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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천재 헌터의 슬기로운 청소생활-216화 (216/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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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남부 경찰서 강력계.

강력 2반, 사무실.

“야, 이거 오늘 내로 확인해서 내일부터 수사 착수해.”

고배수 반장이 민유진 형사의 자리에 서류철을 턱, 내려놓으며 말했다.

민유진은 서류를 집어 들며, 앉은 채로 고 반장을 바라봤다.

“이건…?”

“상가 건물 강도 살인 건이야. CCTV도, 목격자도 없다더라. 일단 유족들 좀 만나보고 주변 인물부터 탐문해봐.”

“…….”

평소와 다름없는 업무 지시였지만, 어째선지 민유진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뭐, 그도 그럴 게.

“아직 주세훈 대표 실종 건 수사 중인데요.”

“아… 그 세훈 화학 대표?”

본인이 맡은 사건이 아직 진행 중이었다.

물론 고배수 반장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거 수사 종료하래.”

“…네?!”

고 반장이 떨떠름하게 말하자, 민유진 형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실종된 지 한 달이 다 돼 가는데 뭐 단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수색도 소득이 없잖아.”

“아직 한 달밖에 안 됐잖습니까.”

“그러니까! 그 한 달 동안 얻은 게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계속하냐는 거지, 인마.”

“애초에 실종 경위부터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건 보복성 납치에 초점을 맞추고 주변 인물부터 다시 조사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우린 인력이 남아도냐?”

“저 혼자라도……”

“하, 이 새끼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네.”

고 반장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대놓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야, 너 혼자 형사야? 너 혼자 조사하고 너 혼자 범인 잡냐? 이게 어디서…….”

“…….”

“……하아.”

고 반장은 그녀의 굳센 눈빛을 보자 짜증스럽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건 본인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저 녀석은 오죽하겠는가.

고 반장은 이내 화를 낼 마음도 없어졌는지,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주 대표 건은 수사 종료하고, 강도 살인 건이나 맡아.”

“반장님…!”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야. 토 달지 마. 이번 주까지 용의자 추려서 내 책상 위에 올려놔라.”

고 반장은 더 이상의 이의는 듣지 않겠다는 듯, 그 말과 함께 곧바로 등을 돌렸다.

하지만 민유진 형사는 끝까지 그를 귀찮게 했다.

“얼마나 높은 분 지시입니까?”

“…….”

“서장님입니까? 아니면 더 위?”

고 반장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노려봤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대답은 해줄 수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네가 알아서 뭐 하게?”

그 정도뿐이었다.

“…….”

민유진 형사는 굉장히 언짢은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길 잠시.

이내 외투를 챙겨 들었다.

“야, 야! 너 어디가!”

“세훈 화학 직원들 조사하러요.”

“내 말 못 들었어?! 너 가면 가만 안 둬! 야! 야 이 새끼야!!”

고 반장이 계속해서 고함을 질렀지만, 민유진 형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무실을 벗어났다.

고 반장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시발, 어디서 저런 또라이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자, 옆자리에 있던 다른 형사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반장님, 모르는 척하세요. 쟤 요즘 예민하잖아요.”

“…뭔 일 있대?”

“남자친구가 갑자기 어느 날부터 연락이 안 되더니 그대로 잠수 탔대요. 1년씩이나.”

“하!

고 반장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

고작 그런 개인적인 일 때문에 감정 조절도 못 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동료 형사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친구를 최근에 TV에서 봤대요. 지금 엄청 유명해졌다던데? 뭐 화날 만하죠. 그래도 나름 연인이었는데, 말도 없이 잠수 타놓고 혼자만 잘나가는 걸 보면.”

“……뭐 얼마나 유명해졌길래? 나도 아는 사람이냐?”

“글쎄요. 거기까진 말을 안 해주네요.”

동료 형사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뭐, 어차피 단서도, 용의자도 없는 사건이잖습니까. 하루 이틀 지나면 쟤도 포기하겠죠.”

“하아… 아주 개판이네 진짜.”

고 반장은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개판이라는 말은 단순히 자리를 박차고 나간 민유진만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수사 종료 명령.

물론 고 반장 또한 그 명령을 내린 이가 누군지는 모른다.

다만 나름 중소기업 대표의 실종 사건을 덮어버릴 정도니, 꽤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하지만 대체 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윗선에서부터 그 실종 건을 덮으라고 하는 건가.

‘쯧…….’

고 반장은 굉장히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

“여기예요?”

“네.”

