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224
서울 외곽, 공사가 중단된 어느 건설부지.
정훈 의원은 초조한 얼굴로 팀장들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곳은 벌써 몇 년째 방치된 탓에 꽤나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곳이었다. 주위 풍경 또한 퍽 흉물스럽기 그지없었다.
술을 마시러 몰래 침입하는 고등학생들을 제외하면 누구도 접근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에 이곳을 합류 장소로 정한 것인데…….
‘왜 안 오는 거야…….’
어째선지 시간이 지나도 팀장들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김준우에게 세이프 하우스가 들켰다고 연락 온 게 벌써 30분 전이다.
아무리 늦는다고 해도 충분히 오고도 남았을 시간이지 않은가.
설마 경찰에 잡히기라도 한 건가…?
아니, 그럴 리는 없다.
굳이 김준우가 직접 행차했다는 건 그들에게 볼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목적인지는 몰라도, 그가 바로 경찰을 부를 리는 없다.
‘그렇다면 대체 왜…….’
정훈 의원은 초조한 마음에 손톱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때.
“오는 거 맞습니까?”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오, 올 겁니다.”
“30분이나 지났잖아요. 한번 연락이라도 해보시죠.”
그 남자의 말에 정훈 의원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팀장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돌렸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 누구도 받지 않았다.
“쯧, 뭔 일이 생기긴 한 모양이네요.”
남자가 혀를 차며 말했다.
동시에 정훈 의원은 그의 눈치를 살폈다.
남자의 이름은 황동휘.
현 PB 코퍼레이션 밸런스 조정팀 소속으로 일본 파트장을 맡고 있었다.
웨슬리 사무총장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는 꼬리를 자를 수 있도록 적임자를 보내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파견된 자가 바로 저 남자였다.
주워 쓰던 개들을 한꺼번에 처리해줄 적임자.
물론 황동휘 파트장은 이전 한국에서 도망치면서 다신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을 거라 다짐했지만, 상부의 명령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설마 김준우랑 충돌한 건… 아니겠지요.”
정훈 의원은 한참 어린 그에게 존대하며 물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입니다. 어차피 죽을 놈들이지 않습니까.”
“…….”
황동휘 파트장의 말이 꽤나 무서웠던 건지, 정훈 의원은 애써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
누가 죽이든, 결과만 같다면 상관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시발, 불안한데…….’
정훈 의원은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자꾸만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실루엣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 박 팀장?”
다름 아닌 수원 지역 팀장, 박정우였다.
정훈 의원은 한 번에 알아보곤 곧바로 그에게 다가갔다.
“왜 이제야 오는 거야! 아니 그것보다… 왜 혼자 와? 다른 놈들은?”
“의, 의원님…….”
그때, 박 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뭐…?”
알 수 없는 사과를 내뱉은 그 순간.
“오랜만입니다. 정 의원님.”
“……!”
“……!”
정훈 의원도, 황동휘 파트장도 오랫동안 잊고 지낸 남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대표이자, 현 대한민국 토벌의 총 책임자.
그리고 국제 협회로부터 전 세계 헌터 관리 권한을 빼앗아간 남자.
김준우였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황동휘 파트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곤 순간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도 잠시.
“……간만에 보는 얼굴이 있네.”
“…….”
두 남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날 잡으러 온 건가…?”
정훈 의원이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김준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유감스럽게도 아직 혐의 입증이 안 됐습니다. 뭐, 조만간이긴 하겠지만. 아무튼, 그런 이유로 온 건 아닙니다.”
“그럼…?”
“제안을 하나 드릴까 해서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갑자기 제안이라니…….”
“포항에 있는 탐지 시설, 정 의원님 계획대로 이전할 생각입니다.”
“……!”
그 순간, 정훈 의원의 눈이 커졌다.
“그, 그걸 어떻게…….”
“설마 제가 목적도 모르고 의원님을 잡으려고 했겠습니까.”
