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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코퍼레이션 본사, 대표이사실.
“예, 김준웁니다. 다름이 아니라 일전에 말씀드렸던 신설팀 말입니다. 어떻게, 생각을 좀 해보셨습니까?”
나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통화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정훈 의원처럼 아직 남아 있는 국제 협회의 연결책들을 찾기 위한 팀.
그 새로운 조직을 꾸리기 위해선 이곳저곳의 허가가 필요했다.
원치 않게도 휴가 마지막 날까지 온갖 곳에 전화를 돌려야 했다.
이윽고 대한민국 최고 결정권자에게까지 연락하게 됐다.
「보내주신 기획서는 검토해봤습니다. 뭐… 대표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응당 필요한 것일 테니, 장관들을 어떻게든 설득해볼 수는 있겠지만…….」
조현민 대통령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다른 건 둘째 치더라도, 해당 팀을 관리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거야 제가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대표님이 직접 관리하시겠다고요? 정훈 의원이 그렇게 잡혀가는 거 보고도 그런 말씀이 나오십니까?」
“…….”
의외로 꽤나 강경한 입장이었다.
「아시겠지만, 대표님이 만들려는 팀은 명백히 불법입니다. 치외법권을 주었다는 게 세간에 알려지면 정말 걷잡을 수 없을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하려는 거고요.”
「그렇다면 더욱이 카르마 코퍼레이션과는 분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움직일 수 있는 관리자를 구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뭐, 그쪽 업계 사람이면 더 좋고요.」
“그게 뭐 제가 구하고 싶다고 구해지겠습니까.”
「제 역할은 허가를 내주는 것뿐이지, 그 이상은 대표님께서 직접 하셔야 합니다. 아무튼, 직접 관리하는 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귀찮게 됐다.
애써 한숨을 참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팀원은 어디서 구하실 예정입니까?」
“딱 좋은 곳이 있지 않습니까.”
「역시 거기서 직접 데려가시려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그쪽 기관에 연락을 넣어두겠습니다. 그쪽에서도 허가가 나면 한번 찾아가 보시지요.」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전하며 통화를 종료했다.
이걸로 준비는 다 됐다.
나머진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겠지.
“하아…….”
아침부터 여기저기 전화를 하느라 기가 다 빠진 탓에 나도 모르게 힘이 스르륵 풀렸다.
그렇게 잠시 의자에 반쯤 누워 멍을 때리고 있던 그때.
“오늘 휴가 마지막 날인데 놀러 좀 가죠?”
한유빈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며 목소리를 높였다.
…쉴 시간도 안 주는구먼.
“설마 휴가 끝날 때까지 일만 시킬 생각은 아니죠? 그럼 저 진짜 노동청에 신고할 거예요.”
“…누가 보면 그쪽만 일 시킨 줄 알겠습니다. 저도 일 하고 있는 거 안 보입니까.”
“뭔 일이야. 멍 때리고 있었으면서.”
“…….”
미친 건가?
“놀러 갈 거면 혼자 가면 되지, 굳이 같이 갈 필요가 있습니까?”
“다 같이 쉬는 날이 언제 또 있겠어요.”
“같이 놀 사람이 우리 말곤 없습니까?”
“…….”
어째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이다.
그러더니 도끼눈을 뜨며 나를 노려본다.
“치, 친구 없는 건 피차일반 아닌가?”
“전 친구 많습니다.”
“친구 누구? 이름 대봐요.”
“…….”
휴가 마지막 날에 열 받게 하네, 진짜.
“아무튼, 전 됐습니다. 피곤하기도 하고.”
“피곤하면 집에서 쉬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대?”
“남이사 어디서 쉬든 무슨 상관입니까?”
왜 자꾸 신경을 건드리는 걸까.
그렇게 서로 묘한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자.
“전 좋아요. 우리 회사 워크샵도 안 가는데, 이럴 때라도 놀아야죠.”
밖에까지 다 들린 모양인지, 이아영 본부장이 사무실로 들어오며 거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유빈이 물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우리 워크샵은 왜 안 가는 거예요?”
“왜겠어요? 누가 쓸데없이 시간 버리기 싫다고 못 박아서 그렇지.”
“…….”
이아영의 시선이 슬쩍 나에게 향했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회귀 전에도 그런 건 딱 질색이었다.
말이 워크샵이지, 결국 가서 하는 건 똑같지 않은가.
그럴 바엔 집에서 잠이나 자는 게 낫다는 주의였다.
하지만… 두 여자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아무튼, 어떻게 사람이 일만 해요. 바람도 좀 쐬고 그래야지.”
“그러니까요!”
나는 옅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저 오늘 연락 올 데 있어서 안 됩니다.”
“어디서요?”
“저번에 말했잖습니까. 팀 하나 꾸릴 생각이라고. 이래저래 허가를 좀 받아야 하는데, 오늘까지 결정해서 연락 준다고 했습니다.”