점심시간쯤 도착한 회사 건물 앞.

사업이 엎어지고 시위를 벌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주세훈 대표의 회사.

세훈 화학.

나와 이아영 본부장은 그 앞에 서서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공장 건설이 예정되어 있던 부지.

갑자기 엎어진 사업.

곧바로 리조트 건설 사업을 추진한 GT건설.

여러모로 GT그룹과 관계가 깊은 미래민주당 소속의 지역구 의원.

게다가 갑자기 실종된 대표와 미래민주당 소속의 ‘그분’이 기르고 있는 전직 헌터 조직.

사건을 나열만 했음에도 어느 정도 연결 고리가 이어진다.

추측이라곤 해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수준.

만약 정말로 이 모든 사건이 우리가 찾는 ‘그분’이 개입하고 있다면…… 반드시 이곳에 단서가 남아 있을 것이다.

“들어갑시다.”

나는 그렇게 입을 열며 걸음을 옮겼다.

회사 내부는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우린 복도를 따라 계속해서 사무실을 두리번거렸고, 그러던 중 영업팀이라 쓰여 있는 사무실 앞에서 한 젊은 남자를 발견했다.

“어… 어떻게 오셨어요?”

젊은 남자 또한 우리를 발견하곤 꽤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카르마 코퍼레이션 김준우 대표입니다. 볼일이 좀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명함을 건네자, 그가 뜨억 하는 표정으로 허리를 푹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대표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못 들어서…!”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볼일이 있어서 온 거라 따로 연락을 안 드렸습니다. 제가 미안하죠.”

“개, 개인적인 볼일이요?”

“예. 주세훈 대표님 관련해서…… 제가 대표님과 연이 좀 있었거든요.”

“네? 저희 대표님이 카르마 코퍼레이션이랑요…?”

“아, 그게 그러니까…….”

나는 직원의 물음에 재빨리 사무실을 훑으며 둘러댈 만한 것을 찾았다.

그러던 중 제품 브로셔가 눈에 띄었다.

“약품! 청소팀에서 쓸 약품 계약 건으로 몇 번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아…….”

직원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책임자를 만나 뵙고 싶은데, 다들 식사하러 가셨나 봅니다.”

“아… 제, 제가 책임자입니다. 하하하…….”

“…예?”

직원이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 사람이 책임자라고?

끽해야 20대 중반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대표님 그렇게 되시고 나서 직원들이 줄줄이 퇴사했거든요. 아무래도 일이 일인지라……. 지금은 저랑 개발팀장님 그리고 전무님만 남은 상태입니다.”

“세 명으로 회사 운영이 됩니까?”

“그래서… 뭐, 다음 주 안으로 정리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꽤나 무거운 소식에 이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자 직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놀랐습니다. 대표님이 워낙에 내성적이 분이라 주변에 아는 사람이…… 설마하니 김 대표님의 지인이었다니.”

“……주 대표님은 아직 소식이 없는 겁니까?”

“예… 경찰도 수색은 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직은…….”

그의 시선이 땅으로 향했다.

나는 잠시 텀을 두고 다시금 말을 이었다.

“사실 주 대표님 일에 대해서 몇 가지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물론입니다! 저는 영업팀장 이상우라고 합니다. 잠시만요. 차라도 한 잔…….”

“아니, 괜찮습니다. 금방 끝날 테니.”

나는 그렇게 말하며, 너저분한 사무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러자 자신을 이상우라고 소개한 그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넌지시 운을 뗐다.

“그… 미리 말씀드리는 건데, 실종 건에 대해선 아마 도움이 안 될 겁니다. 저희한테도 아무런 연락 없이 사라지셨거든요.”

“그 부분은 괜찮습니다.”

손사래를 치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섰다.

“그… 주세훈 대표님은 평소에 어떤 분이셨습니까?”

“음, 좋게 말하면 열정적이셨고, 나쁘게 말하면…… 재미는 없는 분이셨죠. 평일에도 일 아니면 운동만 하셨으니까요.”

“직원들과의 관계는 좋았습니까?”

“당연하다마다요. 워낙 솔선수범으로 일을 하시니 직원들도 많이 믿고 따랐죠.”

“그렇군요.”

“보시다시피 저희 회사가 그리 크진 않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굉장히 어려웠죠. 그런데도 직원들 월급 한 번 안 밀리고 챙겨주셨어요. 명절이나 경조사 때는 보너스도 잊지 않으셨고요.”