김준우가 미소를 짓자, 이내 정훈 의원의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의원님이 국제 협회에서 받은 지령, 제가 들어드리겠다는 겁니다. 그럼 국제 협회와의 관계도 유지할 수 있겠죠. 여기서 추하게 잡혀가시는 것보단 그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모, 목적이 뭔가……?”
정훈 의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가 이런 제안을 할 이유가 없다.
만약 목적이 있다면, 분명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속셈이 있을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김준우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리고 그 순간.
[습득 스킬 : 소환 - 수어사이드 구울]
콰과광―!!!
강력한 폭발이 김준우에게 직격했다.
“파, 파트장님?!”
정훈 의원이 놀란 표정으로 황동휘 파트장을 바라봤다.
줄곧 잠자코 있던 그가 난데없이 김준우를 공격했으니까.
“듣지 마십쇼.”
이내 그가 전투태세를 갖추며 말했다.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 겁니다. 그리고 뭐가 됐든,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당신은 저희한테 죽습니다. 그러니 아예 처음부터 듣지 마시고…!”
“역시 황 대리, 눈치는 빠르네.”
저벅―.
머지않아, 피어오른 연기 속에서 김준우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유롭게 걸어 나왔다.
“알았다고 해도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멋대로 끼어들면 안 되지.”
“무슨 수작인지는 몰라도 당신 마음대로는 안될 겁니다.”
“방해하려고?”
“네.”
“하하하!”
이내 김준우가 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 그러다 죽어.”
[고유 스킬 : 마왕]
그리고 다시 한번, 그의 모습이 바뀌었다.
***
내 앞을 가로막은 남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황동휘 대리.
전 이능차원관리 협회 통제팀 소속이자, PB 코퍼레이션 밸런스 조정팀 한국 파트장.
최호성 본부장을 살해한 범인이자, 양민호와 함께 나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놈.
당연히 회귀 전 나는 그가 스파이인지도, 이능력자인지도 눈치채지 못했었다.
아마 나에 대한 정보를 팔아넘긴 게 저놈이겠지.
당장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놈이지만…….
‘어째 요즘 따라 영 귀찮네…….’
회귀한 지 1년이나 지나서 그런가.
요즘엔 복수니, 뭐니 하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그보단 어떻게 하면 국제 협회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뿐.
뭐, 하지만.
[고유스킬 : 마왕 - 독재자]
쿠구구구구―.
그렇다고 굳이 살려둘 필요도 없겠지.
“무엇보다 둘이 이야기하는 데 방해되고.”
[시전자의 상념에 따라 일회용 스킬을 제작합니다.]
[스킬 제작 중.]
[스킬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홀리 피스트]
파앙―!!
주먹을 내지르는 순간, 엄청난 충격이 그의 복부를 관통했다.
“…쿨럭!”
이내 그의 상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방금 공격으로 배에 머리통만 한 구멍이 났는데…….
[고유 스킬 : 이터널 리턴]
스스스슥―.
살이 꿈틀거리며 곧바로 그 구멍이 메워졌다.
“후우…….”
다시 숨이 돌아온 그가 깊게 호흡했다.
“별 해괴망측한 꼴을 다 보네.”
꽤나 징그러운 모습에 나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하지만 속으로는 꽤나 주춤하고 있었다.
네크로맨서.
대개는 사령이나 구울을 소환하는 클래스지만, 본인을 죽음에서 불러올 수 있는 고유 클래스.
언다잉.
“PB 코퍼레이션이 물갈이를 했는데도, 왜 제가 살아 있는지 아십니까?”
황동휘 파트장이 입을 열었다.
“절 죽일 수 없어서입니다.”
“…….”
“그런데, 당신이 절 죽이겠다고요?”
참 나.
내 살다 살다 저런 스킬을 다 보네.
기가 찬 얼굴로 헛웃음을 터트린 순간.
[고유 스킬 : 이터널 리턴]
[소환 - 데스 엔젤]
카가가가각―!
