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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
알프레도 총리의 집무실.
「보이드 유통은 국제협회가 직접 지원하고 있는 사업이니까요.」
“…….”
유선으로 조현민 대통령의 말을 전해 들은 알프레도 총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신 건지 알고 계십니까?”
이내 진지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대로였다.
「알고 있습니다.」
“…….”
조 대통령의 단호한 목소리에 알프레도 총리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물론 조 대통령의 말을 백 프로 믿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의 말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그 자체만으로 엄청난 발언임은 틀림없었다.
조 대통령의 말이 사실이라면 전 세계 시민을 지켜야 할 국제협회가 마약 사업을 주도했다는 의미고, 거짓이라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구를 상대로 음해를 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그것도 일반인이 아닌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한 발언이다.
당연히 그에 대한 책임과 그 파장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조현민 대통령 또한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겠지.
그러니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가 이러한 발언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만한 각오를 했다는 뜻이리라.
「카르마 코퍼레이션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제협회가 멕시코 카르텔에 보이드의 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
「원료인 프렉탈의 가격과 전 세계 물량을 생각해보면 꽤나 엄청난 투자인 셈입니다. 그들로선 포기할 수 없는 사업일 테니, 카르마 코퍼레이션이 움직이는 게 달가울 리 없겠죠.」
“하지만 국제협회가 대체 왜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건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굳이 추측해보자면…… 국제기구로서의 입지겠죠.」
“예?”
조현민 대통령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잘 모르시겠지만, 현재 카르마 코퍼레이션은 국제협회와 냉전 중입니다. 아니, 냉전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겠군요. 실제로 몇 번 마찰이 있었으니.」
“…그건 알고 있습니다.”
「이유와 과정은 제쳐두고. 결과적으로 국제협회는 카르마 코퍼레이션에 본인들의 영향력을 일부 나누어주었습니다. 덕분에 카르마 코퍼레이션은 유일하게 인정받은 민간 토벌 조직으로서 세계 각국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죠.」
알프레도 총리는 가만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하지만 저번에 일어난 헌터 대거 이탈 사태와 맞물려, 카르마 코퍼레이션은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자칫하면 조직 전체가 와해될 수도 있는 큰일이었죠.」
“그건 이미 해결된 일 아닙니까?”
「물론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보이드가 나타나지 않았다면요.」
“…….”
「아직 이전의 일도 다 해결되지 않은 마당에, 대량의 신종 약물까지 전 세계로 유통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카르마 코퍼레이션은 한순간에 무너지겠죠.”
알프레도 총리가 대신 말을 내뱉자 조 대통령은 잠시 침묵했다.
그 또한 같은 의견인 듯했다.
「……그 때문에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헌터들은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기 위해서, 또 이탈리아의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겁니다.」
이내 조현민 대통령이 무겁게 말을 이었다.
「국제협회로부터 말입니다.」
“…….”
알프레도 총리는 깊게 호흡하곤 입을 열었다.
“그 발언… 책임지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조현민 대통령이 즉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알프레도 총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로선 믿기 힘든 사실이군요.”
「이해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린다 한들, 믿기 어려우시겠죠.」
알프레도 총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국제협회가 그간 구설에 휘말린 건 알고 있다만, 세상 어느 기구인들 그러지 않을까.
그 중 어느 하나도 증명된 게 없을뿐더러, 아직 그들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으니.
무엇보다 이탈리아 협회 또한 국제협회 소속의 지부다.
당장 그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증거라고 하긴 뭐하지만, 곧 카르마 코퍼레이션 직원이 찾아갈 겁니다. 그가 가져온 물건을 확인해주십시오.」
“예…?”
조현민 대통령이 의미심장한 말을 뱉은 그 순간이었다.
“총리님!”
한 직원이 다급하게 사무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를 따라 한 남자가 막무가내로 집무실로 들어섰다.
“카르마 코퍼레이션 정보팀 소속, 강재석이라고 합니다. 혹시 대통령님께 연락받으셨습니까?”
“아, 뭐. 예…….”
갑작스러운 난입에 알프레도 총리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걸 내비칠 틈도 없이 남자가 가방을 내밀었다.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가방.
그와 동시에 안에서 하늘색의 가루가 담긴 비닐들이 뭉텅이로 쏟아져 나왔다.