“어디에 뭘 부탁했길래 허가까지 받아요?”
“…그런 게 있습니다.”
이아영 본부장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도 잠시.
“그래도 안 돼요. 휴가 기간 동안 우리 멋대로 굴려 먹었으니까, 오늘은 당신이 양보해요.”
“…….”
씨알도 안 먹히는군.
“장소는 정해 놓고 놀러 가자는 겁니까?”
“그러네요. 벌써 점심시간이니까 멀리 가긴 좀 그렇고…….”
“요 앞에 복합쇼핑센터 생겼던데, 거긴 어때요?”
미리 생각해둔 듯, 한유빈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이아영 본부장도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괜찮겠네요. 쇼핑도 하고 밥도 먹고.”
“…….”
그냥 자기들 놀려고 나 끌고 가겠다는 소리 같은데.
“오케이. 정해졌으면 지금 당장 나가요.”
“뭐해요. 일어나요!”
“…….”
아주 둘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네.
‘쯧…….’
버틴다고 순순히 물러설 것 같지도 않고.
어쩔 수 없지 뭐.
그렇게 두 사람의 등쌀에 떠밀려 자리에서 일어나던 그때였다.
“저…….”
역시나 밖에서 소란을 들은 건지, 김민주가 조심스레 사무실 문을 열며 들어왔다.
“저, 저도 데려가면 안 돼요…?”
“…….”
“…….”
저런 녀석이 작전 본부장이라는 게 유머네.
***
“와… 진짜예요, 그거?”
“그렇다니까요?”
“미쳤네, 미쳤어. 그걸 어떻게 참았대.”
그렇게 억지로 끌려온 쇼핑몰.
점심을 먹고 본격적인 쇼핑에 나선 세 여자는 한참을 앞서 걸으며 수다 삼매경이었다.
‘이럴 거면 왜 데려온 거야.’
나는 굉장히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들을 뒤따라 걸었다.
그런 내 손에는 쇼핑백이 잔뜩 들려 있었다.
회사 대표를 지들 짐꾼으로 쓰다니…….
이게 지금 말이 되는 상황인가?
‘옛날 같았으면 그냥 싹 다 해고인데.’
유감스럽게도 지금 나에겐 그 정도의 힘은 없다.
애초에 저것들… 죄다 각 부서 최고 책임자들이라 자르면 나만 손해고.
차마 밖으로 드러내진 못하고, 속으로만 투덜거리며 뒤를 따랐다.
툭―.
그때, 어느 커플이 바닥에 대놓고 쓰레기를 던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것도 매장 바닥을 쓸고 있는 청소 여사님 바로 옆으로.
“…손님.”
이내 중년의 청소 여사님이 커플을 향해 입을 열었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우리가 왜요?”
어이가 털리는 대답이 우리 귓가를 때리는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걸음이 동시에 우뚝 멈췄다.
“지금 우리보고 다시 주우라는 건 아니죠?”
“어차피 지금 청소하고 있잖아. 아줌마, 괜히 시비 걸지 말고 청소나 하세요.”
“…….”
그 커플은 적반하장으로 나오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락부락한 덩치의 남자는 청소 여사님에게 바짝 다가가며 위협을 했고, 여자는 그런 상황을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기도 잠시.
‘됐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괜히 사소한 일에 끼어들 거 없었다.
애초에 우리와 관련된 일도 아니고.
그렇게 무시하며 그냥 지나가려고 했지만.
“야!”
불길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아 제발…….’
간절히 빌며 고개를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한유빈이 그새를 못 참고 커플들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쓰레기 줍고 사과드려.”
“야? 지금 우리한테 한 말이야?”
“가던 길 가세요, 끼어들지 말고.”
커플은 뻔뻔하게 받아쳤다.
그러자 한유빈의 눈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이내 소란을 감지한 듯, 주변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유빈은 주위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커플을 노려봤다.
“당장 안 주우면… 너희 큰일 난다?”
“참 나! 너 지금 내가 누군지 알고…!”
“하하, 죄송합니다.”
일이 커질 것을 느낀 나는 곧바로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곤 서둘러 그녀를 멀찌감치 끌어냈다.
하지만 한유빈은 귀찮다는 듯 내 손을 뿌리치며 툭 쏘아댔다.
“뭐야, 왜 말려요?”
“쉬러 온 거 아닙니까? 놀러 와서까지 싸울 이유가 없잖습니까.”
“그렇다고 저런 싸가지 없는 새끼들을 그냥 내버려둬요?!”
“안 내버려두면 뭐 어쩌려고요. 일반인을 패기라도 할 겁니까?”
“…….”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닙니다. 에휴, 이렇게 사회성이 부족해서야…….”
그제야 한유빈은 혀를 차며 감정을 식혔다.
커플도 주위의 시선 때문인지 어느새 사라진 뒤였다.
상대가 없어진 이상 더는 소란 피울 이유는 없었다.