허공으로 거대한 낫을 든 사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
불사 클래스에 사신 소환까지?
‘이 정도면 네크로맨서 클래스 중에선 최상위 랭크겠군.’
내심 감탄하고 있던 사이.
서걱―.
사신이 붉은 눈을 번뜩이며 낫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공사 중이었던 건물이 반듯하게 잘려 나갔다.
“……!”
그 공격에 난 속으로 당혹했다.
생각보다 꽤 강력한 공격인 탓도 있지만, 그보단 막지 않은 낫이 어째선지 내 몸을 그냥 통과한 까닭이었다.
“역시…….”
그때, 황동휘 파트장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반응을 보고 나서야 왜 공격이 통하지 않은 건지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저놈의 능력이…… 내 능력이랑 근본적으로 같은 힘이라는 것을.
‘상성이 좋지 않네.’
나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저놈은 나를 죽일 수 없다.
하지만 그 말은 곧, 나 또한 저놈을 죽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로 죽일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이건 오히려 나한테 불리하다.
나는 어떻게든 정훈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녀석을 처리해야 하지만, 저놈은 정훈 의원이 도망칠 수 있도록 시간만 끌면 그만이니까.
‘어떻게 해야 한담…….’
잠시 머리를 굴리고 있던 그 순간.
[고유 스킬 : 이터널 리턴]
[소환 - 데스 엔젤]
[데스 페널티]
스스스슥―!
사신의 낫이 숨 쉴 틈 없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내가 아닌, 내가 딛고 있는 바닥을 향해서.
‘떨어트려 죽이겠다 이건가?’
타다닷―!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며 무너져내리는 바닥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놈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빌어먹을…….’
이를 으득 씹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만난 상대 중에서 제일 까다로울지도 모른다.
조금씩 무너지는 건물에서 이리저리 몸을 피하고 있던 그때, 혼란스러운 틈을 타 도망가고 있는 정훈 의원이 보였다.
젠장, 여기서 놓치면 다 끝장이다.
‘하아…….’
어쩔 수 없지.
이내 제자리에 멈춰 서선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황동휘 파트장이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포기한 겁니까?”
“응.”
인정해야 한다.
나는 저놈을 못 이긴다.
그러니.
“이아영 씨, 준비한 거 꺼내시죠.”
다른 방법을 써야지.
「알았어요.」
이윽고 무전기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피융―!
“……!”
이내 어디선가 날아든 총알이 그의 어깨에 정확히 박혔다.
하지만 황동휘 파트장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기껏 생각해 낸 게 저격입니까?”
“…….”
“천하의 김준우도 한물갔네요. 타이탄을 가져와도 날 죽일 수는 없…!”
그리고 그 순간.
“커억…!”
그가 피를 토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난 천천히 당황한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곧바로 다시 사신을 소환하려고 했지만…….
“뭐, 뭐야…?”
생각대로 스킬이 발동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너희들이 선물해줬잖아.”
녀석의 의문에 답하며 주머니에서 은회색 작은 총알을 하나 꺼내 보였다.
익숙한 물건을 본 황동휘 파트장의 동공이 커졌다.
“서, 설마 반능석…?”
“너희도 가공해서 쓰는데 우리라고 못 할 거 있나?”
그의 얼굴에 총알을 던졌다.
“마, 말도 안 돼……. 당신들이 뱅크 아이템을 가공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을 리가…!”
“영광인 줄 알아. 우리 이클립스 총 책임자님께서 심혈을 기울인 물건이니까.”
“이, 이건 반칙…!”
“지랄하고 있네, 실전에 반칙이 어디 있어?”
[고유스킬 : 마왕 - 독재자]
[시전자의 상념에 따라 일회용 스킬을 제작합니다.]
나는 손가락을 그의 이마에 가져다 댔고.
[스킬 제작 중]
[스킬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원샷 원킬]
파앙―!
작은 총성과 함께 황동휘 파트장이 바닥에 고꾸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