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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
대한민국 이능차원관리 협회의 첫 해외지부이자, 카르마 코퍼레이션의 자금줄.
이곳을 직접 찾는 건 인수 이후 처음이었다.
“어이구, 후덥지근하구먼!”
“그러게요. 비행기는 추웠는데.”
“근데 이 날씨면 사체도 훨씬 빨리 부패할 거 같은데…… 얘네들은 어떻게 작업하려나.”
청소 3팀의 원년 멤버.
박근태와 문소연 그리고 한상혁이 공항을 빠져나오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듣고 보니 그러네. 부패 속도가 빠르면 그만큼 작업 속도도 빨라야 할 텐데……. 장비를 좋은 걸 쓰나?”
“투입 인원이 많지 않을까요? 우리는 5명이 가장 효율이 높지만, 이런 환경이라면 7~8명은 돼야 할 거 같네요.”
“에이, 과장님 감 다 죽었네. 차원형 던전이 아니고서야 그 정도 인원은 오히려 방해된다니까? 아마 박 부장님 말대로 좋은 장비를 쓰는 게…….”
얼씨구.
누가 청소팀 아니랄까 봐…….
‘도착하자마자 청소 이야기뿐이군.’
자기들끼리 신명 나게 토론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그때.
“연락하고 온 게 아니라서 지부까지는 직접 이동해야 해요. 뭐… 미리 말했어도 마중 나오진 않았겠지만.”
동행한 이아영 본부장이 말했다.
“그리고 당연한 거긴 한데, 국제협회에 붙은 이후로 우리 쪽이랑은 완전히 연락을 끊었어요. 이유라도 들어보고 싶은데 연락이 안 되니 우리로선 알 도리가 없고요.”
“서운하군요.”
“누가 아니래요.”
이아영 본부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 봤자 한 달 정도 머물며 본 게 다지만, 후인 지부장이 본인의 잇속을 위해 우리를 배신하고 국제협회에 붙을 만한 인물은 아니다.
과거, 유령 협회 밑에서 아무런 지원도 없이 목숨을 내걸며 토벌을 이어갔던 사람이다.
그것도 오직 본인의 나라의 안전을 위해서.
물론 자리가 사람을 바꾼다고, 이제 와서 더 높은 자리가 욕심났을 수도 있지만…….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으면 진작 돌아섰겠지.’
여태까지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닐 테고.
“그런데 말이에요…….”
그때, 이아영 본부장이 청소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는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왜 굳이 팀으로 온 거예요?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는 거면 당신이랑 나만 와도 되지 않나?”
“청소부들이 뭘 할 수 있다고 여기까지 데리고 왔냐, 이겁니까?”
“누, 누가 그렇대요?! 그냥 역할이 좀 안 맞지 않냐는 거죠! 무슨 말을 그렇게 한대.”
기겁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 반응에 나는 피식 미소를 흘렸다.
“뭐, 해본 소립니다.”
“…….”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본다.
“그래서, 진짜로 청소팀을 데려온 이유가 뭐예요?”
“이제 저는 조직의 대표도 아니고, 당신처럼 책임자도 아닙니다. 일개 청소부가 지부장 만나서 이것저것 책임을 묻는 게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그런 게 의미가 있긴 해요? 이 바닥에선 당신 이름이 곧 직급인데.”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청소팀장으로 내려왔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직급일 뿐, 여태까지 내가 해온 게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중요한 건 직급이 아니라, 내가 김준우라는 것이다.
당연히 내가 청소팀장이라고 해서 못 만날 것도 아니고, 책임을 못 물을 것도 아니다.
다만…….
“제가 이전처럼 행동하다간 자칫하면 조직의 위계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
그 한마디에 이아영 본부장은 곧바로 납득한 듯했다.
“우리끼리 있는 회사라면 사실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만. 이제 엄연히 국제기구가 되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다른 것도 아니고, 토벌 기구로 인정받았죠.”
모든 토벌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다.
위계가 흔들리면 지휘 체계가 흔들린다.
그리고 그건 곧 토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겠지.
다시 말해, 우리의 위계는 곧 사람의 목숨과 직결된다는 의미이다.
“각국의 토벌을 지휘하고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선, 그리고 국제협회에 대항할 힘을 기르기 위해선, 무엇보다 조직의 위계가 지켜져야 합니다.”
