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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팀에서 정보를 받고, 민유진의 차로 함께 이동하던 중.
“그래서?”
한참을 말없이 운전만 하고 있던 그녀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왜 잠수 탄 거야. 그것도 1년 동안.”
“…….”
당연히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애초에 잠수를 타고 자시고, 회귀 후에도 그녀와 관계를 유지 중이었다는 걸 알지도 못했으니까.
“헤어질 거면 최소한 말이라도 하던가. 내가 니 소식을 뉴스에서 들어야겠어?”
“그냥 좀… 바빴어.”
한참을 생각하다가 내놓은 대답은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민유진은 더더욱 알아먹을 수 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너 설마 부담스러워서 그런 거야?”
“……무슨 소리야?”
“내가 헌터 되면 너 평생 먹여 살릴 수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했잖아.”
그 말에 나는 가만히 머리를 긁적였다.
보아하니 내가 기억하는 관계와 꽤나 많이 다른 것 같은데……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
그렇게 잠시 끙끙거리고 있던 끝에, 나는 작은 묘수를 떠올렸다.
“…사실 사고가 있었어.”
“뭐?!”
그 한마디에 민유진의 시선이 곧바로 내게 향했다.
“출근 둘째 날에 던전에 들어갔다가 방독면이 벗겨지면서 가스를 좀 들이마셨는데, 그거 때문에 뇌 신경에 손상이 생겼다더라.”
“저, 정말로?! 지금은 괜찮은 거야?”
“몸에 큰 지장은 없대. 그런데 이전 일 기억을 잘 못 해.”
“……!”
꽤나 충격을 받은 듯, 그녀의 입이 벌어졌다.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연락 못 했어. 핸드폰도 고장 났는데 네 번호도 기억 안 나고, 그동안 있었던 일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그냥…….”
“그냥 그대로 잠수 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멍청한 놈.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뭐 너 아프다 그러면 귀찮아서 버릴 것 같았냐?”
“…….”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긴 한데… 거짓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기억이 잘 안 난다 이거지?”
“어.”
“너 졸업하고 몇 년 동안 취직 안 돼서 내가 많이 도와줬잖아. 그건 기억나?”
“아니…….”
내가 취직이 안 돼서 도와줬다고?
정말 내가 기억하는 거랑 달라도 너무 다르군.
“밥도 맨날 내가 사줬잖아. 근데 뭐… 너는 부담스러워했지. 나한테 빌붙는 것 같다고. 그때마다 헌터 되면 내가 먹여 살릴 테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했는데.”
“……헌터?”
“그것도 기억 안 나? 우리 고등학생 때 같이 헌터 되기로 한 거.”
“아, 그건 기억나.”
그건 똑같았군.
“근데 뭐… 거의 불가능한 꿈이었지. 너는 비능력자고, 나는 언 랭크니까.”
“……아직도 헌터가 되고 싶어?”
“응.”
그녀가 즉답했다.
“그것 때문에 부사관 지원한 거고, 형사도 된 거잖아. 뭐,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잘 안 되네.”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말을 이었다.
“참 나… 그동안 취직 안 돼서 내가 먹여 살리던 놈이 이젠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놈이 됐네. 그러고 보니 네가 카르마 대표잖아? 이젠 너한테 잘 보여야 하나?”
“…….”
의미심장한 그 말에 내 표정이 굳었다.
그리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다시 시작할 생각인 건…….”
“미안.”
또 한 번의 즉답.
“그건 아닌 것 같아.”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처음엔 화도 나고, 배신감도 느끼고, 그러면서도 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아무 감정이 없어.”
“…….”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군.
나에겐 10년도 더 전에 끝난 관계인데, 이제 와서 다시 시작해봤자 좋을 건 없었으니까.
“어쨌든 이렇게라도 이야기는 들었으니 됐어.”
“…그래.”
“그나저나 그건 둘째 치고, 용의자 정보나 더 자세히 말해 봐. 이번에 잘린 이유가 뭐야?”
“최종혁? 잘린 게 아니라 나갔어. 심사 기간 때 사내 이사랑 손을 잡고 작전 본부장을 음해하다가 걸렸거든.”
“아직도 그런 짓을 해…?”
“그러게. 뭐, 아무튼 그 사내 이사의 윗선이 우리가 찾고 있다는 의원이야.”
“찾는 이유는?”
“국제 협회랑 관련이 있는 것 같아서.”
“흐음.”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지원팀에서 보내 준 정보로는… 주거지는 서울인데 한 달 전부터 행방이 확인이 안 된대. 근처에 사는 동료한테 물어보니까 집에 안 들어온 지 좀 됐다던데.”