“이건……?”
“구아르디아노가 카르텔과 거래한 보이드입니다. 저희 쪽에서 거래 물건 전량 회수했습니다.”
“그럼, 이게 그 신종 마약이라는 겁니까?”
“예.”
알프레도 총리는 그 내용물을 말없이 바라보며 점점 이성을 되찾아갔다.
저게 진짜 마약인지 아닌지는 연구소에 보내면 금방 확인이 가능하다.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족히 100kg은 돼 보이는데…….’
일반적인 마약이라 생각해도 수십만 명은 족히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만약 저 물량이 그대로 유통된다면……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가 흔들릴 수 있을 정도.
‘…….’
그쯤 되니 알프레도 총리는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조 대통령의 말을 믿고 말고를 떠나서, 정말 신종 약물이 유통될 뻔했다는 건 틀림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다시 전화를 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가 어떻게 했으면 하는 겁니까?”
「일단 현지에서 발생한 마찰의 모든 책임은 한국이 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총리님은 저희 직원이 회수한 보이드를 이탈리아 지부장에게 전달해주십시오.」
“네…?”
「분명 이탈리아 지부장도 이번 일과 연관되어 있을 겁니다. 잘 감시하시다 보면 국제협회 본부 쪽에서 움직임이 있겠죠. 만약 그런 움직임을 포착하신다면, 그걸 언론에 그대로 내보내 주십시오.」
“……만약 국제협회와 연관이 없다는 정황이 나오면 어떡하실 겁니까?”
「그땐 제 발언에 책임을 지도록 하겠습니다.」
강경한 목소리에 알프레도 총리는 눈을 꾹 감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는 눈앞에 놓인 약물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순식간에 너무 엄청난 것들을 들은 탓에 머리가 지끈거려왔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만약 조현민 대통령의 말대로 국제협회가 이번 마약 유통에 연루되어 있다는 정황이 포착된다면…….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
시칠리아섬, 도심 한복판.
“……!!”
그곳에서 김준우 사단과 전투를 벌이던 도중, 에마 대표는 갑자기 온몸이 저릿저릿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본능이 울부짖는 듯한 감각에, 곧바로 고개를 돌리자 눈에 들어온 한 남자.
김준우.
불길한 검은 기운을 펄펄 뿜어대며 전장으로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그새 회복한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사제 클래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결국 임시방편일 뿐이다.
여전히 한계인 건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래, 분명히 그럴 터인데.
‘……빌어먹을.’
그가 내뿜는 기운에 에마 대표마저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래봤자 겨우 끌어낸 힘일 텐데도… 저 정도라니.
에마 대표가 그의 힘을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사실 그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다.
여태껏 본인의 팀과 몇 번이나 충돌이 일어났고, 그때마다 데이터를 모아오지 않았던가.
밸런스팀을 상대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남자.
어느 클래스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스킬과 전투 경험을 보유한 이능력자.
국제협회 비공식 SS랭크로 지정된 자.
그 천하의 웨슬리조차 인정한 존재.
데이터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데이터로는 말이다.
그런데…….
[고유 스킬 : 마왕 - 각성]
[장비가 생성되었습니다.]
스스스스스―.
[마검 : 타르타토스]
[마갑 : 악몽의 베네]
“…….”
저건 데이터 따위로 확인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지 않았는가.
‘……거품은 아니었나 보네.’
에마 대표는 실소를 뱉으며 김준우를 향해 돌아섰다.
그와 동시에.
[고유 스킬 : 병기 확보]
[조정간 - 연발]
철컥―.
에마 대표 주변으로 소환된 온갖 화기가 일제히 김준우를 조준했다.
쾅―!!
파바바바방―!!
두두두두두―!!
수천 발의 탄환이 그를 향해 빗발치기 시작했다.
저격수 클래스.
특수한 총기와 탄환을 사용하는 소수의 클래스.
기본적으로 마법사 클래스와 같이 원거리 포지션이지만, 위치 선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그들과 달리 저격수 클래스는 위치 사수가 절대적이다.
그렇다고 마법사 클래스처럼 광범위한 공격이 가능한 것도 아니며, 몬스터와의 거리가 좁혀진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포지션이다.