한유빈은 답 없는 커플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대신 주워 여사님이 들고 있던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고마워요.”
“…….”
감사 인사를 받자, 그녀는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이더니 이내 획 등을 돌렸다.
“뭐, 뭐해요? 빨리 가요.”
이아영 본부장과 김민주는 어색해하는 한유빈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아, 전 잠시 화장실 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손을 들며 말했다.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답 없는 커플 쪽 남자와 다시 마주쳤다. 그는 손을 씻고 있었다.
“손은 씻네요.”
“뭐야…?”
“깨끗한 게 좋긴 한가 봅니다.”
남자가 인상을 구기며 나를 향해 돌아섰다.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 같았으면 신경도 안 썼을 겁니다. 뭐, 따지고 보면 당신이랑 다를 게 없기도 했고. 그런데 고작 1년 있었다고 화가 나는 걸 보면…….”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도 청소부긴 한가 봅니다.”
그는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뭐, 못 알아먹어도 상관없다.
이건 그냥 과거의 내게 하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언젠가는 당신이 한 행동은 반드시 돌려받을 겁니다. 그러니 가서 정중하게 사과하시죠.”
“싫은데?”
“…….”
“근데 시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놈이고 저놈이고 아까부터 자꾸 지랄들이야?”
그가 핏대를 세우며 나를 노려봤다.
그리곤 갑자기 소매를 걷는다.
그와 함께 드러난 양팔의 문신.
그 순간, 오늘 아침에 조현민 대통령이 내게 조언했던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쳤다.
“너 내가 누군지는 알고 시비 거는 거냐? 시발, 내가 전화 한번 돌려봐?! 어디서 X도 아닌 새끼가 자꾸…!”
그리고 그때.
쿠구구구궁―!
갑자기 건물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화장실을 뛰쳐나왔다.
“꺄아아아악!!
“뭐, 뭐야! 무슨 일이야!”
“누가 빨리 신고 좀 해 봐!!”
아수라장이 된 쇼핑몰.
나는 단번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있었다.
던전이다.
지금 이곳에 던전이 출현한 것이다.
“어떻게 된 겁니까?”
“바, 방금 건물 내부에서 던전이 출현한 것 같아요!”
“그건 알고 있습니다. 위치는요?”
“아직 거기까진 파악이…….”
이아영 본부장이 말끝을 흐리길 한 차례.
“다만 출현 시 충격 강도로 봐선 블루에서 그린 등급 같아요.”
“다행히 그리 높진 않군요. 작전팀은 호출했어?”
“지금 연락 돌리고 있는데, 모든 팀이 파견 상태라 오는 데 두 시간은 걸릴 거예요.”
김민주가 대답했다.
블루에서 그린 등급이라면 그리 위험한 던전은 아니다.
두 시간 정도 기다리는 거야 크게 상관없지만…… 위치가 좋지 않다.
밖에 출현한 거라면 몰라도, 건물 내부에 출현한 거라면 붕괴 위험이 있다.
기다릴 시간이 없다.
우리끼리라도 토벌해야 한다.
“이아영 씨.”
“네?”
“지금 당장 건물 관리실로 가서 매장 CCTV로 던전 위치 좀 파악해주세요. 한유빈 씨는 시민 대피시켜주시고…….”
나는 이내 김민주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넌 나랑 같이 진입한다.”
“알겠어요.”
“자, 잠깐만요!”
그렇게 역할을 분담하고 움직이려던 차에 한유빈이 제동을 걸었다.
“건물이 너무 넓어서 저 혼자 모두 대피시키는 건 힘들어요. 내부 구조도 잘 모르고요. 도와줄 직원이 필요한데…….”
“이 상황에 누구한테 도움을…….”
그 순간, 내 시선이 근처에 있던 청소 여사님에게 향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정중한 태도로 부탁했다.
“카르마 코퍼레이션 작전팀입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저희를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자, 작전팀이면… 헌터님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이 사람과 함께 시민들을 대피시켜주십시오. 비상구, 화장실 등 사람들이 있을 만한 곳은 전부 확인해주셔야 합니다.”
“저, 전 그냥 청소부인데…….”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건물 내 사람이 오가는 곳이라면 여사님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안전은 걱정 마십시오. 이 사람, 꽤 실력 있는 사람입니다. 목숨 걸고 지켜드릴 겁니다.”
“아, 알았어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세요! 고층 비상구랑 화장실은 외진 곳에 있어서 거기부터 가야 해요!”
“네, 네!”
이내 여사님이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고, 한유빈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머지않아.
「위치 파악됐어요. 11층 남성 의류 매장에 소규모 던전이에요.」
건물 안내 방송으로 이아영 본부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김민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국, 휴가 마지막 날까지 일이네요.”
“어쩌겠냐.”
“오늘 거도 수당 나오죠?”
“…….”
하여간 비싸게 구네.
“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고…….”
나는 급히 말을 돌리며 먼저 걸음을 뗐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