“한 달 전이면…….”
“주 대표가 실종된 시기랑 겹치지.”
나는 지원팀에서 보낸 문자를 열어 다시금 내용을 확인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울산 어느 편의점에서 신용카드를 쓴 내역이 있어. 위치는… 여기.”
운전대를 잡고 있는 민유진에게 핸드폰을 내밀어 주소를 보여줬다.
그러자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여기 확실해? 여기 근처엔 아무것도 없어. 폐 공장 단지거든.”
“그럼 오히려 다행이네.”
“뭐…?”
“최종혁이 그 의원과 붙어서 헌터 조직에 들어갔다고 하면 단체 생활을 하고 있을 거야. 존재 자체가 불법인 조직이니까 단체로 몸을 숨길 필요가 있겠지. 기숙사나 숙소 같은 곳에서.”
“폐공장…….”
“그래.”
나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거기가 불법 헌터 조직의 은거지야.”
“…어째 네가 나보다 더 형사 같다.”
“칭찬으로 들을게.”
민유진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으며 내가 찍어준 위치를 향해 빠르게 차를 몰았다.
그렇게 또다시 조용해진 차 안.
“혹시 오해할까 봐 말하는 건데…….”
“……?”
“이아영 본부장… 나랑 아무 관계도 아니야.”
내가 조심스레 그 말을 전했다.
그러자 민유진이 피식 헛웃음을 뱉었다.
“글쎄…….”
나를 슬쩍 흘기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던데.”
***
“…….”
“…….”
세훈 화학, 영업팀 사무실.
그곳에 남겨진 이아영 본부장과 이상우 팀장은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는 중이었다.
이상우는 계속해서 이아영 본부장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 보인 까닭이었다.
“…저, 차라도 타 드릴까요?”
“…….”
“탕비실에 과자 있으니까 마음껏 꺼내 드셔도 돼요.”
“…….”
이상우 팀장은 조금이라도 냉랭한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계속 말을 걸었지만, 이아영 본부장은 다른 생각을 하는 듯 전혀 대답이 없었다.
결국, 이상우 팀장은 그 숨 막히는 곳에서 대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렸다.
“아,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계약처 사장님한테 연락드린다는 걸 깜빡했네. 그럼 전 이만 일 하러…….”
“헤어진 전 애인이랑 다시 이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돼요?”
“네, 네…?”
하지만 이아영 본부장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뭐, 뭐…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요.”
“보니까 꽤 오래 사귄 사이 같던데… 설마 이제 와서 다시 잘해볼 생각은 아니겠죠?”
“글쎄요, 저한테 물어보셔도…….”
이상우 팀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아영 본부장도 딱히 대답을 바란 건 아닌 듯, 혼잣말을 이어갔다.
“아니, 그 여자도 그 여자야. 헤어졌으면 끝이지, 뭔 할 말이 있다고 들러붙어? 그것도 모자라서 단둘이 드라이브까지 간다고?!”
“……? 두 분은 그냥 조사하러 가신 거…….”
“아 씨!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 같이 휴가 가자고 해서 기대했더니 뒷조사를 시키질 않나, 꾹 참고 따라왔더니 전 여친을 소개해주질 않나! 이거 내가 화내도 되는 거 맞죠?!”
“…….”
이상우 팀장은 퍽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조사하러 왔으면 조사만 할 것이지, 웬 연애 상담을 하고 있는 건가.
“하아…… 애인이 있었다는 것도 충격이네. 여자한테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아영 본부장이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결국, 보다 못한 이상우 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관심이 있으시면 직접 말씀을 해보시는 것이 어떤지…….”
“…….”
이아영 본부장은 꽤나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더 이상 생각하기 싫은 건지 고개를 털었다.
“됐어요. 일단은 지금 일이나 신경 쓸래요.”
“…….”
이랬다저랬다, 참 피곤한 사람이군.
이상우 팀장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나저나… 직원들도 다 같이 시위를 나갔다고 했죠? 시위 분위기는 어땠어요?”
“두말할 것도 없이 좋았습니다. 시청 쪽에서 GT건설과 강종구 의원을 다시 검토해 보겠다고까지 했고요. 지역 방송국에서도 취재를 나와서 이거 잘하면 정말 되겠구나 싶었는데…….”
이상우 팀장은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모습에 이아영 본부장은 조금 더 조심스레 물었다.
“강종구 의원과 GT건설에선 무슨 입장표명 같은 건 없었나요?”
“네.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직접 찾아가도 봤지만, 만나주지도 않더군요.”
모르쇠로 나오겠다, 이건가.
