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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 위치한 어느 오래된 성당 건물.
본당은 꽤나 오래전에 다른 곳으로 이전한 듯, 낡은 건물만 남은 그곳으로 한 여성이 발을 들여놓았다.
“뭐야. 누구야?”
그와 동시에 성당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십수 명의 남자들이 그녀를 맞이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막 들어와?”
“길 잃은 거 아니야?”
“오늘 미사 없습니다. 돌아가십쇼.”
남자들은 씨알도 안 먹힐 말로 여성을 내보려고 했다.
하지만 여성은 가볍게 무시하며 첫마디를 뱉었다.
“당신들 팀장, 지금 어디 있어요?”
“……?”
“너 뭐야?”
“경찰이야?!”
남자들은 그 한마디에 갑자기 돌변하며 여성을 둘러쌌다.
인상을 팍 쓰며 되지도 않는 위협을 했지만, 여성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들을 흘겨볼 뿐이었다.
“…잠깐. 낯이 좀 익은데?”
그리고 그때.
“이 여자, 작전 본부장 아니야?”
한 남자가 뒤늦게 여성의 정체를 알아봤다.
“무슨 소리야?”
“카르마 작전 본부장이잖아, 병신아. 김민주!”
“어…? 진짜네?”
남자들은 예상치 못한 손님의 정체에 꽤나 놀란 듯했다.
하지만 금세 본인들의 상관이 아니라는 걸 어필하는 듯 이름으로 그녀를 불러댔지만, 여성은 오히려 반색하는 표정이었다.
자신을 알아봤다는 건 오히려 본인들의 정체를 알려준 셈이었으니까.
‘…제대로 찾아왔네.’
김민주는 그렇게 생각하며 남자들을 훑었다.
15명쯤 되는 인원.
하지만 그중에 팀장은 없다. 여기 있는 놈들은 끽해야 C, D급이었다.
‘여기서 더 기다려야 하나…?’
물론 이곳에 있는 놈들이 그걸 순순히 허락해줄 리는 없겠지만.
“설마 우릴 잡으러 온 건가?”
“우리를 어떻게 알고?”
“다른 팀에서 꼬리 잡힌 거 아니야?”
“에이, 그럴 리가.”
이내 그들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된 듯, 저들끼리 떠들어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뭐… 잘됐네.”
“얼마나 실력이 좋길래 B급에서 1년 만에 그 자리까지 갔나 싶었는데.”
“예전부터 계급장 떼고 한번 붙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오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망설임 없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김민주는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게 무슨 휴가야…….’
꽤나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놀러 간 게 아니라, 정말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도 정상적인 건 아니다만…….
이러나저러나, 한유빈의 혜안이 감탄스러웠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우린 이미 헌터 자격 박탈된 놈들입니다.”
“잃을 게 없는 놈들 상대로 괜찮을까 몰라.”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여기 들어온 이상 살아서는 못 나가십니다, 작전 본부장님.”
“재수도 없으시지, 하필 우리 팀을…….”
“진짜 말 많네.”
김민주가 그들의 말을 끊으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이내.
“싸울 거면 닥치고 덤비세요.”
그녀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 순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조금 전의 부드러운 인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마치 전설 속의 신장(神將)을 마주한 느낌이다.
압도적인 무언가가 느껴진 것인지 남자들은 순간 주춤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하!”
“이게 진짜…!”
남자들은 전투태세를 갖추자마자 달려들었다.
김민주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호흡했다.
이윽고 시퍼런 검들이 무차별적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고유 스킬 : 이도류 - 공개처형]
[고유 스킬 : 귀검유희(鬼劍遊戱)]
[고유 스킬 : 접신 - 요하네스 리히테나워]
스슥―!
스스스슥―!!
하지만.
[고유 스킬 : 천수관음 - 각성]
[육관음중오(六觀音中五)]
[제5격 - 준세관음]
캉―.
카가가강―!
김민주는 최소한의 동작으로 그 모든 검격을 막아냈다.
“뭐, 뭐야…?”
“마, 말도 안 돼…….”
그 한 번의 합에 남자들은 크게 당황했다.