이상우 팀장은 진심 어린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행히 올해 매출이 오르면서 상황이 조금 나아졌습니다. 엄청난 매출은 아니지만, 새 공장을 신설할 수 있을 정도는 됐죠.”

“아, 그 리조트 부지에…….”

이상우 팀장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맞습니다. 직원들도 굉장히 좋아했고요.”

“…….”

“그런데 계약이 갑자기 엎어지게 되면서 대표님이 굉장히 힘들어하셨습니다. 저희도 어떻게든 도와드리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 어느 날 출근해보니 종이 한 장만 남기신 채 사라지셨습니다.”

“종이요?”

“네. 잠시만요.”

그가 곧장 서랍을 뒤적거리길 잠시.

이내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종이엔 프린트된 글자 몇 개가 적혀 있었다.

“모두 내 책임이다, 회사를 지키지 못한 나는 쓰레기다, 너무 힘들다, 이쯤에서 포기하고 싶다…….”

꽤나 비관적인 내용에 나는 눈썹을 구겼다.

분명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거 경찰에도 보여줬습니까?”

“네, 네. 경찰은 이런 글을 남긴 거로 봐서, 부지를 빼앗긴 것에 회의를 느끼고 잠적하신 것 같다고…….”

그가 말끝을 흐렸다.

나는 그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상우 팀장은, 결코 대표가 모든 걸 내려놓고 스스로 잠적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다.

“실종되신 날짜가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하십니까?”

“네, 저번 달 21일이었습니다.”

“혹시 주변에 대표님과 원한을 가질 만한 분은?”

“전혀요. 말씀드렸다시피 대표님은 주변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있다고 해도 원한을 살 리도 없고요.”

“그럼 모르는 사람이 회사를 찾아오거나 한 적은요?”

“흐음……. ”

그가 턱을 긁적이며 곰곰이 생각해보길 잠시.

“아… 그러고 보니, 있었습니다!”

이윽고 목소리를 높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날이 시위가 있는 날이어서 최소 직원만 남기고 모두가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이었는데, 어떤 남자가 대표님을 찾아왔었습니다.”

“그게 누구였죠?”

“이름을 여쭤봤는데, 대답이 없었습니다. 다만… 차림새가 헌터 같았습니다. 그 왜, 헌터 분들이 작전 나갈 때 입는 옷 말입니다.”

“……!”

“……!”

그의 진술에 나와 이아영 본부장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헌터 유니폼이었다면 오른쪽 어깨에 소속이 붙어 있었을 겁니다. 혹시 기억나십니까?”

“저도 그건 알고 있어서 한번 슬쩍 확인해 봤는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나는 입을 다물었다.

소속을 확인할 수 없는 유니폼.

그런 걸 입고 다닐 수 있는 놈은 딱 한 부류다.

최근 한 달 안에 퇴직한 전직 작전팀 소속의 헌터.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최근 작전팀 퇴사자는 한 명뿐이다.

‘……최종혁.’

그 새끼다.

“설마 그 인간도 조직에 합류한 걸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금 당장 최종혁 헌터 정보 남아 있는지 확인 좀 해주십시오. 주거지, 연락처, 뭐 가지고 있는 건 전부 보내 달라고 해주시고요!”

“네, 네!”

“우린 차로 갑시다. 연락 오는 대로 바로 찾아갈 수 있게…!”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벗어나려던 그때였다.

“광주 남부 경찰서 강력계 민유진 형사입니다. 잠시 시간 좀…….”

“……?”

마침 사무실로 들어오던 한 여성과 마주쳤다.

‘……어, 어?!’

나는 그 여성의 얼굴과 이름을 보자마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당혹감 수준이 아니라 머리가 아득해질 수준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 여성은…….

‘미, 민유진…?!’

회귀 전, 죽일 듯이 싸우고 헤어진 전 여친이었으니까.

‘얘, 얘가 왜 여기에…?’

고향이 포항이라는 건 알았는데, 근무지는 서울 아니었나?

여긴 무슨 볼일인 거지?

그나저나 얘도 이땐 젊었네.

온갖 잡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나는 애써 그것들을 털어내며 진정했다.

그래.

지금 나는 10년 전으로 회귀한 상태다.

이 녀석을 기억하는 건 나 혼자뿐이고, 얘는 나에 대해 모른다.

그러니 당황할 필요도 없…….

“이, 이…….”

그때, 민유진이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고.

“이 개새끼야…!!”

뻐억―!

정확히 내 안면을 향해 주먹을 내리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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