하긴, 뒤를 봐주는 인간이 그 정도로 대단한 놈이라면 오히려 대응하는 게 이상하겠지.
“그럼… 우린 GT건설이랑 강종구 의원 쪽을 좀 알아봐야겠네요.”
“네?”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잖아요. 헌터 조직을 찾지 못했을 경우도 대비해둬야 하고요. 뭐, 알아볼 수 있는 건 최대한 알아봐야죠.”
이아영 본부장은 그렇게 말하며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하 본부장님. 부탁드릴 게 있어서 전화 드렸는데.”
「엥? 이 본부장님, 휴가 가신 거 아니셨습니까?」
다름 아닌, 하성일 해외사업본부장이었다.
“…말하자면 좀 복잡해요. 아무튼, 혹시 GT건설 쪽에 아는 사람 있나요?”
「저희 누나가 좀 알고 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경쟁사니까요. 그런데 그건 왜요?」
“저희가 지금 포항 리조트 사업 건을 알아보고 있거든요. 원래 해당 부지를 이미 입찰한 사람이 있었는데, GT건설에서 날치기를 했더라고요.”
「그, 그래요?」
“누군가 도와준 게 확실한데… 누구 손을 빌렸는지 좀 알아봐 줄 수 있겠어요?”
「흐음, 쉽지 않을 텐데…….」
“준우 씨도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어요. 부탁할게요.”
「대표님이 직접 나선 일이라면 어쩔 수 없군요.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고마워요.”
감사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은 그 순간이었다.
사무실에 사복 차림의 형사들이 들이닥쳤다.
“포항 남부 경찰서 강력팀에서 나왔습니다. 혹시 이상우 씨 되십니까?”
“마, 맞습니다. 어쩐 일로…….”
“주세훈 대표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확인을 위해 동행해주셨으면 하는데.”
“네, 네…?”
그 말을 들은 이아영 본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어느새 도착한 폐공장 앞.
누군가 살고 있다고 상상도 못 할 만큼 을씨년스러운 그곳에서, 민유진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들어가자.”
“잠깐,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넌 밖에서…….”
말려보려 했지만, 민유진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공장으로 향했다.
넓고 어두운 공간.
꽤 오래전에 가동이 중지된 듯, 완전히 고물이 된 기계들이 즐비했고 곳곳에서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편에 아무렇게나 놓인 침구과 각종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히 누군가 살고 있는 흔적이었다.
그것도 꽤나 많은 인원이.
‘정확히 짚었군.’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 순간.
“뭐야? 니들 누구야!”
어디선가 나타난 한 남자가 우리를 발견하곤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민유진이 신분증을 꺼내 들었다.
“남부 경찰서 강력 2팀 민유진 형사입니다. 주 대표 실종 용의자 조사 중인데, 혹시 최종혁 씨라고 알고 계십니까?”
“…….”
“…알고 있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종혁, 지금 여기 있어?”
“그런 사람 모르겠는데?”
“피곤하게 하지 말고 쉽게 가자. 말 안 하면 그만일 것 같아? 어떻게, 니들부터 싹 잡아 넣어줘?”
“하! 영장 있냐?”
“…….”
오 새끼.
무적기를 쓰네?
잠시 주춤한 그때, 어디 숨어 있었던 건지 남자의 동료들 몇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뭘 했다고 잡아넣네, 마네야!”
“너 시발, 상관 누구야. 강력 2팀이면 고배수 반장인가?”
“요즘 경찰은 선량한 시민을 이렇게 막 체포해도 되나?”
“좋은 말로 할 때 나가세요.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각자가 최대한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위협했다.
나는 그 모습을 천천히 바라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이놈들도 헌터 조직의 일원들이겠지. 물론 혐의가 없어서 체포는 할 수 없겠지만…….
‘일단 쥐어패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조금 손 봐준다고 해도 어차피 신고도 못 할 테고.
그렇게 생각하며 민유진의 어깨를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뒤로 빠져 있어. 내가 해결할…….”
그리고 그 순간.
뻐억―!
“……?”
눈앞에 있던 남자의 턱이 돌아갔다.
“하여간 말로 해서 듣는 새끼가 없어.”
민유진은 대놓고 코웃음을 치며 어깨를 풀었다.
나는 그 모습에 너무 놀란 나머지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지, 지금 무슨…….’
그도 그럴 게 그녀는 민간인이나 다름이 없는 언 랭크이지 않은가.
근데 전직 헌터 출신의 범죄조직원을 맨손으로 한 방에 눕혔다고?
“열 셀 동안 말해. 앞으로 밥 먹을 때 턱받이 차기 싫으면.”
“…….”
“…….”
민유진의 눈빛이 번뜩였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