마치 모든 공격이 자동으로 그녀의 검에 달라붙는 듯한 느낌.
여태껏 경험해본 적이 없던 상황이었다.
“설마 전부 검사 클래스일 줄이야.”
김민주도 퍽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흔한 클래스이긴 해도, 설마하니 한 팀 전체가 검사라니.
‘다른 클래스는 어두운 쪽에서 일하기엔 눈에 띄고 흔적도 많이 남아서 그런가.’
하긴, 검사라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뭐, 뭐야. 낙하산 아니었어…?”
“우연이야 새끼야. 설마 이걸 다 막는 게 말이 돼?”
“이번에는 제대로 간다!”
이윽고 남자들은 다시 한번 검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다는 걸,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의 실책은 하나였다.
바로 헌터를 그만둔 지 꽤 시간이 지났다는 것.
그야 현직 헌터라면 절대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최근 그녀가 국내 최초 S랭크, 국내 랭킹 1위로 승급했다는 사실을.
“후우…….”
[고유 스킬 : 천수관음 - 각성]
[육관음중일(六觀音中一)]
이윽고 김민주의 눈이 푸른빛으로 번뜩이길 한 차례.
[제1격 - 성관음(聖觀音)]
슥, 스윽―.
두 번의 고요하고 날카로운 검격이 허공을 갈랐다.
***
대전광역시, 버려진 목욕탕 건물.
온몸에 문신이 있는 이들이 물도 없는 욕탕에서 한창 식사 중이었다.
쾅―!
그때, 누군가 손으로 열 생각 따윈 없다는 듯 그대로 문을 걷어차며 들이닥쳤다.
“뭐, 뭐야!”
“시발, 누구야!”
그곳에 있던 이들은 때아닌 불청객의 등장에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지만 그 불청객은 그들에겐 관심도 없는 듯했다.
“웬일로 휴가 준대서 수영복까지 챙겨왔는데…… 이게 뭐야.”
왜인지 기분이 무척이나 언짢아 보이는 불청객은 계속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대체 어떻게 돼먹은 회사길래, 요즘 시대에 강제로 개인 연차 써서 일을 시켜? 그래 안 그래?!”
“…….”
“…….”
남자들은 다짜고짜 알 수 없는 이유로 화를 내는 그녀를 바라보며 벙찐 표정을 지었다.
“아, 몰라. 마음대로 패줘도 상관없다고 했으니까, 이번만 그냥 넘어가 준다.”
다음에도 이러면 얄짤 없이 노동청에 신고할 거다.
한유빈은 진심으로 그렇게 다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사태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패줘?”
“누굴? 설마 우리를?”
“꼬맹아, 좋은 말로 할 때…….”
“아가리 닥치고.”
한유빈은 그들의 말을 끊으며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현재 단 1분도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빨리 일을 끝내면 최소한 하루는 진짜 휴가를 보낼 수도 있을 테니까.
때문에 누구처럼 팀장의 소재를 파악하고 상대의 정보를 수집, 전략을 세우는 과정 따윈 쿨하게 생략했다.
뭐, 애당초 그녀에겐 필요 없는 일이긴 했지만.
“한꺼번에 덤벼.”
이윽고 그녀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고유 스킬 : 하이패닉 버서커]
피로 물든 기류가 터져 나오며 공간 전체를 물들였다.
***
“의, 의원님!”
국회의사당, 미래민주당 정훈 의원 집무실.
정훈 의원의 보좌관이 그곳에 들어서며 다급하게 그를 찾았다.
“뭐야? 왜 그래.”
정훈 의원이 눈썹을 치켜뜨며 묻자, 보좌관은 주변을 살피곤 목소리를 팍 낮추며 입을 열었다.
“지금… 각 지역 팀이 동시다발적으로 습격당하고 있답니다.”
“……뭐?”
“아무래도 김준우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모양입니다.”
“쯧, 결국 이렇게 나오는 건가.”
정훈 의원은 혀를 차며 표정을 구겼다.
하지만 아직까진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어차피 여기까진 예상한 일이니까.