“……듣고 보니 그러네요.”
“그러니까 전 청소팀장으로서 그저 베트남 지부에 청소지원을 나온 것뿐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책임을 묻기 위해 온 게 아니라요.”
“표면적으로는 그렇다는 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표정이 어째 떨떠름한데.”
“다른 건 아니고, 당신이 위계 이야기를 하니까 좀 새삼스러워서요.”
그녀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예전에는 위계를 무너뜨리던 사람이 이젠 위계를 지키려고 하고 있잖아요.”
“무슨 소립니까? 전 그때도 딱히 위계를 무너뜨린 건 아닙니다.”
“……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초에 나는 위계질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곳에서의 위계는 필수적이다.
다른 조직은 몰라도, 최소한 협회는 그래야 한다.
부하들을 흐트러짐 없이 통솔할 수 있어야 목숨이 오가는 던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당연히 어떤 상황이 닥쳐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겠지.
작전팀장이 조직 내 실세라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장 최고 책임자인 그들이 대부분의 권한과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당연히 팀원들은 그 권한에 반기를 들 수 없어야 한다.
목이 날아갈 수도 있거든.
하지만 이 위계질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저는 위계를 무너뜨린 게 아니라… 그냥 능력도, 실력도 없는 머저리들을 쳐낸 겁니다.”
권한을 가지고 있는 책임자가 그만한 자격이 되는 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격도 없는 놈이 권한만 내세우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면…….
그건 위계가 아니다.
그냥 자리에 심취한 병신일 뿐이지.
“뭐…… 맞는 말이네요.”
이아영 본부장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튼… 우린 그냥 우리 일을 하러 온 겁니다. 청소부로서.”
그 말과 함께 택시에 탔다.
도로를 달리며 풍경을 바라봤다.
반듯한 건물들과 표정에서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사람들.
2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도시의 모습에 퍽 감회가 새로웠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도착했습니다.”
택시 기사의 목소리에 눈을 뜨자, 어두컴컴한 하늘이 먼저 보였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
“…….”
머지않아 택시 안에 있는 모두가 말을 잃었다.
그도 그럴 게, 그곳은 베트남 지부가 아닌… 사방이 캄캄한 숲속이었으니까.
“뭐, 뭐야. 여기가 어디야?”
“제대로 온 거 맞아요?”
“지부로 가자고 한 거 아니에요? 왜 이런 곳으로…….”
“자, 잠깐… 저기 누가 있는데?”
그리고 그 순간.
복면을 쓴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숲속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곧바로 우리가 탄 택시를 포위했다.
“뭐, 뭐여…….”
“이게 지금 무슨…?”
모두가 크게 당황했지만, 나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거 어째…….’
처음 왔을 때랑 상황이 비슷한데?
***
국제 헌터 협회, 베트남 지부.
“지부장님.”
지부장실로 응우옌 작전 본부장이 들어섰다.
“전 직원들 대상으로 인사 개편 통보 완료했습니다. 총 11개 작전팀 포함, 지원팀, 통제팀. 그리고 모두 내일부터 국제협회…… 아니, 본부 인원들로 재편성할 예정입니다.”
“그래.”
“그리고 전문 경영인도 파견하겠다고 합니다.”
“…….”
그 말은 곧, 지부의 책임자 또한 기어이 국제협회 인사로 바뀐다는 의미였지만, 그럼에도 후인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응우옌 본부장을 등진 채 연신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후인이 이내 그를 향해 돌아섰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응우옌이 아닌 바닥을 향해 있었다.
차마 두 눈 똑바로 뜬 채, 그의 얼굴을 바라볼 면목이 없던 까닭이었다.
“……괜찮으신 겁니까?”
“안 괜찮을 건 또 뭐야. 어차피 이 바닥에 동료가 어디 있어. 다 이득 따라, 상황 따라 움직이는 거지. 안 그래?”
“그건 그렇습니다만…….”
응우옌 본부장이 그를 지그시 바라보길 잠시.
“지부장님이 괜찮으신 거냐고요.”
“…….”
후인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응우옌은 후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독립협회 시절부터 지금까지, 하루하루 목숨을 버리던 시절을 같이 지내온 사이가 아닌가.