가장 까다로운 공격 조건을 가진 클래스지만, 그 한 발이 명중했을 때의 위력은 감히 다른 클래스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가장 까다롭고 위험한 클래스.
동시에 가장 강력한 한 방을 지닌 자들.
그리고 그런 이들 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자.
전 세계 저격수 클래스 1위.
에마 루시아.
[고유 스킬 : 병기 확보]
[조정간 - 포화]
쿠구구구구―.
이윽고 그녀가 스킬을 변형하자 땅속에서 거대한 포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쿵―!
콰과과과광―!!!
그리곤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갔다.
수백 개의 이능운용화기를 소환하는 고유 스킬과 비처럼 쏟아붓는 탄환들.
거기에 더해 기동력과 근접 스킬까지 갖춘 그녀는 현역 시절, 가장 올 라운더에 근접한 이능력자로 평가받았었다.
나이가 든 지금까지 그녀를 대적할 수 있는 현역은 극소수일 정도로 전설 같은 인물이다.
그런 그녀의 공격을.
“그렇게 다짜고짜 총알부터 쏟아붓는 걸 보니…….”
서걱―.
콰과과광―!!!
“제가 어지간히 무섭긴 한가 봅니다.”
김준우는 들고 있던 검 하나로 그 모든 걸 막아냈다.
아니, 막아낸 것이 아니라… 베어냈다.
단 한 번 검을 휘두르자 모든 탄환이 채 닿기도 전에 터져나갔다.
“…….”
에마 대표는 무표정하게 바라봤다.
이 한 번의 합으로 직감했다.
저 남자의 실력은 압도적이라는 것을.
저 검의 위력도 위력이지만…… 무엇보다 그를 둘러싼 검은 기류를 이용한 정체불명의 공격.
웨슬리의 그것과 닮았다.
그렇다는 건 본인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저놈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겠지.
‘인간이 아니네…….’
에마 대표는 눈앞의 악마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리길 잠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희미한 공포감에 서서히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퇴할 수는 없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여기서 끝을 봐야 한다.
설령 본인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고유 스킬 : 병기 확보 - 각성]
[조정간 - 투하]
지이이잉―.
시간을 끌어서 그가 폭주하도록 유도하는 수밖에.
[시전자의 각성 스킬 시전이 확인되었습니다.]
[고유 화기에 접속합니다.]
이윽고 그녀의 눈이 푸른빛으로 번뜩이길 한 차례.
[접속 확인]
[생체 - 화기 원격 투하 프로토콜 개시]
하늘에서 반짝거리는 점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순간.
쿵―!!!
정확하게 김준우의 머리 위로 광선이 직격했다.
우주 조약을 위반하면서까지 비밀리에 쏘아 올린 그녀의 고유 화기.
지구 주변을 돌고 있는 13기의 인공위성, 가르강튀아.
그곳에서 발사된 최대출력의 탄환.
실제 작전 중에는 해당 탄환을 다른 헌터의 스킬로 텔레포트 시켜야 했기에 실사용이 무척이나 까다로웠지만, 지금은 아니다.
쿵―!
쿵, 쿵, 쿵―!!
연달아 김준우를 향해 직격하는 광선.
지상에 닿을 때마다, 반경 수백 미터의 모든 것들이 초토화됐다.
물론 이것으로 김준우를 죽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최소한 그의 움직임을 막고 시간을 끌 수단은 되겠지.
에마 대표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확실히…….”
몇 차례나 광선에 직격당한 김준우가, 아무렇지도 않게 먼지 속에서 걸어 나오기 전까지는.
“대표는 뭔가 다르긴 하군요.”
“……!”
“시간을 끌려는 것 같은데… 저도 간당간당해서 어울려 줄 여유는 없겠군요.”
이윽고 김준우는 자신의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고유 스킬 : 마왕 - 각성]
[전장]
그와 동시에 주변 공간이 검게 뒤덮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먹구름…?”
“시발,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여…!”
갑작스럽게 바뀐 풍경.
지구라고 하기엔 너무나 이질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던 모두가 누구랄 것 없이 움직임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원형 소환 : 대원수 - 바엘]
[원형 소환 : 정복자 - 아가레스]
[원형 소환 : 지배자 - 가미긴]
[소환 : 군단]
“…….”
“…….”
에마 대표와 그들의 눈앞에 마왕과 그의 모든 수하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