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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헌터 협회를 대신해, 카르마 코퍼레이션을 국제 토벌 기구로 인정해주시고 김준우 대표를 사무총장으로 임명해주십시오.”
“…….”
“…….”
이두식 이사가 다시 한번 그 말을 전했고, 동시에 격양되어 있던 장내가 순식간에 숙연해졌다.
“솔직히 김준우 대표보다 더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
“그건 그렇긴 한데…….”
“그래도 이렇게 급하게 결정할 일은…….”
각국의 협회장들은 고민하는 듯 쉽사리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아시다시피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아니… 최악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군요.”
그러자 이두식 이사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국제협회가 기어이 전 세계를 향해 야망을 드러냈고, 곧 모든 것을 통제하려 들 겁니다. 그에 반해 우리는 아무런 준비도 안 돼 있을뿐더러, 심지어는 각국의 지도자마저 잃었죠.”
조용해진 회의실.
이두식 이사는 각국의 협회장을 한 명씩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김 대표가 말했듯, 이런 상황에서 토벌마저 흔들린다면 그땐 정말 모든 것이 끝입니다. 그러니 실력과 자격이 되는 누군가가 총지휘권을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마침 그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 우리 앞에 있군요.”
“…….”
“…….”
“더 이상 고민하는 건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그의 말에 모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합시다.”
“…알겠습니다.”
이내 의견이 모이기 시작했고, 덩달아 내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그리고 그때.
“아, 당사자의 의견을 묻지 않았군요.”
이두식 이사가 잊고 있었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다시 한번 내게 향했다.
“어떱니까, 김준우 대표.”
“…….”
나는 입을 다문 채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리가 굉장히 복잡해진 까닭이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카르마 코퍼레이션을 국제 토벌 기구로 인정하고, 나를 사무총장으로 임명한다고?
그걸 각국의 협회장들이 찬성했고?
그러니까…….
‘내가… 공식적으로 국제 협회의 사무총장이 된다 이거야…?’
그 순간, 머릿속에서 거의 잊고 있었던 음성이 들려왔다.
[귀하의 현 목표 달성 현황이 갱신되었습니다.]
무척이나 오랜만에 듣는 그 음성에, 나는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머릿속의 음성은 여전히 기계적인 투로 담담히 갱신된 내용을 읊기 시작했다.
[히든 스킬 : 업보]
[스킬 해제 조건 : 국제 헌터 협회의 사무총장 달성]
[현재 직책 : 대한민국 민간 토벌 기업 카르마 코퍼레이션 대표]
[현재 스킬 해금률 : 100.0%]
[현재 클래스 : 절대군주]
[현재 비공식 랭크 : SSS]
[현재 비공식 랭킹 : 국내 1위, 세계 1위]
[현 시간 기준, 목표 달성 확률]
[100.0%]
[사무총장으로 위임하는 즉시 귀하는 ‘헌터 김준우’의 사망 직전으로 귀환합니다.]
내 화려한 커리어를 모두 잃어버린 채, 밑바닥부터 올라온 게 2년째.
드디어 목표 달성이 코앞에 놓였다.
여기서 내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순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
전 세계 최초 SSS랭크.
세계 랭킹 1위.
최고의 헌터라 불렸던 그때의 김준우로.
다만…….
‘그럼 남은 녀석들은…?’
내가 돌아가면 지금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
사실 물어볼 것도 없다.
국제협회는 기어이 모든 통제권을 손에 쥐었고, 우린 그들에게 대항할 수단이 현재로선 거의 전무하다.
그런 상황에서 토벌 지휘권조차 잃는다면… 전 세계는 그야말로 웨슬리의 손 위에 놓이게 될 것이다.
경제, 정치, 언론, 안보, 토벌.
정치인부터 일반 시민들까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고 모든 행위를 통제받게 되겠지.
그리고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 있는 녀석 중에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놈은 없다.
다시 말해 내가 돌아가 버리면, 남아 있는 녀석들은…….
‘뺑이 좀 치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대뜸 웃음이 나왔다.
이아영 본부장을 비롯해 남은 녀석들이 나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는 모습을 상상하니 꽤나 신선했던 까닭이었다.
물론 지금 돌아가든 나중에 돌아가든, 결과적으로 나와는 상관없어질 녀석들이다.
그들이 어떤 상황에 놓이든 내가 알 바는 아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선택해야 할 것은, 단순히 주변 녀석들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 따위가 아니다.
지금 내가 선택해야 하는 건, 그저…….
“김준우 대표.”