당장 본인의 명백한 혐의가 드러난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아직까진 카르마 코퍼레이션과는 관련 없는 일들뿐이다.
당연히 그들 또한 공식적으로 전력을 움직일 수는 없겠지.
‘그래봤자 최측근 몇 명만 가세하고 있는 것 같은데…….’
물론 그렇다고 해도 하나하나가 괴물급 전력이다.
팀장급들이라면 몰라도 밑에 놈들이 그들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애초에 그런 것 따윈 기대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쓰다 버리는 말들이 아닌가.
그냥 말만 잘 듣도록 훈련만 잘돼 있으면 그만이다.
잔챙이들은 애초에 본인의 윗선이 누군지 모르고, 팀장급들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이름을 불지 않을 것이다.
제아무리 조직을 소탕한다고 해도 그들의 우두머리가 본인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는 없다.
‘최종혁, 그 새끼만 닥치고 있었으면…….’
정훈 의원은 아쉬운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뭐, 너무 걱정하진 마. 그보다 강 의원 건은 어떻게 됐나?”
“잘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있던 경찰이 휘말렸다고 합니다.”
“경찰?”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법 헌터 조직 건을 조사하고 있었다나 봅니다. 이건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경찰이 휘말리는 바람에 자칫하면 일이 커질 수도…….”
“그럴 리는 없어.”
“예?”
정훈 의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알잖나. 그쪽 서장, 나한테 꼼짝 못하는 거. 출셋길이 걸린 이상, 절대 일 크게 못…….”
그때였다.
- 속보입니다.
TV에서 난데없이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포항에서 한 달 전에 실종됐던 세훈 화학 대표, 주세훈 씨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발견 당시 상황이나 정황으로 보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
정훈 의원이 그것 보라는 듯, 보좌관을 향해 턱짓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 부검 결과, 이능흔을 발견. 이능력자에 의한 타살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경찰이 재조사에 착수했습니다.
“……?”
예상치 못한 내용에 정훈 의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한편, 주세훈 대표와 부지 입찰 건으로 마찰이 있었던 GT건설과 강종구 의원 또한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더욱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맡은 민유진 형사는 정치권과 기업 그리고 불법 헌터 조직 간의 유착 관계에서 비롯된 사건으로 보고 있다며 못을 박았습니다.
“무, 무슨…….”
점점 이상하게 흘러가는 뉴스에 정훈 의원이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 또한, 사건 관할인 포항 남부경찰서는 세 세력 간에 어떤 거래가 오갔는지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밝히며, 특수본부를 꾸려 대대적인 수사에…….
“이런 시발!!”
쾅―!
아나운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정훈 의원은 테이블을 내리쳤다.
“대체 뭐 하자는 거야! 내가 분명 수사 종료하라고 했잖아!”
“제, 제가 확인했을 땐 실제로 관할 내에서 수사가 종료됐습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수사를 재개하는 건데!”
고함을 지르는 정훈 의원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건 절대 지선웅이 독자적으로 내린 지시가 아니다.
그의 성격상 혼자 이런 대담한 선택을 할 리가 없다.
누군가가…… 어떤 빌어먹을 누군가가 그를 설득한 것이다.
‘김준우, 이 개새끼가…….’
대체 뭘 어떻게 설득했길래, 출셋길까지 포기하게 만든 건가.
이내 정훈 의원의 주먹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이건 위험하다.
물론 강종구 의원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한 혐의를 입증할 순 없겠지만, 그것도 결국 시간문제다.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되면 언젠간 꼬리를 밟힐지도 모른다.
‘시발, 어떻게 해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하고 있던 그때, 정훈 의원은 결국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저장조차 되지 않은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미스터 정. 일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국제 협회 웨슬리 사무총장.
그에게 있어 마지막 보루나 다름없는 선택이었다.
“그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요?」
“김준우와 함께 경찰이 대대적으로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
“당장 위험한 건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꼬리가 밟힐 수도 있습니다. 혹시 도와주실 수 있는지…….”
정훈 의원이 말끝을 흐리자, 웨슬리 사무총장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내 친구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