그는 누구보다 올곧은 남자다.
그런 남자가 은혜를 입은 상대에게 등을 돌린 이 상황이 괜찮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후인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안 괜찮으면 어쩌겠냐.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 솔직히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았을 것 같아.”
“……예.”
응우옌 본부장이 힘없이 대답했다.
그것을 끝으로 두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정적을 이어갔다.
그렇게 사무실에 무거운 침묵이 이어지던 그때.
똑똑―.
누군가 사무실을 두드리곤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저, 지부장님. 방금 공항 입국심사소에서 연락이 왔는데…….”
지원팀 소속의 한 직원이 퍽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 소식을 전했다.
“김준우 씨가 입국했다고 합니다.”
“……!”
“……!”
그와 동시에 두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이전 같았으면 버선발로 뛰쳐나가 맞이할 반가운 손님이었겠지만, 지금으로선 저승사자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 그가 베트남을 방문했다는 건, 결코 좋은 의미는 절대 아니었다.
“어, 어떻게 합니까. 분명 책임을 물을 텐데……. 본보기를 위해서라도 가만히 두지 않을 겁니다.”
“…….”
“본부에 연락해서 병력 파견이라도 요청해보심이…….”
“그건… 그냥 싸우자는 거잖아.”
“하지만 방법이 없잖습니까.”
응우옌 본부장의 목소리가 점점 격양됐다.
하지만 후인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 은혜를 입고도 뒤통수를 쳤는데, 기어이 그에게 칼까지 들어 밀어야 한다고?
그게 과연 맞는 건가?
“…….”
후인은 입을 다문 채 한참을 고민했다.
“작전팀에 아직 우리 직원들 남아 있지?”
이내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 예, 뭐… 인사 개편은 내일이니까…….”
“유령 협회 때부터 같이 일했던 놈들 몇 명만 추려서 대기시켜놔.”
“네?”
“우리가 직접 마중 나가자고.”
후인은 먼저 사무실을 벗어났다.
***
“김 대표님.”
한 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숲속.
우리를 포위한 괴한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 아닌 후인 지부장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후인 지부장님.”
나는 그를 발견하곤 택시에서 내리며 인사를 건넸다.
“예,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글쎄요. 국제기구가 되면서 청소팀으로 좌천당한 것 빼고는 그럭저럭 지낼만합니다.”
“…….”
그의 표정이 퍽 굳었다.
“그나저나 환대가 여전히 변함없으십니다.”
“하하, 죄송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내 그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를 또 여기로 데려온 이유가 뭡니까. 책임을 묻기 전에 처리하려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그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에게는 평생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선 무척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알고 계시니 다행이군요. 난 또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계신 줄 알았는데.”
대놓고 비꼬았지만, 후인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결국, 답답한 마음에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러자 후인이 쓴웃음을 짓길 한 차례.
“며칠 전에… 웨슬리 사무총장이 직접 지부를 찾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시작했다.
“국제협회에 붙으라고 하더군요. 물론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만……. 그랬더니 베트남 전 지역의 던전 출현을 중지시키겠다고 했습니다.”
“……!”
“그뿐만 아니라, 주변국에 압박을 넣어서 허브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고요.”
그렇군.
“아시다시피 우리 베트남은 아직 토벌 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기존 산업과 기업들이 유령 협회 시절에 거의 다 무너져 내렸으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물론 조금씩 다른 산업도 시작하고 있고 여러 기업에 지원도 하고 있지만, 만약 지금 당장 토벌이 막혀버린다면 모두 파산하게 될 겁니다.”
그가 고개를 아래로 떨어트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웨슬리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변명으로 들리시겠지만, 저희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뭐, 사실 이럴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국가 전체의 토벌 산업을 가지고 협박을 했을 줄이야.
‘그놈들이 통제권을 쥐었다는 게 실감이 좀 나네…….’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때.
“그래서 정말 염치없고 죄송한 말씀인 건 알지만…….”
이내 후인 지부장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퍽 잠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희를 그냥 내버려 두시면 안 되겠습니까?”
배신해놓고 못 본 척해달라는,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소리.
동시에 벼랑 끝에 내몰린 채 선택을 강요받은 자의 절규.
그 딜레마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던 끝에.
“죄송하지만…….”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