“……예.”
“모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무총장… 결정을 하시죠.”
“…….”
그저 아무것도 해결된 것 없이 돌아가는 것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가.
“어서 선택하세요.”
그것뿐이다.
***
프랑스 파리, 국회의사당.
한 국가의 국정과 정책을 논의하는 곳이자, 국가 정부의 중심.
……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젠 과거의 일이 되었다.
그곳의 명칭은 불과 몇 분 전,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으니.
“아이고…….”
웨슬리 사무총장이 널브러진 시체들 위에 털썩 앉으며 한숨을 돌렸다.
그리곤 몇 분 전까지 국회의사당이라 불리던 그곳의 내부를 천천히 훑었다.
건물은 바닥과 천장을 가리지 않고 피칠갑이 되어 있었고, 고고한 조각상과 인테리어는 그 흔적도 남지 않은 채 박살이 난 채였다.
하지만 그 광경은 국회 바깥과 비교하면 귀여운 수준이었다.
국제협회 본부에서부터 국회까지 이어진 그 길목에는 수천, 수만 명에 달하는 군인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아주 엉망이 됐군요. 청소팀 불러서 여기 청소 좀 해야겠습니다.”
그때, 웨슬리 사무총장이 상황을 확인하고 있던 직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앞으로 우리가 쓸 건물인데 깨끗이 해야죠.”
“알겠습니다. 바로 본부 청소팀 파견하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직원은 이내 곧바로 그곳을 벗어났다.
웨슬리 사무총장은 한 차례 깊게 숨을 뱉어냈다.
이것으로 계속 벼르고 있던 이사를 끝마쳤다.
한때 프랑스의 국회의사당이었던 이곳은, 이 시간부로 다른 이름을 갖게 됐다.
국제 헌터 및 던전 관리 협회.
절대 권력을 갖게 된 조직의 본부가 된 것이다.
“상황 종료됐어.”
“말씀하신 대로 총리는 생포해뒀습니다.”
그때, 두 여성이 그에게 다가오며 상황을 보고했다.
이내 웨슬리 사무총장은 몸을 일으켜 그들 앞에 똑바로 섰다.
PB 코퍼레이션 대표이자 오랜 친구 에마.
그리고 웨슬리 사무총장의 든든한 오른팔이자 수행비서인 케이트.
그녀들의 뒤를 따라 모습을 드러낸 각 부서의 총 책임자들과 팀장들.
마지막으로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의 병력이 웨슬리 사무총장을 향해 예를 갖췄다.
비로소 그의 앞에 새로이 탄생한 국제협회의 전신이 모두 모인 것이다.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 인원들 앞에서 웨슬리 사무총장이 입을 열었다.
“뭐, 조금 급하게 시행한 감이 없진 않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목표를 달성했군요.”
“…….”
“…….”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그의 말을 경청했다.
“이 순간부로 관리 권한, 국제 조약, 규율은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이제 우리에겐 전 세계를 통제할 수단과 방법이, 그리고 권한이 생겼습니다. 또한, 여기 있는 모두는 그 권한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던전 통제권에 이어 보이드 제조법.
그리고 국가 단위의 지휘 시스템까지.
이 모든 것들이 손에 들어왔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진정한 의미의 권력자, 전 세계 머리 꼭대기에 선 강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때, 에마 대표가 물었다.
“우리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왔으니 카르마 코퍼레이션 놈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텐데. 무엇보다 이능석과 반능석이 그놈들에게 있으니, 그걸 가공한다면 어느 정도는 대항할 거고.”
“물론 당장 전쟁을 일으킬 리는 없겠지만, 연합을 구축해서 토벌 지휘 체계를 단일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에마 대표의 첨언에 이어 케이트 비서가 거들자, 웨슬리 사무총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가만히 있을 리가 없겠지.
지금쯤이면 전 세계 협회장이 모여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부족한 토벌 인원을 병력으로 빼는 건 불가능할 테니, 일단은 토벌에 전념하면서 대비책을 세우려고 할 것이다.
‘뭐, 대비책이라고 해봤자 그동안 우리가 관리하고 있던 토벌 시스템에서 독립하는 것뿐이겠지만…….’
독립 토벌이 가능하다면 그나마 본인들의 통제를 덜 받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지휘를 받아온 그들이 하루아침에 독립 토벌을 시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뭐, 우선은 통제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실감시켜줄 필요가 있겠군요.”
웨슬리 사무총장이 에마 대표를 바라봤다.
“클로이 팀장에게 차원석 가동하라고 해줘.”
