영 본부장은 꽤나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설마 그 지역구 의원이…….”
“그건 아닐 겁니다. 그 사람은 이번이 초선이거든요. 아직 영향력도 없는 새내기 국회의원이 그렇게까지 언론을 통제하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하겠죠.”
“그럼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다는 거예요?”
“뭐, 지역구 의원은 우리가 찾는 그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가 찾고 있는 그 사람이 벌인 짓인 건 확실합니다.”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마 이번 리조트 건설 건이 본인에게도 이득이 되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손을 보태준 거겠죠. 그런데 중소기업 대표가 생각보다 끈질기게 나오니…….”
“헌터 조직을 써서 처리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제 추측일 뿐입니다. 확실한 건 직접 가봐야 알겠죠.”
그래서 우리가 지금 포항으로 가는 것이다.
정확히는 그 실종된 대표의 회사로 향하는 중이고.
워낙에 묻힌 사건이기에 기사로 확인하는 건 한계가 있다.
직접 가서 알아보는 것만큼 확실한 게 없겠지.
“하아…….”
그때, 이아영 본부장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일이면 미리 말을 좀 해주시지. 아무리 봐도 원피스 입고 갈 만한 자리는 아닌 것 같은데.”
“뭐 어떻습니까. 공식적인 자리도 아닌데.”
“……말은 참 쉽네요.”
이아영 본부장은 볼멘소리를 내면서도 포항을 향해 계속해서 차를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