“차원석…?”
“지금부터 전 세계 출현 던전 수를 두 배로 올릴 거야.”
웨슬리 사무총장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한번 어떻게 되나 보자고.”
물론, 이건 맛보기에 불과했다.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한, 그저 작은 기믹.
당연히 이건 그저 시작일 뿐이었다.
***
카르마 코퍼레이션 본사.
작전본부, 지휘 통제팀.
평소와 다르게 꽤나 어수선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던전 출현이 두 배로 늘었다고요?!”
그때, 김민주 작전 본부장이 그곳으로 들어서며 상황을 물었다.
“네, 네! 전국적으로 출현이 급증했습니다.”
“도서 산간 지역도 10개 이상 출현하고 있습니다!”
“말도 안 돼……. 제대로 확인한 거 맞아요?”
직원들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민주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빌어먹을, 갑자기 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던전에 관한 연구가 완벽히 진행된 건 아니지만, 지구상에 출현하는 던전의 개수는 정해져 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었다.
한 번 소멸된 던전은 차원 너머에서 다시 몬스터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가, 이내 다시 출현을 반복하는 구조.
그렇기에 던전 청소팀이라는 특수 조직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평균 출현에 소소한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갑자기 전 지역이 두 배로 급증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래.
누군가 던전을 고의로 생성한 게 아니면.
‘설마…….’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이 스치기도 잠시.
“김 본부장님!”
“민주 씨!”
하성일 본부장과 이아영 본부장 또한 다급하게 그녀를 찾았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던전 출현이 급증했다고 합니다!”
“국제협회가 관리하고 있던 토벌 체계가 무너지면서 각국 협회가 토벌을 거의 포기한 상태에요!”
설상가상으로 최악의 소식들이 연달아 전달됐다.
‘빌어먹을…….’
김민주는 이를 으득 씹었다.
그리고 그때.
“던전 출현이 급증했다고?”
구세주와 같은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름 아닌, 김준우 대표가 직접 지휘실을 찾은 것이다.
“서, 선생님!”
“대표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회의는요? 어떻게 됐어요?”
세 본부장이 동시에 반응했다.
김준우는 이내 회의의 결과를 간단히 축약했다.
“중앙 지휘 기구였던 국제협회가 사라졌으니, 각국 협회가 독립 토벌을 진행해야 하는데…… 다들 경험이 부족한 터라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조직이 국제협회를 대신해서 전 세계 토벌 지휘권을 잡아야 한다는 안건이 나왔습니다.”
그가 잠시 숨을 고르길 한 차례.
“그 기구로 카르마 코퍼레이션이 선정됐습니다.”
이내 그 소식을 전달했다.
“네…?”
“그, 그게 무슨…….”
그와 동시에 김민주와 하성일 본부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자, 잠깐만요. 그럼 그 말은…….”
하지만 이아영 본부장은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그녀가 말을 더듬으며 묻자, 김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현 시간부로 카르마 코퍼레이션이 공식 국제 토벌 기구로 인정받은 겁니다.”
“세상에…….”
“이렇게 될 줄 알았습니다!”
“…….”
모두가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설립 목적이자 목표를 비로소 이뤄냈으니까.
당연히 축배를 들어야 할 소식이었지만, 어째선지 이아영 본부장은 오히려 패닉에 빠진 듯 보였다.
“그럼 당신이 사무총장에…….”
그리고 그녀가 어렵사리 입을 여는 순간.
“걱정 마십시오.”
김준우가 곧바로 그녀의 말을 자르며 즉답했다.
“사무총장은 더 적합한 분이 맡을 테니.”
“……네?”
이아영 본부장의 눈썹이 꿈틀거리던 그 순간.
“이야, 생각보다 잘해놨네. 확실히 잘 나가긴 했나 봐.”
지휘실로 한 노인이 들어섰다.
“뭐, 결국 이렇게 됐지만 말이야.”
“…오셨습니까.”
“이래서 젊은 놈들만 있으면 안 돼. 관록이 있어야지.”
너스레를 떨며 우리에게 다가온 그는.
대한민국 토벌의 살아 있는 전설.
아무것도 없던 황무지에서 독립협회를 설립, 독자적인 토벌 체계를 정립시킨 영웅.
동시에 수십 년간 대한민국 이능차원관리 협회장을 역임한 장본인.
그리고 비로소 현재 국제 토벌 기구,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사무총장이 된…….
“이제 애송이들은 비켜.”
박인범이었다.
“어른이 해결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